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이는 적극적이고 철저한 모습이 보기 좋아”
“배우로서 타고난 언니의 목청이 부러워요!”
얼마 전 뮤지컬 ‘맘마미아’ 관객이 10만을 넘어섰다. 20대 젊은이보다 더 화끈하게 춤추고 노래 부르는 박해미, 전수경의 모습을 보러 많은 아줌마들이 극장을 찾고 있다. 결혼 후 더욱 원숙한 모습으로 뮤지컬 무대를 점령하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즐거운 수다를 떨었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배우의 삶까지.
두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기분이 바로 ‘업’된다. 무대 위에서는 관객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베테랑 뮤지컬 배우지만, 무대를 떠나서는 에너지 넘치는 말과 제스춰로 혼(?)을 빼는 수다쟁이들이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뮤지컬 ‘맘마미아’(이탈리아어로 ‘엄마야’라는 뜻. 놀랄 때 쓰는 단어다)에서 도나와 타냐의 역할로 아줌마 파워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박해미(40)와 전수경(37). 두 사람을 만났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작품, 카타르시스 느껴 vs
큰 키와 몸매 보여주는 의상 때문에 즐거워
사회자(이하 사) : 얼마 전 ‘맘마미아’가 10만 관객을 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두 분 모두 오랫동안 무대에 섰는데, 함께 참여한 작품이 많은나요?
박해미(이하 박) 의외로 적어요. 지난해 ‘넌센스 잼보리’가 처음으로 함께 했던 작품이에요.
전수경(이하 전) 맞아. 예전에 여배우들끼리 콘서트 했을 때 더블 MC를 본 적은 있지만, 함께 한 작품은 많지 않네. ‘넌센스 잼보리’ ‘맘마미아’를 연속으로 했으니까 1년 정도 동거한 거네.(웃음) 이 작품(맘마미아) 끝나면 또 같은 작품에 출연하니까 더 오래 붙어 있을 수 있겠다.
박 맞아. 한번 만나니까 오래가네.
전 얼마 전에 우리 공연에 10만 관객이 들었어. 언니는 작품이 성공할 줄 알았어?
박 관객수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대본과 음악을 접했을 때 될 거라는 필은 왔어 어. 내용 구성도 일도 있고 노래도 잘 녹아들어 있고. 나는 ‘맘마미아’가 휴머니즘을 다룬 21세기 최고의 뮤지컬이라고 생각해.(웃음)
전 나도! 여러 역할을 해봤지만 이번 캐릭터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 럭셔리(?)한 의상도 입고, 액세서리도 모두 패셔너블(?)하고. 내 키가 좀 크잖아. 이번에는 키와 몸매를 잘 표현해 주는 의상 때문에 기분이 좋아.(전수경이 맡은 ‘타냐’는 결혼을 3번이나 했고,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 하룻밤 불장난도 마다하지 않는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여성이다. 극중에서는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박 난 지금까지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없었어. 항상 남자 옆에서 가만히 있는 소극적인 여자 역할을 많이 맡았거든. 그런데 ‘맘마미아’는 여자들이 극을 이끌어가니까 남자들이 액세서리처럼 보이잖아. 무대에 올라가면 여성의 파워가 있어서 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연기를 해.(웃음)
전 언니는 공연 중에 아파서 고생했잖아. 지금은 괜찮지?
박 공연 기간 중에 장염에 위통, 치통까지 한꺼번에 찾아왔어. 모두 술병이지 뭐.(웃음) 한꺼번에 세 개가 몰아쳐서 2~3일간은 정말 힘들었어. 배우들도 걱정 많이 해주고. 넌 힘든 점 없었어?
전 별로. 난 전문적인 스태프들이랑 공연하게 돼서 기뻤어. 다른 작품 할 때보다 연습 기간이 짧아서 스태프들에게 많이 배우지 못한 게 아쉬워. 우리들 재량에 맡긴 게 많잖아.
박 수경이는 작품에 들어가면 정말 적극적이지. 난 소극적이어서 뒤에 빠져 있는 편인데. 모든 멤버들에게 신경을 써주는 너의 열정이 보기 좋아. 마치 배우가 아닌 연출가의 눈으로 작품을 보는 것 같아. 학구적(?)인 모습이 부러워. 나는 술자리에서만 그러는데.(웃음)
전 왜 이래.(웃음) 나는 언니의 타고난 목청이 정말 부러워. 언니를 처음 봤을 때 깐깐할 것 같았어. 또 본가가 캐나다니까 영어도 잘할 줄 알았지. 그런데 내가 본 이미지랑 너무 달라서 황당했지. 영어 한마디도 못하지, 아무리 찾아봐도 엘리건트한(?) 면은 없지. 언니는 버터파가 아니라 고추장파야.
