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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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의 마음을 울렸던 이준익 감독이 이번에는 ‘왕의 아들’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개봉 이틀 만에 “흥행에 불이 붙었다”라는 기사가 속출하고 있는 화제작 ‘사도’에 얽힌 제작 스토리를 직접 들었다.

친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뒤주에 가둬 죽인 왕과 아버지의 손에 죽어야만 했던 비운의 왕세자. 조선 제21대 왕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사이에 일어났던 비극적인 이야기는 그로부터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두 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토록 비인간적인 파국을 맞이하게 됐는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후 생을 마감하기까지 마지막 8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된 「승정원일기」는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의 요청에 의해 삭제됐기 때문이다. 비운의 세자에 얽힌 역사의 많은 부분은 여백으로 남아 있다.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이준익(56) 감독은 사도세자의 기록 곳곳의 빈 공간들을 강렬한 울림이 있는 묵직한 이야기들로 채워 넣어 영화 ‘사도’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도 애정을 주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속 좁은 영조, 여리고 따뜻한 품성을 지녔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엇나가기 시작하는 사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제 역사 속 한순간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이 감독은 “정조의 아버지이자 뒤주에 갇히는 인물로만 소개됐던 사도세자가 주체가 되는 영화를 심도 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다”라고 한다.

사도, 정반합의 이야기
영화 제목이 ‘사도’인데 사도세자 1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조-사도세자-정조’까지 3대에 걸친 부자의 관계를 골고루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더군요. 영조 1인칭 시점이나 정조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한 부분도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한 인간을 단면만 보고 규정짓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지요. 사도세자 한 명을 자세히 보여준다고 해서 사도의 정체성이 다 설명될까요? 눈, 코, 입을 보여줬다고 해서 한 인물을 다 보여줬다고 할 수 없듯이 인물을 설명할 때도 그가 이룬 관계 속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보통 영화는 하나의 관점으로 진행되지만 ‘사도’에서는 관점이 세 번 이동합니다. 처음에는 영조, 그다음에는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로 옮겨가죠. 관객들은 그 관점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지요. 저는 이 영화를 ‘정-반-합’의 이야기로 풀어서 완결 짓고 싶었습니다. 영조가 취하는 액션이 ‘정’이고 이에 대해 사도가 보여주는 행동들이 ‘반’입니다. 자라서 왕이 된 정조가 보여주는 모습은 ‘합’이죠.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에서 불행과 비극이 일어났지만 정조가 결국 과거와 화해를 하면서 ‘합’을 이뤄낸다고 봤습니다. 이 영화는 결코 사도 1인에 대한 스토리도 아니고, 영조와 사도 간의 대결을 그린 것도 아니에요.

영화에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판이하게 다른 성격이 구체적으로 잘 묘사돼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송강호씨가 연기한 영조는 속 좁고 의심 많고 변덕스럽게 묘사됐더군요. ‘사도’에 나오는 내용의 90%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겁니다. 영조의 성격과 오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영조가 처했던 상황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지요. 영조의 어머니는 무수리보다도 낮은 각심이라는 신분이었습니다. 천민 중에 천민이죠. 영조가 왕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 겁니다. 왕이 되기 전 상황으로 돌아가면 아마 죽게 될 테니 영조는 ‘돌아갈 귀’라는 한자도 아예 안 쓸 정도였죠. 자신이 처한 살벌한 운명 앞에서 가까스로 왕이 된 후 영조는 52년 동안이나 왕위에 머뭅니다. 그 기간 동안 자기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고 가혹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타인에게도 엄격하고 가혹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영화에서 보면 사도세자에게 “나는 너보다 더 불행한 환경에서도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너는 그 따위로 하느냐”라고 말하잖아요. 자신은 죽을 위기를 이기고 왕이 됐는데 적자이면서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도가 못마땅한 거죠. 사도가 죽기 직전에 시달린 광증의 원인 제공자는 영조예요.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실제 역사 속에서 사도세자는 자신의 후궁을 비롯해 100여 명의 사람을 죽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에서는 굉장히 총명하고 호기로운 인물로 그려졌더군요. 죽기 직전에는 광증에 시달렸지만 기록을 보면 사실 사도세자는 굉장히 총명했습니다. 사도세자가 네 살 때 “비단과 무명 중에 비단이 더 사치스러운 것이냐”라는 물음에 비단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총명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요. 태어날 때부터 미쳐서 정신병원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영조와의 관계 속에서 점점 변해갔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우리가 익히 알듯이 승자의 기록이죠. 기록이 다 진실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기록해놓은 흔적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추론하면, 영조와 사도가 이러한 관계였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죠.

