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프로 녹화도중 혼수 상태에 빠졌던 성우 장정진이 떠난 날

쇼프로 녹화도중 혼수 상태에 빠졌던 성우 장정진이 떠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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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떠났지만, 목소리는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던 성우 장정진씨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 처음으로 성우극회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질 만큼 동료나 선·후배나 그를 아끼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그랬기에 그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누구보다 컸다. 고인은 ‘최선을 다하는 성우다운 성우가 되겠다’는 약속을 30여 년간 지켰다.

동료들을 위해 솔선수범 하던 성우

‘가을이 오느라 저리도 갑자기 추워졌나’ 싶었던 날씨가 따뜻해졌던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한 사람이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는 허황한 마음을 포근한 날씨로 위로하려는 듯, 그는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을 배려했다.

‘달려라 하니’의 홍두깨 선생 목소리의 주인공 故 장정진씨(51)의 장례식이 지난 10월 15일 KBS 본관 앞에서 KBS 성우극회장으로 치러졌다. 오전 7시 30분쯤 이대목동병원을 출발한 운구차는 9시 경 KBS 본관 앞에 도착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선·후배와 KBS 임직원 등 2백여 명의 조문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고인의 노모와 아내 전명희씨, 아들 장세영·장주영은 장례식 내내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고인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된 장례식은 김환진 KBS 성우극회장의 영결사가 이어지자 이내 눈물 바다가 되었다.

“하늘이 내린 목소리로 울음과 웃음을 줬던 당신이 툭툭 털고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라며 김환진 회장은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어 고인의 친구들을 대표해서 나온 김용선씨는 “내년 어머니 팔순 잔치에 못다 한 효도를 할 것이고, 2010년 환갑 때 함께 여행을 해보자는 우리들의 계획은 어찌되는 것이냐”며 울먹였다. 조사를 듣던 노모가 눈물을 펑펑 쏟아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입사 동기 대표 안경진씨는 “정직한 사람으로 동료의 아픔을 앞장서서 해결해준 사람이었다. 당신의 귀여운 미소와 진실된 호탕함을 잊을 수 없다”며 울먹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조사가 끝난 후 고인을 위한 조시 두 편이 낭송됐다. 고인이 TBC 방송국 성우 시험을 보던 시절, 당시 시험관이자 전 KBS 라디오센터장인 시인 김선옥씨가 ‘당신의 이름 성우 장정진’이라는 조사를 했다. 그는 ‘성우의 명예를 걸고 뛰고 또 뛰었던 그래서 더 안타깝고 서럽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고인의 친구이자 시인인 박효석씨는 ‘그대를 떠나보내며’라는 조시를 썼고 성우 배한성씨가 대신 낭독했다.

조시 낭독이 끝난 후 고인이 출연했던 방송과 수상 장면을 모은 4분 정도의 영상물이 상영됐다. 고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싶은 가족들은 통곡을 쏟아내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TV 영상시대에 성우에게 이런 큰 상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성우다운 성우가 되겠습니다.”

2003년 K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 성우상을 수상했을 때 말했던 그의 소감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특히 후배들의 입지를 위해서 어려운 일도 마다 하지 않았던 고인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는 후배들은 연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줄 몰랐다. 수상 소감을 말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의 목소리만 남았다는 사실에 동료와 선·후배 성우들은 더욱 안타까워했다.

한 후배는 “일이 생기면 항상 솔선수범해서 해결하셨던 선배였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보상 문제에 대해 고인의 친구가 KBS 정연주 사장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정연주 사장은 운구차가 회사를 떠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성우극회장으로 치러진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고인은 성우들에게 깊은 믿음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국성우협회 이사와 KBS 성우극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성우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을 섰다. 마음이 따뜻했던 고인의 빈소엔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KBS 관계자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방송에 출연했던 구준엽, 홍록기, 이홍렬, 이용식, 구준엽 등이 조문을 했다.

장례식 후 장의행렬은 고인의 고향인 수원 생가를 들른 다음 장지인 충남 천안 공원묘지로 향했다.

고인은 지난 9월 13일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에서 진행된 KBS-2TV ‘일요일은 101%’ 추석 특집 녹화 도중 소품용 떡이 기도에 걸리면서 혼수상태에 빠진 지 1개월이 채 안 된 지난 10월 11일 오후 별세했다.

고 장정진씨는…

1952년 수원 출생. 1977년 명지대학교 졸업 후 그해 5월 TBC 방송국 15기 공채로 성우 활동 시작. 1980년 방송통폐합으로 KBS로 자리를 옮김. 1998~1999년 한국성우협회 이사를 역임했고, 2000~2001년 KBS 성우극회 회장을 맡았다. 2003~2004년까지 공주영상정보대학 연예연기과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TBC 성우상, KBS 연기대상 공로상, KBS 연예대상 최우수 성우상 등을 수상. 출연했던 방송으로는 ‘달려라 하니’ ‘정글북’ ‘호기심 천국’ ‘KBS 뮤직뱅크’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이 있다. 출연 영화는 ‘슈퍼맨 2’ ‘클리프행어’ ‘일급상인’ 등이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장태규

친구 시인 박효석이 고인을 기억하며 쓴 弔詩

그대를 떠나 보내며

그대가 떠나던 그날 밤

큰 별  하나  사라지듯

하늘도 뇌성벼락 치더이다

오래 오래  건강 유지해서

술벗 하자더니

맑은 하늘에  벼락치듯

웬 날벼락입니까

까까머리 고교 시절

나에게 술 배우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유명을 달리 하다니

도대체가 믿어지질 않습니다

좋은 성우가 되기 위하여

그대는 날마다 뒷산에 올라

몇 시간씩

피나는 발성 연습을 하였지요

그 결과 홍두깨 선생의  발성은

그대 노력이 일궈낸

정상의 극치였지요

전국을 홍두깨  선생으로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고서도

그대는 한 눈 팔지  않고

노력에 노력을 더하였지요

난 일찍이

그대의 인간성과 성실함과 진실함에 반하여

그대의 중매를 선뜻 나섰지요

그대의 선배로서  또한 중매쟁이로서

오랜  세월 끈끈한 교분을 쌓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는데

그대를 먼저  떠나 보내는 마음

어찌  말로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KBS 성우극협회의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며

시와 음악이 있는 밤을 착안하여

자신보다는 모두를  위해  살았던 그대

시와 음악이 있는 밤을 함께 하던 시간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대 먼저 훌쩍  가버리다니

저승에서는 다신 가학 프로에 나가지 않길

그대 먼저 떠나 보내며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살아 있음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내년 시와 음악이 있는 밤엔

그대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내

전명희의  시를

그대의 세영, 주영, 두 아들 앞에서

그대의 음성으로 낭송하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어찌하고

먼저 갔단 말입니까

한이  많겠지만

이왕  가는 길

극락으로 왕생하소서

그리하여 그곳에서 먼저  터를 닦고 있다가

후에 그곳 뒤따라가면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번  대취해봅시다

혹 그곳에서

그대의 사랑하는 아내

전명희를 다시 만나면

그곳에선 영영 이별하지  않을

중매를 다시 서리라

사랑하는 그대여

우리의 뇌리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을

그대의 음성

홍두깨  선생이여

부디 부디 편히  잘  가시라

사랑하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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