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기주의 첫걸음

배우 진기주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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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드라마 한 편에 출연한 신인 배우 진기주. 손꼽히는 대기업에 다니고, 기자로 일했던 이력 덕분에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할 당시에는 ‘내 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온 끝에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드디어 찾았다.

배우 진기주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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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주(26)는 지난 8월, tvN ‘두 번째 스무 살’로 데뷔했다. 마흔을 코앞에 둔 늦깎이 대학생 하노라(최지우 분)에게 친구가 돼주는 스무 살 새내기 박승현 역이 바로 그녀였다. 밤샘 촬영을 마친 어느 날, 오후가 돼서야 잠에서 깬 그녀는 휴대전화에 남겨진 수많은 알림 메시지를 발견했다. SNS를 확인하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한 온라인 매체에 “‘두 번째 스무 살’ 배우 진기주, 기자 시절 영상”이라는 글이 올라왔던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지난해 3월까지 강원 지역 민영 방송국 G1의 기자였다. 한때는 삼성 SDS의 사원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왜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배우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 사원이나 기자라는 타이틀이 그대로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번이 데뷔 후 첫 인터뷰라며 설레던 그녀는 배우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 진기주라는 배우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일단 저는 어릴 때부터 연예계 일을 해온 사람이 아니에요. 돌고 돌아서 결국 하고 싶은 걸 찾았고 지금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
요. 아직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원래 배우가 꿈이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나 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연기를 따라 해보기도 했고요. 다들 어릴 때 장래희망이 대통령, 의사, 과학자였던 것처럼 저도 막연하게 배우를 꿈꿨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부모님께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죠.

대기업에 다녔고, 기자로 일하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뭐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기자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가족한테 중요한 얘기할 거니까 모이라고 한 다음, 기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죠(웃음). 그 뒤로 기자가 내 적성에 잘 맞을 거라고 믿었고, 누군가 제게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항상 기자라고 대답했어요. 정작 기자가 되기 전에 삼성SDS에 입사했는데, 그건 부모님의 영향이 컸어요. 모든 부모님들이 그렇듯 딸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길 원하셨거든요.

두 직업을 거쳐 진짜 배우가 됐어요. 기분이 어때요?
되게 좋아요. 확실히 몸도 피곤하고 정신적인 압박감도 있는데,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예전에도 항상 피곤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게 싫지가 않아요. 기업에 다닐 땐 야근하는 게 싫었고, 기자 할 때도 잠 못 자고 씻지도 못하면서 경찰서를 도는 게 싫었는데 말이죠.

‘두 번째 스무 살’ 촬영 땐 많이 긴장했을 것 같아요. 데뷔작이었으니까요.
첫 촬영 때 정말 떨었던 기억이 나요. 안 그래도 땀이 뻘뻘 나는 더운 여름이었는데, 스태프가 평상시에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쓰니까 바짝 긴장되더라고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어요. 최지우 선배님께서 이런 제 모습을 보셨나 봐요. 저한테 오시더니 ‘지금 저 말은 이렇게 하라는 뜻이야’ 하고 알려주셨어요. 그렇게 하나씩 배워갔던 것 같아요.

신인 배우가 본 대선배 최지우의 모습은 어땠나요?
최지우 선배님은 연기하고 있을 때와 대기하고 있을 때의 모습이 전혀 달랐어요. 드라마 속에서 ‘노라’는 애교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거든요. 평소에는 장난도 잘 치시고 항상 웃고 계셨는데, 카메라가 돌아가면 말투부터 싹 바뀌었어요. 드라마만 보면 노라의 모습이 배우 최지우의 실제 모습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아니라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인문대생이었던 캐릭터와 달리 공대생이었다고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어요. 공대를 간 건 단순히 과학을 좋아해서였죠. 기자를 하려면 문과에 가야 할 것 같았지만, 저는 이과 과목에 더 큰 재미를 느꼈거든요.

