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원의 인생 2막

최시원의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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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니어’ 최시원은 TV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가 연기했던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똘기자’ 김신혁처럼. 곧잘 쓴 “○○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데”라는 대사가 입에 붙었는지 말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툭툭 튀어나왔다. 장난스럽고 유쾌하지만 때론 진지할 줄도 아는 최시원. 어쩌면 그 자체로 김신혁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시원의 인생 2막

최시원의 인생 2막

오랜만에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를 선사한 MBC-TV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이 드라마를 통해 황정음은 확고한 ‘원톱’ 여배우로 떠올랐고, 박서준은 주연배우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그럼 극 중 이들과 삼각관계를 이룬 최시원은? 군인이 됐다. 지난 11월 19일, 그는 의무경찰로 논산훈련소에 조용히 입소했다. 입소를 일주일가량 남긴 시점에서 만난 최시원은 종영 소감으로 군 입대 이야기부터 꺼냈다.

“종방연 때 다들 어디로 여행 갈지, 다음 작품은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누군가 저한테도 이제 뭐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논산으로 갑니다’라고 얘기했어요(웃음). 납세와 근로의 의무를 충실히 해왔으니 이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잘 다녀와야죠.”

오랫동안 가수와 배우를 겸하며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만큼 군 입대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을 터. 최근엔 활동 반경도 대폭 넓혔다. 올해 초엔 성룡과 함께 출연한 영화 ‘드래곤 블레이드’ 프로모션에 매진했고, 웹툰 ‘인터뷰’ 영상 판권을 공동 확보하는 등 제작자로서의 길도 모색하고 있다. 입대 직전까지 CF 등 각종 촬영 스케줄을 소화한 덕분에 당분간 대중매체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일분일초가 황금 같다는 게 와 닿지 않다가 얼마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처음 느꼈다”라고 말했다.

2004년부터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사실 그의 연기가 이토록 큰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선이 강한 아이돌 출신 미남 배우에게 주어진 배역이 그다지 다채롭지 못한 면도 있었다. 심지어 최근작인 SBS-TV ‘드라마의 제왕’과 ‘오! 마이 레이디’에선 모두 연예인 역할만 했다. 최시원의 연기 인생에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그때 ‘그녀는 예뻤다’가 찾아왔다. 그는 처음 대본을 받고 김신혁을 봤을 때 첫인상을 떠올렸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와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가 그려졌다. 대사 한 줄 한 줄에 재치가 넘쳤기 때문이다.

“제가 가진 이미지가 좀 비호감이잖아요. 저도 잘 압니다(웃음). ‘최시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양날의 검이 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그걸 뛰어넘기 위해 갑자기 살인자 역할을 할 수는 없으니 ‘코믹’하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저희 그룹이 이특, 신동, 희철이가 있는 ‘슈주’ 아닙니까?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그런 친구들과 있으니 저도 달라졌겠죠. 유쾌한 거 좋아하는 김신혁은 제 본모습과 비슷해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속 최시원.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속 최시원.


김신혁은 ‘위대한 개츠비’ 같은 인물
김신혁이 된 그가 주변 사람들에겐 조금 낯설었던 모양이다. 그를 15년 넘게 본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도 “그게 원래 네 성격이지? 그게 원래 너지?”라고 물었단다. 외모도 바꿨다. 멀끔한 얼굴에 수염을 길렀다. 그것도 까칠까칠해 보이도록 딱 1mm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했다. 수염을 이제 그만 다듬어도 된다고 했을 때도 의도적으로 묵살했다. 김신혁의 정체가 결국 소설가 ‘텐’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 한 컷의 감동을 극대화시키고 싶어서였다. 결국 그의 표현대로 ‘맛있는 음식을 먹은 뒤 마시는 사이다 같은 존재’로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됐다. 그럼 최시원에게 김신혁은? 안타까운 인물로 남아 있다.

“안됐어요. 결국 김신혁은 김혜진에게 그냥 좋은 사람인 거잖아요. 이성적인 감정으로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걸 직감했고요. 다만 인간적으로 김혜진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는 대사와 행동을 보면 여성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타입인 것 같아요.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할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캐릭터였죠. 그래도 능청스럽게 대한 건 지성준과 김혜진이 서로 무척 사랑하는 걸 알아서 그걸 지켜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위대한 개츠비’ 같은 인물 아닐까요?”

이렇듯 그에게 딱 맞는 배역을 맡은 것이 하필 군 입대 직전이라니. 아쉬운 경향도 없지 않아 있지만, 최시원은 “아쉽다는 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2015년 한 해 그에게 ‘감사’(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할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해 감사했던 일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요. 지난해엔 33가지를 적었는데, 올해는 벌써 68가지를 적었더라고요. 영화, 음반 활동, 콘서트,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 감사드릴 일이 많았어요. 알차고 좋은 추억을 심어드린 한 해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사람은 와인처럼 숙성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 향을 좋아해주는 때가 꼭 오는 것 같아요.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는 게 대중문화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 아닐까요? 부족하지만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돌 가수로 시작해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쭉쭉 뻗어나가고 있는 최시원. 입대 직전까지 많은 일을 벌여놓고 가는 만큼 2년 뒤 그가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때 그는 딱 서른 살이 된다. 최시원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20대는 ‘인생 1막’이고 군대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돌아와서도 많은 분들 앞에 서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그때 저를 보는 사람들이 기분 좋았으면 해요. ‘저 친구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도 열심히 하자’라는 그런 희망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죠. 참 각박한 세상인데, 저를 보면서 위안도 받고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전 연기로 그분들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고 싶고요. 20대는 도전하고 싶었던 일들에 진격했던 시기였죠.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겠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신인 같은 마음을 계속 가져가려고 합니다.”

■기획 / 노정연 기자 ■글 / 허남설(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 MBC,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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