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사님들을 뭐라고 칭해야 할까? 방송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입담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여사님들의 수다 자리에 동석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전화통화 하는 사이라는 여사님들. 불과 30분 후에 만날 약속을 해놓고도 곧 확인 전화를 건다는데… 잠시라도 수다를 떨고 싶어 아예 집 앞으로 차를 몰고 가 약속 장소까지 동행한다는 전원주, 여운계, 선우용녀 여사님들의 수다 속으로!

“장사와 연예계는 경쟁과 시기 속에서 극도의 좌절감을 맛봐야 하는 험난한 곳”이라고 말하는 세 여사님은 서로에게 엄마 품과 같은 ‘안식처’가 되곤 한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고 전화로 수다 떠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여사님들. 눈빛만 봐도 속내를 알 수 있다는 여사님들과 재미난 수다 ‘한판’을 벌였다.
여운계(이하 여) 대단해. 우리가 이렇게 한자리에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지. 덕분에 셋이 만나게 돼서 즐겁긴 해.
선우용녀(이하 선우) 호호. 맞아.
전원주 (이하 전) 하긴 우리가 바쁘긴 무지하게 바쁘지(깔깔, 통쾌한 그녀 특유의 웃음).
담당기자 (이하 강) 세 분 모시기 쉽지 않았어요. 제가 중간에서 비서 역할 좀 했죠. 세 분 스케줄을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까요.
여 억척스럽게 전화를 해대더라구. 나 놀랐잖아. 이게 15년 만에 잡지 인터뷰거든. ‘대장금’으로 떴을 때도 인터뷰는 안 했다구. 난 나서는 거 싫어하거든. 너네도 알지! 그런데 이번엔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물론 한꺼번에 얼굴 볼 수 있다니까 그것도 재미있겠다 싶긴 했지만.
전 배고프다. 빨리 먹자. 난 배고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
강 코스 요리로 주문해놨거든요. 괜찮으시죠?
모두 그럼. 그럼!
전 우린 소식하거든. 건강을 위해선 소식이 최고야. 그 대신 자주 먹지. 그리고 난 튀김 요리는 절대 안 먹어. 음식 중 에서 제일 나쁘다고 하더라구. 복부비만의 최대 요인이 튀김, 흰쌀, 밀가루래. 고기 먹고 싶으면 삶은 고기를 먹으면 좋고.
강 세 분 모두 건강해 보이세요.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전 난 15년 동안 인삼을 먹었어. 홍삼농축액, 인삼 끓인물, 골고루 매일 한두 번씩 꾸준히 먹었지. 그래서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이날 이때까지 사나 봐. 추위도 안 타고 입맛도 좋고.
선우 운계 언니는 강단이 있어. 뼈만 있는 것 같은데 얼마나 강한지 몰라. 난 감기 때문에 요즘도 고생이야.(이때 비타민 C를 꺼내 먹는다)
여 야! 그거 이 시간에 먹으면 효과 없어.
강 비티민 C는 오전에 먹는 건가요?
선우 난 몰라.
여 오전에 먹는 거 맞아.
전 대충 살아. 오전에 먹든 오후에 먹든 다 몸에 좋아.

전 환장할 노릇이네.
여 내가 화가 나서 녹음기를 샀지. 다른 것도 아니고 룸살롱이라잖아.
선우 우리 때는 룸살롱, 커피숍은 다 이상하게 봤어. 몸 파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한 거지 뭐. 누구를 시켜서 녹음기를 주머니에 넣고 룸살롱에 찾아가 손님인 척하고 “여운계씨 맞아요?’”하고 물어서 진짜라고 하면 고발하기로 작전을 짠 거야.
강 그래서 혼쭐을 냈나요?
여 아니. 거기 갈 남자를 못 구했어. 그렇다고 남편을 보낼 순 없잖아. 녹음기는 사용도 못하고 돈만 날린 거지 뭐.
모두 하하하.
여 아까 여기 오는데 어떤 여자가 나를 붙잡고 자기 엄마 닮았다고 울더라. 자기 엄마가 나랑 똑같대. 그 여자는 자기 엄마를 안 닮았는지 얼굴이 동글동글하더라구. 나는 길쭉하잖아. 자기 엄마 본 거 같다며 막 울더라구.
