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찬미’ 부를 때는 죽고 싶은 충동까지 느껴
한영애의 노래에는 특별함이 있다. 한영애의 몸과 목을 통해서 나오는 노래는 애절함으로 변하기도 하고, 세상의 온 기쁨을 품은 듯 행복의 절정이기도 하다. 마치 음악을 듣는 우리들의 마음이 어떤가를 아는 것마냥.
가수 한영애는 우리들의 마음과 정서를 마구 헤집어놓는다. 슬픔과 기쁨을 맘대로 요리하는 듯한 그녀의 노래는 그래서 좋지만, 그래서 부담되기도 한다. 가수 한영애를 좋아하는 이들과 싫어하는 이들이 극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로 도시가 회색으로 뒤덮인 날, 가수 한영애를 만났다. 한영애는 앨범 출시와 계속된 공연 탓에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근육통 때문에 고개도 쉽게 돌리지 못하고, 다친 손목 때문에 악수도 제대로 못했다. 화려한 집시풍의 의상과 소품들을 상상했지만, 그녀는 파란색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수수하다 싶을 정도의 평범한 의상을 입었지만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기운’ 때문이었다.
그녀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느꼈다. 웃을 때는 옆집에 사는 친한 누나 같은 포근함, 또 다른 한편에서는 흔히 봐왔던 가수 한영애가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소리의 마녀’만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는 우리가 잘 모르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숨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녀에게는 항상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들의 기대, 그녀의 숙명이 아닐까.
3~4년마다 한 장씩 앨범을 내는 그녀가 이번에는 좀 특별한 음반 ‘BEHIND TIME’을 가지고 나타났다. 흔히 ‘뽕짝’이라 불렸던 우리나라 ‘초창기 옛가요’ 13곡을 한영애식으로 리메이크한 앨범이다. 1925년부터 1953년 사이에 나왔던 수백여 곡의 노래들 중 현대인의 정서와 어울릴 수 있는 노래 13곡이 앨범에 실려 있다. ‘목포의 눈물’ ‘애수의 소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타향살이’ ‘사의찬미’ 등 우리의 귀에 친숙한 노래와 ‘선창’ ‘외로운 가로등’ ‘부용산’ ‘꽃을 잡고’ 등 쉽게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들어 있다.
“3백여 곡 중에서 먼저 30곡을 추렸어요. 지금 들어도 공감할 수 있는 노래들을 골랐죠. 이데올로기적인 노래나, 지금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은 뺐어요. ‘만일 나에게 1백만원이 있다면’ 같은 가사는 지금과는 잘 맞지 않거든요. 그중에서 앨범 컨셉트에 맞게 편곡이 가능한 13곡을 리메이크 했어요.”
한영애는 ‘사의 찬미’를 부를 때는 죽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그때의 노래는 녹음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에 빠져 있기보다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수의 소야곡’은 부를 때마다 새롭고 좋았던 노래라고 기억한다.
이 앨범의 마지막 곡은 ‘타향살이’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일영 집 근처 논바닥에서 녹음을 한 탓에, 악기 대신 개구리 소리가 노래의 반주였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구슬피 들린다. 고향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알고 있는 듯, ‘애수의 소야곡’에서는 진하게 묻어나는 그녀의 페이소스도 맛볼 수 있다. 이번 앨범을 들으면 그녀에게 ‘소리의 마녀’ ‘블루스의 여왕’ ‘신성과 인성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노래하는 샤먼’이라는 상찬을 줄 수 밖에 없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애끓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절정에서 내려올 때 함께 한숨을 내쉬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1시간 30여분간 ‘곡’만 하다 내려왔던 연극 ‘초혼’
앨범 출시 얼마 후 그녀는 ‘가무악’ 공연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10여년 만에 연극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그녀는 한국적인 뮤지컬 복원 작업의 일환으로 서울예술단에서 무대에 올리고 있는 가무악 공연인 ‘청산별곡’(8월 28일 ~ 31일)에 참여한다. 사슴 광대역할로 전체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역할을 맡았다.
