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김기덕 감독은 세계에서 주목받은 영화인이 됐다. 세계를 놀라게 한 ‘사마리아’는 ‘동성애와 원조교제’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 세계가 주목한 그 영화 속에는 곽지민이라는 배우가 있다. 영화로 인해 한동안 마음 고생도 심했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는 그녀의 영화 사랑 이야기. 연기가 갈수록 재미있어진다는 그녀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원조교제를 다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영화

연일 이어지는 촬영과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그리고 공인이라는 타이틀… 이 모든 것들이 열아홉 살 곽지민에게 아직은 낯선가 보다. 그녀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시선 처리에 고민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얼굴이 빨개지곤 한다. 유럽 여행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채팅에서 만난 남자들과 원조교제를 벌이는 여고생의 이야기.
‘사마리아’에서 곽지민은 파격적인 연기를 펼쳐 베를린을 놀라게 했다. 데뷔작으로 한 번에 떠버린 그녀. 그러나 그녀에게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일까? 촬영장에서 스태프뿐만 아니라 많은 관계자들이 이상한 애로 취급할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판단해달라는 말도 하고 싶었고, 정말 화가 날 때는 험한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한 적도 있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스트레스를 받고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연기자가 작품을 위해 노출신을 촬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그것도 원조교제가 내용인 작품에서 노출을 한다는 것은 부담되는 일. 세계적인 여배우 조디 포스터는 열네살 때 ‘택시 드라이버’에서 창녀연기를 했다지만, 우리 정서로는 아직 생소한 것도 사실이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둘째 치더라도 무엇보다 노출에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원작은 지금보다 훨씬 노골적이고 야했어요. 시나리오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뛰어다니는 장면도 있었고, 동성 친구와의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 목욕탕에서 키스하는 장면도 있었죠. 원조교제를 하는 부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어렵게 오디션을 보고 얻은 기회지만 포기하려고 했어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저를 붙잡은 건 김기덕 감독님이세요. ‘충무로의 이단아’ ‘저예산 영화의 총아’로 불리며 늘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감독님이 저를 설득했어요. 노출신을 대폭 삭제한다는 전제하에 출연을 권유했고, 저는 굉장히 심각하게 고민했죠.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감독이고 노출신의 부담도 상당 부분 덜어준다는 말에 안심을 했지만,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열망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어요. 지금이요? 물론 잘했다고 생각하죠.”
곽지민의 꿈은 연기자였다. 연기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매일 1∼2시간을 뛰면서 운동했고 10kg을 빼기도 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언론에서는 원조교제라는 내용을 부각시켰다. 학교 선생님들도 “늦지 않았으니 이번 작품을 포기하라”고 했고, 친구들도 “같이 공부나 하자”고 말했지만 오기가 그녀는 발동했다고 한다.

영화 ‘사마리아’는 다른 영화에 비해 제작 기간이 짧았다는 것도 이슈가 되었다. 한국영화의 제작 기간이 3개월에서 1년이 넘는 경우가 허다한데, ‘사마리아’는 11일이 걸렸다는 점에서 영화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고 성의 없게 찍은 것은 아니다. 제작비 4억7천만원. 1백억이 넘는 블록버스터들과 비교하면 저렴한 제작비지만,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에 비춰보면 ‘쓸 만큼 쓴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촬영 기간 동안 제작팀은 모든 것을 아껴가며 촬영에 임했다. 필름이 3분에 25만원인 점을 감안해서 필름을 아끼라고 말하는 감독 때문에 NG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가장 비싸게 먹었던 음식이 3천원짜리 삼겹살이라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일정이 너무도 타이트하게 진행되어 밥 먹는 것보다는 쉬는 것을 선택할 정도였다고 한다.
“촬영 현장은 화곡동 모텔촌이었어요. 겹겹이 붙어 있는 모텔, 음산한 분위기… 특히 연꽃 무늬 벽지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처음에는 많이 울었죠. 그러나 잘해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더라고요. 제 성격과 다른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과정이 좋아서 결과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더 심한 노출 연기를 하라고 했다면… 글쎄요?(웃음)”
곽지민은 영화를 촬영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촬영을 하고 나서도 영화 속 ‘여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때도 많았다고. 단순히 휴대폰 요금을 내기 위해서, 예쁜 옷을 사기 위해서 원조교제가 자행된다는 점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사마리아’가 구원과 용서를 통한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고. 영화 작업으로 지친 심신을 쉬기 위해 당분간 일본에 머물 것이라는 그녀는 새 작품 선택에 고심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서 프로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글 / 강승훈(객원기자) 사진 / 지호영 의상협찬 / Satin 헤어·메이크업 / 뷰티살롱 0809 청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