전 그래서 어떻게 했어?
여 나도 같이 울었어.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니까. 모르는 사람끼리 길거리에서 그냥 운 거야. 나도 그런 경험이 있거든. 우리 엄마가 키가 작았거든. 키 작은 여자만 보면 엄마가 생각나.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은 거야. 엄마랑 비슷한 행동을 하는 여자만 봐도 속으로 ‘엄마’ 하고 불러보고 그랬다고. 전 우리 엄마는 무척 엄하고 강했어. 난 무척 소심했거든. 지금이야 목소리도 크고 억척스러워 보이지만 옛날엔 목소리도 개미 소리 같았어. 성격도 소심한데다 맨날 가정부 역할만 맡으니까 더 주눅이 들더라구. 내 별명이 ‘전쭝얼’이었잖아. 난 우리 엄마 생각하면 혼난 기억밖에 없어. 많이 맞았지. 그래서 내가 우리 아들 안 때렸잖아. 난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거든. 우리 엄마가 “저거 웃긴 년이네. 얌전하게 말 잘 듣는 척하더니 뒤통수 치네” 하며 몹시 속상해하셨지.
선우 우리 엄만 아직도 살아 계셔. 여든아홉이야. 근데도 정정해. 그리움 같은 건 잘 몰라. 두세 달에 한번 전화 드리는데 뭐. 전화하는 날은 연달아 서너 번하고 안 하면 쭉 안 해. 전화로 할 말이 없어. 난 용건만 간단히 해.
여 용녀는 누구한테든지 용건만 말하고 끊어버려. 하늘이 파랗네, 개나리가 피네, 이런 거 없어. 용건만 말하고 끝이지.
선우 난 쫑알쫑알거리는 거 싫어.
전 내 별명은 ‘쭝얼’이었다!
여 누가 뭐라고 했나! (하하하) 용녀가 저렇게 자기 멋대로 행동해도 미움 안 받는 건 맨날 생글생글 웃기 때문이야.
선우 우리 식구들 자체가 눈이 웃어. 우리 오빠 봐. 생글생글 웃고 다니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섭섭한 얘기를 해도 오해를 안 사. 난 싫고 좋은 게 분명했는데 나이 드니까 둥글둥글해지더라.
여 얼굴 예쁘니까 그런 거야. 항상 오냐 오냐 공주같이 떠받드니까 그런 거지. 난 얼굴이 못생겨서 꿈도 못 꿔. 그래서 옷이라도 잘 입어야 해. 안 그러면 못 봐줘. 화장도 꼭 하고. 원주는 피부라도 좋지. 얼굴 예쁜 용녀는 요리도 잘해.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다 배운 거야. 김치를 담았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용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 난 먹을 줄만 알고.
강 세 분 모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사셨을 것 같은데 놀랍네요.
전 무슨 소리야. 우리 진짜 고생 많이 했어. 일하면서 짬짬이 집안일하고 자식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도 하고… 우리 때는 연예인들 가난했거든.
선우 운계 언니는 대단했어. 요즘 여자들 같으면 벌써 바이바이 했지. 아저씨 공부하러 외국으로 가셨을 때 뒷바라지 다 했잖아. 그때는 우리 셋 중에 나만 차가 있어서 내가 환송대 올라가서 손 흔들어주고 그랬어. 한 5년 가 계셨나? 언니 아들이 못 알아봤으니까.
여 이상한 남자가 온 거지 뭐.(하하하)
(이때 선우용녀 자기 가방으로 귀를 기울인다)
여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가리키며)저기서 음악이 나오는데 니 가방은 왜 보냐! 너도 늙었다. 하하하.
강 연예인이기 때문에 화가 나도 사위나 며느리에게 퍼붓지 못하고 그러진 않나요?
전, 여, 선우 (동시에)우린 그런 거 없어!
선우 집에 들어가면 엄마지.
