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속 코너 ‘영화 대 영화’를 14년째 진행하고 있는 김경식(46)은 무슨 영화든 재미있게 만들어버리는 입담 덕에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눈앞의 사람이 적어도 30초에 한 번씩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24년 차 개그맨. 여덟 살과 다섯 살 두 아들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주는 아빠이자 아내의 행복한 머슴으로 살고 있는 그의 영화는 ‘패밀리맨’이다.

김경식은 개그맨이다
혹시 따로 관리받는 거라도? 총각 땐 운동도 하고 나름 관리를 했는데, 장가가고 난 다음에는 풀어졌는지 안 하게 돼요. 오늘도 끝나고 이경제 원장님이랑 술 마시기로 했어요. 경제 형과는 20년 지기 친구예요. 경제 형 친구가 방송작가여서 알게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MBC-TV ‘일밤’에 한의사로 나오더라고요. 지금은 형이 저보다 더 바빠요(웃음).
오늘 ‘출발! 비디오 여행’ 더빙하고 오는 길이라고요. 이번 주엔 어떤 영화예요? ‘인턴’이랑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요. ‘인턴’은 로버트 드 니로가 인턴이고 앤 해서웨이가 상사로 나와요. 앤 해서웨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마지막 멘트는 그거죠. (‘영화 대 영화’ 톤으로)“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얼마 전 ‘무한도전’에 출연한 ‘출발! 비디오 여행’ PD가 프로그램 더빙이 15분 만에 끝난다고 해서 화제가 됐어요. 정말 그 정도로 빨리 끝나요? 아무리 길어져도 30분은 안 넘어가요. 오늘도 NG 한 번 내고 끝났어요.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팀이라 버벅대는 게 거의 없어요. 근데 더빙만 그렇게 끝나는 거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태프는 대본 쓰랴, 편집하랴 일주일 동안 고생해요.
‘영화 대 영화’를 2002년부터 시작해서 올해 14년째 하고 있어요. 이렇게 오래 할 줄 알았나요? 몰랐죠.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땐 MC인 줄 알았어요. 그때 한창 ‘틴틴파이브’로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었거든요. ‘아니, ‘틴틴파이브의 김경식’한테 진행이 아니고 더빙을 하라고 하는 거야?’ 했어요. 당시 제가 기고만장했던 때라(웃음). 30분 안에 끝나는 거라고 해서 용돈벌이 겸 시작한 거였는데, 세월이 지나니 ‘영화 대 영화’가 제 메인이 됐어요. 프로그램 내에서도 최고참이에요.
오랫동안 사랑받은 비결이 뭐라고 생각해요? 시청자분들이 10년 이상 제 목소리를 듣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길들여지신 거죠(웃음). 많은 분들이 ‘영화 대 영화’ 하면 저를 떠올리시는데, 사실 작가의 역량이 99%예요. 정말 대본을 잘 써요. 제가 숨 쉬는 타이밍까지 염두에 둬서 워낙 꼼꼼하게 쓰니까 오히려 애드리브가 거의 없어요. 녹음 끝나면 바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스태프와 꼭 같이 밥을 먹거든요. 오랫동안 함께하며 맞춰온 팀플레이가 가장 큰 비결인 것 같아요.
직장인들도 한 회사를 10년 이상 다니기 어려운데, 연예인이 한 프로그램을 이렇게 오래 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저에게는 직장 같은 프로그램이에요. 매주 출근하듯 더빙하러 가요. 제 이름을 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영화 대 영화’가 주는 파급 효과가 정말 커요.
‘출발! 비디오 여행’이 1,100회가 넘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제까지 ‘영화 대 영화’를 통해 소개한 영화가 총 몇 편이에요? 아유, 징그러워요(웃음).
혹시 더빙하기 힘들었던 영화가 있나요? 솔직히 말해 힘들었던 영화는 없었어요.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어떤 영화든 김재경 작가 손으로 써서 김경식 입으로 토해내면 ‘핵꿀잼’이 된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뭐든 10년 이상 하면 역사가 되는 것 같아요. 타 방송사에도 비슷한 영화 프로그램이 많지만 원조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어요. 김경식에게 속아서 재미없는 영화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저한테 속을 때가 있어요. 매번 영화를 다 보고 녹음하는 게 아니니까, 제가 녹음하면서도 정말 재밌을 거 같은 거예요. 근데 끝나고 집에 가서 보고 저도 욕해요(웃음).
아빠라서 행복한 패밀리맨
근데 영화는 좋아해요? 좋아해요. 보는 것도 좋아하고 DVD로 소장하는 것도 좋아해요. 컬렉션으로 가지고 있는 ‘미드’도 꽤 있어요.
