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6월 19일 19:00 유승준 밴쿠버 콘서트 현장 중계
“꼭 1년 만에 노래하고 춤추는 무대에 섰다”
교회 주최 콘서트, 데뷔 때처럼 열정 과시
밴쿠버에서 유승준의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6월 중순 경 밴쿠버 시내의 한국 식당에서 ‘유승준 찬양 콘서트’라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번째는 ‘이런 일이 밴쿠버에서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열흘 전, 그렇게 나는 우연히 유승준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6일 전, 나는 티켓을 예매했다. 티켓은 한 장에 20 캐나다 달러(한화 1만8천원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이보다 더한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티켓을 나는 여유 있게 “감사합니다!”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구입했다. 티켓을 파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였다. 이들은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고 그저 티켓을 팔았다. 이유는 유승준의 공연이 ‘밴쿠버 기독교방송 선교기금 마련을 위한 찬양 콘서트’였기 때문이다. 유승준은 19일, 20일 이틀 동안 공연을 했고 우리는 20달러 티켓 한 장으로 이틀 동안 유승준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는 19일이 되었다.
공연은 오후 7시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유승준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오후 5시경 콘서트장에 도착했다. 콘서트는 밴쿠버 써리의 한인교회에서 열렸다. 공연이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콘서트장 입구에는 많은 한국 소년, 소녀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늘의 공연은 선착순으로 입장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오후 2시부터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오후 6시경이 되자 콘서트장 안으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티켓을 구입할 당시 자원봉사자들은“콘서트장이 교회인 만큼 약 1백 명 정도의 인원이 입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교회는 생각보다 넓고 안락한 분위기였고 콘서트장에 모인 사람들은 약 5백여 명이었다. 역시 70% 이상의 관객들은 10대와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콘서트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몰랐다”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즐겁기는 콘서트를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만에 만나는 유승준인지… 팬들은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하며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콘서트는 정확하게 7시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에 걸맞게 초반 40여 분 정도는 밴쿠버 현지 교인들의 찬양이 이어졌다. 그리고 유승준이 왜 이곳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15세 때 자살 생각했다” 자기고백
유승준은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당시에 TV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최병헌 목사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경기도 소재의 ‘금빛 사랑의 집’에서 현재 7세인 여자아이 정수진 양을 만났다고 한다. 정수진 양은 뇌 속에 물혹이 8개나 있어 보지도, 걷지도, 말도 못하는 1급 지체 장애아이다. 그녀는 이미 다섯 번의 뇌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밥도 먹지 못하고 우유와 영양제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유승준이 정수진 양을 만난 것은 벌써 4년 전의 일. 처음 시작은 방송을 통해서였지만 그 이후에도 유승준은 1년에 서너 번씩 수진양을 찾았고 그때마다 잊지 않고 후원금을 냈다고 한다. 최병헌 목사의 말에 의하면 현재까지 유승준이 ‘금빛사랑의 집’에 낸 후원금은 약 1억 원에 달한다는 것.
늘 유승준에게 도움만 받던 최 목사는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병역법 위반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채 미국에 머물고 있는 유승준을 돕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한 최 목사의 소식을 접한 밴쿠버 기독교방송국이 최 목사를 통해 유승준의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한참 동안의 찬양이 이어진 후 무대에는 하얀 스모그가 깔렸다. 그러자 공연장은 삽시간에 들썩거렸다. 이제 유승준이 등장할 차례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팬들은 교회라는 장소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어느 때 보다도 힘찬 박수로 유승준의 등장을 재촉했다.
드디어 유승준이 등장했다. 그는 야구모자 속에 하얀색 두건을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하얀색 슬리브리스 티셔츠에 평범한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그의 모습은 밴쿠버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의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수만 명의 팬들을 애태우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첫 노래로‘찾길 바래’를 불렀다. 첫 노래가 끝난 후 팬들 앞에 선 그는 “안녕하세요. 할렐루야, 아멘!”을 첫 마디로 외쳤다. 그리고 “할렐루야의 뜻이 뭔지 아세요?”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서울에서의 콘서트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솔직해 보였다. 유승준은 “1년 만에 노래하고 춤추는 무대에 섰다”며 오랜 만에 노래하게 된 것에 대해 무척 감격스러워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춤은 하늘을 나는 듯 힘차고 파워풀해 보였다.
