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뜨거운 감자’ 알리려고 하는 거예요. 음악 하려고요!”
잘나지 않으면 얼굴도 내밀기 힘들다. 아양은 미덕이고 덕담은 처세다. 우리의 선입관 속에 그대로 투영되는 연예인은 오늘도 전파를 타고 춤을 추며, 브라운관을 텃밭으로 인기란 과실의 달콤함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에 돋보이는 이가 있다. 아무리 봐도 ‘반골’로 보이는 김C, 그와 솔직히 나눈 ‘이상한 나라에서 온’ 혹은 ‘이상한 나라와 맞서는’ 남자 이야기.
말 잘하는 김C
“그저 맞는 말할 뿐인데, 뒤집어져요”

MBC-TV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브레인서바이버’ 코너에서 김완태 아나운서와 ‘맞짱’ 뜰 때, “정직원과 일용직의 대결”이라 천명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나운서는 MBC 정직원이고, 라디오를 진행하는 그는 진행자지만 어차피 일용직이다. 사실 그대로를 일깨운 한마디에 사람들은 광분했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통쾌할 수 없다는 듯…. 결승 대결자 뒤에 자리한 일용직 방송 진행자들의 환호가 스튜디오를 들썩이게 했다. “일용직, 파이팅!” 그동안 본질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편집되었지만 녹화 중에 ‘화장실 용무’를 기필코 달성해, 본의 아니게 ‘기인’의 반열에도 올랐다. 어차피 녹화인데,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참으면서 자리를 보전할 필요는 없다. 방송을 보는 이도 그런 상황의 출연자를 통해 즐거움을 얻기란 쉽지 않을 듯. 하지만 이전에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예의일 수도 있고 ‘쪽 팔려서’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는 생리 현상을 앞에 두고도 사회적 처신에 무게를 두고 행동해왔던 것이다. 가식 덩어리 세상!
뭐, 패션 스타일이 독특하고 생김새 또한 기인의 품성(?)에 어긋나지 않기에 이전부터 호기심은 있었던 인물이다. 가끔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에서의 일갈은 신선한 충격이 되고 몇 차례의 충격파는 중독이 되어 또다시 그를 찾게 한다. 호기심이다. 바로 김C(33ㆍ본명 김대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은 참 이상해요. 전 그저 그게 맞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게 많은 것 같아요. 지하철 파업하면 준법 투쟁한다고 하잖아요. 오늘 우리가 탄 지하철은 정차 역에서 1분 쉬는 게 맞는데, 30초 쉬었다 가고 있는 거잖아요. 불법이고 잘못된 것이잖아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게 옳은 것인지 알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맞는 말 하는 제가 이상한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힘들죠.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윤도현의 2시의 데이트’에 게스트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죠. 거기서 가능성을 본 듯해요. 그런데 지금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진현숙 PD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아줌마’라고 불러서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줌마 같아서 아줌마라고 한 건데…. 다행히 진 PD가 저의 장점을 간파해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지요.”
방송을 통해 그는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아침이라서 술이 덜 깬 듯한 자신의 목소리가 부담스러우면 다이얼을 돌리라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교통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듯 그는 말을 잘한다.
그런 탓에 방송 진행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데 있지 않다. 강점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줄 안다는 데 있다. 물론 처음 발탁했을 때는 방송사 일각에서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게다. 무엇보다 지명도가 낮은 것이 문제였을 테고, 방송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도 걸림돌이었을 테니. 그러나 ‘아줌마’ 진현숙 PD가 물건을 제대로 잡은 것임은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한 인터뷰에서 진 PD가 밝힌 김C씨에 대한 평이 그것을 증명한다.
“막상 방송을 시작해보니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김C의 장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빛을 했기 때문이죠. 그의 장점은 기발한 생각이에요.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한 곳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이를 말로 풀어낼 줄 알거든요. 기발한 발상과 솔직한 말이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듯했어요.”
TV, 라디오, CF 평정한 김C
“끄거운 감자 알리려고 하는 거예요.”

“방송 진행도 외도 아닌가요? 오락 프로그램 나오는 것도 음악하고는 상관없는 거잖아요?”
그 말에 테이블 위에 있는 화장지를 꺼내 놓더니(그곳에 종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직선을 긋는 듯하더니 직선에 이어져 움푹 파인 웅덩이를 만든다. 동굴 벽화의 단순함을 닮았다. 뭔지 모르니, 기하학적 도식을 뚫어져라 쳐다볼 밖에. 그리고 그 속에 ‘감자’라고 써놓는다. ‘감자를 먹이겠다는 얘긴가?’. 그리고 이어진 설명.
“제가 하는 많은 일은 모두 이곳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어요. 라디오 진행도 그렇고, TV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그래요. 다 ‘뜨거운 감자’를 제대로 하기 위해, ‘뜨거운 감자’를 알리기 위해 하는 거예요.”
뜨거운 감자가 결성된 것은 97년. 보컬 김C와 베이스 고범준이 팀을 만들고,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가 합류했다. 결성 초기에는 클럽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연습만 했단다. 뜨거운 감자라기보다 ‘불량 감자’ 취급을 받은 것이다. 보브 말리, 슬라이&더 패밀리 스톤, 핑크 플로이드 등의 음악을 좋아한다. 2000년 첫 음반 「N.A.V.I」를 냈다. 그런데 기획사가 망해 그들의 음반 역시…. 지난해 6월, 2집 앨범 「뉴 턴」으로 사실상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집 수록곡 ‘걱정 마 요헤이’ ‘유턴’을 좋아하는 팬들도 생겼다. 홍대 앞 사운드홀릭에서 공연도 자주 갖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음악을 최대한 선보이는 열정의 콘서트 무대라고. 가을에는 3집 음반을 낼 예정이다.
그의 말은 “이 뜨거운 감자를 알리기 위해서”란다. 갑자기 ‘후두부’가 뜨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그런데 막상 친절한 도식으로 설명하는 통에 낯부끄러워지는 쪽은 오히려 기자. 말을 돌리는 수밖에.
“아마 김C가 제 고교 후배인 듯해요. ‘브레인서바이버’ 보니까 그렇던 걸요?”
기수로 밀어붙이려는 꼼수가 다분한 한마디였다. 회심의 미소. 그러나 웬걸….

