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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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그냥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요.” 가수 한영애와의 인터뷰는 숨바꼭질 같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마녀의 옷자락. 마냥 헤매었다고 생각했는데, 되새김한 대화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가슴에 남았다.

진한 눈 화장, 풍성한 파마머리, 영혼을 빨아들이는 목소리에서는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영적인 기운마저 느껴진다. 1975년 ‘해바라기’의 멤버로 가요계 데뷔 후 그룹 ‘신촌블루스’, 솔로 활동을 통해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온 한영애는 말이 아닌 노래로 설명되는 가수다. ‘누구 없소’, ‘코뿔소’, ‘바라본다’, ‘조율’ 등 그녀의 호흡으로부터 발화된 노래들은 폐부를 뚫고 심장을 건드린다. 거칠지만 부드럽게, 울부짖듯 속삭이며 주문을 건다. 정신을 홀린다. 오죽하면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스무 살, 명동 가톨릭여성회관의 해바라기 살롱에서 음악 인생을 시작한 ‘이상한 목소리의 여자애’는 포크와 록, 블루스, 트로트 등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압도적인 표현력으로 대중 곁에서 40년을 함께했다. 데뷔 40주년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그녀를 명륜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이제껏 한 번도 숫자를 기념하는 공연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이쯤에서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라며 팬들을 만날 생각에 여고생처럼 설렌다고 했다. 10월 9일 열리는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꿈 인(in) 꿈’에는 그녀의 오랜 친구들도 함께한다. 한영애의 시작을 함께한 ‘해바라기’의 이정선과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그녀와의 대화는 질문과 답이 오가는 일반적인 인터뷰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는데, 어김없이 한 템포 느리게 돌아오는 대답에는 본능처럼 여겨온 삶의 철학과, 경험을 통해 체득한 깊은 진심이 묻어났다. 한영애는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고 언어의 유한성을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노래처럼 말이다.

요즘 연습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시죠? 여기서 음악 작업도 하고 연습도 해요. 제 놀이터예요. 보통 ‘연습’이라고 하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 그냥 하루 종일 연습이라고 생각해요. 미술관 가는 것도 연습이고 영화 보는 것도 연습이죠.

작년 11월에 발표한 「샤키포」가 15년 만의 앨범이었어요. 다들 오랜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아요. 그동안 계속 공연도 하고 바쁘게 살았어요. 다만 청년 시절 음악만 했던 시기만큼 온 시간과 온 열정을 쏟지 못했다는 것뿐이지, 제겐 15일이 지난 것 같아요. 사실 앨범을 내고 봄쯤에 콘서트를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여러 가지 문제로 뒤죽박죽됐어요.

40주년 기념 콘서트라니, 기분이 어때요? 그렇게 된 줄도 모르고 지냈어요. 저에게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주변에서 40주년이라고 하는데 부끄럽더라고요. 극단 생활하고 이것저것 사적인 시간을 빼면 한 25년 된 것 같은데(웃음). 이 40주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쩔쩔매다가 한 번쯤 뒤돌아보며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콘서트 이름이 ‘꿈 in 꿈’이에요. 그동안의 시간들이 꿈같았다는 의미일까요?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상상의 영역이 줄어들잖아요. 그래서 늘 설명이 고민스러워요. 춘향가에 ‘꿈에서 깨니 꿈이고 꿈속에 들어가니 꿈이다’라는 대목이 있어요. 전 아직도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나는 음악적인 꿈을 꾸고 있는가, 아직 형상화하지 못한 것들은 꿈속에 있는 것일까 현실에 있는 것일까, 과연 원하는 꿈이 그것이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요. 중간에 연극에 몸 바친 시간도 길었고 헤맨 시간도 있었죠. 음악을 한 시간만 25년 정도라고 하더라도 정말 꿈같은 시간 아닌가요?

