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수록 빠져든다, 정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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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많이 낯선 이름 ‘정하담’. 알고 보면 그녀는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신예다. 자꾸만 눈길이 가는 매력적인 외모에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연기력까지. 그녀에게 한 번 빠져들면 출구를 찾기 힘들다.

볼수록 빠져든다, 정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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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생. 서울 출신. 데뷔작은 가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들꽃’(2014). ‘검은 사제들’에서 소머리를 등에 지고 나와 굿을 하던 ‘영주무당’으로 출연했으며, 오는 4월 개봉을 앞둔 ‘스틸 플라워’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때 잠깐 연극부 활동을 한 경험이 있지만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다. 배우 정하담(22)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이 정도뿐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천하장사 마돈나’를 연출한 이해영 감독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어마어마한 존재감의 배우”라고 그녀를 극찬했다는 것.

그녀와 테이블에 마주 앉자마자 준비한 질문을 쏟아냈다. 만나기 전부터 이미 큰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2시간 남짓한 짧은 만남으로는 한 사람을 깊이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괴물 신인’이라는 수식어는 이런 배우에게 써야 한다는 것을.

연기를 배운 적 없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고등학교 때 했던 연극부 활동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대학도 관련 없는 학과로 진학했는데, 계속 연기에 대한 미련이 남는 거예요. 그래서 휴학하고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어요. 결과는 매번 낙방이었죠.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들꽃’, ‘스틸 플라워’를 연출한 박석영 감독과의 인연도 오디션에서 시작됐죠. 맞아요. ‘들꽃’ 오디션 같은 경우 경력이 없어도 된다고 해서 망설임 없이 지원했어요. 처음부터 별 기대는 없었고 오디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그런데 면접을 다섯 번이나 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결국 제가 출연하게 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날아갈 듯 기뻐했죠.

굉장히 매력 있는 얼굴을 가졌어요. 한예리, 박소담을 잇는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스타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요. 그렇게 봐주신다니 영광이에요. 제게는 정말 값진 칭찬이죠. ‘독립영화인’이 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했던 배우들이 잘되는 경우가 많아서 기뻐요. 저 같은 경우도 운이 되게 좋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지네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정말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이 노력했죠. 누가 저를 미워하는 걸 잘 견디지 못하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항상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또 소설가를 꿈꿀 정도로 책 읽는 걸 좋아했고요. 특히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를 인상 깊게 읽었죠. 근데 요즘에는 잘 못 봐요. 고등학교 땐 성인 독서량이 한 달에 두 권이 채 안 된다는 뉴스를 보면 이해가 잘 안 됐어요. ‘어쩜 그렇게 책을 안 읽지?’라는 의심을 가졌는데, 제가 딱 그 성인이 됐네요(웃음).

나중에 시나리오 써보고 싶은 욕심도 있겠어요. 큰 욕심은 없는데요. 연기를 위해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작품을 내용 순서대로 촬영하진 않으니까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아무래도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촬영할 때 감독님이 각 신을 어떻게 이어붙일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볼수록 빠져든다, 정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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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세상을 버티는 소녀, 하담.
영화 ‘스틸 플라워’는 그녀의 단독 주연작이다. 극 중 이름도 본명 그대로 ‘하담’이다. 하담은 친구도, 가족도, 집도 없이 홀로 추운 거리를 떠돌며 산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탭댄스에 매료되고, 틈만 나면 춤을 추며 삶의 긍지를 찾아간다. 1시간 반에 달하는 상영 시간 동안 대사는 몇 마디 하지 않지만 그녀는 힘 있게 극을 끌어간다. “일하고 싶어요”라며 울부짖는 하담의 모습은 살 곳을 찾고, 일자리를 찾고, 꿈을 찾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 속 하담의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요? 일단 삶의 원칙이 있는 아이라고 봤어요. 예를 들어 하담은 절대로 몸을 팔지 않아요. 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정당한 방식으로 일하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길 원해요.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연기했어요. 전체적으로 강단 있는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대사가 많지 않아서 연기하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었죠. 사실 대사가 없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신이 많다는 게 힘들었어요. 횟집 주인이나 전단지 돌리는 아주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촬영할 땐 그나마 나았는데, 홀로 허름한 방 안에 지쳐 누워 있는 모습을 표현할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하담은 자기 대신 전단지를 돌리면 돈을 주겠다는 아주머니와 내일 와서 일한 값을 받아가라는 장어집 사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요.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했죠. 굉장히 거칠지만 순수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의심되는 게 분명 있지만 믿을 수밖에 없어요. 돈을 벌어야 살 수 있으니까 일단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거죠.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부당함을 호소하고 분노하지만 기본적으로 믿어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단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나 할까요.