올겨울 영화 한 편 추천한다면? 개봉 영화로는 ‘스타워즈-깨어난 포스’ 그리고 2014년에 개봉한 ‘베스트 오퍼’요. 이탈리아 영화인데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이 정말 좋아요.
김경식이 영화 안 좋아한다고 하면 배신감이 들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먹는 거예요. 지역별로 맛집 리스트가 다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멋진 여행 맛있을, 지도’도 그렇고 맛집 프로그램을 꽤 여러 번 했어요.

김경식은 개그맨이다
집에서는 어때요? 요리도 하나요? 파스타가 주 종목이에요. 아내에게는 바지락 올리브파스타, 아이들에게는 새우 토마토파스타를 자주 해줘요. 제 비법은 소스를 넣고 섞는 게 아니라 볶듯이 하는 거예요. 올리브 오일은 꼭 좋은 걸 써야 하고요. 원래는 아내가 요리를 많이 하는데 요즘 저희 집 우렁각시는 백주부님이세요(웃음).
아들 바보로 유명해요. 제가 꼭 지키려고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거예요. 사실 ‘영화 대 영화’를 잘하게 된 비결이 거기에 있어요. 아이들이 책 한 권에 만족을 안 하거든요. 기본 5권이에요. 낭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호흡과 운율, 리듬감인데 매일 밤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니 이게 늘더라고요. 이제는 책을 한 번 보면 문장이 딱 눈에 들어와요. 큰아들에게는 동화책도 만들어줬어요. 아들 이름을 넣어서 제목이 「민우야 사랑해」예요.
다른 하나는 뭐예요? 가족과 일주일에 한 번 여행 가는 거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아버지께서 1톤 트럭을 빌려서 여름에는 과일, 겨울에는 배추 장사를 하셨어요. 당시 중3 사춘기였는데, 아버지를 창피해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 제가 아빠가 되고 나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아버지더라고요. 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게 늘 아쉽고요.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은 보험도, 주식도 아닌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돈 버느라 바쁜 아빠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가능한 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결혼 8년 차예요. 가장 달라진 건 뭐예요? 제가 깔끔 떨고 꼼꼼한 편이에요. 결혼 초반에는 아내에게 내 방식을 강요했는데, 이제 8년이 되니 나니 알겠더라고요. 전 왕자와 공주가 만나 결혼한 줄 알았는데, 제 위치는 머슴이었어요. 근데 머슴이 편해요. 행복한 머슴으로 살고 있어요. 솔직히 낯간지럽지만 행복해요. 가족이 있어서.
개그맨보다 방송인의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이에요. 개그에 대한 갈증은 없어요? 갈증은 항상 있어요. 요즘은 저뿐만 아니라 개그를 할 만한 무대가 많지 않아요. 시트콤 연기도 해보고 싶고요. 전 사람들이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개그맨들 사이에선 ‘비운의 천재’라고 불려요. 성대모사, 입담, 순발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데, 재능에 비해 빛을 못 봤다고요. (최)양락이 형도 매일 “너는 말야~ 재주가 8만 가지라 딱 부러지게 하는 게 없어~”라고 하세요. 물론 아쉬움도 있었어요. 저보다 잘나가는 동기나 후배들을 보며 스트레스도 받았고요. 한동안 TV도 안 보기도 했는데 가족이 이겨내게 해준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걸림돌인 줄 알았는데 디딤돌이었다’예요.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런 것들이 여기까지 오게 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해요. 바쁘지 않아 가족과 보낼 시간이 더 많아졌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감사하게 됐어요. 예전엔 세상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세월이 지난 만큼 제가 세상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나요?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 것 같아요. 준비된 자세로, 방향만 맞는다면 기회는 언젠가 찾아온다고 믿어요. 24년 전 SBS 개그 콘테스트에 합격하고 지금까지 방향은 언제나 같았어요. 코미디와 방송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만큼은 변한 적이 없어요.
2016년 새해 소망이 있다면? 재작년 겨울에 어머니께서 암 수술을 받으셨어요. 항암 치료가 막 끝났는데, 새해엔 더 건강해지셔서 손주들과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아내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고 저도 건강하면 좋겠어요.
‘영화 대 영화’는 계속 되겠죠? 평생 하고 싶어요. 매년 출연료가 조금씩 오르는데 6년 전에 제가 먼저 출연료 동결을 했어요. 계속 오르면 그만하라고 할까 봐(웃음).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정은아(에이블스튜디오) ■제품 협찬 / 리마조테일러(02-543-4094) ■헤어&메이크업 / 서일주(파크뷰칼라빈, 02-515-5888) ■스타일리스트 /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