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배성우의 전성기
Keyword 1 배성우 vs 배성우
출연작 두 편이 같은 날 개봉하면서 ‘배성우’ 대 ‘배성우’가 대결하게 됐네요. 개봉 시기가 이렇게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죠?
그러게요. 둘 다 분량이 꽤 있는 역할인데다 제가 끌고 가는 부분이 많아서 같이 개봉한다고 했을때 좀 당황했어요. ‘특종’을 봄에 찍고 바로 이어서 ‘더 폰’을 찍었으니 촬영 시기는 겹치지 않았었거든요.
쫓고 쫓기며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많은 영화인데, 두 편 연달아 찍느라 힘들진 않았나요?
전혀요. ‘더 폰’은 추격신이 많은 편이었는데, ‘아, 내가 아직도 이렇게 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뛰었어요. ‘더 빨리 뛰어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고(웃음). 제가 연극을 오래 했는데 사실 연극할 때는 뛰어다닐 일이 없거든요. 액션을 한다고 해도 주로 잘 짜인 액션을 하고요. 영화에서는 액션 자체로도 재미를 줄 수 있어서 그 점이 좋아요.
즐거웠던 부분만 얘기하자면 그런데 부상까지 입을 정도로 격한 장면들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아픈 다리를 붙잡고 달렸다면서요?
아, 인대 부상이 있었네요. 주차장에서 손현주씨를 쫓아가는 장면이었는데, 주차장 안을 이리저리 많이 뛰어다녀야 했어요. 그 장면 찍기 바로 전에 인대를 살짝 삐끗했는데 발목이 이만하게 부었더라고요. 그런데 촬영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압박붕대를 감고 막 뛰어다녔죠, 뭐. 다음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인대가 찢어졌다면서 깁스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주차장 추격신이 초반부에 촬영한 거였고, 당장 일주일 뒤부터 액션신을 많이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의사 선생님한테 무조건 고쳐달라고 부탁했어요. 일주일 동안 매일 병원에 다니면서 깁스를 풀고 물리 치료 받고 다시 깁스하기를 반복했어요. 매일 치료받으니까 좀 나아져서 그 이후에 있는 액션신은 그냥 다 찍었어요.
Keyword 2 악역 전문 배우
‘다작 요정’이라는 친근한 수식어로 불리기 이전, 배성우의 앞에는 언제나 ‘악역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08년 ‘미쓰 홍당무’에서 피부과 의사 ‘박찬욱’ 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2010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영화에서 형수를 강간하는 극악무도한 인간 ‘철종’ 역을 맡은 이후로 악역 캐스팅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악덕 변호사’, ‘사기꾼’, ‘조직폭력배 보스’ 등 참 다양한 악역을 맡았다.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많아지며 친근한 이미지가 됐지만 대중에게 배성우 하면 ‘악역’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에요. ‘더 폰’에서도 손현주씨의 아내를 살해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나오죠. 악역을 연기하며 에너지 소모도 클 것 같은데 어떤가요?
사실 악역이라고 해서 마구 힘주고 찍진 않아요. 어찌 됐든 악당들도 일상생활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악한 행동이라도 자연스러운 생활 같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찍을 때도 내 연기가 생활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찍었고요. ‘더 폰’은 평소보다는 에너지를 많이 쓴 편이긴 해요. 제한된 시간 내에 아내의 살인범을 쫓는다는 급박한 상황이니까요. 그 상황에 집중하려다 보니 힘을 많이 주고 연기했죠.
목 조르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던데, 연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와, 진짜 힘들었어요. 목 조르는 장면 찍을 때는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요. 줄로 사람 목을 조르는 장면을 찍는 경우 조심하지 않으면 제가 진짜 사람 목을 조르게 되잖아요. 상대방 목을 감은 줄에는 힘이 안 들어가게 하면서 제 몸이 다 흡수하게끔 힘을 줘야 해요. 마치 굉장히 힘을 많이 쓰는 것처럼 얼굴 근육도 일그러뜨려야 하고요. 근육에 힘을 많이 주다 보니 촬영을 마치고 나면 팔 전체가 다 아파요.
‘나쁜 놈’ 연기의 고충이 상당하군요. 실제로 보니 둥글둥글해 보이는 선한 인상인데, 악역을 많이 맡았어요. 너무 한쪽으로만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 같아요.