역시 그는 자유인이다. 틀에 얽매이는 것이 그에게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 얘기가 오가면서 예의 우리나라 ‘학원 스포츠’에 대한 진단으로 얘기가 넘어간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한 야구가 학교 생활의 전부였다. 수업을 작파하고 몰입해야만 하는 학원 스포츠의 폐해를 몸소 경험한 그. 학생에게서 시간과 인생, 배움을 착취한다고 힐난한다. 그는 어느 고교 출신이 아니라, 야구에 이끌려 그 학교를 다녔을 뿐일 테니.
그렇다면 그는 왜, 무엇 때문에 운동을 하다가 음악을 하게 된 것일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니면 운이 좋아서 음악을 하게 됐다는 말인가.
“제가 어릴 적부터 즐기던 놀이문화가 모두 음악과 관계 있는 것 같아요. 운동을 했지만 관심은 음악에 있었죠. 우익수였는데, 대학에서 안 불러주더라고요. 사실 키가 164cm밖에 안 돼 더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어요. 지금은 174cm인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컸어요. 여기저기 떠돌며 2년을 보냈어요. 집에 돌아와 마음을 잡고 기타 학원에 등록했는데 여자 수강생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강사가 꼴보기 싫어서 이틀 만에 그만두고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했죠. 그 바람에 아직도 악보를 볼 줄 몰라요.”
어폐가 있다. 음악은 한다! 악보는 모른다? 게다가 작사 작곡은 대부분 그의 몫이다. 그러나 우문현답이다.
“작곡은 악보를 ‘읽고 그리는’ 것이 아니에요. 가슴속에 있는 감성을 꺼내는 거죠. 특히 록은 화성보다는 ‘정신’이 중요해서 정신과 영혼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결국 교육 못 받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음악이니 ‘저항’이 없을 수 없죠.”
또 한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감동까지 먹게 된다. 이렇게 생각이 많을 수가 있을까? 그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7년간의 백수 생활 동안 할 일이 없어서, 음악이나 살아가는 데 많은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란다.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또 한 가지. 그는 ‘공인’이라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어떻게 공직자와 같은 의미인 공인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음악인생의 목적에 대해서도 주관이 뚜렷하다. ‘뮤지션은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또한 대중에게 파급력이 크니까 똑똑해야 하고 자신의 가치관도 전달해야 한단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적어도 그의 생각이 그리 잘못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누가 이런 말 하는 사람을 웨이터 출신이라고 폄하할까. 나아가 옳은 말하는데 직업이 무슨 상관일까.
알수록 더욱 알 수 없는 김C
“작곡은 하는데 악보를 못 읽고…”
사실, 1996년 경기도 백마의 ‘화사랑’에서 웨이터 겸 주차관리원으로 일했다. 다행히 그곳에서 가수 강산에와 윤도현을 만났다. 강산에는 음악인의 길을 알려줬고 윤도현은 이름을 줬다. 오늘날 ‘김C’는 윤도현이 그를 이름 대신 그렇게 부른 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하는 그의 아내도 만났다.
두 살 아래인 색시(그는 마누라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다. 감지 않은 머리를 뒤로 묶고 까만 고무신에 땟국물 흐르는 다리를 해 가지고 막걸리는 나르고 있는 장래의 사위를 본 심정을 어떠했을까. 사전 답사한 사위의 일터에서 장인의 억장은 무너졌을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전화를 해서 “우리 애가 아직 어리니 헤어지라“고 했으려고.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계속 이어졌고, 2000년 초 색시는 집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같이 살기 시작한 와주에 색시는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그를 먹여살렸고, 그는 색시의 위대함을 드높이기 위해서인지 그후로도 여전히 땡전 한푼 벌어오지 못했다. 김C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색시를 끔찍이 아끼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그에게 첫 딸이 태어났다. 첫딸은 복덩이라는데, 세상의 기준으로 조금 빛을 보기 시작한 아비에게 행복한 보물임을 틀림없다. 그러나 딸의 이름처럼 ‘우주’를 품을 기세로 김C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그렇다고 바뀐 것은 없다. 아내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을 시작했고, 그는 방송 진행을 위해 집을 나선다. TV 출연 등 여러 가지 외도 역시 음악을 제대로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그의 활동만큼이나 서서히 달궈질 뜨거운 감자에 대한 관심, 김C의 거친 듯 유려한 언변의 심연을 뚫고 뜨거운 감자의 보컬리스트 김C의 록이 매니아가 아닌 대중 속에 활활 타오를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취재 후기
그는 여전히 조금은 찡그린 듯 얼굴, 무표정한 낯빛을 하고 있다. 촬영 중 좀 웃어주면 안 되냐는 말에, “전 자외선에 너무 약해서 빛 아래서는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없어요.” 웽~ 이건 또 무슨 말!
‘김C가 유명세를 타기는 탔나보다’ 궁시렁거리며 촬영을 진행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눈이 충혈되면서 눈물이 곤한 듯 볼을 타고 흘렀다. 사실이네! 어쩌면 김C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니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정말 밖에 나오거나 조명 아래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그 고통스러움이 표정으로 드러난 것. 혹자는 ‘쟤, 무슨 인상이 저래?’라며 힐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심성의 고약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라.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박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