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깊이가 녹아나는 중년의 여배우 여운계vs김수미

삶의 깊이가 녹아나는 중년의 여배우 여운계vs김수미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중년의 두 여배우와의 만남은 수차례 공을 들인 끝에 이뤄졌다.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화사한 웃음을 띤 여운계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하세요”라는 활기찬 인사와 함께.

레이디경향(이하 레이디)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점심식사는 하셨어요?

여운계 네, 먹었어요. 근데 아직 커피를 못 마셨는데 혹시 커피 있어요. 나 프림, 설탕 다 넣은 ‘다방 커피’ 좋아하는데….

레이디 물론 있죠. 다 들어 있는 걸로 한 잔 드릴게요.

방송국에서 스쳐 지나가듯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인사하는 자리는 처음이다. 브라운관보다 한참은 더 젊고 화사해 보이는 중년의 여배우를 위해 맛있는 차를 만드는 동안 그녀는 메이크업을 고친다. 톡, 톡, 톡 파우더를 두드리고 립스틱도 다시 바른다. 오늘의 촬영이 조금은 설레는 모양이다. 안경을 벗고 아이섀도도 새로 바른다. 마치 생전 처음 사진 촬영을 하는 스무 살 새내기 여배우 같다. 이어 김수미가 들어선다. 호피무늬 숄을 두른 모습이 영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우아하다.

김수미 어머, 언니 언제 왔어? 나 안 늦었지? 언니는 어쩜 그렇게 부지런해요. 영화 촬영할 때도 만날 일등으로 오더니 오늘도 일찍 왔네. 차 마셨어요? 나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근데 나는 설탕은 안 넣어. 그냥 커피랑 프림만 넣는데….

한자리에 앉은 두 여배우의 모습은 자매처럼 친근해 보인다. 아마도 영화 촬영 내내 붙어 있어서인 듯하다. 이야기 속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젊은 연기자들의 대화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따사로운 속정이 묻어나는 현장. 사진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한 의상을 펼치면서도 서로를 챙긴다.



여운계 수미야, 넌 어쩜 그렇게 옷맵시가 좋으니. 입는 옷마다 네 옷이다. 몸에 착착 붙잖아. 너무 좋겠다.

김수미 무슨 소리야. 옷맵시야 언니가 나보다 좋지. 언니는 팔다리가 길어서 똑같은 옷을 입어도 우아해 보이잖아. 나는 키가 작아서 언니처럼 우아한 분위기는 안 나. 언니도 66사이즈 입지?

여운계 응. 근데 요즘 살이 좀 찌고 있어. 내가 목이랑 팔다리에 비해 속살이 많잖아. 운동해야 되는데 잘 안 되네.

영화 ‘마파도’ 촬영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는데 지난 11월 크랭크업을 한 후 두 달 만에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서 진심이 묻어난다. 한두 번 의상을 갈아입고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맞춰 포즈를 바꿔가던 두 사람은 드문드문 한마디씩 한다. “영화 찍는 게 낫지 사진 촬영은 진짜 못 하겠어”라고. 뭔가 꾸미고 만들고 갖다 붙이는 등 자연스럽지 않은 일에는 익숙지 않은 두 배우. 그래서 그들의 자태가 더욱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사진 촬영 후, 인터뷰를 위해 전망이 아름다운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언니, (이)정진이 걔 너무 멋지게 나오더라, 나 몰라봤잖아!

여운계 뭘 마실까? 몸에 좋은 거, 가만 있자~ 그래. 나는 따뜻한 우유 한 잔. 어머, 우유가 왜 이리 비싸. 슈퍼마켓에서 사면 5백원이면 되는데 이게 얼마야. 열 배네.

김수미 언니, 왜 이래. 가게 임대료 내고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뭐 있다고. 요즘 장사하는 사람들 저마다 다 못살겠다고 야단이잖아. 올해는 연말이 더 어렵대요. 경제가 살아나야 하는데 큰일이야. 가만 있자, 나는~ 녹차 한 잔 주세요.

레이디 두 분 선생님, 너무 재밌으세요. 영화 ‘마파도’ 하기 전에도 잘 알고 지내던 사이세요?

여운계 아니야. 나는 방송 생활 시작한 지 40년 정도 됐고, 수미도 그 정도 됐을 텐데 어쩐 일인지 한 번도 같은 작품에 출연한 적이 없어요. 그것도 참 별난 인연인 거 같아. 공연한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이야. 그래도 재밌었지?