착하고 나쁜 역할을 나눈다는 게 좀 웃기지만, 영화 데뷔는 아주 착한 사람 역할로 했어요(웃음). 그런데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찍고 악역이 많이 들어왔어요. 악역만 한 건 아니고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도 많이 했는데, 사실 악역이 사람들 눈에 훨씬 잘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악역으로 많이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악역으로만 이미지가 굳을까 하는 걱정은 별로 안 했어요. ‘나중에 그렇지 않은 역할 하면 되니까’ 그런 생각이었죠. 그리고 어떤 역할이든 인물 자체에 매력이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1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2 빅매치(2014) 3 오피스(2014) 4 더 폰(2015) 5 특종:량첸살인기(2015)
Keyword 3 칸 영화제 진출
무슨 질문을 하든 덤덤하고 담백한 답을 내놓는 배성우. 그의 탄탄한 내면은 오랜 세월 큰 인기 없이도 꾸준히 연기를 하면서 쌓아온 것일 터다. 영화계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던 시절 연극과 뮤지컬에서는 이미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는 잘나가는 배우였다. 1999년 뮤지컬 ‘마녀사냥’으로 데뷔한 후 ‘트루웨스트’, ‘클로저’ 등의 연극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다. 요즘 그가 발산하는 무한 매력은 그 시절 차근차근 축적된 내공에서 나온 것들이다.
영화 데뷔 전 10년 가까이 연극 무대에서 활동을 해왔어요. 연극배우로서 입문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어요. 뭐 할까 하다가 배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는데 떨어졌어요. 학교에 안 간 상태로 뮤지컬을 하나 하다가 군대 갔다 온 다음에 시험을 봐서 다시 학교에 들어갔죠. 제가 서울예대 연극과 97학번이에요. 보통 사람보다 6년 늦게 대학에 들어간 셈이죠. 6수예요, 6수(웃음). 학교 때부터 연극 무대에 서면서 자연스럽게 연극배우가 됐죠.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빨리 인지도를 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연극만 오래 하기엔 수입이 적은 편이잖아요.생활고랄까, 힘든 부분이 있었을 텐데요.
다른 배우들처럼 막 힘들었던 건 아니에요. 일단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집이 있었으니까. 먹여주고 재워주잖아요(웃음). ‘생활이 너무 어렵구나’ 이런 걸 몸으로 느낀 건 크지 않아요. 물론 집에다 제가 도움을 주진 못하니까 걱정되고 죄송하고 그런 마음은 있었죠. 고민 같은 건… 주로 연기 고민을 했어요. 바로 앞에 닥친 공연 생각을 많이 했죠. ‘아, 내일 공연 더 잘해야 되는데’ 이런 고민이요. 공연은 오늘 한 거 다르고 내일 하는 거 또 다르잖아요.
참 무던한 편이네요. 지난 5월에는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오피스’가 초청돼 프랑스 칸에도 다녀오셨죠. 그때는 좀 감동적이었겠어요.
‘아, 내가 칸까지 왔구나’ 이런 거요. ‘와, 드디어 내가!’ 이런 건 솔직히 없었어요. 일단 해외니까 신기하고 좋았어요.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칸이고, 저건 뤼미에르 극장이구나’ 같은 거. 칸 해변 돌아다니고 유명한 영화제 구경도 하고 재밌게 놀았어요. 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 연기니까, 그거에 신경을 많이 썼죠. 칸 가기 전에 ‘오피스’를 못 보고 거기서 최초 상영할 때 같이 봤거든요. 제 연기가 어땠을지, 영화가 어떻게 나왔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찌 됐든 전 배우니까 좋은 영화를 찍는 게 저에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Keyword 4 동생 배성재
능청스러운 듯 자연스러운 답변을 술술 내놓는 그를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배꼽 잡게 하는 스포츠 경기 해설로 유명한 SBS의 배성재 아나운서다. 두 사람은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두 남자의 ‘동거 라이프’는 어떨까?
어렸을 때부터 동생 배성재 아나운서와 같이 산 것으로 알고 있어요. 주로 어떤 대화를 하는지 형제의 대화가 궁금해요.
‘형제는 하루에 열 마디 이상 하는 게 아니다’라는 옛말이 있어요. 수다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편은 아니죠. 저는 집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성재는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에요. 가끔 한마디 던지는 말이 재밌는 건 있죠. 하지만 농담이나 개그는 성재가 저에 비해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죠(웃음).
방송에서 두 분이 서로 얘기하는 거 보면 거침없어요. 요즘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동생 이야기 많이 하시던데, 그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서로의 방송을 챙겨 보진 않기 때문에(웃음)…. 피드백이 돌아오는 건 없어요. 근데 저는 어디 가서 동생 이야기하는 게 무척 재밌어요. 제 동생이 좀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있거든요. ‘내가 어디서 막 얘기하고 다녀도 동생이 알아서 수습 잘하겠지’라는 생각이에요.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배성우. 영화 속에서 사악하거나 코믹하게 나오는 것과 달리 그는 담백하고 따뜻한 배우다. 악역으로만 알려왔기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대중에게 한쪽 면만 보여줬다는 것은 아직 보여줄 면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현재 촬영 중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통해 그는 스크린에서는 처음으로 멜로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는 OST로 유재하의 노래가 쓰이는 감성 멜로라고 한다. 배성우는 “나도 충분히 달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따뜻하고 달달한 배성우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이혜인(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