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하이틴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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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 흔하다는 성형발도, 포토샵도 받지 못했던 궁핍의 시절 1988년. 그럼에도 카메라로 찍으면 찍는 대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하이틴 스타들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정화되고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그때 그 미녀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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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미 철철 최수지
당시 대표작 토지, 사랑이 꽃피는 나무, 아그네스를 위하여
최수지의 첫 등장은 파격적이었다. 당시 브룩 쉴즈나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등 서구 여배우들의 인기가 상당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국내 하이틴 스타들은 고전적이고 동양적인 미인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이와는 사뭇 다르게 큰 키에 서글서글한 매력을 지닌 서구형 미인의 스타는 그녀가 첫 등장일 것이다. 최수지의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는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에게 더 큰 호응을 얻었다. 닮고 싶은 멋진 언니의 표본이었다고나 할까? 이 지면에 실은 그녀의 사진은 1992년 자택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잡지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20여 년이라는 세월을 훌쩍 넘긴 사진이지만 어제 찍었다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세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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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쇼크! 이상아
당시 대표작 말괄량이 대행진, 사랑이 꽃피는 나무, 너와 나의 비밀 일기
이상아가 각종 CF 모델과 화보 모델로 활약했던 것만큼 그녀의 자료는 어떤 하이틴 스타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사진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눈이 큰 호강을 했다. 그녀의 낡은 필름들을 감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망상에 빠진다. 이상아가 조금 늦게 태어나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였다면 그녀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어땠을까? 완벽한 형태의 얼굴형, 신비로운 브라운 아이즈, 인형같이 오뚝한 코, 작지만 도톰한 입술…. 20년 전 모태 미녀의 외모라니 그야말로 비주얼 쇼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하이틴 스타라는 이미지 소비가 과했던 걸까? 1980년대 후반 그녀가 연기했던 작품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기억에 남을 만큼 이상아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는 점이 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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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아닌 레전드 이미연
당시 대표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빙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선택한 배우 이미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CF와 영화 캐스팅 1순위는 단연 그녀였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강단 있고 털털한 이미지는 기존의 청순미를 앞세웠던 여자 하이틴 스타와는 좀 다른 것이었고, 그녀의 복스러운 코마저 장난기 가득한 미소녀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그녀는 예쁘고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 롱런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저력도 갖고 있었던 듯하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대중의 즐길거리가 영화에서 TV 매체로 넘어가는 시점에도 이미연은 안정적으로 드라마에 안착해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하이틴 스타에서 여배우로서의 변신도 무리 없이 성공했다. 이쯤 되면 ‘하이틴 스타 출신 레전드’로 불려도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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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남자 울린 옥소리
당시 대표작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젊은 날의 초상, 하얀 비요일
옥소리는 청순한 이미지의 대표 하이틴 스타지만 어딘지 섹시미가 느껴지는 묘한 매력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맡는 캐릭터마다 청순을 넘어 청승이 뚝뚝 떨어지는 역할뿐이었으나 남자 배우를 올려다보는 동그란 눈빛만으로 그 누구도 간단히 그녀의 캐릭터를 비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명작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보면 더욱 그렇다. 입양된 집의 누이동생을 사랑한 오빠의 방황을 그린 내용으로, 제목에 담긴 뜻이나 내용의 상관관계는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남의 자식 대학까지 보내서 잘 키워놨더니 ‘여동생을 사랑한다’는 패륜적인 발언을 하거나, 얼마나 부모의 억장이 무너졌을지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발연기’를 했어도 괜찮다. 영화를 보는 단 하나의 이유는 옥소리. 그녀의 극강 비주얼이 돋보이는 영상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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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인형 조용원
당시 대표작
땡볕, 여왕벌, 고교생 일기
기자가 어린 시절에 중학생 언니의 책장 속에서 발견한 조용원의 사진 한 장. 꽃다발을 들고 무심한 듯 카메라 너머에 시선을 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다. 오목조목 반듯하게 잘 짜인 이목구비는 걸어 다니는 인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완벽했다. 아역 출신으로 영화배우로서 활동했던 그녀는 연기력과 외모 모두 인정받은 1세대 ‘정변’ 배우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무 살에 갑작스레 당한 교통사고는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다친 곳이 얼굴 쪽이라 배우로서는 비운의 길을 걸었지만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학교 석사에 이어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정보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또 다른 영역에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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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미의 오묘한 조화 김혜선
당시 대표작 푸른 교실, 사랑이 꽃피는 나무, 무동이네 집, 걸어서 하늘까지
1980년대에 선호하던 동그란 얼굴형에, 90년대에 원하던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김혜선. 그녀의 외모는 당시 동양미에서 서양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최적의 미녀로 손색이 없다. 그 사실을 반영하듯 80년대 후반에 그녀가 나온 작품을 빼놓고는 청춘물을 논하기는 불가능. 당대 최고의 남자 인기 스타였던 최민수와 손지창이 그녀를 사이에 두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펼치던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를 보며 질투심에 부들부들 떨었던 언니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 저 사진은 기자가 방송국에 놀러 갔다가 드라마 세트장에서 마침 김혜선을 만나 찍은 사진이었다. 뭐 “찍겠다, 포즈 취해라”라는 말도 없이 머리 묶고 있는 장면을 찍은 ‘도촬’ 수준의 사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청초하다.

history
그 시절 여배우 유행 몇 가지
하이틴 배우라면 누구나 ‘삭발 투혼’
당시에는 왜 그렇게 여배우들에게 삭발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삭발을 통해 하이틴 스타에서 진정한 배우로 성장할 수 있다는 암묵적 분위기가 흘렀던 걸까? 이상아는 KBS-1TV ‘TV문학관’에서 동자승으로 출연하면서, 옥소리는 영화 ‘카루나’에서 비구니를 연기하면서, 김혜선은 KBS-2TV 사극 ‘파천무’의 단 두 신을 촬영하기 위해 삭발을 감행했다. 과거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한결같이 나오는 구절, ‘삭발을 해도 그녀의 빛나는 외모는 여전하다’.

하이틴 스타의 산실 ‘사랑이 꽃피는 나무’ 1987년에서 1991년 7월 종방까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가 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다. 앞서 언급한 김혜선, 이상아, 이미연, 최수지도 이 드라마 출신이다. 여배우뿐 아니라 최수종, 최재성, 손창민 등 남자 청춘스타들의 출연으로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신인이라면 누구나 출연해보고 싶은 꿈의 드라마였다. 지금도 시청자들에게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 1위‘로 선정될 정도니 당시 위상은 실로 대단했다.

본격적인 연예인 커플들의 등장 1980년대 후반 급격한 경제 발전과 볼거리, 즐길거리에 대한 대중의 소비가 높아지면서 함께 높아진 것은 연예인들의 부와 명예다. 그전에는 여배우들의 교제 상대가 전문직이나 사업가 혹은 감독이었다면, 80년대 후반부터는 연예인 커플이나 부부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최수종·하희라 커플을 비롯해 수많은 커플이 있었지만 변해버린 그들의 현재 사정을 고려해 굳이 실명을 거론하진 않겠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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