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과 편안함이 묻어나는 그의 웃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왔다. 언제라도 찾아가면 말 상대가 되어줄 것 같은 이웃집 아저씨, 임현식의 눈물… 35년간 연기 활동의 든든한 아군이었던 아내가 폐암으로 그의 곁을 떠났다. ‘조연도 주연보다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가 하루빨리 힘을 내기를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도 장례식장에 조화 보내와
‘동지 여러분, 생애 처음 겪는 고통과 공포의 자리에 함께 해주시고, 위로해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낸 지 2주 만에 방송국에 들러, A4 용지에 두 줄짜리 메모로 동료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끼기에 충분했다.
코믹 연기의 대가 ‘순돌이 아빠’ 임현식씨(59)의 사부곡(思婦曲)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지난 1월 폐암 진단을 받고 국립암센터에서 투병해오던 임현식씨의 부인 서동자씨(53)가 9월 29일 별세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방송가에 두루 알려졌기 때문에 이 소식을 들은 동료 연예인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빈소가 마련된 강북삼성병원 영안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29일 안재욱과 박형준, 정혜선, 남희석 부부, 차인표 등이 영안실을 다녀갔고, 영안실 주위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조화가 배달됐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을 포함해 연예기획사와 방송국에서 조화를 보내왔다. 노무현 대통령 이름으로 온 조화는 영정이 있는 빈소에 놓여 있었다.
10월 1일 오후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세 딸(남실, 금실, 은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임현식씨는 발인 준비로 영안실 밖에 있었다. 딸들은 빈소를 찾아온 조문객들을 차분히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미혼인 세 딸이 지키고 있는 빈소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슬픈 기운이 더했다.
10월 2일 오전 7시 30분. 발인 시간에 맞춰 핼쓱한 모습으로 임현식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정을 되찾은 듯 지인들과 함께 발인 절차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들은 발인 준비로 부산히 움직였고, 딸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발인은 천주교식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관을 장지로 옮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조문객과 가족들에게 모습을 보이자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통곡으로 가득 찼다. 임현식씨도 끝내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통곡을 하며 관을 뒤따르는 세 딸….
가족과 조문객들은 강북삼성병원을 떠나 고양시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지낸 후 집에 들러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장지인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선영에서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냈다.
장례식이 끝난 2주 후쯤 그에게 전화를 했다. 평소와 달리 활기차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동안 미뤄놨던 드라마 촬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요. 저 원래 마음속의 이야기 안 하잖아요.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물어보지 마세요. 우선 딸들과 잘 살아내야죠.”
그는 올해 스물여섯인 맏딸이 시집가는 것도 못 보고 떠난 아내를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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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서동자씨는 2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두 사람이 만난 계기는 송추에 있던 젖소 농장 덕분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그 농장은 야외 녹화를 다니면서‘ 농사짓고 소 키우면 탤런트 그만둬도 걱정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난 72년에 마련한 것이다. 단역만 주어지는 데 실망했던 것도 한몫했다.
“농장 덕에 무명에 가깝던 시절에 아내를 만날 수 있었어요. 몸과 마음이 좀 느슨해질 때 농장에 가서 땀을 빼고 나면 새로운 각오가 새록새록 생겨 삶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어 좋고요”라고 ‘농장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임현식씨는 아내와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가 어릴 때 겪었던 불운한 가정사로 인해 고통받은 기억 때문일까. 그의 부친은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고, 6·25 당시 신문사 기자였다. 하지만 전쟁 중에 홀연히 사라진 부친을 이후로 보지 못했다. 임현식씨는 한동안 연좌제 때문에 외국에도 나가지 못했을 정도다. 그가 가족에게 그토록 극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빛나는 조연’의 전형을 보여준 코믹 연기의 대가 임현식. 1969년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MBC 탤런트공채 1기로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암행어사’의 ‘갑봉이’ 역할과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아빠’로 조연배우가 주연배우보다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가 드라마에서 한마디 한마디 내뱉은 ‘애드립’은 드라마보다 더 유명할 정도로 조연 배우으 ㅣ한 전형을 보여줬다. 수더분하고 서민적인 연기로 수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온 그가 다시 힘을 내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원하고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이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