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은 못하는 게 없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끼 많고 재능 많은 그가 이번에는 동요 동화집 「개구쟁이」를 발표했다. 책 속에는 ‘산 할아버지’ ‘개구쟁이’ 등 히트곡과 그가 직접 지은 첫 동화 ‘숲으로 간 아기 고양이’가 실려 있다. 기쁨과 행복 뒤편에 숨어 있는 슬프고 가슴 저린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무게를 알려주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신발 끈 묶는 거, 이거 액션이거든.”
사진 촬영을 먼저 시도했다. 처음 만난 취재원과의 어색함을 줄이기 위해 인터뷰를 하며 탐색전(?)을 벌이던 습관이 그 앞에선 필요 없었다. 기자의 명함을 한번 훑어보고는 이름을 부르며 오래된 친구처럼 대해준다. 세월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는 그만의 ‘나이테’를 하나 둘 그리고 있었다. ‘그래도 어른인데 예의를 갖추자’던 조바심은 사라지고 어느새 그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날아간다.
“복잡하고 형식적인 질문은 재미없잖아. 내가 재미난 이야기 해줄까?”
두 손, 두 발, 시선 처리, 포즈는 ‘내 맘 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정 연기는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어쩜 그렇게 자연스런 포즈가 나오세요?” 사진기자의 질문에 대뜸 맞받아친다.
“어, 무슨 소리야! 당근이지! 나 김배우잖아….”
사진 기자가 “웃어달라”고 주문하면 미간을 찌푸리며 울상을 짓는다. 그와의 만남은 장난꾸러기 초등학생과 ‘씨름’ 한판을 벌이는 기분이다.
“갸우뚱을 중국어로 뭐라 하게? 야우뚱! 불어로는 뭐게? 아리송! 독일어로는? 애매모호! 콩고 말로는 긴가민가! 몽골말로는? 알랑가몰라!(하하)”
랩을 한다. 리듬을 타고 흥에 겨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한참을 웃다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정색을 한다. 메뉴판을 보며 뭔가를 찾는다. 토마토가 몸에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모양이다. 메뉴판에 토마토 주스가 보이지 않자 생딸기 주스를 주문한다. 촬영을 하는 동안 생딸기 주스를 앞에 두고 군침을 삼키더니 이내 한 모금 들이켠다. 붉은 생딸기 주스는 1초 만에 사라지고 빈 컵을 빨대로 ‘삑삑’ 소리가 날 때까지 빨아들인다.
“어? 이건 뭐야! 장식용인가?”
컵에 장식용으로 꽂아놓은 생딸기 하나. 살짝 들어올리더니 입 안으로 넣는다.
“너도 먹어봐! 정말 맛있거든. CF계의 ‘남자 이영애’인 내가 또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뽑아간 질문지를 한켠에 두었다. 질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 이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가 들려준 세 편의 어른 동화 이야기
첫번째 이야기는 어느 바에서 벌어진 일이야.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들어왔어. 바텐더에게 위스키 한 잔을 시켰지. 그리곤 이렇게 말했어. 내가 한쪽 눈알을 빼서 이빨로 깨물면 내게 5불을 주슈. 반대로 그렇게 못하면 내가 5불 내리다. 바텐더는 어안이 벙벙했지. 이놈 머리가 돈 거 아냐? 생각하고 바로 내기를 걸었어. 자! 여기 5불 있소. 그러자 그 남자가 갑자기 뒤통수를 딱 치더니 오른쪽 눈알을 빼는 거야. 깜짝 놀라보니 의안이었지. 그 의안을 입 속에 넣어 살짝 깨물었다구. 결국 5불을 빼앗기고 말았지.
바텐더가 황당해하자 그 남자가 만회할 기회를 주겠노라며 반대로 왼쪽 눈알을 빼서 이빨로 깨물면 5불을 주겠다고 하는 거야. 바텐더는 양쪽 눈알이 모두 의안이면 장님인데 그런 것 같진 않거든. 그래서 또 내기를 걸었지. 그러자 그 남자가 이번엔 뒤통수를 치더니 틀니를 꺼내서 눈에 가져다 대는 거 있지.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바텐더가 씩씩대니까 그 남자가 약간 미안해하는 얼굴로 다시 한번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어. 외국 바에 가면 맥주잔을 주문한 손님 앞으로 직접 가져다주지 않고 슬라이딩하잖아. 탁자 위에 올라서 있을 때 바텐더가 빈 맥주잔을 가랑이 사이로 슬라이딩해 달라는 거야. 그 안에 오줌을 싸서 가득 채우면 50불을 주겠다고.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 바텐더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하자고 했지.
말이 끝나자마자 그 남자가 탁자 위에 올라섰어. 바텐더는 가랑이 사이로 잽싸게 맥주잔을 슬라이딩했지. 남자는 한 방울이라도 더 오줌을 넣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어. 하지만 그게 맘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거든. 그 남자의 오줌은 탁자 위에 마구 뿌려졌고 잔 안엔 오줌이 반도 안 찬 거야. 그 광경을 보고 바텐더는 신이 났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 거야. 그 남자는 탁자에서 내려오자마자 50불을 바텐더에게 건넸어.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지. 내가 저쪽에 앉아 있는 손님과 내기를 했소. 내가 탁자 위에 오줌을 마구 싸도 바텐더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면 100불을 내놓으라고. 난 당신에게 50불을 주고도 50불을 번 거지(하하).
