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서는 매달 영화인을 초청해 대담의 시간을 갖고 있다. 안성기에 이어 두번째로 초청된 박중훈은 이 자리에서 한국 영화의 현황과 앞으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첫 주연을 맡게 된 영화 ‘비빔밥’을 이야기하면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배우 안생 20년을 맞이한 그의 영화 세계 속으로 들어가본다.
영화에 대한 열정까지도 사랑하는 배우

영화 ‘깜보’로 데뷔해서 ‘칠수와 만수’ ‘그들도 우리처럼’과 같은 영화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투캅스’에서 농익은 연기를 펼쳐 보여 인기 절정에 올랐다. 최근 개봉된 영화 ‘황산벌’은 그의 유머러스함과 노련미가 고스란히 녹아난 작품이다. 그는 그를 좋아하는 관객이 있는 한 영화를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할리우드에서도 활동하는 그가 밝힌 앞으로의 계획과 영화 인생 20년. 두어 시간의 강연이 모자란 듯했다. 하지만 강연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흡족한 강연이었다.
강연은 예정보다 30분 늦게 진행됐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던지 멀리서 박중훈의 모습이 보이자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안녕하세요. 영화배우 장동건입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바람에 강의실은 삽시간에 폭소의 도가니로 변했다. 체질적으로 남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배창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강연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강연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려는 듯 “필드에 뛰는 배우가 이런 강연에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살려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근황을 밝혔다.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아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 ‘비빔밥’을 위해 15일 미국으로 출국해 2주간 머물면서 영화의 전반적인 제작 방향과 일정을 논의키로 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찰리의 진실’과 ‘양들의 침묵’을 연출한 조나단 드미와 ‘찰리의 진실’의 프로듀서였던 피터 세라프가 의기투합해 만드는 작품이다. 박중훈은 영화 ‘비빔밥’의 시나리오를 일주일 전에 받았다면서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 벌써부터 흥분된다고 말했다.
영화 ‘비빔밥’은 뉴욕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동양 남자와 미국 여자와의 갈등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그는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은이 기네스 팰트로였으면 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ET의 드류 베리모어가 최종 낙점됐다.
영화 ‘비빔밥’ 촬영을 마친 뒤에는 7월 초에 개봉 되는 영화 ‘투 가이즈’의 홍보에도 참여하고, 8월에는 청년 시절의 이순신을 그린 영화 ‘천군’을 촬영할 계획이다. 이 영화는 문과 시험에 탈락한 후 방황하던 이순신이 마음을 다잡아 무과시험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중훈은 이 작품에 대해 ‘판타지와 코믹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영화’라고 평가했다.

박중훈은 자신이 영화배우가 된 데에는 시대 환경과 잠재된 끼 그리고 불굴의 의지였다고 요약했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공부했는데 아마 계속했다면 그 분야에서 한 자리 했을 거라고. 왼손잡이라 그의 그림은 다른 사람과 사뭇 달랐는데, 밝아야 할 부분에는 어둡고, 어두워야 할 부분은 밝았다고. 그래서 남과 다른 자신의 그림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이때쯤 선생님이 “왼손으로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말해 큰 충격을 받고 그림을 중단했단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85년 대학을 다닐 때였다.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배우로 통하는 길을 몰라 혹시 감독님 눈에 띄어 소위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충무로를 배회하고 다닌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돌아다닌 곳은 충무로가 아닌 충무로 맞은편이었다고.
박중훈은 배우가 되기 위해 KBS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기도 하고, 그 당시 KBS ‘젊음의 행진’에서 모집하는 통기타 가수에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영화의 기초부터 배우자는 생각에서 합동영화사에 들어가 제작부 막내로써 청소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러는 중에도 호시탐탐 배우로서의 길을 모색했다. 그 당시 그는 배우로서의 외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이 기회를 만들었다. 그의 데뷔작 영화 ‘깜보’에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데 성공한 것.
당시 배우들의 입지는 매우 좁은 편이었다. 남자배우로는 안성기, 박중훈 외에는 흥행배우가 없었다. 제작사들은 이런 그를 서로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나이 많은 배우는 안성기, 나이 어린 배우는 박중훈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였다. 안성기를 염두에 두었다가도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나이가 좀 어리면 어때. 박중훈으로 가자”라고 했고, 박중훈이 시간이 없으면 나이 많은 안성기로 가자”라고 할 만큼 안성기와 박중훈은 그 당시 둘도 없는 배우로 융숭하게 대접받았다.

강의중 그는 “요즘은 잘생긴 배우가 참 많아요. 장동건, 정우성…”요즘의 꽃미남 배우들을 꼽자 학생들은 “박중훈”을 외쳤다. 그러자 그는 “네, 감사합니다. 저도 서울대와 건국대만 좋아해요”라고 해 삼시간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박중훈은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다. 차태현과 함께 출연한 영화 ‘투 가이즈’에 주인공 겸 제작으로 참여한 것. 돈 벌려는 욕심보다 가보지 않은 영역을 해보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그러므로 잠시 외도한 것일뿐 본격적인 제작자로 변신한 것은 절대 아니란다.
박중훈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배우 중 매우 특이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의 첫번째 특이한 이력은 유학 길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한창 인기를 얻을 때 유학을 결심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른 길이었건만 유학 생활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20~30분 되는 거리는 걸어다녔다. 여름날 찜통 같은 지하철을 타고, 악취를 참으면서도 그는 미래의 꿈꾸었다. ‘흐르는 물에서는 자신을 볼 수 없다’는 믿음으로 그의 유학 생활은 무사히 결실을 맺었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 아이들과 함께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죽음을 맞고 싶어요. 그럼 사람들은 ‘박중훈 영화와 함께 잠들다’라고 말할 거 아니에요. 그런 걸 꿈꾸기도 해요.”
죽는 순간에도 영화와 함께 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의 강의는 인생의 진리를 일깨워주는 말로 마침표를 찍었다.
“고민하고 갈등하는 젊은 날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행동이 생각을, 생각이 습관을, 습관이 운명을 그리고 앞으로의 길은 여러분이 만드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깊은 울림을 남기는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강연은 아쉬움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그 아쉬움을 보상하려는 듯 강연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못다 한 뒷얘기를 나누며 미래의 영화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박중훈. 노력과 성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변신이 영화계의 거목 박중훈을 만들었다는 것은 ‘진짜’였다.
글 / 강승훈(객원기자) 사진 / 박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