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합작드라마 ‘북경 내사랑’의 히어로 김재원

한중 합작드라마 ‘북경 내사랑’의 히어로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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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갇혀(?) 지낸 6개월, 평생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살인미소‘ 김재원이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KBS와 중국의 CCTV가 야심 차게 준비한 최초의 한중 합작 드라마 ‘북경 내사랑’. 우여곡절 끝에 햇수로 3년 만에 완성된 이 드라마를 통해 그는 끈끈한 동료애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낯선 땅에서 조금 더 깊어진 미소를 가지고 돌아온 김재원을 만났다.

“촬영기간이 길어서 ‘털모자’ 헤어스타일을 고수했죠”

노란 곱슬머리를 한 웬 더벅머리 총각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났다. 익숙한 미소는 여전한데 삽살개 마냥 굽슬굽슬한 헤어스타일이 영 낯설기만 하다. 게다가 군데군데 탈색마저 돼서 얼룩덜룩하기까지 하다. 늘 말끔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던 예전의 김재원(23)이 아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씩 웃는다.

“머리가 꼭 털모자 같죠? 중국에서 지낼 때 머리가 많이 탈색됐어요. 석회수라서 그렇대요. 처음엔 좀 부담스럽겠지만 계속 보다 보면 아마 익숙해지실 겁니다.(웃음)”

흘러내린 앞머리에 눈이 살짝 가려지면 정말로 삽살개와 비슷하다. 아닌게 아니라 어찌 보니 좀 귀엽기도 하다. 하긴, 어지간하면 그 살인미소로 다 커버되게 마련이다.

중국 현지의 촬영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촬영이 지체될 때가 많았다. 가령 열 신을 찍어야 한다면, 우선 다섯 신을 찍고 나서 한 서너 달 후에야 나머지 다섯 신을 촬영해 연결하기 십상이라는 것. 그래서 헤어스타일을 그 상태로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단다.

‘북경 내사랑’은 20부작 미니시리즈로,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아 KBS와 중국의 CCTV가 공동 기획한 첫 한중 합작 드라마다. 전체 내용의 80%를 중국에서 촬영했고 더빙 등 후속 작업을 거쳐 중국에서는 6월 초부터 매일 방영될 예정이다.

김재원이 연기하는 극중 나민국은 ‘한국전자’라는 굴지의 재벌 기업 2세다. ‘날나리’ 외아들을 사람 만들겠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나민국은 강제로 중국 베이징에 버려지고,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당당히 홀로 서게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이 과정에서 나민국은 순종적인 중국 여성 양설(쑨 페이페이)과 당찬 커리어우먼인 한국인 여성 정연숙(한채영)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한중 합작 드라마답게 넘어야할 장벽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양국 배우들과 스테프들 간의 언어장벽도 문제였지만, 곳곳에서 촬영을 제지하는 중국 공안들을 만나면 사태는 좀 더 심각해졌다. 한창 촬영을 하다가 전 스테프가 도망을 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촬영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한 신을 찍더라도 거의 스무 시간 이상씩 걸리기 일쑤였다. 주어진 시간에 촬영을 마쳐야하는 데다, 상황에 따라 촬영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관광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촬영이 없을 땐 마치 호텔에 강금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단다.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중국 음식에 적응하는 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한 두 달 지내다보니 그런 호텔 강금(?) 생활과 자극적인 중국 음식을 어느 정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TV를 켜봐도 온통 중국말뿐이니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인터넷이 되는 것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스테프들과 어울려 뒹굴 거리며 놀았단다. 나중엔 오히려 북경이 고향 같았다며 너스레를 떤다.

“나중에는 북경이 그저 내 고향이려니 싶던데요”

“중국에서 꼬박 6개월 동안 머물렀어요. 당시엔 참 고통스럽고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이지 싶어요. 절친한 벗,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6개월 동안 함께 극기훈련 떠나온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처음엔 너무 답답해서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어요. 근데 나중에는 중국에 있는 게 굉장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화도 안받아도 되죠, 메일 확인 안해도 되죠. 소도둑 같이 시커먼 남자들끼리 그 속에서 행복을 찾게 되더라구요.(웃음)

그동안 영화, 드라마 다 합쳐서 총 아홉 편에 출연했는데, 스테프들과 이렇게 친밀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촬영한 건 처음이에요. 요즘도 ‘북경 내 사랑’ 멤버들끼리 만나면 서로 ‘우리 언제 중국 한 번 다시 가야지’하고 말할 정도예요. 남자들이 군대 갔다온 얘기 평생 하듯이, 나이 들어서까지 그때 얘기를 할 것 같아요. 제 평생에 가장 추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너무 시간에 쫓겨서 촬영했다는 사실. 사전 제작 드라마인데다, 해외에서 거의 전량을 촬영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6부작 미니시리즈의 경우 보통 5개월 정도 촬영하는데, ‘북경 내 사랑’은 20부작인데다 80%이상 해외 로케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겨우 5개월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편당 약 1주일 정도밖에는 찍을 시간이 없었던 셈이다. 사전에 중국측 관련 기관과 약정한 기간이 있기 때문에 임의로 촬영 기간을 늘릴 수도 없었다.

“제한된 시간에 촬영을 진행하다보니 연기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거의 책 한 권 분량을 다 외워야 할 정도의 대사량이었거든요. 중국에서 방영될 것을 생각하면 함부로 애드립을 칠 수도 없었죠. 중국어로 번역될 때 문제가 생기면 안되니까요. 중국어요? 한채영씨는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외국어 습득 속도가 확실히 빠르더라구요. 발음도 훌륭하구요. 전 그냥 대본에 나오는 정도만 겨우 공부했죠, 뭐.(웃음)”

중국 배우들과는 촬영 당일에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 쑨 페이페이는 장쯔이가 졸업한 북경 무용학원 출신으로 최근 중국에서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신예 스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언어 소통이 쉽지 않아 다소 서먹했지만 쑨 페이페이가 워낙 언어적인 감각이 뛰어나서 통역 없이도 감독이나 상대 배우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한다. 중극측 남자 배우인 곽소동과는 처음 만난 날부터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 유덕화, 양조위, 주성치를 조금씩 섞어 놓은 듯한 인상이 한눈에 좋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다른 배우들이 질투할 정도로 둘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연기자는 경험으로 연기하는 것 같아요. 술 안 마시는 사람이 술 취한 척 하기 어렵고, 사랑 안해본 사람이 사랑 연기를 하는 건 힘들잖아요. 그래서 연기자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낯선 이국 땅에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물론 아쉬움도 많죠. 하지만 시청자들은 촬영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그냥 드라마만 보잖아요. 연기자가 몸이 아픈 상태에서 연기했다고 해서 실수나 부족한 부분을 시청자들에게 이해 받을 수는 없는 것처럼, 아무리 촬영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해도 그로 인해 생긴 부족함을 시청자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혹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해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박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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