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나윤양(8)과 함께 촬영할 차례였다. 두 소녀는 러블리즈의 ‘안녕’을 주문했고 서로 눈을 한 번 마주치더니 음악에 맞춰 똑같은 동작을 선보였다. 흔히 말하는 ‘칼군무’까진 아니었지만 마치 걸 그룹의 멤버가 된 듯 춤을 이어갔다. 두 소녀의 춤은 멈출 줄 몰랐다. 사진작가가 “그만”을 외치면 아주 잠깐 동안 동작을 멈췄고, 셔터 소리가 나면 곧바로 다시 춤을 췄다.
MBC-TV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 속의 그 단짝이 맞나 싶었다. 둘은 분명 훌륭한 연기자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드라마 속에서 갈소원양은 금사월(백진희 분)의 어린 시절을, 이나윤양은 오혜상(박세영 분)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사월과 혜상은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였지만 한 집에 입양돼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사건건 부딪혔다. 혜상은 어린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영악했고, 사월은 그저 혜상의 괴롭힘을 참고 인내할 뿐이었다. 이미 영화 ‘7번방의 선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갈소원양의 연기는 두말 할 필요가 없었고, 신예인 이나윤양의 존재감도 상당히 도드라졌다. 혜상이가 친자확인서를 조작해 친딸인 사월이 대신 오민호(박상원 분)의 딸로 둔갑하는 장면이나, 사월이가 혜상의 바이올린 콩쿠르 무대 뒤에 숨어 ‘도둑 연주’를 하던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극 중 이미지 탓인지 이나윤양은 깍쟁이 같고, 갈소원양은 얌전할 줄 알았다. 큰 오산이었다. 둘은 여느 아이들과 같이 그저 밝고 순수했다. 갈소원양의 춤 실력에 한 번 놀라고, 툭 건드리면 눈물이 주룩 흐를 것같이 여린 외모의 이나윤양이 ‘연민정’ 못지않은 악역을 소화해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함께 촬영 현장을 찾은 이나윤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힘들지 않겠냐는 댓글을 많이 봤고 저도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어요. 하지만 나윤이 스스로 연기를 즐겼고, 드라마가 끝난 뒤 일상에 빠르게 적응했어요”라고 말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지금 이 두 배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이어진 두 친구와의 일문일답. 보통 기자와 취재원이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하게 마련이지만 둘은 달랐다. 기자의 양옆 어깨에 턱을 괴고 매달린 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터뷰를 통해 두 가지를 알게 됐다. 요즘 아이들은 문방구보다는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 할인점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이 둘은 연기력이 뛰어나지만 아직 순수한 아이들이라는 것.
소원양은 데뷔한 지 벌써 3년이 넘었어요.
소원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가끔 ‘7번방의 선물’ 촬영할 때가 생각나요. 삼촌들이 정말 잘해줬는데 어른 되면 까먹을까봐 아쉬워요.
우는 연기를 정말 잘해요. 연기 수업 따로 안 한다고 하던데.
소원 이모가 다 알려줬어요.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연습하거든요.
나윤양은 소원 언니랑 같이 드라마 촬영해보니 어땠어요?
나윤 좋았어요! 촬영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잠깐 쉬는 시간이 있으면 언니가 춤도 알려줬거든요. 노래 틀어놓고 같이 춤추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는 맨날 싸웠어요.
나윤 그래서 연기할 때 조금 어색하기도 했어요. 캐릭터랑 실제 성격이랑 다르니까요. 갑자기 우리가 쌓아놓은 친근한 게 날아가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어요.
소원 혜상이는 사월이를 계속 괴롭히고, 사월이는 참기만 하는 역할이라 둘 다 정말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혜상 역은 악역이라서 얄밉다는 반응도 많았는데, 속상하진 않았어요?
나윤 드라마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감독님도 혜상이는 원래 그런 캐릭터라고 하셨고요.
촬영 때문에 학교를 못 갈 때가 많아서 아쉽지 않아요?(두 배우는 이 질문에 가장 울분을 토했다)
나윤 너무 아쉬워요. 왜냐면 제가 학교 빠질 때만 재미있는 만들기 수업을 하더라고요.
소원 맞아요. 빠질 때마다 급식에 스파게티 나오고, 우동 나오고, 꼬치 나오고, 회오리감자도 나오고…. 운동회 하고 서울랜드 가고 그래요.
나윤 제가 있을 때는 공부만 하면서 없을 땐 꼭 수업 시간에 요리하거나 체험학습 가요.
그래도 TV에 나오는 덕분에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겠어요.
소원 여자애들한테만 인기가 많아요. 남자애들은 괴롭혀요. 짓궂은 애가 몇 명 있거든요. 주변 친구들이 드라마 잘 봤다고 하고, 자기도 연기하고 싶다고 그래요. 그럼 “너 되려면 멀었다”라고 농담으로 얘기해줘요(웃음).
