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 열정을 담아 노래하는 모녀 김수연·윤희정

재즈에 열정을 담아 노래하는 모녀 김수연·윤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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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이라기보다는 이제 ‘버블시스터즈’의 김수연 엄마래요”

브로드웨이 뮤지컬 ‘페임’에서 메이블 역을 소화해 연기자로도 인정받은 김수연. 그녀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의 딸이라는 것. 데뷔했을 때부터 그런 수식어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제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어머니가 있어 행복하다. 성량이 커서 어디서나 주목을 받고 모녀간에 늘 티격태격 다투지만, 그게 애정표현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왠지 밉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

재즈와 함께 한 30년 인생사 들어보실래요?

재즈의 대중화를 위해 앞장서온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49)과 흑인 분장으로 화제를 몰고 왔던 ‘버블시스터즈’의 김수연(24)을 그랜드 힐튼 서울에서 만났다. 어디를 가더라도 두 사람이 모녀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꼭 빼닮은 외모며 풍체,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적 성향까지도 판박이다. 아직 신세대라 밝고 튀는 개성이 강한 옷을 좋아하는 딸과 무채색 계통의 단아하지만 화려한 옷을 즐겨 입는 어머니의 스타일만 다를 뿐이다. 로라 존스와 같은 뮤지션이 되겠다는 딸과 그보다 더 나은 뮤지션으로 만들겠다는 어머니. 늘 티격태격하지만 싸움의 원인을 들어보면 별것 아니다. 신세대 사고를 가지고 있는 딸과 보수적이며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다그치는 어머니의 팽팽한 신경전. 결국 어머니가 항복하고 만다.

사진을 찍을 때, 얼굴을 작게 보이기 위해 서로 뒤에 서려는 모습은 누가 뭐랄 것 없이 천상 여자다. 작년 연말 윤희정은 ‘갈라 콘서트’를 통해 가요를 재즈와 어울릴 수 있도록 편곡했다. 갈라 콘서트는 ‘축제’라는 의미로, 음악 자체를 연주하는 콘서트라기보다 ‘즐기기 위한 음악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으로는 한국적인 리듬인 중모리나 자진모리 장단에 맞춰 가사를 입힐 예정이다. 그녀는 노력파 뮤지션이다. 듣고 싶은 음악도 충분히 듣고 음악적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하루도 연습을 거르지 않는다. 남들이 모두 자는 고요한 새벽, 작품 구상을 할 때가 그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딸에게 잘 해주지 못해서 늘 미안했다.

“새벽에 작업하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도시락 한 번 싸주지 못했어요. 음악을 직업으로 하니까 살림하는 엄마들과는 다르다고 치부해버렸지만 속으로는 번번이 미안하더라고요. 그런 저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처음에는 투정을 부리던 수연이가 나중에는 잠잠해지더군요.”

6년 전부터 그녀는 ‘윤희정&Friends’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재즈를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재즈를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다는 게 그녀의 지론. 지금까지 윤희정 & Friends를 통해 배출된 친구들도 1백20여 명에 이른다. ‘친구’로 선정되면 약 두 달 동안 재즈가 무엇인지 익히고 목소리에 맞는 곡을 선택해 기술적인 트레이닝을 받는다. 그 친구들을 통해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었다.

“윤희정 & Friends 가운데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너무 약속을 잘 지키던 방열 감독, 개그우먼 김미화, 홍사덕 의원과 가수를 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춘 로코스 홀딩스의 김형순 사장, 아픈 몸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준 미스 사이공의 이소정, 두 번씩 출연해준 박상원, 김미숙, 최정원, 박미경 그리고 ‘윤희정을 사랑하는 모임’의 총무인 최정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려.”

통기타 가수로 출발한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70년대 당시 최고의 사회자였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KBS 전속 가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지하철 가판 잡지들은 온통 그녀의 얼굴로 표지를 장식했지만 좌절의 순간은 있었다.

“3천원짜리 쇠줄 기타가 끊어지는 바람에 코드가 맞지 않았어요. 결국 떨어졌는데 너무도 화가 나서 그보다 다섯 배 비싼 고급 기타를 샀죠.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을 들고 나갔는데 승리의 여신은 제 곁에 있었나 봐요.”

‘세노야 세노야’는 연말 결선에서 선보인 곡이다. 한때 드라마에 삽입되어 꾸준한 인기를 누리기도 한 이 곡은 공연 때마다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당시 전국노래자랑은 지역주민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재능을 뽐내는 것이 아닌 실력을 겨루는 지금의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의 성격을 띠었다. 기타를 연주하며 중학교 때부터 남다른 끼를 보인 그녀는 성가대와 합창반 단원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고3 담임이던 ‘은실이’의 작가 이금림은 윤희정의 노래에 반해 수업 시작 전에는 항상 노래를 부르게 했다.



선생님들 몰래 가끔씩 계단에 아이들을 앉혀놓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때 주로 부르던 노래가 ‘Sunrise Sunset’ ‘하얀 손수건’ ‘Over the rainbow’ 같은 곡이었다. 집에서는 음악 하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기타를 부숴버릴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가족들은 그녀가 취미로 기타를 만지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전국노래자랑에서 입상하고 경품으로 21인치 컬러 TV를 부상으로 받자 가족들의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음악적인 갈증을 이해해준 사람은 친오빠뿐이었다.

