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개그맨 김구라가 드디어 떴다. 10여 년간 철저하게 무시해온 공중파 방송에서 그를 라디오 진행자로 앉힌 것. 사람들은 그가 방송에서 어떤 멘트를 날릴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설렌다. 하지만 당사자는 태연하다. “방송은 방송일 뿐”이라면서.
팝 음악 전문지에 칼럼 쓸 정도로 실력 갖춰

KBS-2FM ‘김구라의 가요광장’이 처음 방송되던 10월 18일,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어쩐지 부산하고 긴장감이 감돈다. 바로 ‘야인 개그맨’ 김구라(35·본명 김현동)가 공중파 방송에서 처음 DJ로 마이크를 잡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PD가 떨면 안 되는데, 마음이 진정이 안 되니까 이렇게 왔다갔다한다.(웃음)”(윤선원 PD)
PD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김구라의 힘(?)이 크다. 걸쭉한 ‘욕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언행으로 유명한 사람이 마이크 앞에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것이다. 하지만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스태프들도 김구라의 말발에 ‘키득키득’ 웃고 말았다. 스튜디오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중파 방송 DJ로는 처음이지만, 다른 방송을 통해 해온 일이라 두렵지는 않았다. 첫 방송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첫 방송 게스트로 나온 가수 이승환이 방송 도중에 “DJ들을 여러 명 만났지만 만만디 널브러져 있는 DJ는 처음 봤다”고 하자 그는 “떨면 내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떨고 있다”고 대답했다.
김구라는 사람들이 뭘 걱정하는지 안다. 사람들은 그가 문희준과 이효리에게 던졌던 독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방송에서도 그런 말을 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걱정이 기우일 뿐이란다.
“다른 라디오 프로보다 거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체질이고, 방송에 부적절한 단어도 쓰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의 특성상 정제해야 할 것은 가려서 쓸 것이다. 다만 부적절할 수 있는 단어가 상황을 설명하는 데 훨씬 좋다면 난 그 단어를 쓰겠다. 나의 미덕은 ‘할 말은 한다’이기 때문이다.”
그가 라디오를 진행하는 시간대에는 최화정과 정선희가 버티고 있다. 모두 강력한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잘나가는 DJ들이다. 김구라는 두 방송과의 차별성을 자신의 캐릭터와 음악적 지식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한다.
그의 꿈은 팝 프로그램 DJ다. 유명 연예인이 되면 DJ가 되기 쉬울 것 같아서 개그맨 시험을 봤을 정도다. 딴지일보 등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팝 음악 전문지에 칼럼을 쓸 정도로 실력자다. 그동안 재야에서 활동하는 실력 있는 뮤지션들과 인연을 터놓은 것도 DJ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방송에 게스트로 활동하면서도 언젠가는 기회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발탁이 됐다. 원래 팝 음악에 강한데, 가요 프로그램을 맡아서 어렵기는 하지만 별 두려움은 없다.”

출연료를 어음으로 받은 적도 있어
그가 KBS 라디오 프로그램 DJ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좋아한 사람은 아내다. 1993년 SBS 공채 개그맨이 되었을 때 그의 앞날은 장밋빛으로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방송은 10여 년간 그를 외면했다. 수입이 거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1997년 화촉을 밝힌 아내는 그를 묵묵히 지켜봐줬다. 아들 동현이를 키우면서 남편이 하는 일을 믿고 맡겼다. 이런 아내에게 드디어 월급다운 월급을 갖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 남편이 DJ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전화를 많이 해줘 요즘 너무나 좋아한다.
“거의 갚았지만, 빚이 조금 남았다. 결혼 후 수입이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빚을 졌고, 지금까지 갚고 있다. 케이블이나 인터넷 방송을 진행할 때는 어음으로 받기도 하고, 왜 돈 안 주냐고 전화로 따질 때도 많았다. 공중파 방송은 돈 나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니까, 그 점이 너무 좋다.(웃음) 내가 어떤 활동을 해도 아내는 잔소리 하나 없이 지켜봐줬다. 요즘은 주위에서 내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까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켰는데, 이번 기회에 어느 정도 갚은 것 같다.”
어렵게 생활하던 김구라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터넷 덕분이다. 김구라는 인터넷이 탄생시킨 스타다. 사람들은 김구라와 떼어놓을 수 없는 황봉알과 노숙자에 대해서 “나머지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자주 묻는다. 세 사람이 함께 나와 시끌벅적하게 노는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도 이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서로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 김구라는 DJ가 꿈이고, 황봉알은 연기자로 활동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노숙자 역시 이들과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김구라는 자신이 나머지 두 사람보다 기회를 먼저 잡은 것뿐이고, 그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으면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만나면 너무 반복되는 패턴 때문에 한계가 보인다. 서로 도움을 주고 활동하면서 각자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구라는 이번 방송을 준비하면서 게스트로 나가던 라디오 프로그램과 국군방송, 경기방송 DJ를 그만뒀다. 그래서 1년 이상 방송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일 거라고 말한다. 그는 3개월 내에 프로그램의 향방이 결정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메이저리거가 되더라도 내 마이너 기질은 버릴 수 없다. 10여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다른 방송에서는 맛볼 수 없는 통쾌함과 시원함을 전해주고 싶다.”
인터넷이 탄생시킨 스타 김구라. 그의 성공이 공중파 방송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다. 쭈욱~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지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