나윤 3학년 오빠들이 찾아와서 사인해달라고 해서 해줬어요. 다른 반 애들이 몰려와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요. (손가락으로 사인을 그려 보이며) 제 사인은 이렇~게 생겼어요.
소원 저도 사인 있어요! 이~렇게.
소원 춤추고 노래하고 수다 떨면서 놀아요. 쉬는 시간마다 같이 춤 동작 맞춰보고요. 요즘은 씨스타의 ‘Shake It’을 제일 좋아해요. 노래방 가서 소리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해요. 하지만 그 모습은 알려지면 안 돼요(웃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어요?
나윤 저는 이제 착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어야 한대요.
소원 음, 악역은 아직 잘 못할 것 같아요. 제가 감독님 앞에서 혜상이 대사를 한 번 해봤는데 너무 착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늑대 소녀가 돼보고 싶어요. 동물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동물을 정말 좋아해요. 실제로 키우진 않지만 이미 상상 속에서 엄청 많이 키웠죠.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는 누구예요?
소원 김수현 오빠요. 그냥 다 멋있잖아요. 정말 좋아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요. 만난 적은 있는데 부끄러워서 팬이라고는 말 못했어요.
공부가 좋아요? 연기가 좋아요?
소원 · 나윤 연기요!
소원 스태프 언니, 오빠들이 많아서 재미있어요. 교실에는 스물 몇 명밖에 없는데 드라마 촬영할 땐 훨씬 많거든요. 감독님도 이래라저래라 하시니까 재미있어요. 제가 신데렐라 역할이 돼서 구박받는 걸 좋아해요(웃음).
나윤 드라마를 통해 고아도 돼보고, 부자도 돼봤어요. ‘봉구야 말해줘’ 때는 친구 역할도 해보고요. 여러 가지 역할을 하니까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배우 말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소원 아직….
나윤 저도 아직….
촬영하는 게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소원 약간 오래 촬영할 땐 되게 졸렸는데, 맨 마지막에 촬영할 땐 하나도 안 졸렸어요. 밤을 샜는데도 하나도 안 피곤했어요. 신기할 정도로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떻게 풀어요?
소원 웃긴 표정 지어요.
소원 · 나윤 아, ‘다이소’!
나윤 천원마트 이런 거 좋아해요. 거기 가서 스트레스 풀어요. 다이어리, 스티커, 아이 클레이같이 자잘한 걸 여러 가지 사요. 그럼 기분이 좋아져요.
‘내 딸, 금사월’ 촬영이 끝나서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나윤 많이 아쉬워요. 언니, 오빠들이 우리가 했던 걸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 궁금해요.
소원 매주 드라마를 챙겨 보는데, 일주일이 길어서 슬퍼요.
요즘 재미있게 보는 게 뭐예요?
나윤 ‘내 딸, 금사월’!
소원 영화 ‘팬’이요. 그리고 빅뱅 오빠들의 ‘맨정신’ 뮤직비디오!
어떤 배우로 성장하고 싶어요?
소원 아이유 언니처럼 뭐든지 다 잘하는 다재다능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이유 언니는 못하는 게 없어요.
나윤 하지원 언니! ‘기황후’에서는 왕비 역할을 했고, ‘너를 사랑한 시간’에서는 학생 역할을 했어요. 어떤 역할이든 다 소화해내서 카멜레온 같아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배우 이나윤은…
2007년생. 낯가리는 성격을 고쳐보고자 웅변 학원을 다닌 게 시작이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빨랐던 나윤양은 연기에도 욕심을 냈다. 일곱 살 때부터 2년간 연기를 배웠다. 첫 출연작은 EBS-TV ‘딩동댕 유치원’ 속 짧은 드라마인 ‘봉구야 말해줘’. 주인공의 친구 역할로 잠깐 출연했다. 이후 드라마 ‘내 딸, 금사월’의 오디션을 보고 어린 오혜상의 자리를 꿰찼다. 현재 어머니가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앞으로도 쭉 배우의 길을 걷게 할 예정이라고 한다.
배우 갈소원은…
2006년생. 아기 때부터 미모가 남달랐다. 그녀의 이모가 인터넷에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모델 활동을 하게 됐다. 여섯 살이던 2012년 드라마 ‘부탁해요 캡틴’과 영화 ‘돈의 맛’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2013년에는 영화 ‘7번방의 선물’에서 이예승 역을 맡아 그해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신인여우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줄곧 이모가 소원양의 스케줄을 관리했으나 작년 2월부터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가 됐다. 현재는 MBC-TV ‘화려한 유혹’에서 최강희의 딸 역할로 출연 중이다.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의상&액세서리 협찬 / 모이몰른(02-3215-0017) , 티파니(02-446-0114) ■헤어&메이크업 / 이누리 ■스타일리스트 / 김영아, 황지민(Soner, www.sonnesty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