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영화 ‘말아톤’에서 강인한 어머니상 선보이는 김미숙

실화 영화 ‘말아톤’에서 강인한 어머니상 선보이는 김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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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엄마의 심정을 제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안타까웠죠”

중년의 나이에도 ‘아줌마’ 티가 나지 않는, 여전히 우아하고 지적인 배우 김미숙. 안정적인 연기력과 부단한 이미지 관리로 한결같은 모습을 간직해온 그녀를 이제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영화 ‘말아톤’ 촬영 현장에서 만난 김미숙은 이미 ‘억척엄마’로 변해 있었다.

“많이 우냐고요? 절대 울지 않아요. 강한 엄마니까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아침을 여는 라디오 DJ, TV 브라운관에서 지성미를 과시하는 탤런트, 배우 김미숙(46)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특유의 우아한 이미지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며, 그런 대중적 이미지는 많은 여성들의 아름다운 표상이 되었다. 79년 데뷔 이래 꾸준한 활동해온 김미숙은 이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최근 드라마 MBC-TV ‘사랑을 할꺼야’에서 푼수 엄마로 파격 변신한 그녀는 불혹을 넘긴 중년의 나이에 다시 한 번 열정의 스위치를 눌렀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아를 둔 엄마 역할을 맡아 맹촬영중인 그녀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실제로도 억척스럽고, 강인하며, 감정 절제에 능한 ‘독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라톤도 아니고 ‘말아톤’이라니 고개를 한번쯤 갸우뚱할 만하다. 자폐아를 소재로 한 영화 ‘말아톤’은 실화를 바탕으로 유쾌하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를 그려 나갈 영화 ‘말아톤’은 실제 인물이 일기에 ‘내일의 할 일 말아톤’이라고 적은 데서 착안했다. 김미숙과 함께 투톱을 이루는 조승우는 그녀의 자폐아 아들로 분한다. 스무 살 청년이지만 5세 정도의 지능을 가진 엉뚱하고 순진무구한 ‘초원’ 역이다. 김미숙은 초원이 가장 잘하고, 행복해하는 마라톤 완주를 위해 아들을 부단히 훈련시키는 강인한 엄마로 열연한다. 힘겨운 상황이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름다운 모성애가 감동적으로 그려질 이 영화는 내년 2월 개봉을 목표로 현재  30% 정도 촬영을 마친 상태.

가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땡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인천 송도에서는 수백 명의 엑스트라와 스태프들이 분주히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도착한 김미숙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선캡을 눌러 쓴 수수한 옷차림으로 아들 초원 역의 조승우와 촬영장을 지키고 있었다. 첫 장면은 김미숙이 마라톤 경주 도중 앰뷸런스에 실려온 사람을 보고 혹시 초원이 아닌가 싶어 황급히 앰뷸런스에 달려드는 장면. 몇 번의 NG 끝에 OK 사인이 떨어졌다.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된 촬영은 11시가 다가오자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어갔고 햇볕은 더욱 따가워졌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악전고투를 거듭한 끝에 마지막 장면 하나만 남겨둔 상태. 아들 초원이 마라톤 경기 출발을 앞두고 페이스 메이커에게 코치를 받는 장면이다. 김미숙은 조승우에게 “빨리 뛰면 돼, 안 돼?”를 거듭 물어본다. 몇 번의 NG가 나자 김미숙이 넌지시 감독에게 제안을 한다. “모자를 벗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감독은 잠시 생각하다, 김미숙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열띤 촬영 현장 속에서 그녀는 어느새 김미숙이 아닌 초원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조)승우는 아들이 아니라 상대역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들 초원 역의 조승우는 김미숙이 데뷔한 79년보다 한 해 뒤인 80년에 출생했다. 시쳇말로 새까맣게 어린 후배다. 김미숙과 조승우. 선한 생김새로 보나 차분한 분위기로 보나, 엄마와 아들이라고 하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캐스팅이다.

“조승우씨가 출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에너지가 대단한 배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바라볼 때는 편안하고 순수한 느낌이었는데 무대에서 내뿜는 에너지가 가히 충격적이었죠. 저런 배우는 아들이 아니라 상대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그녀의 말에 조승우가 부끄러운 듯 웃더니 “류승범, 이미숙씨가 출연한 ‘고독’을 볼 때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라며 한마디 거든다.

김미숙은 최근 ‘사랑을 할꺼야’를 통해 푼수끼 넘치며 발랄한 어머니상을 연기해 파격적 변신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역할 또한 자폐아 엄마라는 남다른 모성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뒤따른다.

“좋게 말하면 외유내강형이지만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인정머리 없는 독종 엄마예요. 자폐아를 자립시키려면 자기 감정을 용납하지 않는 냉철함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강인함 속의 따뜻한 모성을 표현하는 게 관건인데 쉽지는 않아요. 내재된 부드러움을 어떻게 끄집어내는가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실화를 다룬 영화인 만큼 실제 주인공들과의 교류도 있었는지 궁금했다. 



“자주 만나요. 어느 순간엔가 내가 과연 저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상황에 맞닥뜨린 적이 있어요. 자폐아 엄마의 모습 그대로를 살려낼 수 있을까, 그 엄마의 심정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오.”

갑자기 김미숙이 눈시울을 붉힌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엿보여 천상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하면서 느끼는 게 참 많아요. 비장애인에게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에 대한 감사함을 일깨워주고 싶어요. 또 그 감사함을 더불어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명감 내지는 열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게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소중하죠. 찍고 나면 바로 아쉬움이 남기지만요.”

이번 영화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이렇게 남달랐다. 자폐아 아들이 유일하게 잘하는 마라톤을 응원하고 훈련시키면서 희망을 일구는 엄마이기에 눈물 콧물 짜내는 최루성 연기가 꽤 많을 법도 한데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젓는다.

“우리 절대 안 울어요. 즐겁게 찍고 있습니다. 슬픈 영화가 아니라 따스함과 유머가 흐르는 영화거든요.”

코끝이 시큰해져서 눈가를 손으로 훔쳐내던 그녀가 금세 화사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어느새 우리가 늘 보아오던 우아한 김미숙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촬영장 밖에서도 조승우는 김미숙을 부를 때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만큼 두 사람은 다정한 사이가 됐다. 한번은 조승우에게 “담배 피웠구나, 머리에 뭐가 묻었네”라며 다정하게 털어주는데 다 큰 총각을 ‘더듬는’ 줄 안다며 억울(?)해했다. 엄마를 따라 촬영장에 온 ‘진짜’ 아들이 인터뷰 도중 갑자기 끼어들자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우리 아들 예쁘죠?”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답다.

글 / 김윤경(자유기고가)  사진 / 이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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