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나눔 캠페인] 방송인 김경란의 가슴 뛰는 마법](http://img.khan.co.kr/lady/201511/20151028112321_1_151027_happy_kim_01.jpg)
[스타 나눔 캠페인] 방송인 김경란의 가슴 뛰는 마법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번 연극의 예술감독이 최불암 선생님이에요. 제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고, 최불암 선생님이 후원 회장이시거든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던 중에 선생님께 연극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작은 역할이지만 한 번 해보겠냐고 하셔서 대본도 보지 않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죠. ‘작은 역할이라도’라는 말에 안심했는데, 대본을 보니 퇴장이 없는 거예요. 기본도 안 돼 있는 상황에서 덜컥 연습을 시작했고, 딱 한 달 뒤에 무대에 서게 됐어요.
동료 배우들로부터 연기 수업을 받았나요?
여기는 학원이 아니잖아요. 실전이다 보니 아주 기초부터 가르쳐주진 않죠. 제가 모르는 것을 묻고, 찾고, 알고자 할 때 다들 그 길에 대해서 성심껏 얘기해줬어요.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매일매일 새로운 게 보여요. ‘저 선배가 이야기한 게 이거였나봐!’라면서요.
야구 캐스터 ‘미진’ 역을 맡았다고요.
서른다섯의 골드미스예요. 일에 파묻혀 사는 친구죠. 포장마차 단골손님인데, 항상 ‘산미구엘’을 시켜요. 소주는 잘 못 마시거든요. 늘 먹는 안주는 달걀말이예요. 그런데 당근을 싫어해서 브로콜리를 다져 넣어달라고 하죠. 자기 취향이 확실해요.
실제로는 술을 좀 하는 편이에요?
잘 못해요. 소주 마시는 연기를 하면서 ‘캬~’ 하는 그 느낌이 뭘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원 샷을 두 번 하면 취해? 알딸딸해?”라고 물어보곤 했죠. 무대에서 실제로 달걀말이를 만들고 오징어도 굽고 그래요. 그 냄새를 맡다 보면 소주를 한번 마셔보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웃음).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잖아요. 실제로 연기해보니 어땠어요?
고통스러운데 행복해요. 이전에는 무대가 침범해선 안 될 성역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땐 무대에서 어떻게 걸어야 할지도 몰랐어요. 39년을 걸으면서 살아왔는데 걸음마를 물어보고 있다는 게 되게 웃겼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공간이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목도 안 풀리고 여러 스케줄에 지쳐서 괴로운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가도, 이 순간이 내가 꿈꿔왔던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소중하게 다가왔어요. 프로그램 진행과 연극은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 같아요.
그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매일 그 시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어야 돼요. 다만 데일리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들은 매일 전하는 게 달라요. 늘 새로운 정보를 전하고 방송이 끝나면 털어버려요. 그래야 다음 것들을 받아들이고 또 전하죠. 그런데 연극은 그 시간,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매번 같은 메시지를 관객들한테 던져요. 쌓아가는 과정인 거예요. 아나운서는 매일매일 자신에게 점수를 매기고, 다음날 새롭게 시작하면서 내공을 쌓아가요. 하지만 연극배우는 오늘 내가 못했다고 낙망할 필요가 없고, 내일 좀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쌓아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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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나눔 캠페인] 방송인 김경란의 가슴 뛰는 마법
KBS-1TV ‘사랑의 리퀘스트’를 진행을 하던 2010년, 아이티 대지진 현장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눈앞에 마주한 아이티는 하늘부터 땅까지 모두 회색빛이었다. 재를 뒤집어씌운 것 같은 무채색의 광경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자신들과 달리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를 신기해하며 장난을 걸어왔다. 아이들이 계속 웃을 수만 있다면 이 나라에도 다시 활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아이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뛰었다. 안정된 삶과 불안정한 삶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이제 바위로 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졌다고 확신했고, 2012년 9월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KBS를 퇴사하게 만든 게 KBS”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아이티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UN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식용유와 쌀이 담긴 3kg짜리 포대를 만들어서 나눠줬어요. 포대를 머리에 이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하는 아주머니를 보니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 이 지구 반대편 땅에 와 있을까’. 우리 부모님 세대가 도움을 받았다면, 저는 도울 세대라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이 있겠다는 생각을 갖고 한국에 왔어요. 그때부터 휴가를 내서 스리랑카든 캄보디아든 봉사하러 다녔죠. 4, 5일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아이티에서 흑인 아이들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아프리카 땅에 대한 소망이 간절했는데,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낼 수 없으니 못 가고 있었죠.
그런데 이후 남수단에 네 번이나 다녀왔어요.
‘희망로드 대장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수단 편 방송을 봤어요. 수단의 북쪽에는 아랍 민족이, 밑에는 아프리카 흑인들이 살아요. 그런데 아랍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이 이슬람 문화로 남수단을 압제하려고 해 분쟁이 일어났어요. 남수단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믿고 계속 저항하고 투쟁한 끝에 감격스러운 독립을 맞이했죠. 방송은 독립 한 달 뒤에 촬영됐는데, 아직도 그곳 주민의 인터뷰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북수단에서 교수였던 한 여자가 모든 걸 버리고 남수단으로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없는데도 신념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죠. 그걸 보는데 ‘이게 뭐지?’ 싶었어요. 나라면 신념 하나를 찾아서 다 버리고 떠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어졌어요.
남수단에 처음 가게 된 건 언제였어요?