박 너도 마찬가지야. 보기에는 세련되고 촌스럽지 않은데, 은근히 촌스럽잖아. 완벽주의자이면서도 은근히 아줌마 같기도 하고.(웃음)
일찍 결혼해 아름다운 20대 날아가 vs
대학가요제 동상 탄 가수 이미지 없애려 노력
전 언니는 어떻게 배우가 됐어?
박 난 대학 때까지 팝송이나 가요를 들어본 적이 없어. 난 ‘마리아 카라스’가 될 줄 알았거든. (이화여대 성악과 졸업) 근데 문제가 생겼어. 내가 원래 몸이 뚱뚱했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외모에 관심이 생겨 살을 빼기 시작한 거야. 그때부터 노래가 안 되는 거야. 그때까지 힘으로 노래를 불렀던 거지. 그때부터 뭘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우연히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배우 오디션을 보게 됐어. 정말 그냥 해본 거야, 아무 생각 없이. 근데 운이 좋았는지 여주인공 ‘마리아’ 역을 맡았어. 그게 인연이 된 것 같아.
전 시작은 창대했지.(웃음)
박 그때까지도 유인촌과 추송웅이 누구인지도 몰랐어. 연습하면서 유명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웃음) 그런데 마지막이 좋지 않았어. 80만원인가 받았는데, 어떻게 이것밖에 안 주냐고 따진거야. 내가 봤을 때 아니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할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1987년 서울시립가무단에 들어간 후 1988년 결혼을 하고 무대를 10년 정도 떠났었지. 결혼 생활도 좋지 않았고.
사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어요?
박 그때는 너무 순진했어요.(웃음) 그 남자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에는 배우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겠다고 했어요.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거죠. 그 아름다운 20대가 결혼 때문에 사라져버린 거죠.
전 난 대학 졸업하소 바로 배우로 활동했는데. (전수경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총동문 30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했는데, 칭찬도 많이 받았어. 그때부터 마음을 확실하게 잡은 것 같아. 공연은 여러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니까 외롭지 않아서 좋았거든.
박 수경이는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탔지?
전 응. ‘말해’라는 곡으로 동상을 탔어. (1988년 대학가요제) 노래가 강해서인지, ‘강변가요제’ 출신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웃음) 당시에는 너무 보이시한 이미지여서 없애려고 많이 노력 했어. 연극을 할 때도 키가 큰데다 남자 같은 이미지여서 고생했거든. 딸 낳으면 말랑말랑하게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할 정도였으니까.(웃음) 언니는 10년 후에 무대에 다시 돌아와서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지?
박 나도 대학가곡제에서 동상을 받았는데.(웃음) 93년에 ‘장보고의 꿈’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왔어. 임동진씨와 함께 3년 동안 24개국을 돌았지. 하지만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아서 대학로에서 각시 품바를 시작했어. 무대 바깥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야. 품바도 해보고 여성국극에서 뺑파 역할도 해봤어.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냈지.(웃음)
캐나다에 간 아들 때문에 신혼 분위기 즐겨 vs
쌍둥이 아들, 선물 하나를 더 받은 셈
사 두 분의 남편은 모두 유명(?)합니다.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박 잘 아시겠지만, 제 남편(황민)은 9살 연하예요. 제가 ‘각시 품바’ 할 때 만났어요. TV를 통해 우리 사연이 많이 알려졌죠. 수경이 남편(주원성)도 유명한 뮤지컬 배우지. 수경이는 결혼한 지 얼마나 됐지?
전 11년 됐어요. 21개월 된 쌍둥이 ‘시온’이와 ‘지온’이 엄마이기도 하고.(웃음) 여배우에게 결혼과 출산은 연기에 깊이를 주는 것 같아. 인생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것 같고. 남편이 나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것이 연기하는 데 안정감도 주고. 언니는?
박 내 남편도 든든한 후원자야. ‘맘마미아’ 오디션 볼 때 정말 몸이 안 좋았거든. 그런데 나를 응원하기 위해 남편은 ‘넌 최고야’ ‘넌 될 거야’라는 말을 틈틈이 들려주더라고. 지금 5살 된 아들 ‘성재’는 캐나다 본가에 있어. 덕분에 남편이랑 신혼 분위기 맘껏 내고 있지.(웃음) 아이 하나 더 낳고 싶은데, 나이가 들어서 힘들 것 같아. 쌍둥이 키우니까 어때?