여 그럼, 빤스 입고 왔다 갔다 할 정도지만 우리가 맘이 약하긴 해. 그냥 평범한 엄마지 뭐.
선우 언니 딸은 치과의사. 사위도 치과의사. 누가 교수지 사윈가? 아니다. 언니 남편이 교수지!
여 아들은 은행 다녀. 지금은 모 카드 회사 다녀. 미국에서 MBA 수료하고 돌아와서 1년쯤 데리고 살았어. 가르치려구. 지금은 분가했어.
전 난 큰아들은 태국 가서 건축업 하고 작은아들은 여기 있어. 둘 다 결혼했지. 둘째 아들네 손주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끼가 많아. 지금은 공부하러 캐나다에 갔어. 난 반대했는데 며느리가 보내더라구. 요즘 애들 불쌍해. 어린 나이에 엄마 품을 떠나 살아야 하다니… 영수증은 나한테 가져오지. 내가 보태준다고 먼저 이야기했거든. 지들이 뭔 돈이 있겠어. 그랬더니 바로 ‘예’하고 가져오던걸.
강 시집살이는 안 시키세요?

여 우린 나가서 풀잖아. 집에서 뭐 하러 그래. 난 학창 시절부터 너무 허리띠를 졸라매서 그런지 요즘 젊은 애들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는 모습 보면 좀 부럽더라. 솔직히!
선우 그래?
여 열세 살 때 전쟁을 겪었거든. 너무 없는 환경에서 성장을 했지. 절약하는 게 몸에 뱄어. 쓸 만한 거 버리는 건 용서가 안 돼.
전 운계의 그런 면이 너무 맘에 들어. 나 가정부 역할하면서 힘들 때 심적으로 얼마나 힘이 돼줬는지 몰라.
선우 이 언니는 음식 남으면 싸 가지고 가. 며느리가 싫어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게 맘이 편한가 봐.
여 난 용녀한데 옷도 물려받아. 애가 입는 옷 좋은 거거든.
선우 내 거 안 좋은 건데도.
여 지가 입다가 싫증났을 때 달라고 하면 줘.
전 난 옷 사 입는 것도 아깝거든. 그럴 때마다 운계가 난리야. 몸매 관리랑 이미지 관리는 연예인의 목숨과 같다나. 지금 이 옷도 운계가 이젠 그만 입으라고 난리치는 건데 자주 입어.
여 방송국에서 만날 때마다 매번 같은 옷이야. 너무 하잖아. 내가 뭐라고 좀 했지. 난 원주가 옷 입는 거랑 껌 씹는 거 제일 맘에 안 들어. 입은 좀 커! 하하하.
강 취미는 없으세요. 요즘 연예인분들은 골프는 기본이라는데…
전 우린 술도 안 먹고 오로지 노래 불러. 화투도 안 좋아해. 골프는 칠 줄도 몰라. 용녀는 할 줄 아는데 필드에는 안 나가. 너무 비싸잖아.
선우 골프 그거 일주일에 한두 번 나가선 운동도 안 돼. 너무 비싸고. 대신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면 되잖아. 우린 뭐니뭐니해도 일 중독자들이야.
여 우린 여행을 좋아해. LA, 하와이… 원주 언니랑 같이 행사 겸해서 가지. 우린 안 가본 데가 없어.
강 재미있는 일 없으셨어요?
선우 하와이 갔을 때 해변에서 달리기 대회를 했어.
여 (하하하)그 사건! 와이키키 해변에서 뜀뛰기를 한 거야. 누가 이겼을 것 같아?
강 여운계 선생님!
선우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 워낙 체력이 강하니까. 그때 내기를 했어. 꼴찌가 밥 사주기로.
여 놀랍게도 원주였어. 그 짧은 다리로 달리는데 끝내줬어. 모래사장에 발이 푹푹 빠져서 내 맘대로 속도가 붙지 않는데 요만한 다리로 냅가 달리더라구. ‘출발’ 했는데 벌써 저만큼 가고 있어. 제일 건강해.