아이티를 다녀온 뒤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인연이 돼서 홍보대사를 하게 됐어요. 그때 제가 회장님께 밑도 끝도 없이 남수단에 가고 싶다고 했죠(웃음). 그 자리에서는 웃고 넘겼는데, 몇 달 있다가 진짜 남수단에 가자고 하시는 거예요. 현존하는 국가 중에 여러모로 가장 열악한 곳이 남수단이라고 판단돼서 그곳에 해외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고요. 2012년 9월에 퇴사를 했고 10월에 남수단에 다녀왔어요. 퇴직 기념으로 가방을 만들어 갔어요. 스리랑카에 갔을 때 유니세프에서 아이들에게 선물한 하늘색 가방이 예뻐 보였거든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배움의 기회가 올 것이니, 그때까지 정체성을 잃지 않고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다녀온 이후에 ‘나눔조합’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당장 달려가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재능 기부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이들과 함께 남수단의 사정을 알리고 도울 방안을 강구해보자 마음먹고 ‘나눔조합’을 만들게 됐어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하네요.
일단 재단과 함께 학용품이 담긴 스쿨 키트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이후에는 홍보활동을 이어가면서 남수단행을 위한 회의를 했고요. 정말 단단히 준비해서 2013년 2월에 또 갔어요. 아이들과 운동회도 하고, 한글도 가르치고, 태권도 교실도 열고, 그림도 같이 그리면서 신나게 놀았죠. 그때 날씨가 건기였어요. 제가 후원하는 아이의 집에 가게 됐는데 무얼 먹은 흔적이 없는 거예요. 부모님께 식사는 하셨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요즘이 건기라서”였어요. 더는 묻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끼니를 챙기지 못하면서도 마을에 학부모회가 있고 회비를 걷을 정도로 아이들 교육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커요. 그래서 더 돕고 싶어졌죠. 2012년 이후로 매년 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 남편인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결혼식 축의금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어요.
뜻깊은 날, 뜻깊은 기부를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제안했는데 단번에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럼 기부하자!” 이게 끝이었죠. 제가 남수단에 애착이 많다는 걸 아는 남편이 남수단에 기부하는 건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항상 버릇처럼 내 꿈 중 하나가 남수단에 학교를 짓는 일이라고 말했거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이들이 자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막연하게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축의금에다가 저희가 좀 더 보태서 기부를 하게 됐어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남편이나 저나 딱히 모아놓은 돈이 없었는데 1월에 결혼하면서 목돈이 생긴 거잖아요. ‘그래, 우리가 언제 이런 돈을 갖고 있었다고!’라는 마음으로 했어요(웃음).
주변에 마음 맞는 분들이 많아서 든든하겠어요.
‘나눔조합’ 구성원들과 제주 우도에 가서 아이들에게 재능 기부를 하고 온 적이 있어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렀죠. 다 같이 바깥 계단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하더라고요. 남수단에 있을 때도 저녁노을이 질 무렵 모두가 봉사활동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것 같아요.
그저 물 흐르듯
11년 동안 아나운서로서 쉼 없이 달렸다.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 미래가 보장돼 있는 삶이었지만 그건 언제나 예측 가능한 미래였다. 불안하고 초조함이 엄습해올지라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떻게 하루를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싶었다. 어떤 삶이든 득과 실이 있을 것이고, 한 가지를 결정해야 했다.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하게 마련이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당장 이달 수입이 없어도 ‘덕분에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살고 있잖아’라며 자신을 다독인다.
프리 선언 후 3년이 지났어요. 가장 피부로 와 닿게 달라진 점이 뭔가요?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안 들어온다는 것, 얼마가 들어올까 가슴 졸인다는 것? 그리고 안 들어오는 달도 있다는 것(웃음). 뭐 이런 것들이죠. ‘아휴~ 한 푼도 못 벌었네’ 하는 달도 있어요.
9월부터는 TV조선 ‘내 몸 사용 설명서’를 진행하고 있어요. 옛 생각도 많이 날 것 같아요.
마치 제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죠. 사람은 언제나 자기의 본질, 본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진행하는 일이 저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저다운 일인 것 같아요. 대여섯 시간 녹화하는데 진짜 거짓말처럼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나에게 참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의 편안함과 기분 좋은 느낌이 있어요.
종종 연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단지 제게 소중한 기회가 온 것에 감사하고, 이 기회를 즐겁게 누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무엇을 할 거다 단언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가고 싶어요. 또 기회가 온다면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겠지만 애써 뭔가를 하려고 하진 않을 것 같아요. 10월 30일이면 공연이 끝나요. 그럼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어떨 땐 공연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막 우울해지기도 해요. 그만큼 힘든 작업인데 무척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앞으로 ‘나눔조합’은 어떤 활동을 이어나갈 건가요?
‘떼톡쇼’라는 컨셉트를 갖고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불러주시는 곳엔 어디든지 무보수로 달려가죠. 단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단체에서 기부해주시는 금액을 받고 그걸 그대로 기부하고 있어요. 요즘 ‘떼톡쇼’의 주제는 ‘나도 ○○을 할 수 있을까’예요. 청중의 생각을 포스트잇에 미리 받아놓죠. 세 명의 연사가 각각 15분씩 강연을 하고, 마지막엔 포스트잇을 떼면서 거기에 적힌 내용들로 ‘떼토크’를 해요. 청중들 목소리를 듣고 우리 이야기나 조언도 해주고 있어요.
방송인 김경란으로서의 계획도 듣고 싶어요.
항상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저는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돌파하고 성취하는 것에 약하거든요. 그냥 제가 필요한 곳에 있고 저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연극이 끝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무엇이 됐든 기꺼이 함께하고 싶어요. 그렇게 물 흐르듯 가고 싶어요.
해피빈
국내 최초 온라인 공익 포털 해피빈(happybean.naver.com)은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기부와 나눔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누구나 가슴 뿌듯한 기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 및 기업 후원 문의 031-600-5398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