“오빠가 대학 3학년 때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저도 가요제에서 부상을 받아오니까 동네는 발칵 뒤집어졌어요. 원래 제 이름이 김명희예요. 가수 현미 동생과도 같았고 다른 연예인도 동명이인이 있었죠. 오빠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윤희정으로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날 이후로 전 김명희가 아닌 재즈 보컬리스트 윤희정으로 살았어요.”

그녀는 임신을 하고 나서 많은 음악을 접했다. 수연이가 음악적 영감을 타고 난 건 태교탓이란다. 전쟁 때문에 음악을 들을 수 없는 황폐했던 자신과 비교하면서 수연이는 음악적으로도 풍요롭게 자라지 않았냐고 반문한다. 대학 진학할 때 음악이 아닌 연기를 한다는 말에 반대하지 않았던 건 어릴 때 누리지 못했던 한(恨)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는 음악과 연기는 도움을 주면 줬지 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존 핸드릭스’처럼 재즈 기악곡에 가사를 붙이는 작업을 하는 그녀는 학창 시절에 문학을 공부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인성여고 시절, 문학에 심취했고 교지 편집을 맡으며 시도 썼다. 교내백일장에서는 장원을 세 번이나 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80년대 중반에 예능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스펠에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과 유럽의 도시들을 돌면서 선교 활동도 펼쳤다. 그녀가 가요가 아닌 재즈에 심취하게 된 음악적으로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과 다른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이판근 선생과 만나면서 새로운 음악세계에 눈떴다.

당시 그녀는 밀집화성에 익숙해져 있던 귀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사운드를 접하고 달라졌다고 회상했다. 즉흥연주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느낌. 그것을 찾기 위해 아직까지도 재즈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재즈를 통해 지금까지 찾은 건 빙산의 일각이에요. 물론 조금씩 찾으면서 즐거움도 느꼈죠. 이판근 선생님을 보면 겸손하고 차분해져요. 저보다 많은 것을 음악 속에서 찾았을 텐데 절대 티를 내지 않으시거든요. 전에는 제가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재즈를 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재즈는 그녀에게 연민의 대상이고 절대자인 것이다. 재즈를 이해한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도 없고, 전부를 알 수도 없다. 누군가 재즈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좀더 일찍 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다.

딸의 연기를 보면 내가 공연하는 것보다 더 떨려요

김수연은 작년 10월에 활동을 접고 2집을 준비하면서 공백기가 생겼다. 뮤지컬 ‘페임’의 연기자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았고 김수연은 오디션에 참가했다. 연극영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뮤지컬 ‘페임’을 통해 어느 정도 자질을 인정받고 싶었다. 뮤지컬 ‘페임’은 뉴욕의 예술학교 라 구아디아(La Guardia)를 배경으로 브로드웨이에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맡은 역은 카르멘의 친구 메이블로 살이 너무 쪄서 연극반으로 옮기게 되는 무용과 학생이다.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 중에 ‘먹어도 살찌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는 지금의 그녀의 바람과도 같다. ‘페임’의 마지막 공연 날, 윤희정은 친한 동료들과 함께 딸의 무대를 감상했다. 자신이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보다 더 떨리고, 온몸을 바치는 열정적인 딸의 연기에 저절로 흐믓해졌다.

“수연이의 모습을 보니까 젊었을 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뚱뚱하지도 않았고 허리도 무척 가늘었답니다. 가수로 데뷔해 뮤지컬도 하고 저와 같은 길을 걷는 게 신기하네요. 저도 2000년에 백상예술대상에서 기자들이 뽑은 인기상을 수상했거든요.(웃음)”

2주간의 뮤지컬 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남편과의 연애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했더니 은근슬쩍 딸의 눈치를 살핀다. 남편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자 마지못해 소공동 카페에서 일할 때 매일 찾아와 노래를 듣던 팬이라고만 했다. 매일 귀찮게 쫓아다니더니 어느 날인가는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그것이 함정이었단다. “아빠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하니 한번 흘긴다.

2년 전부터 윤희정의 공연에 코러스를 담당한 수연은 그녀의 공연에 꼭 필요하다. 흑인 분장을 해서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받겠다는 ‘버블시스터즈’의 멤버로 활약하게 된 계기도 코러스를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발탁된 것이었다. 흑인 음악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그룹. 저마다 노래에 탁월한 실력을 겸비했고, 외모지상주의로 인해 다른 가수들의 코러스를 담당한 이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1집은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을 했다면 앞으로 나올 2집은 흑인 음악에 더 근접할 수 있도록 음악성에 중점을 두고 싶단다. ‘대중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그녀의 노력과 곁에서 후원해줄 윤희정의 밝은 미래도 관심 있게 지켜보자.

글 / 강승훈 객원기자  사진 / 신규철  장소협찬 / 그랜드 힐튼 서울(3216-5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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