유승준은 ‘찾길 바래’에 이어 ‘와’ ‘가위’까지 모두 세 곡의 히트곡을 춤과 함께 선보였다. 그의 춤과 노래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무대에 서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유승준은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팬들 가까이까지 다가와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악수를 청하는 팬들과 손을 맞잡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4명의 백댄서와 함께 무대를 장식한 유승준은 공연장에 모인 팬들을 위해 직접 기도를 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힘들었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하며 소년, 소녀들을 위한 사랑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노래에 이어 유승준은 두꺼운 대학노트에 깨알같이 써온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갔을 때,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 나쁜 길로 들어섰다가 죽음 앞에까지 섰던 일. 그는 15세 때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 일어나라, 승준아!”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그 이후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유승준은 어린 소녀, 소년 이민자에게 “공부하기 싫지? 하지만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만 나중에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며 이민온 어린 학생들을 염려하는 마음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그는 자신의 히트곡에 이어 5~6곡의 찬송가도 불렀다. 노래 중간중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유승준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현재 병역법 위반으로 한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했다. 유승준은 요즘의 생활에 대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표현을 했을 뿐이다. 아마도 오랜 만에 만난 팬들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는 2시간 여 동안 펼쳐진 그의 시간 중 ‘힘든 시간’이라는 단어를 서너 번 정도 사용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결국에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덕분에 콘서트장은 한순간 눈물의 콘서트장이 되기도 했다. 관객들도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콘서트장을 찾은 관객들 중 일부는 유승준의 팬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유승준이 밴쿠버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이끌려 온 유학생도 있었고 그들 중에는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도 많았다.
콘서트 막바지에는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찾은 그의 초등학교 동창생이 무대로 올라와 그와 상봉(?)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PART 2 . 입국시비 관련 양측의 논란
유승준 “사죄를 하기위해서 먼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했다”
시민단체 “한국에 와서 사죄를 한다니… 미국에서도 할 수 있지 않나”
병역기피설로 군의 사기 저하, 처벌해야
입국을 허가해야 하는가? 아니면 명백한 인권침해인가? 최근 유승준 입국과 관련해 찬반여론이 거세다. 특히 지난 4월, 그가 법무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은 입국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난 8일 KBS-2TV ‘100인 토론’에서는 투표자 1백명 중 75% 이상이 입국 반대 의견이었다. 또한 참석자 중엔 병역기피 의혹이 의혹 이상인 만큼 유승준을 법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는 발언도 있었다.
현재 병역기피 의혹을 받고 있는 유승준에게 적용된 법은 출입국관리법 제11조. “사회 질서를 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는 자는 입국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게 그 내용이다. 법무부가 신성한 병역의무에 대한 젊은이들의 가치관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입국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한국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인의 입국 금지는 정당하며 합법적인 조치라고 주장한다. 특히 입국을 반대하는 이들이 반박하고 있는 부분은 유승준의 국내에서의 사죄 부분. 사죄할 마음이 있다면 미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에 와서 사죄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병역기피 의혹 제기도 만만찮다.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입국 금지 최종 결정은 법무부 관할이지만 지난 5년간 유승준의 병역의무와 관련된 행태를 볼 때 병역기피 의혹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유승준은 97년 ‘모국어수학제도’대상자가 되어 K대학과 H대학에서 모국어 공부를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공부보다는 가수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입국을 반대하는 네티즌과 시민단체들은 이밖에도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가 지난 2001년 8월 받았던 허리 디스크 수술이 그것이다. 디스크 수술이란 가벼운 수술이 아닌데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되어 무대에서 격렬한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모습에 아연실색한 것. 또한 4급 보충역을 받았을 때 연기 사유가 ‘가사 이유’인데 유승준이 그 정도로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았겠냐는 것. 특히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그의 거짓말이다. 그는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군대에 가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팬과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한편 유승준 측과 팬클럽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먼저 유승준 본인과 유승준 측은 그가 대중과 팬들을 상대로 거짓말한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한 개인의 인권을 적법한 법적용 없이 ‘입국 금지’라는 강력한 제재를 가한 것은 인권유린의 소지가 다분히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개인인권을 침해하는 것은 어불성설!
유승준 입국 금지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지난 8일 KBS-2TV ‘100인 토론’에 나와 정부가 법적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을 상대로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가 거론하고 있는 것은 형평성의 문제. 재계 및 정치인 자녀들, 스포츠 선수들에게만 병역면제를 해줄 것이 아니라 제도를 적법하게 만들어 치우침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승준의 법적대리인 한상호 변호사는 유승준에게 사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그의 입국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피력했다. 또한 유승준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싶지만 입국 자체가 불허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과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면서 유승준 본인은 그런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9일 본지가 유승준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유승준과의 이메일 인터뷰
지난해 2월 인천공항에서 입국이 거절된 뒤 미국에서 어떻게 지냈습니까?
