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만남이다. 벌써 네 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이제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섯 번째 음반을 준비중인 가수 제이. 한 살 때 이민 갔던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7년째. 한 달 전 일산의 새 아파트로 이사하고 2004년의 힘찬 포부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제이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뿐인 오빠가 일요일 오후 뭉쳤다. 행복한 사람들의 작은 사랑 이야기.

“전 오래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지금 앉아 있는 테이블의 커버는 1940년대 거예요. 제가 미국에서 샀지요. 난 뭐든지 쓰던 것, 오래된 것이 좋아요. 새 신발을 사면 왠지 불안해서 일부러 신발에 흙을 묻히곤 해요. 근데 딱 한 가지, 집은 새 집이 좋아요. 지금 이 집은 이사 온 지 한 달 됐어요. 새로 지은 아파트라서 보안시설이 잘 된 편이에요. 엄마랑 저랑 둘이 사니까 늘 보안 문제 때문에 두려웠거든요. 바깥 풍경도 좋고 차도 막히지 않고 공기도 맑고… 올해는 출발이 좋아요.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아요.”
제이(26)는 한 살 때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곳에서 20년이 넘게 살았다. 그리고 버지니아 주에 위치한 노바 대학에서 재즈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 대학 1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미스코리아 워싱턴대회’에 참가해 ‘선’에 당선됐다. 그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인연이 돼 한국에서 음반 발매 제의를 받았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제이의 꿈은 ‘해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장래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럴 바엔 네가 좋아하는 노래나 실컷 하는 가수가 돼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음반을 내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것도 한국에서. 좋은 기회였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까지 제이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하나뿐인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떠났다. 애리조나 주립대학에 입학하는 바람에 객지 생활을 하게 된 것. 그러나 제이는 달랐다.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었기에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험하디 험한 연예계에 금지옥엽 외동딸을 혼자 보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왔다.
“워싱턴에서 하던 사업이랑 집이랑 거의 한 달 만에 다 정리하고 돌아왔어요. 주변에서는 다 큰 딸이니까 혼자 보내도 된다고, 하던 사업 그냥 하라고 했는데 우린 그럴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재영(제이의 본명)이는 다른 아이들이랑 달랐어요. 또래 아이들이 남자친구 만들고, 파티하고, 화장하고 놀러 다닐 때 재영이는 집에서 엄마, 아빠랑 지냈거든요. 재영이가 고등학교 땐데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파티가 있으니까 놀러 가자’고 하더라구요. 나는 내심 ‘그래 가서 좀 놀다 와라. 집에만 있지 말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재영이가 하는 말이 ‘우리 부모님은 너무 엄해서 그런데 가면 안 된다’고 하더니 전화를 끊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집이 좋대요. 놀러 나가봐야 재미도 없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춤 추고 그런다고 싫다더라구요.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는데 재영이랑 얘 오빠는 너무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 일과 인간적인 면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니 이보다 좋은 게 또 있겠어요.”
오는 3월이면 또다시 헤어져야하는 오빠
워싱턴에서 혼자 지내는 아빠는 골프광