전 난 아침마다 등산하거든. 요즘엔 바빠서 못 가지만. 난 산이 좋더라구. 더 웃긴 얘기 생각났는데 해줄까? 운계가 박치야. 노래를 하면 박자 따로 음정 따로 불러. 어디 행사장 갈 때마다 장기자랑을 시키잖아. 할 게 뭐 있어! 그저 노래나 불러야지. 그럴 때마다 운계는 고민인 거야. 매번 벌벌 떨면서 무대에 서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당당히 무대에 오르더라구. 알고 봤더니 학원을 몇 달 다닌 거야. 칼을 간 거지. 그러니 무대에 얼마나 서고 싶었겠어. 그때가 무슨 초파일 기념 행사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운계가 ‘호랑나비’를 부르기 시작한 거야. 학원 선생도 그렇지, 좀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해주든가 하지 말이야. 한복을 입고 어깨춤을 추면서 ‘호랑나비’를 부르는데 배꼽 빠지는 줄 알았지 뭐야.
모두 하하하.
여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원주에 관한 웃긴 이야기해줄까. 여행갈때마다 신주단지 모시듯이 홍삼말린거 가지고 다녀. 딱딱한 홍삼을 손톱 절반만한 크기로 잘게 잘라서 통에 담아오거든. 아주 금덩어리같이 다뤄. 남몰래 손으로 가려서 하나씩 주고 그랬어. 멀미 안 난대. 많이 주지도 않아. 얼마나 생색내는지 말도 못해.
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서 초청한 적이 있었어. 내 자리가 이희호 여사 바로 옆자리더라구. 나 무척 긴장했거든.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 뭐. 근데 저쪽에 앉은 운계는 난리가 났어. 아예 코를 박고 음식을 먹고 있더구만. 오물오물거리며 음식을 씹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며칠 굶었나봐. 청와대 음식을 언제 또 먹어보겠냐 이거지. 아무튼 남기는 꼴을 못 보는 성미니까.
여 난 물건값도 막 깎아. 백화점 가서도 가격 흥정을 하니 말 다했지 뭐.
선우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깎아달라고 난리야. 결국은 깎고 말지.
전 한번은 운계네 집에 갔는데 크리넥스 티슈를 꼭대기에 올려놨더라구. 아깝다고 두루마리 휴지만 쓰라는 거야. 지독해. 종이컵도 한번 쓴 건 절대 안 버려. 운계가 쓰던 종이컵에 뜨거운 물 받아먹다가 손 화상 입었잖아. 그러니 잘사는 거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 해. 그렇게 덕을 쌓고 사니까 ‘대장금’에서 좋은 역이 주어지나봐. 진짜 웃긴 건 아직도 휴대폰 컬러링이 ‘오나라~가나라~’야.
모두 하하하.
강 카메라 앞에 서면 아직도 긴장되세요?
선우 난 그 전날 잠도 못 자. NG에 대한 부담감이 크거든. 후배들도 많은데 내가 잘 해야 하잖아.
여 난 그런 건 없어. 지들도 내 나이 돼봐. 뇌세포가 죽어가는데 어떻게 NG를 안 낼 수가 있어. 난 그런 면에선 아주 뻔뻔해. 일부러 NG를 내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걸 어쩌란 말이야. 그래도 NG 내고 나면 속상하긴 해.
선우 시트콤이 제일 긴장돼. 한번 대사를 까먹으면 완전히 잊어버리거든.
전 난 내일부터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거든. 그것도 대사량 무지 많더라. 그동안 오락 프로그램이나 토크 쇼에만 나가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때마침 제의가 왔길래 하겠다고 했는데 좀 긴장되네.
강 의외네요. 무슨 일이든지 시작한 지 수십 년이 흐르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대중들한테 평가받는 직업이라 쉽지 않나 봐요.
전 젊었을 때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 가끔 일더미에 눌러 사는 내가 측은해져서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린 카메라 앞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아.
여 인생, 특별한 거 있겠어. 그저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하며 사는 거지.
선우 맞아. 오늘의 만남도 특별한 거야. 그 하나하나에 고마워하며 살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지.
강 세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글 / 강수정(객원기자) 사진 / 박남식 장소협찬 / 63빌딩 중식당 백리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