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앞둔 딸과 함께한 특별한 시간 박일준·박혜나 부녀
아버지 박일준(62), 딸 박혜나씨(32) 그리고 매니저이자 아들 박형우씨(34)가 모인 촬영 현장은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마치 가족이 아닌 또래 친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것처럼 친근해 보였다. 처음부터 세상에 둘도 없는 화목한 가족인 듯 보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 불과 얼마 전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박일준은 가정을 모르는 가장이었다. 오직 술과 친구들, 노래만이 그의 인생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오히려 그가 가정으로 회귀하게 된 계기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저는 정말 알코올의존증이라고 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죠. 급기야 2002년에 술을 너무 마셔 쓰러진 적이 있어요. 식도 정맥이 터져서 피를 많이 흘렸더라고요. 응급실에 실려 갔고 생존율 50%라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심각했죠. 여섯 번의 수술을 거쳐 현재 80, 90% 완치에 가까운 상태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해요. 한창 술 마실 때는 가정이란 의미를 몰랐어요. 늘 새벽에 들어가니 아이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도 없죠. 남자는 그저 돈만 가져다주면 되는 줄 알았던 어리석은 가장이었어요.”
당시 가정은 나 몰라라 하는 남편의 태도를 보다 못한 아내는 박일준과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매에게도 모두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다고.
“저는 가족 간의 대화는커녕 아이들이 어떻게 태어난지도 몰랐을 정도로 나쁜 아버지였어요.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마침 제가 쓰러진 거죠. 이혼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늘이 도왔다고 해도 맞는 말일 거예요.”
그 이후 일절 술을 끊은 채 그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내에서 손자 손녀들의 등원, 하원을 돕는 자상한 할아버지 박일준이 된 것.
“그동안 아버지의 빈자리가 컸을 텐데 거리낌 없이 절 받아준 자식들에게 고마워요. 다 아내가 잘 키워준 덕분이겠죠. 요즘은 손자들 얼굴 한 번 더 보려고 집에 일찍 들어가게 돼요. 자식들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대신 손자들에게 주고 있어요.”
‘이제라도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막내딸 혜나씨가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언젠가는 보내는 것이 순리겠지만 그래도 여간 서운한 게 아니다.

결혼 앞둔 딸과 함께한 특별한 시간 박일준·박혜나 부녀
‘시집을 간다’라는 말이 새삼스러운 표현이 된 요즘이지만 그래도 박일준은 덤덤했던 아들의 결혼과 비교해 딸의 결혼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단다.
“뭔가 잃어버린 것 같고 빠지는 것 같고 그래요. 저 같은 경우는 좀 힘들게 살아왔잖아요. 어릴 때부터 놀림과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았는데 그런 제가 자식을 낳아서 결혼시킨다니까 더 만감이 교차해요. 결혼식 날짜인 4월 9일까지 시간은 좀 남았지만 딸과의 데이트는 오늘 촬영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식장에는 손수건 두 장 준비하고 가야겠죠.”
그의 예비 사위 김영환씨는 치킨 전문점 ‘치킨뱅이’로 유명한 원우푸드 김원천 대표의 외동아들로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상대가 번듯한 집안일수록 그는 걱정부터 앞섰다.
“처음에는 상견례가 굉장히 부담스러웠어요. 상대 집안에서 딸이 혼혈 2세라는 이유로 껄끄러워하지 않을까, 가수 박일준 딸이라고 안 좋게 보진 않을까, 그런 걱정이 많았는데, 편견이 전혀 없는 분들이시더라고요. 자신의 아들이 좋아하니까 그걸로 됐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감사했어요.”
박일준은 집안을 떠나 딸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많은 예비 사위에 모습이 그저 예쁘다. 연애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이 결정됐지만 사위에 대한 믿음은 강하다.
“그동안 사위를 눈여겨봐왔는데 ‘이놈이면 됐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딸이 퇴근하면 집에까지 태워주더군요. 또 해외에서 오래 공부하다 왔는데, 어른들에게 하는 행동이 싹싹하고 예의가 바르더라고요. 요즘은 결혼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최소한 그러지는 않겠구나 싶어서 좀 이른 결정이지만 허락했죠.”
딸은 아버지에게 결혼식 축가를 부탁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제가인 ‘Unchained Melody’를 준비 중이다. 애틋한 부성애 그리고 새로운 커플의 사랑을 축복하기에는 제격인 노래.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결혼 선물이 될 것이다.
그에게서 발견한 아빠의 모습
볼터치를 하지 않아도 발그레하게 천연 발색이 되는 모습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 결혼식을 두 달여 앞둔 박혜나씨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울까. 예비 신랑의 이야기만 나와도 미소가 번졌다.
“아빠가 가정을 등한시하긴 했지만 엄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착하다’라고요. 그 남자도 되게 착해요. 요즘 타산적이고 약아빠진 남자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 남자는 그런 게 없어요. 남자를 만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아빠 같은 면을 찾았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시부모님이 될 분들과 식사를 했다고 한다. 오빠인 형우씨가 혼혈에 연예인 집안이란 이유로 상대쪽에서 결혼 반대를 했던 것을 옆에서 봐왔던지라 매도 먼저 맞는 편이 좋겠다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앞둔 딸과 함께한 특별한 시간 박일준·박혜나 부녀
그녀 역시 튀는 외모로 어릴 때부터 주위의 관심을 받아온 터다. 게다가 누구의 딸이라는 소리로 주목받는 것이 싫어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가수인 아버지의 존재를 숨기곤 했다.
“지금이야 이목구비가 뚜렷한 분들이 많지만 제가 스무 살 때만 해도 정말 드문 외모였어요. 어딜 가도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죠. 일부러 고전적으로 보이기 위해 화장도 하지 않고 액세서리도 최대한 자제했어요.”
아버지와 방송 출연을 시작하면서 연예인 제의도 많이 받았다. 실제로 가수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끼 없는 성격 탓에 포기하고 말았다.
“연예인이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저는 그런 관심조차 부담스러우니 할 수 있었겠어요? 준비만 하다가 ‘이건 정말 내 길이 아니구나’ 싶어 그만뒀죠.”
인생이 힘겨워질 때, 불합리한 조건에 놓였을 때,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혹은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더라면…’이란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곱든, 곱지 않은 시선이든 그녀를 괴롭히긴 했지만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했던 적은 없다.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저에 대해 수군거릴 이슈거리는 많았겠죠. 그렇지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엄마는 항상 저희 남매에게 ‘아빠 욕먹을 짓 하지 말라’라고 가르치셨어요. 어릴 때는 그 말이 잔소리로 느껴졌는데, 어느새 마음에 꼭 박혔는지 오빠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어디 가서 나쁜 짓을 해본 적은 없어요.”
“저희 가족은 내세울 게 성격뿐이에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박혜나씨. 그녀의 호탕한 웃음으로 지난날의 그늘은 가볍게 날아가버렸다. 어디 하나 부족함 없는 완벽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올곧게 자라나 세상에 바로 설 수 있었던 이유는 강한 어머니의 교육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착한 심성 덕분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뿌리 깊은 나무가 돼준다. 그곳에서 피어난 건강하고 파릇파릇한 잎은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나무로 성장할 것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바이홍(byhong.co.kr) ■제품 협찬 / 더뮤즈(070-4230-6877), 루이엔젤(02-2252-8787), 마렛(02-516-8942), 아이러브플랫(070-8632-7937), 이상봉(02-543-5604) ■헤어&메이크업 / 송청수 ■스타일리스트 / 박남일, 이민호(어시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