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형철의 색깔

배우 이형철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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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이형철의 색깔이 진회색빛이라면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에게선 푸른 느낌이 났다. 마치 흰 구름이 이따금 보이는 맑은 봄 하늘같이.

배우 이형철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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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철(45)은 웃는 게 참 멋지다. 촬영 내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이유도 그의 미소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유쾌한 웃음 덕분에 사진이 잘 나왔다는 말을 건넸다. 그는 웃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며 또 웃어 보였다. 이렇게 미소가 예쁜 사람인데,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무표정에 인상 쓰기 일쑤니 그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얼마 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SBS-TV ‘불타는 청춘’에 새 멤버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배우’라는 수식어를 떼고 어떤 꾸밈도 없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딘가로 놀러 갔는데 그곳에 카메라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촬영에 임하고 있는 중. 정장 재킷 대신 후드 집업을 입은, 차갑기보단 다정한 예능 프로그램 속 그의 모습이 조금 낯설다.

‘불타는 청춘’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예요?
오래전부터 섭외 연락이 왔어요. 그동안은 이 프로그램이 저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거절했죠. 출연하는 분들이 대선배님들이라 과연 그 안에서 내 모습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평소의 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로 악역을 맡아서 대중이 한쪽으로 편중된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진짜 내 색깔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해남 땅끝마을에서 첫 촬영을 했어요.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모든 걸 다 제쳐두고 1박 2일 재미있게 놀다 왔어요. 처음엔 걱정이 정말 많았어요. 예능이니까 웃겨서 분량 확보를 해야 하잖아요. 사실 제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기존 멤버분들께서 편하게 대해줘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 꾸미려고 하지 않고 그냥 평상시 하던 대로 지낸 거죠. 많은 분들이 원래 보던 모습과는 다르다고 하시는데, 그걸 이형철의 진짜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어요.

배우 최성국씨와는 막내 라인을 이뤘죠?
성국이야 어렸을 때부터 보던 친구라서 참 편해요. ‘불타는 청춘’ 멤버 중 다른 분들은 몰라도 성국이는 알았거든요.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니까 부담이 덜 됐어요. 성국이가 프로그램을 먼저 시작해서 제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데, 사실 맞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멤버들이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죠. 마음이 찡하던데요.
강수지씨가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갑자기 생일이 언제냐고 묻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다음날(2월 19일)인 거예요. 내일이라고 말하니 “정말 그렇네요!” 하면서 대화가 마무리됐어요. 그런데 그날 밤에 축하 파티를 열어주신 거예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변변한 빵집도 없는데, 저 몰래 준비해서 축하해주신 거잖아요. 멤버들이 케이크를 들고 나올 때 정말 감동받았어요. 내가 참 사람이 고팠구나, 정이 그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가족이 미국에 살아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거든요. 근데 때마침 사람들의 따뜻함을 느낀 거죠.

젊은 그대
‘중년’임에 틀림없지만 그 단어와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인생을 많이 살아본 어른인 것 같다가도 마냥 소년 같아 보이기도 한다. 기자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정작 그 자신은 “아직 철들지 않았다”라는 한마디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방송에서 스냅백도 쓰고 가죽 재킷도 입던데 평소 스타일이에요?
호기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젊은이들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고 어디 가서 노는지에 관심이 많아요. 나이는 먹어가지만 외적으로 드러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구시대적이지 않고 젊은이들과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게. 스냅백 되게 좋아해요. 착용해봤을 때 충분히 내가 소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아이템이든 망설임 없이 시도해요.

배우 이형철의 색깔

배우 이형철의 색깔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일단 철이 안 든 게 분명하고요(웃음). 보기보다 정이 많아요. 근데 겉으로 표현을 잘 안 해요. 표현하는 방식을 모르기도 하고요. 혼자 오래 살다 보니 생긴 부작용인 것 같아요. 이런 말 제 입으로 하긴 쑥스럽지만 아직은 또래에 비해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지낸 지 오래된 만큼 혼자 사는 데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요. 싱글라이프를 어떻게 즐기고 있나요?
즐기는 시간은 이미 지나갔어요. 이제는 즐기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시기랄까요?(웃음).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데 옆에 아무도 없고 시간은 계속 흘러요. 어쨌든 제게 주어진 시간을 소비해야 하죠. 제가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요. 운동할 땐 다른 생각이 전혀 안 들거든요.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외로움, 공허함 같은 것들이 견디기 힘들죠.