소위 ‘공대 아름이’는 아니었는지?
‘두 번째 스무 살’ 감독님도 공대 나왔다는 이유로 저를 ‘아름이’라고 부르셨는데(웃음)…. 아쉽게도 컴퓨터공학과에는 여학생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여 학우로서 대접받은 건 1학년 1학기 때뿐이었어요.

배우 진기주의 첫걸음

배우 진기주의 첫걸음

꿈을 찾아서
8년 전, 대학 새내기가 된 그녀는 크나큰 해방감을 느꼈다. 대학생이 되고 얻은 자유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강의가 끝나면 놀기 바빴다. 동기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캠퍼스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기도 여러 번. 물론 이때 구멍 난 학점은 계절학기를 들으며 메워야 했다. 2학년 때부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때 주변에서 “그렇게 놀다 학고(학사경고) 맞는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녀지만 이제 스스로 금주를 선언했다. 신문방송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고,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꾸려나갔다.

어릴 때부터 기자가 되고자 했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아빠가 통신사 기자셨거든요. 뉴스를 많이 보면서 자랐어요. 무턱대고 도전하기 쉬운 직업은 아니지만 아빠의 영향을 받으면서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 졸업과 동시에 기업에 입사했어요.
대학에 와서 기자 준비를 시작했을 땐 부모님께서 딱히 말리지 않으셨어요. ‘설마 진짜 하겠어?’라는 마음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4학년 여름방학 때, 제가 기업체에 지원하지 않고 있으니까 진짜 기자 할 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다고 했더니 일반 회사에 들어가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라며 반대하셨어요. 신문사 인턴이라도 해보겠다고 하니 그것마저 반대하셨죠. 그래서 몰래몰래 시험 보고 다녔어요. 면접 보는 날 아침에 아버지께 걸려서 크게 혼나고, 펑펑 울면서 면접 보러 갔던 적도 있어요. 결국 부모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기업에 입사하게 됐죠.

부모님께서는 왜 그렇게 반대하셨을까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늘 제게 모든 게 환상일 거라고, 막상 기자가 되면 네가 생각해왔던 것과는 다를 거라고 하셨어요. 힘든 직업인데다 여자가 하기엔 더 험하다고요.

기업에서는 어떤 일을 했어요?
기업을 대상으로 IT 분야 컨설팅을 해주고, 시스템을 보완하고 설계하는 일을 했어요. 정식 명칭은 ‘솔루션 컨설턴트’였고요. 2년 정도 근무했는데, 그만두기까지 반년 넘게 고민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이 직장에 왜 다니고 있는지 답을 내릴 수 없더라고요. 게다가 얼마 안 있으면 진급을 하는데, 대리가 되면 그만두기 더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만두게 됐어요.

그렇게 찾은 길이 기자가 되는 것이었나요?
그렇진 않아요. 퇴사할 무렵에 인수인계를 하면서 연기 학원을 여러 곳 알아봤어요. 일단 마음 단단히 먹고 일을 그만뒀는데, 막상 집에 있으니 불안해지더라고요. 뭔가를 하지 않으니 되게 초조했어요. 그래서 공부나 하자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았는데, 어느 순간 다시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이 춘천인데, 때마침 춘천에 있는 강원 민방 공채 공고가 났어요. 습관처럼 또 지원을 했죠. 붙고 나서도 많이 고민했지만 제 스스로 합리화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니 이 길이 맞는 것일 수도 있다고요.

결국은 아니었던 거군요.
지방 매체에는 인력이 그리 많지 않아요. 신입이 들어오면 트레이닝을 시켜서 되도록 빨리 입봉시키려고 하죠. 수습 기간 3개월 동안 경찰서도 돌고, 아이템 발제도 하느라 굉장히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잠을 못 자니까 머리가 멍해지더라고요. 점점 요령이 생기긴 했지만 이미 지친 상태였어요. 입사하고 2개월쯤 됐을 때 캡(사회부 사건팀 팀장)한테 그만두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어요. 물론 엄청 말리셨죠. 퇴사를 허락받기까지 한 달이 걸렸어요.