전 나이 들어서 생긴 아이라서 원래 하나만 낳으려고 했는데, 글쎄 쌍둥인 거야.(웃음)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는데, 선물 하나 더 받았다는 생각으로 키우고 있어. 애들 낳고 처음 5개월은 거의 전쟁이었어. 아이들과 가장 길게 떨어진 시간이 2시간이었으니까, 항상 붙어 있었던 거지. 일을 하면서도 애들이 눈에 밟혀 힘들 때가 많아.
박 내 아들은 우리들이 보고 싶지도 않은가봐. 전화하면 일 있다고 끊으라고 하고 보고 싶은 내색도 없고. 서운해 죽겠어. 아들은 캐나다 시민권자라서 복지와 교육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남편을 닮아서 여자애들한테 얼마나 잘 하는지.(웃음) 근데 너는 아줌마라는 호칭 어떻게 생각해?
전 애기 없을 때 택시를 탔는데, 아줌마라고 할 때 기분이 너무 상했지. 지금은 나이를 속일 수가 없어서 아줌마라는 호칭이 싫지는 않아. 지하철에서 자리에 차지하려고 점프하는 아줌마 이미지 때문에 듣기 싫은 거지. 어쩌다 아가씨로 불릴때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어.(웃음)
박 난 지금도 아줌마라는 소리 들으면 오장육부가 뒤틀려. 너무 싫어. 그런데도 아가씨는 민망해서 싫어. 난 엄마 역할이 가장 어려운데, 넌 어때?
전 난 아내 역할이 가장 힘들어. 아이들에게는 내리 사랑으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잖아. 일하다가도 생각나는 게 아이들이고. 그런데 남편한테는 신경이 잘 안 쓰여져 남편은 몸 관리도 잘해서 늙지도 않고, 패션감각도 뛰어나거든. 아이들보다 신경을 못 쓴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가끔씩 삐치는(?)게 느껴져. 근데 언니는 왜 엄마 역할이 어려워?
박 남편이 나한테 얼마나 잘 하니!(웃음) 남편은 나를 아니까 다 이해하지만, 아이는 아직 어려서 나를 이해 못하잖아. 나는 신경 쓴다고 해도, 아이는 그렇지 않은가봐. 그런 것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른이 돼서 힘들어질까봐 걱정돼. 자식 농사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요즘 실감해. 그러니 우리 부모님은 어땠겠어. 정
전 계획적이지 않고 즉흥적이라는 것, 그리고 요즘 술을 더 많이 마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박 내 남편도 요즘 자기 몸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걱정인데. 너무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까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는 경향이 있거든. 나는 일정 시간 되면 스톱을 외치는데.
사 두 분의 말씀을 듣다 보니 공연 시간이 다가옵니다. 정리를 해야겠네요. 배우 경력이 오래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전 ‘라이프’와 ‘시카고’라는 뮤지컬. 연습 기간 동안 저를 너무 힘들게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서는 성취감이 느껴지던 작품이에요.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그것을 소화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언니는 어떤 작품이야?
박 나는 ‘각시 품바’야. 애아빠를 만났던 작품이잖아. 작품 성격상 별별 연기를 다했어. ‘장보고의 꿈’을 함께 했던 임동진씨가 ‘왠 거지 연극을 하냐?’고 말렸지만 나를 한번 깨보고 싶어서 도전했어. 수경이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어?
전 예전에 학전에서 ‘의형제’라는 제목으로 했던 ‘Blood Brothers’의 엄마 역을 해보고 싶어. 그리고 ‘시카고’의 ‘벨마’ 역할도 해보고 싶어.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이 먹는 것이 슬프지는 않은데, 해보고 싶은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 아쉽네.
박 나는 어렸을 때부터 “너는 카르멘과 딱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그런데 아직 한 번도 못해봤어. 뜨거운 정열의 여인, 한번 해보고 싶어. 더 나이 먹기 전에 해야 하는데.(웃음) 나는 요즘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로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너는 언제까지 배우를 하고 싶어?
전 다리 힘이 버텨줄 때까지.(웃음) 나이가 들어서도 대사는 까먹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
박 요즘 난 후배들한테 열정을 배우고 있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 난 그러지 못했거든. 갈수록 연기 하는 맛이 나.
전 곧 있으면 공연이네. 우리의 수다는 여기에서 그만해야 할 것 같네.
힘과 개성이 넘치는 두 뮤지컬 배우의 수다는 사회자가 말리지 않았으면 계속 됐을 것이다. 결혼 후 안정된 가정과 남편의 외조를 받아 두 사람은 더욱 원숙한 연기와 노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사람의 매력은 ‘맘마미아’에서 만개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박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