그동안의 공연에서는 게스트를 보기 힘들었는데 특별한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추억을 들춰본다든지 뒤를 돌아보는 부분이 거의 없는 사람임에도 그동안의 히스토리와 음악적으로 걸어온 행보를 돌아보게 됐어요. 머릿속에 스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가장 처음에 만났던 ‘해바라기’의 이정선씨, ‘신촌블루스’ 프로젝트로 함께 활동했던 엄인호씨, 지금은 세상에 없는 김현식, 유재하, 이영훈, 그들을 추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씨예요. 그 세 분을 모시고 “제 흉 좀 봐주세요” 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느리지만 충실하게 이어온 삶의 템포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예요?
순간은 모든 게 남아 있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도 해요. 꿈같아요. ‘해바라기’ 시절엔 그냥 노래하는 게 즐겁고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남들이 박수 쳐주는 것도 좋았고, 그냥 그런 것들이 좋았어요. 어떤 하나로 시작과 끝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맨 처음 노래했던 순간, 기억나요? 엄마한테 들은 얘기인데 제가 두 살인지 세 살 때쯤,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무렵 동네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 데려 가면 그렇게 노래를 불렀대요. 가르쳐준 사람도 없는데. 초등학교 때 전학을 갔는데 전 학교 선생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합창대회가 열리는데 제가 필요하다고요. 중·고등학교 때 국군 장병들 위문공연 가면 꼭 뽑혔고. 그랬던 기억들은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수의 꿈을 꾸게 된 건가요? ‘해바라기’ 때도 그랬고, 가수가 되겠다거나 특정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열정을 어디다 쏟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일을 해야 이런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을까, 나를 담을 수 있는 일이 뭘까. 노래 부르고 극단 생활하며 그런 것들을 찾아 나섰던 것 같아요. 연극하던 시절도 참 좋았지만 이게 평생 내 일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죠. 그러다 어떤 형태가 됐든 죽을 때까지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30대 초반, 1985년 솔로 데뷔 때부터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있을까요? 글쎄요. 살면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잖아요. 어느 날 문득 마음에 올 수도 있으니까. 국물이 좋았는데 갑자기 건더기만 좋아질 때가 있고, 그런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1집 앨범 「여울목」을 시작으로 「샤키포」까지 6장의 솔로 앨범을 냈어요. 활동 기간에 비해 적은 수지만 앨범 하나하나가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죠. 적다는 것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요. 전 1년에 한 번씩 앨범을 내는 사람들이 천재 같거든요. 아날로그적인 앨범 개념으로 볼 때 느리게 온 건 사실이에요. 그게 제 삶의 템포고 호흡이었던 것 같아요.

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소리마녀, 40년 매듭을 풀다 한영애

보통 사람들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나이를 숫자로 인식한 게 마흔셋이에요(웃음). 그냥 ‘뭐지? 나 나이 많아?’ 그랬어요. 사람들이 대부분 20대는 어땠고 30대는 뭐 하고 40이 되면 뭐 할 거다, 그런 계획이 있더라고요.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 그런 건 아니고 유독 숫자, 나이 든다는 개념이 없어요.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다는 얘기로 들려요. 한영애가 매 순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뭐예요? 하루 세 끼 식사 시간 맞춰서 먹는 것. 이건 정말이에요(웃음). 1993년에 좀 아파서 1, 2년 노래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생긴 습관이에요. 저는 먹는 것이 많은 병을 고친다는 믿음이 있어요. 시간 지켜 세 끼 먹기를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죠. 간혹 “종교가 뭐예요?” 물으면 “밥이요~”라고 대답해요.

요즘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요. 아직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소리의 마녀’라는 별명이 있어요.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나의 어떠한 부분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요. 그래도 별명이 없는 것보다는 좋아요. 저를 부르는 말 중 아직 정말 싫거나 소름 끼치는 별명은 없었어요. 저도 사람이니까 싫은 게 나오면 싫을 수도 있겠죠. 나에 대한 나도 모르는 이야기는 세상에 붕붕 떠다니잖아요. 제가 다 알 수도, 제어할 수도 없죠.

지친 마음에 따뜻한 체온이 되는 목소리
최근 앨범 얘기를 해볼까요? 「샤키포」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요즘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까요?
오랜만에 내는 앨범이라 후배들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했어요. 묘했던 건 다들 밝은 내용, 밝은 노랫말을 얘기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랬고요. 최근 우리가 세월호, 메르스 등 사회적으로 많이 힘들었잖아요. 사람들이 지쳐가는 게 무척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더욱 밝고 희망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고, 그런 바람을 담았죠. ‘샤키포’ 가사 중에 ‘내 손을 놓치지 마, 내 체온을 의심하면 안 돼’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절실하게 쓴 거예요.

