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호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그의 사무실은 무척 분주했다. 수북이 쌓인 서류 뭉치가 눈에 확 띄었다.
새롭게 시작하고픈 마음에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

드라마 출연까지 겹쳐 겹경사가 났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할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럴 때면 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회사명은 아버지 이름을 딴 ‘장강’
시기가 그래서일까. 엔터테인먼트사를 시작한 허준호를 향해 “왜 사업을 시작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종종 있다. 배우가 하면 쉽게 망한다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혼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갑자기 시작한다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했다.
“지금의 주변 상황과 연결 짓지 마세요. 3년 전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던 사업이거든요. 이제야 번듯한 사무실 하나 꾸리고 동료들과 밤을 지새우며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첫 작품은 내년 5월경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는 드라마,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배우라면 한번쯤 도전하고픈 일들을 골고루 섭취한 만능 ‘배우’다. 그 누구보다 전 분야에 걸쳐 ‘감’은 풍부하다며 자신한다. 그래서 더욱 용기가 생겼고 자신감도 있었다. 자만심은 결코 아니다. 바닥부터 시작한 배우 생활에 겹겹이 쌓인 경험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다져지면서 품은 또 하나의 도전인 것이다. 회사명 하나 짓는 데도 몇 달이 걸렸다. 거듭된 생각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은 ‘아버지’라는 세 글자였다.
“연예인들은 경영에 약한 편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구요. 정도 많고 사람도 잘 믿다 보니 엉뚱한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하며, 결국 엄청난 이미지 손상을 입는 일을 겪기도 하죠. 그래서 아버지 존함을 크게 걸어놓은 겁니다. 책임감을 갖고 일하자는 취지에서요. 장난치지 말자는 거죠.”
미소를 띤 얼굴에 비장함마저 묻어난다. 이미 한두 차례 낭패를 당한 경험도 있다. 판단 착오로 생긴 문제였지만 큰 피해를 입진 않았다. 이런 일들이 있고 나서 꼼꼼히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무실에서만큼은 사업가의 강한 카리스마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은 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정한 회사명이 바로 ‘장강 엔터테인먼트’다. 엔터테인먼트사라면 흔히 매니지먼트사라는 색깔이 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엔터테인먼트사에 대한 개념은 달랐다.
“연예인 매니지먼트가 주된 업무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수출도 하는 굵직한 일들을 하는 것이 주 목적이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결정한 겁니다. 주로 뮤지컬 공연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내년 5월경, 뮤지컬 ‘겜블러’를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는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그에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일본에서 공연한 뮤지컬 ‘겜블러’. 일본을 진출할 당시엔 객석이 절반만 채워져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했다. 막상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연일 매진 행진이 이어졌다. 대박이었다. 상품성을 인정받은 그때의 기억은 그에게 충격적이었다. 충분한 가능성이 보였다. 자신감이 생겼고 그때부터 공연 기획의 매력에 빠졌다. 그때 떠올린 사업 구상이 드디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배우들과 함께 전세계를 누비며 공연을 펼칠 것이라는 꿈을 위해 커다란 보폭으로 한 발짝 내디딘 셈이다.
내년이면 연예계에 데뷔한 지 햇수로 20년째다. 사람으로 따지면 다져진 결과를 선보일 나이. 그는 3년 전부터 이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그가 상상하는 완벽한 미래 도안은 ‘뮤지컬 전용 극장’이다.
“국내 최초 뮤지컬 전용 극장을 지을 생각입니다.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용 극장 하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제가 이런 방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저를 믿고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성실한 모습을 보이려 고노력하게 됩니다.”
평생 ‘레슨’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외국의 유명 배우가 연기를 위해 평생 레슨을 받는다는 말에 동감한다. 이제 경영 수업을 받을 차례다. 꽉 찬 인생을 위해 경영 수업이 필요했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개인 지도를 받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있다. 한 가지에 몰두하면 헤어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한동안 서류 속에서 파묻혀 지냈다. 연기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는 ‘서류’와의 씨름. 감정이 메말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나리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연기파 배우인 그에게 작품은 끊임없이 도착했다. 사업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김수현 작가의 ‘러브콜’을 받았다. 처음엔 거절했다.
이제 막 시작한 사업에 전념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배역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이혼남이라는 설정이 두려웠다. 팬들 앞에 나설 면목도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한 달간 피해 다녔지만 결국 ‘운명’이라 여기고 받아들였다. 사무실로 직접 찾아온 이들의 제안을 거부할 순 없었다. 더이상 도망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결정한 드라마가 ‘부모님 전상서’다.

카메라 앞에 서면 신명나는 것이 배우다. 1년 만에 카메라 앞에선 그의 모습도 상기돼 있었다. 머릿속에 가득하던 고민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배우 허준호의 열정적인 모습만 남았다. 그는 드라마에서 사업에 성공한 성실한 남편이었지만 아내가 자폐아를 낳은 후 사업 실패란 악운까지 겹쳐 인생의 도피처를 찾아 떠도는 역할이다. 그때 한 여인과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이혼을 하는 ‘악역’을 맡았다.
“집에 계신 노모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얼굴 뵐 면목이 없어서 밤늦게 들어가서 새벽에 나옵니다. 지금으로선 충실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길밖엔 없습니다. 언젠가 제 마음을 이해해주실 날이 오겠죠. 그날을 위해 열심히 살 겁니다.”
구차한 변명을 하거나 두서없는 몇 마디로 상황을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너무 많다. 그 사실을 그도 아는 듯했다. 그저 주어진 운명을 따라 자신감과 나침반 하나에 의지해 길을 찾아가고 있을 뿐.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사는 그의 모습이 조금씩 밝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 강수정 기자 사진 / 이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