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나, ‘손님1’시켜주면 안 돼?”

카메오 일기

(4)“나, ‘손님1’시켜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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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신은 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한다. 베드신은 연기하는 배우나, 촬영하는 스태프들이나 부담스러워한다. NG가 나면 서로가 민망한 만큼 속전속결로 끝내길 원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베드신이 있는 배역을 지망했다가 퇴자를 맞은 적도 있고, 주어진 기회를 반납한 적도 있으며,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포기한 적도 있다.

단역 출연을 즐기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베드신도 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없다’이다.

그런데 그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가관이다. 그런 역에 사람이 필요하면 자신을 추천해달라는 것이다. “진짜로 하는 건 아니지?” 하면서 더러 직접 동작을 해 보이며 자신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다.

데뷔작 ‘참견은 노, 사랑은 오 예’(감독 김유진)부터 최근작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감독 강석범)까지 42편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출연작이 늘어나면서 내심 베드신에 욕심을 낸 적이 있다. 주위 영화인들에게 강한 의지를 표현한 적도 있으며 이에 앞서 실제로 출연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첫번째 기회는 뜻하지 않게 주어졌다. 1996년에 개봉된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가 그것. 강우석, 김유진, 박종원, 박철수, 장길수, 장현수, 정지영 등 일곱 명의 감독이 일곱 가지 에피소드를 각각 연출한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작품·오락성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제작 초기에는 뜨거운 화제를 낳았다. 한국 영화사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가 제작된 적이 없고 소재 또한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이 화제작에 출연 기회가 주어졌다. 그것도 여주인공과의 베드신으로. 출연 기회를 준 감독은 ‘참견은 노, 사랑은 오 예’의 김유진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어린이 영화로 데뷔시켰으니까 성인 영화로 은퇴시키겠다”면서 자신이 연출을 맡은 제1화 ‘맥주는 내가 다른 맥주를 마셔도 질투하지 않는다’에서 일명 ‘화요일의 남자’ 역을 해보라고 했다. 팩스로 시나리오를 보내주겠다고까지 했다.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일단 부장에게 여쭤봤다. 내용이 좋든 나쁘든 부장이 안 된다고 하면 골똘히 읽어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뭔데?”

“저…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요.”

“해. 이제까지 했잖아. 사람이 실없기는.”

“근데 그게… 베드신이거든요.”

“그래? 해. 비디오 에로 영화는 아닐 거 아냐?”

“아녜요.”

“해. 예술이잖아. 예술을 하는데 뭘 신경 써.”

뜻밖이었다. 화끈했다. 물어본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잘못한 일을 하다가 들켜 꾸지람을 듣고 돌아섰을 때처럼 뒤통수가 따가웠다.

‘화요일의 남자’는 스타 조련사인 여주인공(신희조)이 운영하는 음반회사의 직원이었다. ‘화요일의 남자’로 불리는 이유는 매주 화요일 밤마다 여사장을 온몸으로 모시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나리오와 극중 인물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가 비디오로 나왔을 때 만나는 선후배와 동료들이 던질 말이었다. 고민 끝에 김 감독에게 회사 핑계를 대며 불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다. 굴러 들어온 복(?)을 내 발로 걷어찬 것이다. 훗날 이 이야기를 들은 동료들은 자신을 추천해주지 그랬냐며 혀를 차곤 했다.

앞서 경우와 달리 출연하게 해달라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작품은 1998년 작품인 ‘파란대문’(감독 김기덕)이다. 이 영화 시나리오는 칸국제영화제를 취재하러 가던 비행기에서 읽었다. 옆자리에 앉은 이 영화 프로듀서에게 첫번째 손님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가방에 넣어온 교복을 여주인공(이지은)에게 입도록 한 뒤에 강제로 벗기고 섹스를 하는 사이코였다.

이승재 프로듀서(현 LJ필름 대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일단 김 감독에게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훗날 돌아온 대답은 그 배역에는 이미 배우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손님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밤에 섹스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또 하는 인물. 그런데 전날 밤에 마신 맥주병을 이불 밑에 숨겨 돈을 덜 지불하려다가 들통이 나 포주(장항선)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인물이었다.

첫번째 손님처럼 사이코가 아닌 비열한 인물이어서 마음에 썩 들지 않았지만 이 역시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김 감독은 “이 역은 베드신을 격렬하게 해야 하는데 기자는 부담스럽다”며 불가능하다는 답을 전해왔다. 세 번째 손님이 또 있었지만 개성이 없는데다 두 번이나 거절당한 뒤여서 그 배역은 부탁하지 않았다.

그런데 훗날 이지은에게 뜻밖의 말을 들었다. “배 기자님이 출연할 거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실망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의외였다. 감독과 제작자가 승낙해도 여배우가 난색을 표명해 출연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상을 빗나가게 해준 이지은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영화 담당 기자와 베드신을 하는 건 여배우들이 꺼린다. 기자만이 아니다. 베드신을 카메오가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대 여배우에게 결례인데다 연출진과 영화사에서도 싫어한다.

붕대와 테이프를 이용해 특정 부위를 가리는 ‘공사’를 배우들은 스스로 하는데 가르쳐주거나 시켜줘야 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베드신은 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연기인데 경험이 없는 사람이 하면 NG가 많이 나게 마련이고, 시간이 지연될수록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카메오가 베드신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기회가 주어진 것은 ‘파란대문’으로부터 약 3년이 지난 뒤였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였다. 김 감독은 연출부를 통해 주·조연 외에 어떤 역이든 하고 싶은 역을 골자 잡으라면서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극중에는 창녀촌을 찾는 손님 역이 꽤 있었다. 단순한 손님뿐만 아니라 검은 돈을 받아먹고 성욕도 채우는, 비중 있는 경찰 역도 있었다. 그 역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똥배였다. 베드신을 하는 것보다 똥배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운동으로 다듬어진 몸매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똥배는 나오지 않아야 했다. 훗날 여러 사람에게, 아니 한 사람에게라도 “그 몸으로 하고 싶었을까. 배짱도 좋아. 나 같으면 쪽 팔려서 못할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경우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김 감독이 그 장면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똥배가 안 나올 수도 있었다. 안 나올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자 촬영 전후에 많은 스태프들에게 똥배를 드러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들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눈 딱 감고 그냥 하자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굳히는 게 쉽지 않았다. 똥배를 보고 김 감독이 비열한 경찰인 만큼 캐릭터에 어울린다고 보고 똥배가 나온 걸 찍으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등 머리가 복잡했다.

김 감독에게 그런 점을 미리 확인하자니 실없고, 그렇다고 사정을 말한 뒤 촬영을 늦춰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김기덕 감독이 속전속결주의인데다 창녀촌 장면은 경기도 영화종합촬영소에 1억원을 들여 지은 세트에서 일정 기간 동안 모든 촬영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훗날 영화를 보면서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문제의 장면에서 형사의 배는 나오지 않았고, 영화적 완성도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Profile

배장수. 경향신문 전문위원. 영화 담당 기자 15년에 최근작 ‘하류인생’까지 40편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대표작으로 ‘마누라 죽이기’ ‘태백산맥’ ‘은행나무침대’ ‘박하사탕’ ‘엽기적인 그녀’ ‘취화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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