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기는 ‘국민배우’! 그럼 ‘국민카메오’는?”

카메오일기

“안성기는 ‘국민배우’! 그럼 ‘국민카메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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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는 늘 한결같다. 영화담당을 해오는 동안 앞두기 다른 경우를 본 적이 없고, 말 많은 연예계에서 그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달리 ‘국민배우’가 아니다. 그가 성인배우로 컴백한 뒤 출연한 영화가 70여 편. 이 가운데 5편을 함께 했다. 주인공을 기준으로 할 때 그와 함께 한 영화가 가장 많다. 이 사실이 자랑스럽다. 언감생심 ‘국민카메오’를 꿈꿔보지만 그럴 때마다 한숨을 짓곤 한다.

조감독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화를 내기는커녕 미소를 짓고, 20여 년 전에 산 청바지가 맞고, 빨래하는 장면도 미리 연습하고, CF출연 제의에 못 마시는 술을 마시면서 고민하고, 자신의 출연료를 동결하거나 깎아 스태프 처우 개선에 쓰라는 안성기. 그는 진정한 ‘국민배우’임에 틀림없다.



안성기의 최근작은 ‘아라한 장풍대작전’(감독 류승완)이다. 도시무협을 표방한 이 영화에서 안성기가 맡은 인물은 장풍여걸 의진(윤소이)의 아버지이자 도심 속 칠선도인(七仙道人)의 리더인 자운. 유머러스하고 인자한 성격의 자운으로 나온 안성기는 ‘국민배우’답게 극의 중심을 잡는다.

안성기는 제작 초 류승완 감독에게 제안, 이 영화의 폭소탄 가운데 하나를 직접 만들어냈다. 철부지 열혈순경 상환(류승범)이 “장풍 같은 걸 배우려면 한 달에 얼마나 듭니까”라고 묻고 자운이 “바람 크기에 따라 좀 틀리지”라고 밝히는 장면으로 안성기는 능청스런 표정과 대사로 폭소를 자아낸다.

최근 개봉된 ‘하류인생’(감독 임권택)까지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는 42편이다. 이 가운데 안성기와 함께 한 영화는 5편. 주인공을 기준으로 할 때 안성기와 함께 한 영화가 가장 많다. 감독을 기준으로 할 때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4편으로 가장 많다는 사실과 더불어 카메오로서 국민배우와 함께 5편을 공연했다는 사실에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와 공연한 영화는 ‘태백산맥’(감독 임권택)을 비롯해 ‘축제’(감독 임권택) ‘박봉곤 가출사건’(감독 김태균)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감독 강우석) ‘취화선’(감독 임권택) 등이다. ‘태백산맥’에는 보성군당 부위원장, ‘축제’에는 문상객, ‘박봉곤 가출사건’에는 레스토랑 주방장,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에는 사회부 기자, ‘취화선’에는 장승업(최민식)을 사또(김재찬)에게 소개시켜 주는 마을 양반으로 나왔다.

아쉽게도 출연작 가운데 안성기와 카메라 앵글에 함께 잡히는 장면은 없다. 하지만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외 나머지 영화는 촬영 당시 현장에서 함께 하면서 그의 인간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태백산맥’에 출연할 때 일이다. 경기도 벽제세트장에서 북한에서 온 인민군 간부들과 보성군당 위원장(김명곤)의 상견례, 연합군 비행기 폭격에 혼비백산하는 인민군 행렬 장면 등을 3일 동안 휴가를 내고 찍었다.

인민군 간부는 나와 이창세(스포츠조선) 김병재(문화일보) 송용덕(스크린) 등 기자들이 많았다. 우리들은 훗날 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낸 최종원씨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교제로 북한 사투리를 연마한 뒤 촬영에 응했다.

첫날 상견례 장면 때 안성기는 촬영이 없었다. 전날 연출부에게 자신은 촬영이 없다는 연락을 받고 그 동안 미뤄뒀던 개인 일을 보고, 가족과의 시간도 가진 안성기는 늦잠을 잘 요량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7시쯤 촬영이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계획이 변경됐다는 연출부의 말에 안성기는 세수를 하는 등 마는 등 준비를 마치고 개포동집을 나서 벽제로 향했다. 8시 집합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자신 때문에 촬영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속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날 안성기는 촬영이 없었다. 조바심을 치며 달려온 안성기는 현장에 도착한 뒤 연출부로부터 착각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누구나 화가 날만한 상황이었지만 안성기는 달랐다. 어이없어 하면서도 미소를 지으며 “기왕 나왔으니 기자들 연기하는 걸 보면서 놀다가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이름 성(聖)자가 떠올랐다. 이른 시간인 만큼 다시 귀가하면 하루 종일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그는 기자들의 연기 개인지도를 하면서 이날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함께 했다.