절묘한 캐스팅, 복 터진 감독
이 감독은 스스로를 ‘자유방임주의자’라고 칭할 정도로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일일이 연기 지도를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 인물의 혈액형, 캐릭터 간의 궁합, 사상체질까지 다 고려해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고 촘촘하게 관계를 설정한다고 한다. 이에 기반해 캐스팅을 한 뒤에는 배우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무리 시나리오를 공들여 각색했더라도 배우의 연기에 간섭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신뢰가 가고 뛰어난 배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에서는 송강호, 유아인 두 걸출한 배우가 이 감독의 기대를 오롯이 짊어지고 극을 이끌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역시 송강호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조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그가 사용하는 ‘~했니’라는 말투 때문에 연기하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송강호가 영조를 참 자연스럽게 표현했더군요. 영조 역에 송강호는 어떻게 캐스팅된 것인가요? 사실을 말하자면 제가 송강호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 송강호가 ‘사도’를 선택한 겁니다. 저도 그에게 ‘사도’를 선택한 이유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영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극 중에서 영조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70세예요. 실제 송강호의 나이보다 스무 살가량 많죠. 송강호는 여태까지 자기 나이대의 인물들만 연기했는데, 처음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선택한 거 아닐까 추측해보긴 했죠. 함께 작품을 하면서 참 행복하다, 내가 복 터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촬영 기간 동안 숙소에서 지낼 때 내 방과 송강호의 방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밤이면 “으아아아” 하는 괴성이 들렸습니다. 70세 노인의 목소리를 연기하기 위해 매일 밤 성대를 혹사했던 거예요. 그는 현장에 올 때 멀리서부터 가래 끓는 목소리로 나타났습니다. 세포가 기억하게 만드는 연기법이죠. 어마어마한 배우예요. 현장에서는 ‘송강호는 영조다’라고 생각하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뒀어요.

‘베테랑’으로 유아인의 연기력이 한층 더 주목받았지만, 그 이전에는 유아인이 이 정도로 뛰어난 배우인 줄 몰랐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아인의 어떤 면을 보고 사도세자 역을 맡긴 건가요? 저는 캐스팅을 할 때 배우의 내면을 주시하려는 관성이 있어요. 유아인 안에는 불이 있습니다. 잔불이 아니라 큰불. 영화 ‘완득이’를 보면서 유아인 안에 있는 큰불이 아직 폭발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불을 안고서는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도세자 역은 기본적으로 내면의 심리가 폭발해서 나오는 역할이에요. 그래서 유아인이 적합하다고 느꼈고, 처음부터 사도세자 역으로 유아인을 염두에 뒀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이준익 감독의 이유 있는 ‘사도’

내가 사극을 만드는 이유
‘사도’는 이 감독의 열 번째 연출작이자 다섯 번째 사극 연출작이다. 직접 연출한 작품의 절반이 사극인 셈이다. 첫 사극 연출작인 ‘황산벌’에 이어 ‘왕의 남자’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올랐고, 그 이후로도 그는 꾸준히 사극 영화를 내놓았다. 사실 ‘왕의 남자’ 이후 내놓은 사극 두 편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이어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라고까지 말한 ‘평양성’도 기대 이하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지치지 않고 또 사극을 들고 돌아왔다. 왜 사극일까.

영화 ‘소원’이 흥행에 성공한 상황에서 다시 위험 부담이 큰 사극을 들고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극 영화를 꾸준히 연출하는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애초에 사극을 했던 동기는 이런 겁니다. 서양 문화의 학습을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 동안 죽자고 했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들을 사람들이 많이 읽으며 좋아했고,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이 일종의 지적 허영심과 맞물려서 무척이나 컸던 시절이 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서양의 교육, 지식 그런 것들을 수혈받다시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며 살아왔던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 문화가 없어요. 외국 사람들이 동양 문물을 보면 일본 것, 중국 것은 잘 구별해내지만 한국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르잖아요. 삼성밖에 모르죠. 울화가 치밀더라고요. 그래, 내가 한 번 보여주자. 그래서 계속 만드는 겁니다. ‘황산벌,’ ‘왕의 남자’부터 ‘사도’까지 죽자고 만들고 있어요.

감독님이 연출한 사극은 지금 우리 시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는 250년 전 역사지만 지금 한국의 이야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아요. “공부가 국시고 예법이 국시”라는 영조의 대사를 보면 공부를 강요해 자식과 갈등을 빚는 현 세대의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저는 역사는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조와 사도세자가 반목하듯 과거와 화해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기죠.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일어나는 갈등도 과거와 화해하지 못해서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식민 지배 이후 과거사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갈등이 생기고, 세대 갈등도 빚어졌죠. 갈등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정화할 때만 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에도 저의 그런 생각과 바람이 반영됐죠.

‘사도’는 2016년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 영화 부문 한국 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퓨전 사극이나 코믹 사극이 아니라 한국인의 한과 비극의 정서가 진하게 담긴 정통 사극을 세계무대에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이 감독은 앞으로도 자신이 말한 ‘한국의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오는 12월 개봉 예정인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시, 삶과 죽음을 다룬다. 이준익 감독이 그리는 청년 윤동주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재해석할 윤동주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이혜인(경향신문 엔터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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