처음에는 충격이 컸습니다. 방황도 많이 했었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제가 팬이나 국민 여러분께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회를 열심히 나가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차츰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고, 시간이 없어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음악공부와 연기공부,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작년에는 소속사의 요청으로 중국 공연을 했습니다.
현재 본인의 심정을 말씀해주세요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제 자신의 결정에 대해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사회적 파장이 클지는 솔직히 몰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이번 일로 저는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가 공인으로서 책임지지 못할 말과 행동을 했다는 것,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허탈하게 만들었고 지금의 이런 상황까지 만들었습니다. 저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정말 죄송합니다.
일부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는 유승준씨의 입국을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다고 생각합니까?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제가 네티즌의 입장에서 유승준을 바라본다면 어떠했을까? 연예인으로서 국민은 물론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이유 불문하고 공인으로서 국가에 신성한 의무를 행하지 않은 것, 그동안 저의 좋은 모습들만 보시다가 저의 좋지 않은 모습에 대한 실망감 등 여러 문제들이 있을 겁니다. 사회적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겠지요. 그리고 다시는 저와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마음들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병역기피설에 대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
먼저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과정을 한정된 지면을 통해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팬들이나 국민들께서 솔직히 아직 모르고 계신 부분들이 많기에, 제가 말을 함으로써 오해와 분란만 더 불러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한국에 가서 직접 국민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쨌든 군에 가겠다고 말을 하고, 지키지 못한 것은 무조건 저의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법무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할머님 산소에 찾아가 불효에 대해 사죄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저의 행동으로 인한 사회적인 파장에 대하여 팬과 국민들에게 사죄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하여 지금이라도 겸허히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여자친구와 약혼식만 했는데 결혼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아직까지 결혼할 시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결혼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약혼자에게도 부담을 안겨주기도 싫습니다. 약혼자가 저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위로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저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제가 똑바로 설 수 있을 때 결혼할 계획입니다.
예비 신부에겐 어떤 선물을 했습니까?
애리조나에 집회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 목사님께서 마지막날 선물로 약혼식을 하는 인형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을 집에 와서 풀어 보고는 순간 약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선이에게 그 인형을 주면서 약혼하자고 했습니다. 약혼식 당일에는 반지를 서로 교환했습니다.

약혼식은 언제 어디서 했고, 약혼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습니까?
지난해 11월 30일, LA 근교의 파사데나(Pasadena)에 있는 ‘IL FORNAIO’라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약혼식을 했습니다. 그날 저의 부모님과 유선이 부모님, 가족들, 목사님과 친한 친구들 등 70명 정도가 왔습니다. 유선이를 처음 만난 것은 1991년 학교에서였습니다. 처음에는 선후배 사이로 만나다가 이후 제가 따라다녔습니다.
부모님들은 병역파동과 입국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부모님들께서도 가슴 아파하고 계십니다. 특히, 아버님께서 당신의 잘못으로 제가 힘든 일을 겪게 된 것 같다고,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도 있으십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시민권 취득으로 인해 발생된 모든 문제는 저의 선택으로 발생한 일이기에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몸은 건강합니다. 예전보다 불필요한 지방도 많이 뺐고, 남들이 말하기를 몸이 예뻐졌다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고, 가끔 허리가 아프기는 합니다. 디스크 수액이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그때 급하게 허리 수술을 했고, 잡혀 있는 스케줄 때문에 지속적인 물리치료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뻐근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외에는 건강합니다.
제일 괴로웠을 때가 언제입니까?
먼저, 할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때입니다. 일부에서는 한국으로 갈 수 있는데 본인이 안 간 것이 아니냐 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비자와 관계없이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입국금지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어 한국의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 할머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습니다. 미국에 있으면 답답하지 않은지요?
저보다 더 인기있는 가수들이 들으면 섭섭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기는 했지만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는 않았겠죠? 솔직히 한국에서는 인기에 대한 부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행동의 제약도 많았었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매우 자유롭습니다. 제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나 지인들은 저를 가수 유승준이 아닌 오랜 친구 유승준으로 대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하기는 합니다. 한편으로는 집앞에서 저를 기다려주는 팬들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무대에 다시 올라가 정말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욕심이겠지요.
입국 시도와 관련해서 국내 뉴스는 접하고 있습니까?
인터넷을 통해 국내 여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오는 모든 비난은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이니까요.
국내 분위기가 우호적이진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기 때문에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법무부와 병무청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국민들에게 먼저 사죄해야 순서가 아니냐는 여론이 있는데요?