제이의 오빠는 현재 국내에 있다. 그러나 오는 3월이면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한국 이름 정재걸, 그러나 안셀모라는 세례명을 본명처럼 사용한다. 애리조나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인 GE(General Electric) 인터내셔널 한국 지점에서 근무중이다. 재걸씨의 업무는 엔지니어 컨설팅으로, 엔지니어들을 매니지먼트하고 있다. 사실 재걸씨의 한국행은 경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연봉도 많이 깎였다. 그런데도 재걸씨는 한국행을 자원했다. 이유는 여동생,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지내고 싶어서다.
“한국에는 1년 6개월 전에 왔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줄곧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늘 가족이 그리웠죠. 엄마랑 재영이랑 한국에 있으니까 함께 지내고 싶어서 왔어요. 근데 제가 입국한 후 연기와 노래 공부를 하기 위해 재영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거예요. 그래서 우린 또다시 헤어져 지냈죠. 처음 입국해서는 어머니와 재영이가 살고 있는 일산에서 함께 살았어요. 그런데 출퇴근이 너무 힘들더라구요. 회사가 청담동이라 하루 중 꼬박 4시간을 출퇴근하는 데 투자했죠. 나중에는 출퇴근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회사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내고 있어요. 한 달에 한두 번은 어머니와 재영이 보러 오곤 했는데 오는 3월이면 또다시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섭섭해요.”
재걸씨는 다섯 살 때 이민 간 것에 비하면 우리말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는 미국에 살며 할머니와 대화를 많이 해서 것이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한국어 수업을 들었던 것. 덕분에 그의 한국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을 만큼 완벽한다. 그러나 그도 영어가 편한 모양. 인터뷰 중간에 제이와 대화를 나눌 때는 영락없이 영어로 말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제이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했다. 7년 전 한국으로 역이민 올 때는 온 가족이 함께였다. 그러나 현재 그는 워싱턴에 머물고 있다. 또다시 이산가족이 된 탓에 제이의 어머니는 한국과 워싱턴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한다. 제이의 아버지는 워싱턴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해 서울에 자주 오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재영이 아빠는 지금 골프에 푹 빠져서 외로운 줄도 모르고 지내요. 골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국에서는 골프 치는 게 힘들지만 미국에서는 편하게 골프 칠 수 있으니까 더 좋대요. 비즈니스가 있으니까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골프 치고 그러죠. 설날 즈음에 재영이랑 다녀올 예정이에요. 이제 새 음반 나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니까 그전에 다녀오고 싶어요.”
제이는 지금 5집 음반을 준비중이다. 인터뷰 첫머리에서 밝혔듯이 제이는 옛것을 좋아한다. 그건 인연을 소중히 한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할 듯. 제이의 다섯 번째 음반 제작자는 그녀가 한국에 처음 와서 노래를 할 때 매니저다. 한국말도 서툴고 연예계 생초보인 그녀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인연이 지금 다시 빛을 발했다. 이미 네 장의 음반을 냈고 음악적으로도 인정받는 제이라면 다섯 번째 음반을 준비하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제작자와 손을 잡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제이가 예전의 매니저와 손을 잡은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조차도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깊은 뜻이 있다.
“내 딸이지만 참 이뻐요. 마음씨가 얼마나 고운지… 지난 음반을 마지막으로 예전 기획사와 계약이 끝났어요. 많은 곳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가 있었죠. 그중에는 조건이 좋은 곳이 많았어요. 근데 굳이 신생 회사의 제작 경험이 전혀없는 제작자와 손을 잡은 이유는 전적으로 재영이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딸 말이 ‘엄마, 이젠 내가 좀 자신이 있으니까, 잘 될 것 같으니까 옛날 매니저 오빠랑 같이 일하자. 내가 못 할 거 같고 자신없으면 오빠랑 같이 일하면 안 되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을 만큼 컸으니까 내가 오빠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오빠가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잖아. 처음에 우리 보디랭귀지 하면서 진짜 고생 많이 했으니까 이제 다시 한번 뭉치면 잘 될 거 같아’라는 거예요.”

어머니 역시 그를 신뢰했기에 제이는 데뷔 때 매니저와 함께 5집 음반을 준비중이다. 오는 2월경이면 제이의 새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듯하다.
데뷔 때 매니저가 새 음반 제작자
일은 백점, 연애는 낙제. 오누이의 공통점
제이와 어머니는 모녀라기보다 큰언니와 막내 동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스럼없는 사이. 제이는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고 오면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는다. 제이의 이상형은 이소룡처럼 터프하고 남자다운 스타일. “아무리 내 딸이지만 어쩜 저렇게 남자 인물을 안 볼까 싶을 만큼 아닌(?) 남자를 멋있다고 할 때도 있어요. 순진한 건지….” 잘생긴 남자보다 야무지고 단단해 보이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제이는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딸을 위하는 엄마의 마음’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가만 보니까 친구들하고 약속을 하더라구. 그날 재영이가 다른 가수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했어요. 그래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가겠다고 하더라구요. 벌써 몇 해 동안 우리 둘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니까 재영이가 안쓰러웠어요. 내심 ‘이번에는 꼭 친구들하고 지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먼저 거짓말을 했지. ‘엄마는 크리스마스 날 친구들이랑 약속 있으니까 우리 따로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 연락해서 같이 들어가자’ 이렇게 말했어요. 근데 약속 시간이 되니까 재영이가 내 팔짱을 딱 끼고는 ‘나 엄마 따라가면 안 돼’이러는 거예요. 나는 약속도 없는데… 그래서 어째, 거짓말은 다 들통나고. 우리 둘이서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보냈죠. 재영이는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해서 큰일이에요. 그건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아들 이렇게 잘생겼는데 아직 여자친구가 없어요.”

재걸씨는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별로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제이가 “노~. 오빠는 이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센스 있고 능력 있는 여자 좋아해요”라고 한다. 덕분에 두 사람은 한동안 재걸씨의 이상형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물론 영어로. 결국 재걸씨가 “예쁘고 똑똑한 여자 싫어하는 남자가 어딨어”라며 동생의 의견을 일부 인정한다.
“둘 다 B형이에요.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를 잘 챙겨요. 미국에서 살 때도 주변 사람들이 ‘재영이네는 어쩜 그렇게 얘들을 잘 키웠어요’그랬어요. 근데 내가 키운 게 아니라 지들이 잘 커줬어요. 난 그게 제일 고마워요. 딸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하고, 아들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인정받으니까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딨어요. 다만 한 가지 둘 다 연애는 낙제야. 어쩜 좋아~.”
글쎄… 이런 걸 행복한 비명이라고 하던가?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상,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헤어지고 등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만난 제이네 가족은 단란한 모습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옛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서로 떨어져 살아도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 제이 어머니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며 “우리 가족사진 잘 찍어주세요. 책 나오면 미국에 있는 재영이 아빠랑 고모한테 보내려구요”라며 벌써부터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가족을 챙겼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지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