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살, 결혼 7년 차, 임신 8개월째. 만삭의 몸으로 연극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뭐라 할까? 그러나 난 약속을 지켰다. 3년 전, “아기를 가지면 연극 무대에 오르겠다”고 무심코 내뱉은 말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남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출연한 연극이 끝나고 나면, 우리 공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그때쯤이면 사랑하는 남편과도 한 지붕 아래서 살 수 있겠지….
뱃속의 아기는 공주님, 우린 건강한 모습으로 4월에 만날거예요!

임신 8개월째인데 체중이 12kg이나 늘었어요. 제가 올해 서른여섯 살이거든요. 노령 초산이라서 걱정인데 병원에서는 “아주 좋습니다. 산모랑 아기 모두 건강해요”라며 늘 안심시키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을 구부리기 힘들 만큼 몸이 부어요. 혹시 임신중독증인가 싶어서 오늘 아침에 병원엘 갔는데 별 이상 없대요. 의사 선생님께 “저 자연분만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럼, 할 수 있지. 왜요? 못 할 거 같아요? 걱정 마세요”라며 씩씩한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출산 예정일은 4월 10일이에요. 얼마 전 병원에서 뱃속의 아기가 공주님이라는 걸 알려줬어요. “초음파 검사를 할 때 다리와 다리 사이를 잘 보면 딸인지 아들인지 알 수 있다”는 선배들의 얘기를 듣고는 유심히 봤죠. 그리고는 “어, 선생님 제 아기가 딸인가 봐요”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그냥 웃으시더라구요. 그래서 딸인 걸 알았죠. 우리 딸이 저랑 띠동갑이에요. 저도 원숭이 띠거든요.
우리 딸이 참 착해요. 제 뱃속에 있으면서 지금까지 헛구역질 한 번 안 하게 했어요. 어른들 말씀에 ‘여자는 아기 가졌을 때 유세를 떨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기는 저를 닮아서 유난 떠는 거 싫어하나 봐요. 먹고 싶은 음식도 별로 없더라구요. 아, 지난 여름에 복숭아를 많이 먹었어요. 요즘도 과일이랑 야채는 일부러라도 많이 먹어요. 근데 아기 낳을 때가 가까워서는 단백질 섭취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해서 이제는 고기를 먹으려고 해요. 원래 걱정을 안 하는 편인데 노산에 초산이다 보니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까 자꾸 걱정돼요. 매일 요가도 다니고 집에서는 분만에 좋다는 체조를 해요. 그래도 걱정이 되네요.
결혼 첫날부터 ‘여보’라 부르는 남편은 제 보물 1호예요!
결혼 한 지 올해로 7년째예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아무 생각 안 하고 있다가 ‘어머, 결혼한 지 벌써 이렇게 됐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속상해요.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우리 신랑이랑 함께 살 날이 조금씩 줄어드는 거잖아요. 이제 막 결혼한 거였으면 좋겠어요. 우린 죽을 때까지 같이 있을 거예요. 그럼 앞으로 몇십 년은 같이 살 수 있는데도 시간이 지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남들은 우리 부부를 두고 유별나다고 해요. 둘이 같이 있을 때보면 한시도 안 떨어지거든요. 팔짱 딱 끼고 그것도 모자라서 서로 보듬어 안고 난리도 아니에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이젠 익숙해졌어요. 남들은 ‘닭살’이라고 하기도 하죠. 그럼 어때요. 우리만 좋으면 되죠.
지금 남편은 미국에 있어요. 선댄스 영화제에 참석하러 갔거든요. 크리스마스 지나고 바로 갔으니까 한 열흘 됐어요. 전화요? 매일하죠. 잠들기 전에 전화하는 게 생활이에요. 우리 남편은 엄청 자상해요. 전화뿐 아니라 편지도 자주 써주고 떨어져 있을 때는 틈틈이 메일도 보내요. 편지나 메일은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 아가한테도 보내요. ‘사랑하는 우리 공주님, 아빠예요. 건강한 모습으로 어서 만나고 싶어요’라며 편지도 너무나 감동적으로 써요. 오늘 아침에도 남편이 쓴 메일을 보고 나왔어요. 저요? 저는 그렇게는 못 해요. 전화는 자주 하는데 편지는 잘 못 쓰겠더라구. 메일 답장도 제대로 못 해요. 그래도 우리 신랑은 불평 한 번 안 해요.
너무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우린 결혼한 그날부터 ‘여보’ ‘당신’이라고 불렀어요. 신혼여행 갔는데 남편이 먼저 ‘여보’라고 부르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당신’이라고 불렀죠. 우리 신랑은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반말을 한 적이 없어요. 중학생한테도 존댓말을 하는 사람이거든요. 결혼하고 2년 동안 미국에서 함께 지낸 후에는 줄곧 떨어져 있었는데 전화 통화를 하든, 편지를 쓰든, 메일을 보내든 꼭 존댓말이에요. 그러니까 싸울 일이 없죠. 지금까지 싸움 비슷하게 언성을 높인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예요.
