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변신은 언제나 숙제다. 고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전통 사극의 임금, ‘전원일기’의 금동이 이미지가 강하던 탤런트 임호도 마찬가지. 여러 번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고민의 연속 끝에 낙하 지점 발견. 바로 코믹 ‘코드’. 쉬지 않고 던진 취재진의 질문에 ‘손짓, 발짓, 얼굴짓’을 섞어 나눈 대화를 그대로 담아본다.

‘삐죽삐죽’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헤어스타일을 보며 궁금해졌다.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인가요? 헤어스타일 이름이 뭐죠?
니모 스타일이요. 니모!
순간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인가 착각이 들었다. 또렷한 눈을 부릅뜨며 정색을 한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이었나 혼돈을 일으켰다. ‘임호’를 부드럽게 발음하면 ‘니모’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장난꾸러기 같아요. 요즘 변신에 성공한 코믹 이미지는 생활 속에서 나오는 거군요?
전 팽팽히 당겨진 고무줄같은 사람이예요. 수많은 캐릭터를 가지고 어느 방향이든 길게 당겨질 수 있죠. 하지만 긴장감이 풀리고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원점에 도달합니다
얌전하고 점잖고 때론 중후한 이미지를 보여주던 그가 180도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뭘까. 또 다른 설정일까.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요? 그런 소문이 있었어요. 얼마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탤런트 박원숙씨의 아들과 죽마고우였는데 그 충격으로 해맑고 코믹한 이미지를 선택한 거라는….
코믹한 연기를 시도한 경험이 있어요. 10년 전 데뷔 때인데요, 반응이 좋지 않아서 포기했죠. 애드립이라는 건 친분 관계 속에서 나오더라구요. 진행자와 전혀 친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열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죠. 10년이란 세월이 제게 많은 인맥을 만들어주었고, 두터운 친분을 쌓게 해주었죠. 박원숙 선생님의 아들과는 절친한 사이였어요. 사고 나기 두 시간 전에 사무실로 전화를 걸기도 했구요. 참 신기하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그건 아니에요. 박원숙 선생님께는 자주 안부 전화 드려요. 저희 부모님도 무척 가슴 아파하셨죠.”
임호는 사극 작가 임충씨의 아들이다. 사극 연기를 많이 해온 그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대단한 후원자일 것이다.
동료 연기자들이 상당히 부러워할 것 같아요. 따로 과외 수업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의 얼굴 표정은 다양해서 인터뷰 내내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하다. EBS -TV ‘최고의 요리비결’ 진행을 맡고 있는 그가 집 안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요리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게다가 요리 실력도 뛰어난 것 같던데요?
저희 집이 ‘전원일기’와 흡사한 분위기예요. 가부장적인 집안이지요. 사실 전 요리 프로그램 진행할 때까지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부모님이 여행을 가면 누나가 다 챙겨줄 정도니까요. 요리 프로그램 진행을 한다니까 식구들이 모두 놀라던걸요. 생각해보니 저 곱게 자란 ‘놈’이네요.
SBS- TV ‘대결 맛대맛’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양념에 대한 신기함은 어느새 도전의식으로 변하고 있었다.
방송을 보니 칼 잡는 손끝이 예사롭지 않던데요. 처음 요리를 해본거라고 하니 더욱 놀랍네요. 2004년은 도전의 해로 삼을 생각이세요?
같이 진행하는 요리사 도세훈씨께 칭찬까지 들었어요. 직접 음식점을 경영해보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겼어요. 인테리어 도면까지 상상해본걸요.
그의 말에서 요리에 대해 많은 시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음식점 오픈 투자 설명회장을 방불케 했다.
요리에 관해 묻지 않았으면 섭섭했겠어요.(하하) 완벽주의자세요. 스포츠나 취미를 시작하기 전에 관련 서적부터 꼼꼼히 읽고 시작하는 그런 부류인가요?
꼼꼼히 체크하지 않으면 실수를 저지를 수 있어요. 완벽주의자는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배어나잖아요.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생각하고 메모해야 해요. 학창 시절부터 일기를 쓰고 있어요. 항상 ‘호야!’로 시작하는 일기를 쓰다 보니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기더라구요.
몇 번의 영화 제작에 실패한 감독에게 그는 ‘술 친구’ 1 순위였다. 하지만 유명해진 그 감독은 정작 좋은 시나리오 앞에선 그를 외면했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원망이나 배신감 따위는 없다. ‘흥행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 못한 자신에게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는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는 듯하다. 빙그레 웃으며 가장 행복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전원일기’에 출연할 때였어요. 그땐 그것말고는 방송이 없었거든요. 한달 반 동안 스키장에서 보드만 타며 지냈어요. 촬영이 있는 날은 월요일 하루. 당일 새벽 3시에 서울로 와서 촬영하고 저녁때 다시 스키장에 갔어요. 집에도 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만 생각하면 스트레스도 확 사라져요.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영화 출연 제안이 들어오면 배역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출연하겠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때’를 만들고 있었다.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박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