일부러 짝을 안 찾는 건 아니고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요즘은 다들 외로워만 하지 관계를 발전시키고 깊게 만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오죽하면 ‘썸’이라는 단어가 나왔겠어요. 옛날에는 좋으면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마는 않은 듯해요. 또 그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을 포장하고 있는 박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이렇게 얕은 관계만 지속하는 세태가 아쉬워요. 현실과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는 게 문제죠.

나이 들수록 멋있어진다는 평이 있어요.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 조지 클루니를 닮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사실 그가 젊었을 땐 그렇게 멋있는 배우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점점 그만의 색깔이 생기더라고요. 조지 클루니도 숀 코네리처럼 나이 들수록 뿜어져 나오는 기품과 멋스러움이 있어요. 저도 그렇게 늙는 게 소원이에요.

외모도 생각도 또래에 비해 젊어요. 그 비결을 알고 싶네요.
운동 좋아하고 술 못 마시는 게 참 다행이에요. 제가 술은 잘 못하거든요. 아마 술까지 잘 먹었으면 큰일 났을 거예요(웃음). 운동은 안 해본 종목이 거의 없을 정도로 좋아하고요. 특히 골프, 스킨스쿠버다이빙, 볼링, 웨이크보드 같은 레저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요. 테니스와 탁구도 곧잘 쳐요. 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즐길 줄 알죠. 일단 운동을 시작하면 한없이 즐거워져요.

로맨스를 꿈꾸다
드라마 ‘온에어’(2008) 속 악독한 연예기획사 대표 진상우가 너무 강렬한 인상을 줬던 걸까. 처음 도전했던 악역이었음에도 실감 나는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았지만 종영 이후가 문제였다. 캐릭터의 잔상이 오래 남다 보니 계속 악역이나 강한 역할만 맡게 된 것이다. 이제는 조금 욕심을 내보려고 한다. 돌파구를 찾기 위한 첫 번째 시도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었다. 다음으로 해보고 싶은 건 ‘멜로’다. 드라마 속에서의 로맨스가 현실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배우 이형철의 색깔

배우 이형철의 색깔

캐릭터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나요?
물론 받죠. 한정되고 싶지 않거든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축복인 것 같아요. 비슷한 역할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돼요. 여러 사람의 인생을 다양하게 살아보는 게 배우의 맛인데, 계속 한 가지만 맛보니까 아무리 맛있어도 그 정도가 덜하죠.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서글퍼요.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무척 많아요. 악역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형철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다른 색깔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화 ‘파이란’ 속 최민식 선배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인물도 맡아보고 싶어요. 멜로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어릴 땐 멜로물에 많이 출연했거든요. 흥행이 잘되진 않았지만(웃음). 나이 들면서 선택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이 줄었어요.

요즘에는 중년의 로맨스도 많이 다뤄지고 있잖아요. 멜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40, 50대의 로맨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잖아요. 할리우드 멜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나이가 많은 편이에요. 리처드 기어도 40대에 멜로연기를 했죠. 우리나라 주요 콘텐츠 소비층이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많이 다뤄지기 어려운 면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중년 로맨스 작품이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불타는 청춘’ 멤버들에게 “뭘 먹어도, 뭘 해도 즐겁지 않다. 2세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죠. 그 모습을 보면서 사무친 외로움이 느껴졌어요.
40대가 돼버린 지금, 이 나이에 뭘 해야 행복할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새롭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제껏 받아왔던 것들을 돌려줄 대상이 필요한데, 그게 ‘자식’인 것 같아요. 나를 닮은 아이를 보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거워요. 그래서 다들 결혼하고 가정 꾸리면서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찾는 거구나 싶어요.

어떤 상대를 꿈꾸는지 궁금해요.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했으면 좋겠어요. 저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생각의 거리가 멀면 그 격차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어요.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주 안에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올봄이 가기 전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한 번도 여자친구와 벚꽃 놀이를 가본 적이 없어요. 어렸을 땐 바빠서 못했던 것 같고, 지금은 옆에 누군가가 없어서 그렇고(웃음). 이번 봄에는 꼭 가보고 싶어요.

그럼 상대를 찾는 것부터 서둘러야겠는데요.
못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적당한 사람 찾아서 결혼하는 건 제 스스로가 못 받아들이겠더라고요. 함께 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을 거예요.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태환 ■의상 협찬 / style7(02-6212-0403) ■헤어&메이크업 / 성진, 정리(엔끌로에, 02-517-9111) ■스타일리스트 / 황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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