국민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입국을 할 수 없어 정부의 허가를 먼저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입국 허가요청을 정부에 드린 것입니다. 입국 허가가 되지 않는 이상 국민들 앞에서 저의 모든 것에 대해 사죄할 방법이 없습니다.
고의적 병역기피라는 병무청의 판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부의 판단에 대해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그리고 이유가 어찌됐든 제가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한 것은 저의 큰 잘못입니다
시민권을 포기하고 병역의무를 이행할 생각은 없습니까?
정말 저에겐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신체검사를 받아 4급 판정이 나와 한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할 경우 저의 미국영주권은 자동 박탈됩니다. 저의 가족은 제가 열세 살에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영주권을 포기할 경우 영주권 포기자는 미국비자 발급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제 부모님들이 시민권 취득을 종용했던 것입니다
병역대체로 여겨질 만한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된다면 할 수 있습니까?
입국과 관련해 사죄와 의무를 해야 한다면 현재 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소속사와 상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해외활동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쪽에서는 가수로 활동할 예정이고, 미국에서는 영화배우로 활동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소속사에서 자세한 활동에 대해서 아직 밝히지 않았으면 하는 입장이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못 드리는 것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죄인인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고국에 있는 팬들과 국민 여러분께 무릎꿇고, 용서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는 것이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유승준이 법무부장관에게 보낸 편지 전문
존경하는 법무부장관 귀하
안녕하세요, 법무부장관님.
저는 가수 유승준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저의 조국에 대해 전 죄인이기에 먼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분께 편지를 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꼭 드릴 말씀이 있기에 이렇게 누를 무릅쓰고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올립니다. 제가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조금은 힘들고 외로웠지만 저에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저에겐 어머니입니다. 아니 미국에 살고 있는 모든 이민자들의 고향입니다. 처음 13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 생활을 할 때부터 문화적 차이와 언어의 갈등으로 방황할 때마다 조국을 항상 그리워했고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곤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소원인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6년에 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은 저에게 큰 희망과 용기, 그리고 저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수많은 팬들과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저의 절실한 소원인 가수가 되게 해준 것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법무부장관님! 저를 비롯한 이곳에 많은 이민자들은 그 누구보다 조국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목이 터져라 눈물을 흘리며 한국을 힘차게 응원하던 이곳 이민자들의 열띤 성원을 기억합니다. 너무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모두다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저의 잘못으로 그런 조국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제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법무부장관님! 얼마 전 저를 유난히 귀여워해 주시던 할머님께서 매우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대한민국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님께서 4월 11일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저를 보고싶어하셨는데 그 소식을 듣고도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저의 입장이 너무 한스러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조용히 하나님께 할머님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또 저로 인해 힘들어 하고 있는 많은 웨스트사이드 팬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부족한 저에게 가수로서의 정상의 위치에까지 서게 해준 팬들과 국민들에게 너무 죄송합니다. 정말 그 사랑에 보답할 길은 없는 걸까요? 이젠 가수로서의 정상보다는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욕심이겠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말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셨던 수많은 분들에게 제가 받았던 사랑 그 이상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용서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님의 묘소, 늦게라도 꼭 찾아뵙고 싶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청년의 마음을 부디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저의 두서없는 글을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3년 4월 1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유승준 올림
콘서트 현장, 즉석 인터뷰
“데뷔 때의 유승준의 열정을 보았다!”
이선양(22, 유학생)
“서울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오빠는 만들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아요. 노 메이크업에 1년 만의 공연 때문에 땀을 비오듯 흘리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마치 막 데뷔했을 때의 승준 오빠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좋았어요. 공연을 보면서 “‘얼마나 노래가 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새처럼 훨훨 나는 오빠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병역법 위반에 대해 “물론 오빠가 잘못한 일이지만 이젠 용서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유승준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했다.
“콘서트 오길 잘했다. 그의 입국은 시기상조다!”
한선희(26, 유학생)
밴쿠버에 온지 9개월이 조금 넘은 ESL학생. 그녀는 오늘의 공연에 대해 “생각보다 재밌었고 오랜 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유승준의 팬이었다는 그녀는 유승준의 병역법 위반에 대해 “너무 실망스런 일이다. 그래서 가수 유승준에 대해 좋았던 기억이 한순간에 지워져버렸다. 오늘 공연도 올까 말까 망설였는데 와서보니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유승준의 한국 입국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닌 듯하다. 그를 믿었던 것만큼 실망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글 / 연주흠 기자, 정수진(밴쿠버 유학생)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