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석, 믿어지지 않는 요즘
단결! 김 일병 인사드리지 말입니다
사진 촬영도, 인터뷰도 아직 어색하단다.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찬찬히 보니 이 스물일곱 살 배우의 얼굴 위에 여러 가지 색채가 떠올랐다 사라진다. 웃을 때는 영락없이 귀여운 ‘김 일병’의 모습 그대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데, 조용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눈빛에서는 차분하고 슬픈 느낌마저 감돌았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가볍게 대답하지 않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천천히 곱씹어본 뒤 담담하지만 확실한 어조로 ‘태양의 후예’로 산 지난 시간의 추억을 털어놨다.
요즘 인터넷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어요. 인기를 실감하죠? 출연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데, 저한테까지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어린 친구들뿐 아니라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알아봐주시고 먼저 반가워해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해요. 근데 제가 한 것에 비해 큰 관심을 받는 것 같아서 저보다 더 고생하면서 촬영한 다른 배우들에게 죄송스러워요.
첫 회에 워낙 강렬하게 등장해서 더 인상 깊었어요. 대본을 보고 얼마나 많이 걱정했는지 몰라요. 생각보다 1회에서 제가 출연하는 분량이 많더라고요. 이게 마냥 좋은 게 아니에요. 송중기, 송혜교라는 대스타 선배들이 주연인데, 보시는 분들이 ‘쟤는 뭔데 자꾸 나와?’라고 생각하실까 봐 큰 부담이 됐어요. 혹시 제가 잘못해서 극 전개에 피해를 주면 어떡하나 싶었거든요.
지금은 ‘알파팀’ 부대의 막내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데요. 그런가요? 실제로 첫 회 에피소드 촬영할 때보다 태백에서 ‘알파팀’ 부대원의 일원이 돼서 촬영하면서부터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선배님들께 많이 의지하면서 즐겁게 촬영했어요.
요즘 방송으로 보니 기분이 어때요?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저는 열혈 시청자 모드예요. 놀랄 정도로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있는데, 거기에 저도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웃음). 방송으로 보니까 촬영할 때는 못 느꼈던 감정들도 새록새록 느껴요. 또 보고 있노라면 같이 촬영했던 선배 배우들이 그립고요.
사전 제작 드라마라 촬영 중 모니터링을 못했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사전 제작 드라마는 처음 경험하는 거라 찍을 때는 답답한 것도 있었죠. 빨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었어요. 저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 스태프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조마조마해하지 않고 믿음을 갖고 촬영한 것 같아요. 또 ‘쪽대본’이 나오는 드라마였다면 실시간으로 상황이 바뀌어서 흔들릴 수 있는데,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이라 대본이 미리나오니까 쓸데없이 분량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있어서 그 점은 좋았어요.
‘태양의 후예’ 촬영은 12월에 이미 끝났잖아요. 요즘은 뭐 하고 지내요? 생애 처음으로 영화를 찍고 있어요. 김혜수, 이선균 선배님 주연의 영화 ‘소중한 여인’에 캐스팅돼 1월 말부터 촬영을 시작했어요. 오디션을 볼 때 ‘태양의 후예’가 첫 방송되기 전이었거든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저를 캐스팅해주셔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누아르 장르의 영화예요.
꿈같았던 7개월
‘태양의 후예’는 인적이 드문 태백의 산꼭대기에서 촬영의 상당 부분을 진행했다. 사전 제작 드라마라 제작 기간도 유독 길었다. 지난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 동안 꼬박 ‘김 일병’으로 산 시간은 그에게 어떤 추억을 남겼을까.
‘태양의 후예’에는 어떻게 캐스팅이 된 거예요? 오디션을 봐서 감독님께 발탁됐어요. 감독님께서 “(김 일병이) 그냥 너니까 연습도 하지 말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날것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나중에 알고 보니 김 일병 역에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었대요. 저는 감독님과 세 번째 만남에서 출연이 확정됐어요. 그때 강원도로 2박 3일간 MT를 가게 됐어요. 김은숙 작가님, 이응복 감독님, 송중기·송혜교 선배님들도 함께요. 우와! TV에서만 뵙던 분들이 눈앞에 있으니 얼떨떨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고 무척 애썼죠.
톱스타 선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송중기씨는 실제로 유시진 대위와 비슷해요?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실제로도 유시진 캐릭터처럼 농담도 잘하시고 재미있어요. 동생 대하듯이 가끔 괴롭히면서 장난도 치고요(웃음). 요즘 방송을 보면서 새삼 송중기 선배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촬영할 때는 미처 모르고 지나갔는데, 부대원들이 모여 있는 신에서 저에게 일부러 손으로 터치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한 번 더 짚어주셨더라고요. 주연배우가 그렇게 해주는 것이 상대 배우 입장에서는 시청자에게 더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요. 앞에서는 표현을 안 하셨지만 저를 많이 배려하고 챙겨주셨다는 걸 새록새록 느끼고 있어요.