한영애는 노래와 연기를 모두 선보일 예정이다. 작곡가 원일은 극의 흐름과 한영애의 특성에 맞는 곡을 준비했다. 청산별곡에서 사용되는 노래는 모두 한영애가 라이브로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곧 공연연습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음반 출시 홍보와 공연 때문에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거든요.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은 항상 있지만, 음악하나만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웃음)”
그녀의 연기 경력은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한다. 1978년부터 7~8년간 연극 무대에서 주연을 맡았던 연극배우였다. 1970년대 초 이정선이 리더로 있던 통기타 그룹 ‘해바라기’에서 1집과 2집을 낸 후 한영애는 연극무대에서 인정받는 연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영애가 노래나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가 노래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난 것은 재수할 시절. 친구의 선배가 운영하던 신촌의 한 카페에서 친구들과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상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애가 있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그것을 이정선씨가 들었고, 그의 권유로 해바라기에 합류하게 됐다. 그리고 해바라기에서 1집과 2집을 낸 후에 첫 솔로 앨범을 낸 것이다.
“해바라기 2집을 낸 후에 저는 록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해바라기는 통기타 그룹이기 때문에 불가능했죠. 그 때 저에게 세미뮤지컬 작품 섭외가 들어왔어요. 록을 부를 수 있다고 해서 연극무대로 간 거죠. 이때부터 무섭게 연극에 빠져 들었어요.”
처음엔 무대 경험도 없고, 대사처리 조차 어설펐던 한영애는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새벽 6~7시에 전단지를 뿌리고,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거리에 나가 포스터를 붙이고, 오후 다섯시면 연습을 시작하는 생활을 수년 동안 했다. 그녀는 박정자, 윤여정 등을 선배로 모시고 ‘자유극장’이라는 극단에서 활동했다. ‘초혼’ ‘무엇이 될꼬하니’ 등의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아서 무대에 올랐다. 특히 ‘초혼’은 한영애가 연기에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다.
“무대에 올라가서 ‘아이고 아이고’라는 곡만 1시간 반 동안 하다가 내려왔어요. 주술적인 내용의 연극이었는데, 이 경험 때문에 연기에눈을 뜬 거죠”
하지만, 그녀를 연극무대에서 끌어내린 것은 노래였다. 열정만으로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없었다. 극단 내부적인 문제가 생기면서 ‘연기가 아니면 나에게 맞는 것이 뭘까’를 생각하다 찾은 것이 노래였다. 노래가 됐건 연기가 됐건 그녀는 무대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준다.
“내 안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를 좋아해요. 무대가 가장 편하고. 무대 위에서 저만의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생명력을 발산할 수 있어요. 무대 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거든요.”
한영애는 무대 위에서 그녀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무대 위의 한영애를 본 사람은 반할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열렸던 ‘풀문(Full Moon)’ 콘서트를 다녀왔던 팬들은 환상적인 공연 내용을 팬클럽 ‘코뿔소’ 게시판에 올려놓았다.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환상적인 무대매너에 대한 감동을 적어놓고 있다.
그녀에게 궁금한 몇 가지…결혼, 사랑 그리고 일상
한영애는 인터뷰를 잘 안하는 가수 중의 하나다. 그럴수록 매체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 하길 끄집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한영애는 사적인 이야기를 꺼려한다. 앨범이나 음악 이야기가 나올 무렵 달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그녀와 선문답(?)을 주고 받아야 했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궁금해하죠. 저는 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요. 살아온 인생에 그리 특별한 것이 없거든요.”
그녀에게 나이를 물으니 ‘28살 딸기띠’라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거부, 아니 나이에 무신경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한 사람의 나이에 따라 금기나 한계를 만들어놓는다. 40대에는 이렇게 해야하고, 50대는 이런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인 기존 관념의 틀이 있는데, 한영애는 그게 못마땅하다.
그녀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공연히 나이만 보고 ‘이미 한물 갔다’고들 하는 것이 싫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몇이든, 그녀는 지금 ‘28살 딸기’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20대 청춘이 보여주는 열정을 몸 안에 가지고 있으니까. 가수 한영애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는 바로 짧은 머리다. 학창시절 이후 자르지 않았던 긴머리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해 11월 머리를 짧게 했다.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
“머리를 짧게 자르면 노래를 못하는 줄 알았는데, 잘라보니까 굉장히 자유롭고 편해요. 노래도 더 잘되는 것 같고.(웃음) 머리를 짧게 자른 것은 잘한 것 같아요. 물론, 아깝지 않았죠.(웃음)”
그녀의 취미는 걷기, 앉아있기, 설거지하기, 요리하기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은 된장찌개, 흰색, 푸른색, 풍선, 나무다. 자주 가는 곳은 공원과 산이다. 가수 한영애의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프로필이다. 그녀는 이런 일상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일상에서 노래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일상을 잘 다스려야 좋은 노래가 나온다고 믿고 있다.