소설가 황경신씨가 가사 작업에 참여했더라고요. 경신씨는 20년 친구예요. 친구처럼 지내다가 이번에 문득 생각이 난 거예요. 부탁했더니 흔쾌히 쓰겠다고 해서 가사를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둘이 호흡이 잘 맞아요. 경신씨는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다는 건 행복한 삶이죠. 음악을 함께해온 좋은 사람들 중 떠나간 사람도 있고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지금 한영애에게 좋은 친구라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앞에 계시잖아요(웃음). 저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사람을 거의 안 만나고 살아요. 그러나 한 번 맺은 인연들에 대해선 오래가요.

외롭지 않아요? 많이 만나면 안 외롭나요(웃음).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에 있을까요. 결혼해도 외롭고 안 해도 외롭고, 외로움은 당연한 거예요.

외로울 땐 어떻게 해요? 그냥 외로워하면 돼요. 일종의 훈련인 것 같아요. 똑같은 사람인데 저만 이렇게 태어났겠어요. 지금 무척 슬프다면, ‘비 온 후에 해가 뜨겠지. 그럼 좀 슬퍼하자. 슬픔이 없어질 때까지’라고 생각해요. 견디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지나가야 하는 일이잖아요.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예요? 오늘 아침 매니저와 오랜만에 아침밥을 차려 먹었어요. 매일 떡, 과일, 커피 이렇게 먹었거든요. 고깃국에 김치, 멸치볶음 딱 놓고 먹는데 마음이 참 편안하더라고요. 아침밥을 먹는 게 이렇게 든든한 건지 몇 년 만에 느껴본 것 같아요. 행복했죠. 늘 말이 떠다녀요. 행복은 가까이 있다고요. 말이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느껴져야 해요. 일상의 작은 기쁨들. 그런 게 희망이라고 봐요. 물론 힘든 일도 있죠. 저도 사람이라 잘은 안 되지만 그래도 껴안으려고 애써요. 저는 살아 있는 게 좋아요.

오랜 팬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안부의 인사
이제까지 음악을 해오며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게 있다면 뭐예요?
거짓말하지 말자. 없는 걸 만들어내지도 말고 있는 걸 숨기지도 말자. 10년 전, 20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을 거예요. 결국엔 자기 최면적인 진정성 아닐까 싶어요. 근데 언어라는 건 무척 유한적이에요. 말은 재미없는 것 같아.

그럼 어떤 게 재밌어요? 가만히 있는 거, 맛있는 거 먹는 거, 가다가 좋으면 머무르는 것(웃음).

최근에 머물렀던 곳은 어디예요? 제주도에 자주 가요. 사무실과 연습실이 있는 명륜동에도 자주 있죠. 집이 모처에 있어요.

새로운 앨범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아날로그 개념의 앨범을 내지는 않을 듯해요. 싱글이나 미니, 온라인상의 한 곡이 됐든 어떤 식으로든지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번 앨범이 계기가 됐어요. 마음은 늘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여러 가지 템포가 맞아야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노래하는 모습 자주 보여드리고 싶어요.

‘나는 가수다2’에 출연했던 게 벌써 3년 전이에요. TV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그때는 즐기지를 못했어요. 예능이라면서 그렇게 긴장을 하게 만들었어(웃음). For Fun! 주제에 맞게 편안하게 무대를 꾸미고픈 욕심이 있어요. 여러 가지 변신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나가수’는 그래도 제게 소중한 경험이고 추억이에요. 덕분에 고등학생 팬들도 생기고.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를 도입한 「샤키포」는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드는 앨범이었어요. 이다음 한영애는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한영애의 나이 든 모습이 될 거예요(웃음). 나이 생각을 안 해도 나이는 드는 거니까.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껴안으면서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지 않을까요. 혼자 작사, 작곡하고 혼자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홍대에 가서 젊은 친구들 노래도 자주 들어요. 전 뭐든지 열려 있어요.

음악은 한영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음악은 제겐 샘 같은 존재예요. 타인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죠.

오랜 시간 한영애의 노래를 들어온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음악을 매개로 40년이란 시간을 공유했다는 건 엄청난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든 그동안 저를 기억하고 지켜봐온 분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파르르 뛰어요. 세월을 같이한 거잖아요. 그들에게 40년 동안의 안부 인사, 설렘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해요. 애인보다 더 좋아.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김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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