배경인 부산의 쓸쓸한 바다, 달동네, 유흥가 등이 정처 없이 떠도는 하담과 잘 어울렸어요. 부산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어요. 처음 갔을 땐 여행 온 느낌이 나서 마냥 좋았죠. 촬영하면서부턴 그런 느낌이 점점 줄었어요. 분명 대도시인데 서울과는 또 달라요. 항구 풍경이나 사투리 같은 것들이 생소해 ‘타지’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캐릭터와도 잘 맞았던 것 같고요.

마음껏 연기할 일만 남았다
‘맨땅에 헤딩’해서 여기까지 왔다. ‘연기’라는 끈을 계속 쥐고 있었던 이유는 딱 한 가지. 단지 좋아서였다. 벌써 영화 두 편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일정을 관리해주는 소속사도 생겼다. 이제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펼쳐 보이는 것뿐이다.

연기 전공에 대한 미련이 남진 않아요? 일을 하지 않았을 땐 미련이 있었어요. 그러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영화를 하게 되면서는 보류 상태가 됐죠. 지금은 아예 사라진 것 같아요. 만약 지금 다시 입학하면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꽤 날 텐데 언니, 누나 소리 듣는 건 정말 민망하고 싫거든요(웃음). 존댓말 쓰면서 거리를 두게 되면 분명 좋은 친구가 되지도 못할 거고요. 근데 요즘 문득문득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도 출연한다고 들었어요. 하녀로 나오는데 정말 비중이 작은 역할이에요. 아마 찾아보시기 힘들 수도 있어요(웃음). 데뷔작 ‘들꽃’이 개봉하기 전에 오디션을 봤어요. 박찬욱 감독님이 어떤 분일지 궁금했기 때문에 단역이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경험도 적었을 때였는데 운이 좋았어요. 박 감독님과 훌륭한 선배님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에요.

볼수록 빠져든다, 정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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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스틸 플라워’에 이어 박석영 감독의 꽃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재꽃’에도 캐스팅됐어요. ‘재꽃’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인가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쓰고 계신 단계예요. 그래서 아직 구체적으로 잘 알진 못해요. ‘스틸 플라워’ 하담과는 다르게 가족과 살 집이 있는, 부족한 게 없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어떤 시나리오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꽃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신을 꽃에 비유해본다면? 아네모네! 영화 프로모션하면서 아네모네를 ‘하담 플라워’로 정했거든요. 독특하고 예쁜 꽃이에요. 꽃이 피기 전에는 그 매력을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조금의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화려한 꽃을 만날 수 있죠.

연기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어요? 원래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액션물이나 SF같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특수 분장도 하고 총도 쏘는, 현실과 어느 정도 괴리 있는 역할도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웃음). 우주복도 입어보고 싶어요!

그럼 지금 영화 외에 가장 관심 갖고 있는 건 뭐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기타 연주를 즐겨 했어요. 물론 지금은 잘 안 하지만요. 얼마 전에 영화 ‘헤이트풀8’을 봤는데 제니퍼 제이슨 리가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그녀처럼 기타 연주, 노래 둘 다 하고 싶어졌어요. 심심할 때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기타 연습을 하려고요.

연기하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까지 되게 열심히 해왔는데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더 잘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어떤 상황이든 즐겁게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요. ‘들꽃’에 이어 ‘스틸 플라워’까지 좋은 평가를 받게 돼 정말 기쁘고 감사해요. 지금 이 마음, 영원히 잊지 않을 거예요.

■글 / 노도현 기자 ■사진 / 김석영 ■의상 협찬 / 엘가(www.ellga.co.kr) ■헤어&메이크업 / 이누리, 김소희(어시스턴트) ■스타일리스트 / 김영아(Soner, www.sonnesty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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