“한가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혼자 있는 시간에는 할 것도 많고 봐야할 것도 많아요. 연극이나 무용도 봐야하고, 갤러리에도 가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고. 또 노래 연습도 해야되고. 저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요. 이런 일들이 모두 음악의 원천이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 없죠.(웃음)”
그녀의 이런 평범한 생활 태도에 많은 사람들은 허탈해한다. 그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어보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내용들 뿐이다. 특히 그녀에게 가장 궁금해하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답변은 좋은 예다. 결혼하지 않는 것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사람들은 허전할 것이다.
“결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을 하게 되면 하는 것이고, 못하게 되면 평생 혼자 살면 되는 것이고. 사랑과 결혼 모두 잘하면 좋겠지만, 목숨 걸어가면서까지 매달려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그녀의 행복은 타인과 사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편안한 일’에서 그녀는 행복을 찾는다.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그녀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부모님 역시 그녀에게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끔 배려를 해줬다. 그녀의 천성에는 이런 자유의지가 숨어 있었다.
앨범과 노래를 평하는 수많은 평론가들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상찬 뒤에는 비난 역시 존재한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지만, 비난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동요하지는 않는다. 많은 평자들이 그녀의 3집 ‘한영애’(1992)과 라이브앨범
‘아.우.성’(1993)을 기점으로 음악 세계가 변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가는데 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저는 당연히 변하기를 원해요. 하지만 음악이 달라진다는 것은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판을 낼 때마다 어떤 창법을 쓸 것인지, 악기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하거든요. 남들이 제가 변했다거나 변하지 않았다는 말에는 관심은 있지만, 염두에 두지는 않아요.”
한영애에게 일상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은 어쩌면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에게 일상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일 뿐이고,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다 보니 만난 사람들이라는 투다. 인연 역시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도 않는다. 결혼 역시 할 수도 있지만, 안할 수도 있는 일상의 한 모습으로 그녀는 받아들인다. 우리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그녀에게서 무장해제되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 산사음악회에 초청되었을 때, 자가용을 놔두고 버스를 타고 갔다는 일화는 그녀의 일상을 이야기해준다. 그녀를 만난 것은 특별한 체험이다. 아니 그녀의 일상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의미있다. 그다지 특별한 내용이나 이야기거리도 없어 보이는 일상 때문에, 카리스마 넘치는 가수 한영애에 대한 친숙함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영애씨! 사진 촬영 힘드셨죠?
한영애라는 인물을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것이냐가 큰 고민거리였다. 스튜디오나 카페같은 일반적인 장소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사진기자와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마음 속으로 찜(?) 해놓은 곳으로 미리 헌팅을 갔다. 그 곳은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외국인이 주로 사는 2층 짜리 건물이었다. 그 건물의 옥상은 마치 영화 ‘중경삼림’에서 보는 허름한 홍콩의 건물에 둘러쌓인 곳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장소는 정했지만 옥상까지 직각으로 설치되어 있는 3~4m 짜리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과연 한영애씨가 그 곳에 올라가려고 할까? 치마를 입고 오면 어떻게 하나?는 잡다한 걱정이 들었다.
궁하면 통하는 법. 좋은 사진을 위해 조금 불편한 장소를 선택했다는 양해를 구하고 촬영장소로 갔지만, 뒤늦게 한영애씨가 손목을 다쳤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손은 거의 사용하지 못해서 사다리에 걸친채 위태위태 올라가는 한영애씨를 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었다. 비가 온 후라 옥상은 물이 여기저기 고여있었고, 옷을 갈아입을 곳도 마땅치 않은 최악의 촬영 조건이었다. 하지만 큰 불만 없이 1시간 내내 그녀 특유의 카리스마를 인터뷰 스케줄을 잡고나서 보여줬다. 신발도 벗어가면서,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고개를 젖혀가면서…. 한영애씨!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더욱 좋은 장소로 헌팅해 놓겠습니다.
글 / 최영진(객원기자) 사진/ 김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