두번째 이야기는 삼순이랑 삼식이가 나눈 대화지. TV를 보다가 ‘헤드라인 뉴스’라는 단어를 들은 삼순이가 오빠에게 물었어. 오빠 헤드가 뭐야? 그러자 삼식이가 말했어. 그건 머리지. 오빠 그럼 라인은 뭐야? 그건 선이지! 삼순이가 갸우뚱하며 물었어. 그럼 헤드라인은 뭐야? 곰곰이 생각하던 삼식이가 말했지. 그건 가르마야!(하하)

세번째 이야기는 실화거든. 일이 있어서 남영동에 갔어. 점심시간인데 배가 고픈 거야. 마침 옆에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지. 메뉴판엔 설렁탕, 곰탕, 영계백숙이 있었어. 영계백숙을 보자 갑자기 영등포에 사는 누이가 생각났어. 그래서 택시를 탔지. 도착하고 보니 차비가 없는 거야. 치비가 없다고 하자 택시운전사가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면서 경찰서로 데려갔어. 경찰서에 가니까 왜 여기 왔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지. 남영동에 일이 있어서 갔거든요. 점심시간인데 배가 고픈 거예요. 마침 옆에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어요. 메뉴판을 보니 설렁탕, 곰탕, 영계백숙이 있더라구요. 영계백숙을 보자 갑자기 영등포에 사는 누이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택시를 탔죠. 도착하고 보니 차비가 없는 거예요. 차비가 없다고 하자 택시운전사가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면서 경찰서로 데려왔어요. 경찰서 조사과에 가니까 왜 왔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남영동에 일이 있어서 갔거든요….
그의 남영동 사건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똑같은 이야기를 5번 듣는 동안 한참을 웃느라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는 더욱 정색을 하며 말꼬리를 이어갔다.
그 사이 나쵸 요리가 나왔다.
“나쵸 요리만 주는 건 저를 두 번 죽이는 거예요. 시원한 건 이만큼 주세요.”
눈치 빠른 식당 직원이 맥주를 가져왔다.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말수를 줄이며 인터뷰에 응했다.
“세상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염세주의자였다. 가난한 성장기를 보낸 탓에 젊은 시절의 기억은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슬픔과 고뇌란 프리즘을 통해 또다른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그는 행복과 기쁨만 좇는 이 세상에 어둡고 무거운 감정을 던져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쓴 동화는 눈물겹다. 동화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구절인 ‘역경과 슬픔 그리고 실망이 도덕적 정신력을 발전시킨다는 이론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남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염세주의자를 믿지 않습니다’을 이용해 그의 염세주의적 발상에 반문했다.
“물론 그것도 이해합니다. 다만 저는 슬픔을 아는 인생을 통해 피하려만 하지 말고 책임감과 의무를 주고 싶습니다. 어두운 터널처럼 운명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냐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것을 주고 싶어요. 이 세상은 무서운 곳이거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어요. 혹시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내 아들이 힘들 때 나타나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에 눈물이 나곤 해요.”
모 기업에 입사한 스무네 살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시간이 어느 순간보다도 행복하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은 아들의 연수중이었기에 그동안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인터뷰 도중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다가 만다. 일주일 동안 고생한 아들이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 한다. 그는 아빠의 유명세 때문에 아들의 생활에 변화가 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조차 거론하길 거부했다.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고 있는 그에게 2주 동안 금주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걸 무척 좋아하는 그에게 ‘금주’는 지키기 힘든 규제다. 그는 금주를 못 지키는 것에 대해 “정학 맞을지도 모른다”는 표현을 했다. 아내에게서 받은 경고의 메시지가 떠오른 모양이다.
그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사랑에 관한 멋진 정의를 연이어 말한다. 라디오 진행중 한 청취자에게 받은 사연을 외우고 있었다.
“우연히 받은 사연인데 문득 떠오르곤 해요. 여덟 살짜리가 사랑을 정의한 대목이 있더라구요. 사랑이란 ‘고모! 사랑은 누군가 쿵쾅쿵쾅 내게로 뛰어와서 쾅 하고 부딪치는 거야. 그러면 정신이 하나도 없잖아’라는 내용입니다. 전 이만큼 감각적으로 사랑에 대해 정의해놓은 구절을 본 적이 없어요.”
매번 그의 작품을 지켜보는 아내는 냉철한 비평가다. 충실한 조언자이길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색은 안 해도 남편이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기뻐하며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번 동요 동화집에 대해서도 아내는 찬사를 보냈다. 풍부하고 따뜻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김창완은 연기, DJ, 프로듀서, 가수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이 많은 활동이 거의 비슷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색다른 작업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곡의 ‘필(feel)’은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온다고. 그럴 때면 카페나 차 안에서 문득 다가온 열정을 쏟아낸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 공간은 어떨까? 그는 설명하다 말고 필기구를 찾는다. 그러고는 자신의 방을 자세히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 평면도를 그릴 때 창문, 방문을 나타내는 기호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오디오 세트와 책꽂이, 러닝머신, 소파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방 한가운데 엎드려 ‘콩나물’을 그린다고. 그는 그곳에서 꿈을 그린다고 했다.
“이 책과 음반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내 마음속 풍경화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이 노래들이 어린이의 깨끗한 마음에 예쁘고 고운 그림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가수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앨범 출시 전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는 이야기. 혹시 그런 징크스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참 동안 기자를 쳐다보다가 말을 꺼낸다.
“신기한 징크스가 있어요. 제가 앨범을 냈을 때 최씨와 서씨 성을 가진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 앨범이 잘 팔려요. 신기하죠! 그런데 ‘대박’ 나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강씨 성을 가진 취재기자와 사진기자가 동시에 오면 완전 ‘대박’이 난답니다.(하하)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대박도 강씨와 의 인연 때문이거든요. 제 안사람 성이 강씨랍니다~.”
김창환과의 만남은 너무도 즐거웠다. 그래서 그의 동요 동요집은 분명 대박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강예지 자료 제공 / 「개구쟁이」(문공사) 장소 협찬 / 카후나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