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노래하는 김태욱
테이블에 마주 앉는 순간, 김태욱(46)은 20대인 기자에게 질문 하나를 건넸다. 곧장 “모를 리가 있나요”라고 대답했지만 그가 노래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가수 출신 사업가로만 각인돼 있었을 뿐. 무려 11년 동안 앨범을 내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지난 11월 첫 번째 싱글 앨범을 발표하면서 다시 예전의 타이틀을 되찾았다. 수년간 한 기업의 대표로서 지내왔던 모습은 없었다. 하얀 셔츠와 검은 구두 대신 헝클어진 머리, 카키색 필드재킷 그리고 통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십 수 년간 양복을 입고 다녔죠. 지금의 스타일은 옛날 제 모습이에요. 1991년 스물한 살에 데뷔했던 그 모습이요. 회사는 항상 반듯한 차림새로 다녔는데, 최근 들어서 이렇게 입어요. 그래도 제가 음반 작업하는 거 다 아니까 이해해주는 분위기예요. 다들 생소해하긴 하죠. 제가 가수였던 거 몰랐던 어린 직원들도 많아요(웃음).”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창법까지 갖춘 스물한 살의 김태욱은 대중의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다. 1991년 ‘개꿈’으로 시작해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 건 데뷔한 지 7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돌연 성대마비 판정을 받았고, 의사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잘못하면 목소리를 영영 잃을 수도 있는 상황. 더 이상 노래를 하는 건 무리였다.
이후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배우 채시라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2000년, 그는 웨딩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지금은 ‘웨딩 서비스’에서 ‘가족 서비스’로 사업 범위를 넓힐 만큼 회사 규모가 커졌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메르스 여파로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그에게도 지독한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스스로 방전이 된 것 같아 방황을 좀 했어요. 퇴근하고 분명 집으로 향했는데 도착해보니 속초고, 가서 소주 한 잔 하고 오고…. 한강 가서 새벽 두세 시까지 헤매다가 들어가기도 했죠. 가장으로서, 직장의 리더로서 항상 당당한 모습만 보이면서 살아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외롭고 쓸쓸하고, 마음에 감기가 드는 것 같더라고요. 가을을 탔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어느 날, 퇴근길 라디오에서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흘러나왔다.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라는 가사가 그의 마음에 확 꽂혔다. 자신이 힘든 것보다 더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를 하는 그 노래는 큰 위로가 됐다.
“보통 때라면 술 한 잔 하고 털어버렸을 텐데, 이번엔 어깨가 참 무겁더라고요. 그런데 현식이 형 노래를 들으니 모든 걱정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어떻게 사람 마음을 이렇게 위로하고 편안하게 해주는지…. 좋아하던 노래도 애써 듣지 않으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그날 이후로 다시 노래를 듣기 시작했어요.”

다시, 노래하는 김태욱
음악을 하면 어딘가 멋있어 보였고 여자들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었다. 예전의 김태욱은 이런 이유로 음악에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악이 먼저, 마치 구원의 로봇 태권브이처럼 그의 앞에 나타났다. 다시 노래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강에서 ‘태욱이’를 만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한강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 깊숙이 묻어뒀던 태욱이가 나타나서 저를 위로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자식이 살짝 삐쳤더라고요. 너무 외로웠다고, 다시 노래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게 묻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애써 누르지 말고 용기를 내봐. 네 속에는 음악이 있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와 방 한구석에 있던 기타를 다시 꺼내들었다. 하도 오랜만이라 코드도 다 잊어버렸지만 마냥 좋았다. 현재 성대는 80% 정도 회복된 상태. 아직까지도 가끔 경련이 일어나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문득 한 사람이 머릿속에 스쳤다. 회식 자리에서 작곡가를 꿈꿨던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 회사 홍보팀 이종현 차장이었다. 그에게는 작곡가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유명 작곡가들에게 찾아갈 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던 서러운 기억이 있었다. 김태욱은 생각나는 대로 가사를 끼적여 그에게 건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가사에 딱 맞는 멜로디가 바로 나왔다.
“이 친구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긴 하는데, 작곡가로서 꿈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꿈이 하나 있다면 세상에 자기 곡이 울려 퍼지는 거라고 제게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땐 마음속으로 ‘그래 알았어’ 하고 넘겼죠. 제가 다시 노래를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쓸쓸하고 아픈 것들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음악으로 기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강에서 만난 진짜 태욱이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온 곡이 ‘김태욱의 마음에는 그대가 살고 있나봐’다.
“제 안에서 끄집어낸 태욱이를 중심으로 하자는 생각에 제목을 그렇게 정했어요. 이전까지 앨범 다섯 장을 내면서 김태욱, 태욱이, 미스터 킴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활동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자꾸 스스로를 숨긴 것 같아요.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태욱이를 툭 던져주고 싶었어요.”
두 번째 트랙인 ‘속초에서 만들었던 노래’는 제목 그대로 속초에서 탄생한 곡이다. 멜로디는 완성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결국 보컬은 안 들어간 ‘Inst’ 버전으로 넣게 됐다.
