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정대장’ 최성국, 대륙 제압 초읽기
최성국(45) 본인도 어리둥절하다. 중국 진출을 목표로 둔 적도 없고 별다른 마케팅이나 프로모션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새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는 핫한 인물이 돼 있었다. 시작은 그의 호방한 웃음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작년부터 그 특유의 표정이 담긴 사진이 현지 인터넷에 요즘말로 ‘짤’로 유행하게 되면서 그에게 ‘표정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와 CF 섭외로 이어졌다.
“이번에 영화와 모바일 게임 광고 촬영을 위해 중국에 다녀왔어요. 영화는 내년 설날 개봉하는 ‘소명과 그의 친구들’이란 가족 코미디로, 한국 제일의 도둑으로 출연했어요. 특별 출연으로 알고 갔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한국에서 말로만 전해 듣던 현지 반응에 대한 실체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고요. 생각 이상의 호응을 받아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중국 일정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소속사와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영화와 드라마만 해도 수편이다. 그는 입국하는 공항에서부터 환대를 받았다. 그가 온다는 소식에 팬들이 몰려든 것.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모여들기 일쑤다. 마치 한국에서 한창 전성기일 때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일반 팬들 뿐만 아니라 촬영을 할 때면 모든 스태프와 출연 배우들이 와서 제 연기를 구경하는 거예요. ‘여기 원래 이런 문화가 있냐?’라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한류 스타들이나 해외 연기자들이 많이 오지만 코미디 연기를 하는 건 처음 본대요. 특히 제 애드리브 연기를 흥미롭게 보더군요. 중국에 없는 스타일이라고 해요.”
사실 최성국은 이미 중국에서 알음알음 알려진 한류 스타였다. 그의 흥행작 ‘색즉시공’과 ‘낭만자객’이 중국에서도 큰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특히 ‘색즉시공’은 불법 DVD가 1억 장 이상 판매됐다고 추정할 만큼 인기가 많았단다. 현재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 함소원 역시 ‘색즉시공’으로 얻은 유명세로 중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현장에서 감독이나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다들 어릴 적에 제 영화를 보며 코미디 장르를 공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배우가 중국에 온다고 하니 다들 신기해서 일부러 보러 왔던 거죠.”
중국 영화는 과거부터 코미디와 공포 장르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반대로 국내 영화판에서 코미디 장르는 주춤한 상태. 코믹 전문 배우인 최성국 역시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중국에서 살고 싶은 심정이에요(웃음). 한국처럼 ‘아…, 저 친구…’ 하고 마는 반응이 아니에요. 한마디로 난리가 나요. 안타까운 건 저에게는 여느 한류 스타들처럼 여성 팬들이 열광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상하게 제 팬들은 전부 남자예요.”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는 과거의 영광이 아니다. 중국 현지에서 일고 있는 최성국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이 배우에게 얼마나 갚진 가치인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1·2 중국 광저우에서 게임 광고 촬영 당시 몰린 최성국의 팬들. 안타까운 점은 그가 언급했다시피 대부분이 남성 팬들이다. 3·5 중국 청두에서 촬영한 영화 ‘소명과 그의 친구들’. 그의 애드리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촬영 현장이었다. 4·6 최성국이 들고 있는 사진이 중국 진출의 계기가 된 바로 그 화제의 ‘짤’이다.
그는 지금껏 돈을 벌기 위해서 명성을 얻기 위해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뿐이다. 중국이란 그에게 새로운 시작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됐다.
“저는 어떻게 하면 연기를 계속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한국은 코미디는 물론 시트콤 장르마저 사라졌잖아요. 전부 리얼 예능뿐이에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보고 연기 대신 MC를 보라는 제의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중국은 장르도 다양하고 시트콤이나 코미디 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있어요. 제가 조금만 잘하면 좋아하는 일을 내년이나 후년까지 계속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요.”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의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약속된 컷이나 콘티 없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그는 그저 느낌에 의존에 연기를 해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장면을 스스로 직접 이끌어야 하니 답답한 면도 있었다.
“저에게는 국내 현장이 편하고 좋은 건 당연하죠.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내가 중국 스태프들 앞에서 연기를 보여주고 있구나’라는 자긍심도 살짝 들었고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기분 좋고 뿌듯했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짤’ 하나로 인지도를 높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년 전 ‘디시인사이드’라는 대형 친목 사이트에서 합성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로커로 변신한 시트콤의 한 장면이 합성의 필수 요소가 돼 삽시간에 퍼졌고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에게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영화 ‘소명과 그의 친구들’의 촬영을 끝낸 후 현지 스태프들과의 기념 촬영.
