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

TV 속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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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각 지상파 방송국의 연예대상 시상식을 떠올려보자. 연예대상 후보 리스트에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욱이 아빠들의 육아 예능이나 남성 셰프들의 ‘쿡방’의 인기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들의 득세가 이어지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TV 속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

TV 속 여성이 사라지고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부는 남(男)풍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 혹은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인가? 아니면 tvN의 ‘삼시세끼’였는지? 세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들이 육아를 하거나 요리를 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 이야기를 다룬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아닐지라도 다양한 장르의 예능 프로그램을 이끄는 진행석은 남성들이 차지한 지 오래됐다. 그나마 진행자의 보조 역할을 하는 패널조차 여성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외려 일부 남성 방송 예능인들의 겹치기 출연이 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남성 중심의 판은 TV 예능 분야만이 아니다. 충무로는 누구나 ‘여배우 부재’의 심각성을 인지할 정도로 남성 중심이 된 지 오래다. 할리우드가 영화 ‘매드맥스’나 ‘헝거게임’ 같은 여배우 원톱 영화로 더 이상 히어로 옆 ‘곁다리’가 아닌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점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최근 개봉한 화제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도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이런 할리우드의 성향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영화 평론가들의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영화계 사정에 비춰보면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왜 요즘 미디어들은 여성을 배제한 채 남성 위주의 컨텐츠를 보여주는 데 몰두하는 걸까? 문화사회연구소의 이종임 연구원은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결합되면서 경제활동의 주체인 남성의 위기 상황을 상쇄시키는 대안으로 미디어가 ‘새로운 남성성’ 찾기에 돌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새로운 남성성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여성의 특질을 수용한 남성들을 등장시켜야 하므로 여성이 배제되는 게 당연한 결과라는 것. 예를 들어 ‘삼시세끼 어촌 편’은 여성들의 힘든 ‘노동’인 요리를 힘든 ‘놀이’로 바꾸고 ‘차줌마’와 ‘참바다’ 등 성 역할을 입혀 브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중년 부부 관계를 탄생시켰다. 남성 출연자 중심의 방송에서 남성과 남성 간의 관계를 통해 가정을 연출해 여성 출연자를 필요 없게 만든 것이다. 기존의 힘든 여성의 역할을 ‘놀이’로 낭만화시킨 것은 아빠 육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육아, 가사 노동의 그림자는 은폐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아빠가 즐겁게 여행이나 놀이 공간을 다니는 모습만을 보여주며 기존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켰다.

남성 중심 프로그램의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함께 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성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이 없거나’,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존재로 여성이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온갖 논란에 정점을 찍은 ‘여성 혐오’와 ‘여성 희화화’에 대한 시선도 이런 맥락의 일부분이다. 여성 외모 희화화와 비하를 개그 소재로 삼았던 개그맨들,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성을 공공의 비웃음으로 삼은 언론매체 등의 경우처럼 말이다.

남성이 지배하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이미지의 불편한 재생산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웃고 즐기진 않았을까? 모든 현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남녀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착되고 편중될수록 문화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예능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미선은 출연 프로그램이 대폭 줄어 요즘은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다. 송은이와 김숙은 TV 매체가 아닌 팟캐스트를 활용해 예능인으로 살아갈 길을 모색했다. 방송인 박지윤과 개그우먼 정경미는 출산 이후 몸조리를 생각할 겨를 없이 초고속으로 방송에 복귀했다. 대중매체의 거대한 파급력은 이미 경험한 터다. 위기감을 느껴야 할 대상은 비단 여성 예능인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도움말 / 이종임(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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