“친구하고 바람 쐬러 속초에 갔었죠. 그때 소주 한 잔 하고 즉흥적으로 만든 곡이에요. 먹는 걸 소재로 가사를 써볼 생각이었어요. ‘아귀찜 열라 맛있어~ 입 안에 짝짝 달라붙지~’ 이렇게요(웃음). 근데 결국 완성은 못했어요. 직원들을 대상으로 가사 공모전을 열어볼 생각이에요. 작사가를 꿈꾸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록 장르만 고집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장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잔잔한 발라드곡과 만난 결과 ‘마초 발라드’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댓글에 ‘마초 발라드’라고 써 있더라고요. 원초적인 느낌이라는 거죠. 이번 노래의 컨셉트를 표현하자면 소주예요. 안주 없는 소주. 그리고 야상 점퍼와 막 자라난 꽃이죠.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거든요. 제가 발라드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음반이 잘되고 안 되고는 크게 상관없다. 목소리를 잃는 장애를 앓았던 사람이 다시 노래한다는 것. 이 자체가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한창 잘나갔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때의 꿈을 가슴에 묻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저나 이 차장을 보면서 마음만 먹으면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해요. 결과보단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도요.”

‘김태욱의 마음에는 그대가 살고 있나봐’를 작곡한 아이패밀리SC 직원 이종현씨와 함께.
음원 유통 구조가 11년 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매니지먼트에 소속돼 있지 않아서 홍보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 그래도 가끔씩 TV나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흘러나와 실시간 차트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거기에 오르는 게 뭐 대수랴. 김태욱은 별 욕심이 없다.
“이번에 음반 작업을 하면서 최신 가요들을 많이 들어봤어요. 사운드가 굉장히 화려하고 멋있지만 정작 가슴에 와 닿는 건 없었죠. 처음엔 나도 이런 스타일로 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아마 옛날이었으면 트렌드를 좇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제 마음이 그렇지 않아요. 아날로그적 느낌이 더 좋더라고요.”
이번 앨범에는 그 흔한 기계음이 등장하지 않는다. 통기타, 하모니카, 드럼 등 악기 고유의 소리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성대에 경련이 오면서 나타나는 목소리의 떨림도 그대로 담았다.
“사실 연습을 많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중력만 가지고 녹음했어요. 제대로 연습해서 녹음한다고 생각하니까 제 안에 있는 감정이 다 날아가버릴 것 같더라고요. 노래를 듣다 보면 경련이 일어나서 끝 음이 살짝 떨리는 부분들이 있어요. 이걸 연습해서 개성으로 만들어보려고요. 세상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아도 저 같은 창법을 가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웃음).”
요즘은 방송국에서 섭외 연락이 많이 온다. 하지만 정작 음악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출연을 망설이고 있다. 방송 출연보다는 라이브 공연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실제로 그는 회사 내에 있는 작은 카페를 라이브 공연장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연예인’이 되기 위한 활동은 지양하고 있어요. 김태욱 개인을 알리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거든요. 공연장이 완성되면 제가 직접 공연도 하고 무대에 서고 싶은 이들, 특히 인디밴드들에게 장소를 제공하려고 해요.”
회사 대표와 직원의 성공적인 ‘컬래버레이션’은 사내 분위기도 바꿔놓았다. 요즘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고.
“자꾸 저한테 자신의 꿈들을 이야기해요(웃음).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친구도 있고, 자기도 가사 잘 쓴다고 어필하는 친구도 있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동의 목표뿐만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느껴요.”
아내 채시라는 그의 노래를 듣고 “예전에 했던 노래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빠의 노래를 들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딸이 중학교 2학년이고,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애들이 공부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의 앨범이 나온 건 알고 있죠. 딸아이가 ‘아빠, TV에 나오는 거야?’라고 묻고 아들도 정말이냐고 거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 앞에서 한 번씩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둘 다 ‘우와~’ 그래요. 특히 딸이 사춘기라 그런지 제 노래를 좋아하더라고요. ‘노래가 슬퍼, 아빠’라면서요.”
40대 후반의 중년이자 기업을 이끄는 CEO. 이쯤 되면 꼰대의 느낌이 날 법도 하지만 그에게선 오히려 젊음이 느껴졌다. 사실 한창 ‘꼰대’가 돼가고 있을 즈음 앨범을 준비하게 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신입으로 들어오면서 거리감을 많이 느껴요. 그 친구들이 저를 꼰대로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제가 바른말을 잘하거든요(웃음). 이번 앨범이 그 거리감을 줄이는 데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다들 ‘대표님에게 저런 면이 있었네’ 하는 반응이에요.”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이 노래 할 줄 알아요?”라고 말을 건넨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 함께 자유로이 노래한다. 이번엔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묻는다. 신청곡이 들어오면 통기타 반주로 시원하게 한 곡을 뽑는다. 가수와 관객으로 나뉘지 않고 모두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김태욱이 머릿속에 그리는 공연장의 풍경이다. 그가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노래를 시작했듯, 이 꿈도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다. 오늘도 그는 노래한다. 그동안 참아왔던 만큼, 음악으로 다시 위로받았던 만큼.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송미성(프리랜서) ■장소 협찬 / 마블몽키(070-7724-0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