1995년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해 경력 20년째인 그는 자신에 대한 지금 중국인들의 관심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유명세에 우쭐하거나 흔들리면 안 돼요. 경험상으로 이런 것들은 쉽게 가라앉게 마련이죠. 물론 재밌는 관심들이 참 고마워요. 유명세를 계기로 일이 들어왔을 때가 진짜 승부고 제 모든 것을 보여드려야죠.”
이제 최성국의 진가를 보여줄 차례다. 10월 초부터 유쿠닷컴(중국의 유튜브)에서 ‘최성국의 크레이지 랭크쇼’라는 토크쇼가 방영되고 있다. 또 웹 드라마 2편의 촬영 일정이 잡혀 있고, 11월 말에는 KBS China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확정됐다. 12월에는 ‘합일영업’이라는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올해 말까지 최성국의 중국 스케줄은 꽉 차 있는 상태다.
“저는 요즘 유행하는 SNS를 안 하거든요. 제 나이에 하는 친구들도 없고요. 그런데 졸지에 인터넷 스타가 된 덕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어요. 얼마 전에는 웨이보에 가입하려고 들어갔는데 취미를 나누는 칸에 제 얼굴이 아이콘으로 사용되고 있더라고요. 인터넷의 파급력을 새삼 또 느꼈죠.”
인생이란 예측불허. 그러기에 생은 의미를 가진다고 하지만 그러기에 또 늘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를 보며 깨닫는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왔기에 그는 지금의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표정대장’ 최성국, 대륙 제압 초읽기
한국과 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늘어난 것이 연예인들의 한중 커플이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은 그에게 일만큼 시급한 것이 연애가 아닐까? 국경을 넘은 사랑은 이미 특별한 것도 아닌데, 중국에서 좋은 처자를 발견하지 못했냐는 짓궂은 질문에 그는 눈초리가 새초롬해진다.
“남자들 바글바글한 곳에서 일만 하다 왔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난리니까 「레이디경향」 기자님께서 ‘레이디’ 한 명 소개시켜줘봐요!”
그는 지면을 통해 공개 구혼이라도 할 태세다.
“스스로도 참 심심하고 외로워요. 시간이나 모든 요건은 갖췄는데 같이 여행 갈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데요. 그렇다고 20대도 아니고 제 나이에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청승맞아 보이잖아요. 집에 있으면 ‘나가서 돌아다니고 여자도 만나라’라는 어머니의 등쌀에 시달리는 것도 지겹고요. 제가 명동 같은 데 가서 맘에 드는 여성에게 막 말을 걸 수 있는 입장도 아니잖아요.”
그저 중국에서 좋은 인연 만날 기회는 없었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그는 봇물 터지듯 노총각이 겪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간 탓도 있다. 그는 늘 일이 우선이었다.
“저는 독신주의이거나 화려한 싱글을 즐기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결혼 생각은 스물일곱 살부터 있었어요. 시트콤과 영화 9편을 했더니 10년 세월이 후딱 지나가더군요. 늘 코앞에 둔 촬영 생각밖에 안 하고 산 것 같아요. 다른 연예인들은 촬영 중간 대기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만난다고 하던데, 저는 쉬는 날이라도 내일 중요한 촬영이 있으면 여자친구를 안 만났어요. 지금 생각하면 지나간 인연 중에 아까운 분들이 많아요.”
이상형은 과거에는 우아하고 단아한 여성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니 같이 있으면 편한 여자로 바뀌었단다.
“어떤 여성은 만나면 ‘뭐 먹으러 가지? 어디 놀러 가지?’ 하고 고민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고, 어떤 여성은 만나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고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 분이 이상형이에요. 어딜 가길 바라는 것보다 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여성이 있다면 최고죠.”
연애도 일처럼 했다면 지금의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방송계에서는 최성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와 한 번도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많지만 한 번만 일한 사람은 없다”라고. 그의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자신을 선택한 스태프들에게 늘 모든 것을 보여줬다.
“‘이 연기는 좋은 영화의 주인공이 됐을 때 써야지’ 하면서 아껴두면 끝내 못할 수도 있잖아요. 오늘 할 수 있는 건 다 보여줘야지요. 그래야 또 불러주거든요. 중국 활동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한 전략은 없어요. 순간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뿐이죠.”
그가 20년간 쌓은 요령과 임기응변은 변수 많은 낯선 촬영장에서 분명 빛을 발할 것이다. 수려한 외모나 분위기가 아닌, 연기파 배우도 한류 스타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날까지 말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김석영 ■사진 제공 / 창컴퍼니 ■장소 협찬 /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02-83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