이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나갔어요.
새벽에 TV를 보고 있는데, 슈퍼모델 선발대회 광고가 나왔어요. 그걸 본 언니가 저 대회에 나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언니가 고슴도치 스타일이라서 저를 엄청 아껴요.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지원해보라고 다독여줬어요. 그 대회가 괜찮은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일단 가족 몰래 서류를 넣었어요. 그랬더니 예선에 참가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2차 예선까지 합격했는데, 멤버 전원이 교육을 받아야 한대요. 더 이상 아빠에게 숨길 수 없겠더라고요.

아버지의 반응은 어땠어요? 많이 혼났을 것 같은데.
벌벌 떨면서 얘기를 했죠. 모델 선발대회 본선에 진출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냥 웃으셨어요. 기자를 그만뒀을 땐 정말 심하게 혼났거든요. 집에서 나가라고까지 하셨어요. 아빠가 엄하신 분이란 걸 아니까 두 번째 직장까지 그만두면 쫓겨나겠다는 예상은 했어요. 친구들한테 얘기도 다 해놨죠. 곧 쫓겨날 거니까 재워달라고요(웃음). 근데 슈퍼모델 선발대회 땐 해탈을 하신 건지, 붙었는데 교육이나 받아보라고 하셨어요. 물론 못 미더워하셨지만.

진짜 배우가 되다
무심코 지원했던 2014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최종 입상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의 소속사와 인연이 돼 배우로서 첫발을 디뎠다.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지만, 원하던 일을 시작했으니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지금은 어떤 역할이 주어지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정말 감사할 뿐이다. 오디션 장에 가면 감독들이 매의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는데, 그마저도 자신에게서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 즐겁기만 하다.

새로운 드라마 촬영에 들어갔다고요.
‘퐁당퐁당 LOVE’라는 MBC-TV의 2부작 단막극이에요. 조선시대와 현대를 오가는 판타지물이고요. 여자 주인공이 비가 오면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졌는데 얼떨결에 먼 시간으로 가버리면서 다양한 일을 겪게 돼요. 아마 12월에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쉴 땐 주로 뭘 해요?

크게 활동적인 걸 하진 않아요. ‘요리’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도 자주 보죠. 요즘엔 레시피 앱들이 잘 나와 있어서 그걸 많이 참고해요. 맛있게 만들어서 엄마랑 언니랑 함께 먹어요.

춘천에 있는 가족들 얼굴은 잘 못 보겠어요.
엄마가 가끔 서울에 오세요. 매일 검색창에 ‘진기주’ 제 이름을 검색하시더라고요(웃음). 봤던 걸 계속 보세요. 댓글까지 다 읽으시고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안 좋은 댓글을 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거든요. 아빠는 말수가 없으셔서 표현을 잘 안 하세요. 저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드라마를 챙겨 보신 것 같아요.

데뷔 시기가 늦은 편이에요. 조급하진 않아요?
제가 애매하게 늦은 것도 아니고 아예 늦은 거잖아요.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것 같아요. 조급하게 굴어 봤자 오히려 일을 망치더라고요. 여유 부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조급하지도 않은, 건강한 수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해요.

이전의 경험들이 앞으로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가끔 엄마가 말씀하세요. 그동안 살아왔던 게 어떻게든 연결이 된다고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보여도 결국 다음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준대요. 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초중고를 나왔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직장생활까지 했어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초반에는 연기 실력이 느는 속도가 더딜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경험들이 제 연기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막 연기 인생에 첫발을 디딘 진기주가 꿈꾸는 배우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저였으면 좋겠어요. 재밌어서든 감동적이어서든 사람들 뇌리에 박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석영 ■헤어&메이크업 / 에이컨셉(02-514-4425) ■스타일리스트 / 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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