가장 많이 함께 촬영한 배우는 누구예요? 군인이라 부대의 남자 배우들과 많이 촬영할 줄 알았는데 막상 촬영장에서 보니 재미있게도 송혜교 선배님과 김지원씨예요. 송혜교 선배님은 드라마 ‘올인’ 때부터 좋아했는데 이번에 함께 촬영하면서 정말 인간적으로 반했어요. 이렇게 성격까지 멋있는 여배우와 촬영을 했다는 게 영광이에요. 7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옆에서 봤는데 현장에서 한 번 찡그리는 법 없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챙기세요. 후배들 대기 시간 긴 것까지 신경 써주시더라고요. 강모연 캐릭터와도 많이 비슷해요. 현장에서는 늘 애교가 넘치셨어요. 김지원씨는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나왔을 때부터 팬이었고요. 저보다 어린데도 생각이 정말 깊어요.

김민석, 믿어지지 않는 요즘
배우들이 한 번쯤 꼭 출연하고 싶어 하는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첫 출연했는데 어땠어요? 지난 5년 동안 연기하면서 대본을 보다가 울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김은숙 작가님의 글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힘이 있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닐 거예요. 한 카메라 감독님은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울기도 했대요.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작가님께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네가 하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울컥한다”라고 하시는데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오토바이 위에서도 오디션 대사 외우며 버텼다
이제 막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5년 차 배우. 짧다면 짧다고도,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는 무명 배우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김민석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 자신을 맡겼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어요? 원래는 가수가 되려고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tvN ‘닥치고 꽃미남 밴드’ 오디션을 봤는데 덜컥 붙었어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중독성 있는 연기의 맛을 봤다고나 할까요? 다시 가수 준비생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죠. 그 뒤로 가수 준비하던 회사에서 나와 홀로 수없이 단편영화, 웹 드라마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신인 배우가 소속사도 없이 활동하려면 꽤나 힘들었겠어요. 연기로 수입이 없으니까 홀서빙, 배달 등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닥치고 꽃미남 밴드’를 촬영한 이후에는 10대 친구들이 저를 조금씩 좋아해주셨거든요.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창피한 건 전혀 아니었는데,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제 존재가 영업에 지장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오토바이 타는 일을 구했어요. 퀵서비스도 하고 햄버거 배달도 하고요. 차라리 속이 편하더라고요. 오디션 생기면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크게 소리 지르며 대사도 외울 수 있고요. 그때 대사 연습 정말 많이 했죠(웃음).
마음이 고달팠던 순간도 많았으리라 짐작돼요. 생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힘든 순간이 많았어요. ‘태양의 후예’에 캐스팅되기 직전까지는 ‘이제 군대를 가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공백기가 길었고요. 그런데 그런 고민들을 다 떨쳐버릴 수 있었던 건 연기하는 것이 정말 좋았고,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냥 믿었어요, 저 자신을. 나라는 배우가 설 자리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요. 그런 확신 하나로 버텨냈어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 스타일이에요? 운동하는 것 좋아해요. 샌드백 1시간만 치면 어떤 스트레스도 싹 풀려요. 사실 지금도 빨리 운동하러 가고 싶어요. 아직 인터뷰라는 게 익숙하지가 않나 봐요.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네 번째 인터뷰 스케줄인데 이틀 꼬박 드라마 촬영하는 것보다 이게 더 힘든 일이네요(웃음). 그런데 정말 죄송해요. 제가 지금 피곤한 티를 내는 것 같아서요. 다음에는 꼭 제일 먼저 약속을 잡아서 만나요.
힘들 때 의지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제게는 배우 이민기 형님이 그런 존재예요. ‘닥치고 꽃미남 밴드’를 함께하면서 알게 된 인연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선배님이에요. 힘들 때마다 정신적으로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물질적으로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고생 끝에 드디어 주목받기 시작했으니 가족에게도 큰 기쁨이겠어요. 가족은 할머니와 저 둘뿐이에요. 근데 에이, 아직 아니에요. 별로 크게 기뻐하고 표 내시는 건 없어요. 제가 아직 집에 금전적으로 보탬이 되는 수준은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그런 확실한 증표가 있어야 안심하시잖아요(웃음). 제가 배우 하겠다고 한 순간부터 많이 걱정하셨는데, 그래도 올해는 열심히 하다 보면 드디어 할머니께 효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뿌듯해요. 제게도 이런 날이 오네요.
‘김 일병’ 김민석을 눈여겨보는 시청자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연기를 이제 막 배워가기 시작하는 제게 큰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앞으로는 막둥이 김 일병이 점점 남자가 돼가는 모습도 보실 수 있어요. 김 일병의 성장기도 지켜봐주세요.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정성민(프리랜서) ■사진 / 안지영(By 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