남편 보고 싶은 마음에 뉴욕까지 날아가 8시간 만에 돌아오기도 했죠!
우리 신랑이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한 지 8년 됐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신랑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우린 신혼 생활을 미국에서 보냈어요. 그후 난 한국에 있고 신랑은 미국에 있으니까 서로 애틋한 마음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더라구요. 이젠 헤어져 있는 게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우리 신랑은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알아주는 사람인데 나 때문에 다 팽개치고 한국에 들어오라고 못 하겠어요.
어제도 전화해서는 “여보, 나 다 때려치우고 지금 당신한테 갈까요? 너무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그래요. 지금 와요” 그러고 싶죠. 근데 그러지 못했어요. “당신 영화제에도 참석해야 하고 지금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 영화화하는 작업도 진행해야 되잖아요. 일 다 마무리하거든 와요” 했어요. 그러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우리 신랑과 참 오래 만났어요. 대학 때부터 절 따라다녔거든요. 그때는 그저 그렇게 지냈는데 나이 들어서 보니까 참 좋은 사람이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봐도 결혼을 참 잘 한 것 같아요. 미국에서 신혼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부모님하고 함께 살아요. 1년 전에 경기도 파주 심학산 근처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했어요. 서울에서 한 시간도 안 떨어진 거린데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아요. 지난 석 달 동안 그림 같은 집에서 신랑이랑 같이 지냈어요.
그이랑 한국에서 석 달을 함께 지낸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에요. 남편이 미국에 있을 때는 제가 왔다갔다했어요. 어떤 때는 2박 3일, 길면 4박 5일 정도. 한 번은 20시간 비행기 타고 두 시간 차를 타고 남편 집에 도착해서는 8시간 동안만 있다가 오기도 했어요. 밥해주고 청소하고 밀린 빨래 해주고… 만약 촬영이었다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엄두도 못 내는 스케줄이죠. 남편 만나러 가는 거니까 그렇게 다녀오면서도 힘든 줄 몰랐어요.
그런 남편이랑 석 달을 함께 살았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리는 지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미국으로 갔어요. 공항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길 내내 울었어요. 바이바이~하고 공항에서 나올 때부터 눈물이 나더니 그 다음부터는 환청이 들리더라구요. 차에 탈 때도 남편이 “여보” 그러는 거 같고… 어떤 때는 금방 방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서 한참 동안 방문만 쳐다본 적도 있어요. 밖에 있을 때는 덜한데 집에 있으면 정말 심각해요.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자기도 그런다면서 웃더라구요. 우리 부부는 그런 부분이 좀 유별나요. 서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거요.

저는 늘 남편 생각을 하는데 남편은 늘 제 생각을 한대요. 그러고 보면 우린 매일 서로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아요. 전 결혼 후 많은 게 변했어요. 특히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지요. 주변에서는 제가 엄마 아버지하고 함께 오래 살아서 복 받은 거라구 얘기해요. 요즘은 결혼 전에 부모와 떨어져 사는 신세대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거 반대예요. 부모와 함께 살면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잘 따져보세요. 어떤 게 현명한 건지. 암튼 우리 부모님도 저 사는 거 보면 너무 좋아하세요. “너만큼만 살면 세상에 자식 걱정할 부모가 어딨겠냐”고 그러세요. 그게 다 우리 신랑 덕분이에요. 만삭의 몸으로 연극 무대에 오른 것도 다 우리 신랑 때문이구요.
“아기 갖고 연극 무대 오르겠다”던 약속 지금 지키고 있어요!
3년 전인 거 같아요. 고두심 선생님께서 연극 무대에 올랐을 때 갔었어요. 그 때 고두심 선생님께서 “채환아, 너도 연극 해라. 예전에는 열심히 하더니 결혼한 다음에는 통 무대에 안 오른다” 하셨어요. 그때 그냥 “저는 아기 갖고 연극 무대에 오를거예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랬는데 지난 10월 경 이번 연극 ‘오르골’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당시에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들었는데 12월 초쯤에 대본을 받았지요. 그때는 모든 관심이 신랑에게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연극에 출연할 생각이 없었는데, 신랑이 대본을 보더니 “꽤 괜찮다”며 출연해보라는 거예요. 우리 부부는 서로의 일에 간섭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저는 대본을 다섯 페이지쯤 읽고 나니까 지루해서 출연할 생각이 없었는데, 남편이 괜찮다고 하니까 생각을 달리하게 되더라구요. 특히 평소라면 제 일에 상관할 사람이 아닌데 “다시 읽어보세요. 태교에도 좋을 거 같은데 출연해요”라며 몇 번을 재촉하는 거예요. 결국 “당신 생각에 이 연극이 그렇게 괜찮아요?”라고 재차 묻고는 대본을 다 읽어보지도 않고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그게 공연 17일 전이었어요. 막상 출연 약속을 하고 나서 대본을 보니까 제 분량이 너무 많은 거예요. ‘17일 동안 대사를 다 외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대사가 많았어요. 그거 다 외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남편이에요. 첫 공연하는 날은 커다란 꽃바구니와 편지를 선물했어요. 지금도 분장실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면 불현듯 남편이 분장실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요. 서울에 있는 동안 자기 일도 바쁠 텐데 거의 매일 공연장에 왔거든요.