‘박봉건 가출사건’에서 ×(안성기)와 봉곤(심혜진)이 탱고를 추는 장면은 경기도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밤새도록 찍었다. 다음날이 영화면 마감이었던 나는 노트북과 자료를 챙겨가 레스토랑 구석에서 기사를 쓰고, 부주방장 역을 맡은 연합뉴스의 이희용 기자와 연습도 하면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안성기는 촬영 틈틈이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기념촬영에 응해주고는 했다. 또 자신의 분량 촬영이 끝난 뒤 곧바로 귀가하지 않고 아침 6시 마지막으로 찍은 우리들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려줬다.

‘미술관 옆 동물원’(감독 이정향)에서 안성기와 함께 한 이성재는 그의 몸매가 20여 년 전과 다름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느 날 이성재는 촬영장에 안성기가 입고 나온 적당히 색이 바란 청바지가 몸에 잘 맞아 의상담당을 칭찬했는데 청바지는 의상담당이 빌려온 게 아니라 안성기의 옷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20여 년 전에 구입한.

‘남부군’(감독 정지영) 촬영 때 어느 날 늦은 밤 안성기는 숙소에서 양말을 빨았다. 함께 방을 쓰던 후배가 양말을 달라고 하자 안성기는 “내일 빨래를 하는 장면촬영이 있어 미리 해보는 것”이라며 후배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바람불어 좋은 날’(감독 이장호) ‘꼬방동네 사람들’(감독 배창호) 등으로 주목받던 안성기는 1983년 초겨울 어느 날 술에 취해 배창호 감독을 찾아왔다. 안성기가 술을 못 마시는 걸 알고 있던 배 감독은 뜻밖의 상황에 놀랐으나 연유를 알고 나서 또 한번 놀랐다. 동서식품 CF 출연 제의에 영화배우가 해야 할 일이냐는 점을 놓고 고민하다 술을 마신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좋은 작품을 골라 연기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배 감독의 권유에 마음의 결정을 내린 안성기는 올해까지 20년째 이 회사 제품 전속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13년은 이 회사 제품 모델만 고집했다. 요즘은 삼성전자와 KTF 모델도 맡고 있다.

출연료에 관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IMF 상황에서도 스타들 사이에 출연료 인상 경쟁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안성기는 자신의 출연료를 동결하거나 깎기까지 했다. 자신의 인상분을 스태프 처우개선에 쓰라고 했다.

박중훈이 결혼 후 집들이를 할 때 일이다. 음식을 다 먹고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던 중 박중훈이 “촬영장에 가면 항상 성기형이 먼저 와있었다”면서 “성기형이 출연료를 올리지 않으니까 후배들이 올리기 민망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안성기는 그 특유의 미소를 짓고는 “미안하다”고 했다. 현장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렇듯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듣는 그에 관한 일화는 늘 감동적이다. 안성기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들이 없지 않지만 ‘취화선’의 동시녹음기사가 들려준 말은 항간의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녹음기사는 “안성기는 ‘지는’ 해, 최민식은 ‘뜨는’ 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이 대사를 주고받는 걸 녹음하면서 최민식이 안성기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1957년 다섯 살 때 ‘황혼열차’(감독 김기영)아역배우 출신인 안성기는 1977년 ‘병사와 아가씨들’(감독 김기)로 컴백한 뒤 30여 년 동안 항상 최선을 다하는 변함없는 자세와 한 점 잡음 없는 가정생활을 영위해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정상을 차지하는 것보다 정상을 지키는 게 더 힘든 게 세상만사이다. 30여 년 동안 정상에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있는 안성기는 진정한 ‘국민배우’임에 틀림없다. 그와 함께 한 영화가 가장 많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언감생심 ‘국민 카메오’로 손꼽히는 걸 상상하게 되지만 그럴 때마다 한숨을 짙게 된다. ‘국민’이란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는 게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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