남들은 살면 살수록 싸울 일이 생긴다는데, 우리 부부는 살면 살수록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져요. 아기가 태어나면 함께 살아야 할 텐데 남편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어디서 살지는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기를 가졌을 때 세계 각국에서 보내준 축하 메시지를 받았어요. 모두 남편의 친구들이 보내준 메일이었어요. 미국은 물론 이집트, 프랑스, 이탈리아, 홍콩, 대만 등등.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축하 메일을 받았으니 저보다 호강한 예비 엄마는 없을 거예요.
남편이 뉴욕에서 생활한 지 벌써 8년째거든요. 요즘은 한국식 농담을 안 좋아해요. 심하게 농담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보, 저 사람들 왜 저래요? 저게 농담이에요. 너무 심하네요” 그래요. 남편은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꺼리고 모든 걸 양보하려고 해요. 근데 딱 하나, 영화 만드는 일에는 양보도 타협도 없어요. 그때만 고집쟁이가 돼요.
남편의 작품이 3년 연속으로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된 건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큼 대단한 일이에요. 영화제 역사상 그런 일이 없대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할지 모르지만 선댄스 영화제는 할리우드에서도 최고로 손꼽히죠. 특히 이번 작품은 남편의 마지막 단편영화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어요. 남편은 이제 장편영화 데뷔를 준비중이거든요. 올 해 출품한 작품은 ‘천천히 조용히(Slowly Silently)’예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삶에 지친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어요.
남편은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로 저를 염두에 두었대요. 솔직히 남편 영화에 아내가 출연하는 게 좀 어색할 것 같아서 싫다고 했는데 남편이 몇 번이나 부탁하더라구요. 사실 우리 남편 제가 출연한다고 해도 말릴 사람이거든요. 근데 여러 번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는 출연을 결심했어요. 난 일보다 우리 신랑이 더 좋거든요. 우리 아가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아가보다도 남편이 더 좋아요. 남편이 있어서 세상이 아름답고 고마워요. 우리 남편은 평생 나 속상하게 만들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어다줄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난 남편을 믿어요.
아기가 태어날 즈음에는 남편이 한국에 올 거예요. 벌써부터 남편 올 날을 기다릴 만큼 보고 싶어요. 연극을 하면서도 남편 생각을 해요. ‘오르골’ 이라는 연극 하면 할수록 좋아요. 어린 시절 친구 사이인 남녀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은 걸 연극으로 그린 거예요. 출연 배우가 딱 두 명이기 때문에 대사가 많죠. 그리고 초등학생부터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까지 모두 목소리로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작품은 아니에요. 연극 무대에 딱 올라서면 아기가 움직이지를 않아요. 배에 딱 붙어 있는 느낌이에요.
연극이 끝난 뒤에는 잘 노는데…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까 아기가 ‘지금 우리 엄마가 연기를 하고 있구나. 음… 지금은 화를 내고 지금은 웃고 있네’라고 다 느낀대요. 그런데 좋은 연극을 하게 돼서 태교에 좋을 거라고 해요. 우리 스태프들은 저 아니면 이 연극 못 올렸을 거라구 추켜세워요. 빈말인 거 알면서도 들을 때마다 기분 좋더라구요. 올 해는 아기도 태어나고 남편이랑 오래도록 함께 있을 시간도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아기 이름은 남편이랑 상의해서 예쁘게 짓고 싶어요.

지난해 화제를 모은 영화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이 형인 것은 유명한 이야기. 때문에 송채환, 박진표, 박진오 감독은 ‘영화 패밀리’로 통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3년 연속으로 선댄스 영화제에 진출해 그의 연출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태. ‘런치’ ‘리퀘스트’에 이어 송채환 주연의 ‘천천히 조용히’까지.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해 화제를 모은 세 편의 영화는 한 편의 DVD로 출시될 예정이다.
글 / 경영오 기자 사진 / 박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