김수미 언니랑 같이 연기해서 그런지 이번 영화는 진짜 너무 재밌게 찍었어요. 이런 영화라면 매일 촬영한다고 해도 또 출연하고 싶어.

레이디 두 분께서는 어떤 이유로 이번 영화에 출연하신 거예요?

김수미 나는 영화 촬영장이 섬이라고 해서 했어. 모든 촬영이 산이랑 바다에서 이뤄진다는 거야. 그것도 여름에 촬영한다는데 생각만 해도 좋더라구. 푸른 바다와 산속에서 연기도 하고 자연도 즐기고, 얼마나 좋아.

여운계 나는 특별한 건 없고 출연료 많이 준다고 해서… 하하하, 농담이고… 근데 진짜 출연료 물어보고 같이 연기하는 배우가 누군가 물어보고 결정했어. 김수미, 김형자, 김을동, 길혜연 거기다가 잘생긴 이정진이랑 이문식씨가 출연한다잖아. 그래서 두 번 생각 안 하고 오케이했지.

김수미 언니, 나 사람 잘 기억 못하는 거 알지? 얼마 전에 TV에서 어디서 많이 본 배우가 나오는 거야. ‘어디서 봤는데 누구더라? 눈매가 참 낯익은데 누구더라?’이러면서 드라마를 봤는데 그 배우가 (이)정진인 거 있지. 세상에… 석 달을 넘게 같이 촬영한 배우 얼굴을 보면서 ‘많이 봤다’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여운계 얘, 나도 정진이 봤는데 걔 못 알아보겠더라. 세상에 우리랑 촬영할 때는 꾀죄죄해 가지고 몸빼 바지에 러닝셔츠만 입고 있었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드라마에서 말끔하게 정장 입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너무 멋있더라. 촬영할 때도 정진이가 몸매는 좋았잖아.

김수미 그랬지. 우리 촬영할 때 분위기 너무 좋았잖아. 그 섬에 제대로 된 밥집이 없어서 식당차가 동행했잖아. 그러다가 한 번은 무인도에서 우리끼리 밥을 해 먹었잖아. 언니 그때 밥 진짜 많이 먹더라. 큰 양푼에 한 가득 담아서 반은 먹었을 거야. 언니 생각나요? 나는 우리 영화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 나는 일 꼽으라면 ‘무인도에서 먹은 밥’이야.

대나무 숲속에서 무릎 꿇고 먹던 밥, 진짜 꿀맛이었어!

여운계 하하하. 기억 나지. 무인도에 딱 한 부부가 살았잖아. 부부가 섬을 사서 거기서 사는 거야. 근데 우리가 촬영을 가니까 식사를 대접한다며 금방 밥을 해줬잖아. 우리가 촬영하다 말고 밭에서 풋고추를 땄지. 그게 반찬의 전부였어. 아 참, 풋동부 있었다. 그거 참 맛있었는데… (두 여배우는 ‘풋동부’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냥 풋동부라고 쓰면 다 안다며 ‘돈부’ 아니고 ‘동부’라고 강조했다. 또 기자의 수첩을 흘끔 보며 “‘풋동부’ 적었지?”라고 물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었나 보다.) 아무튼 된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랑 풋동부가 왜 그렇게 맛있던지… 그때 대나무 숲속에서 밥을 먹느라 똑바로 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

김수미 맞아. 우리 대나무 밭에서 무릎 꿇고 앉아서 밥 먹었잖아.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재밌어.

여운계 그때 된장찌개는 수미 네가 끓였지? 너는 음식 솜씨가 어쩜 그렇게 좋니. 부러워.

김수미 솜씨는 무슨… .

레이디 정말 김수미 선생님은 솜씨가 좋으신 거 같아요. 오늘 헤어스타일도 직접 하셨다고 하던데….

김수미 나 손재주는 없는데 유일하게 하는 게 머리 손질이야. 이 머리 5분이면 돼. 나는 미용실에 가서 앉아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그래서 내가 하다 보니까 늘었어.

레이디 여운계 선생님은 손맛보다 마음 맛이 더 좋으시잖아요. 좋은 일엔 다 쫓아다니시고 벌써 9년째 ‘연예인농촌돕기운동본부’ 부회장 직을 맡고 계시다고 하던데….

여운계 벌써 9년이나 됐나? 1995년에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됐구나. 나 혼자 하는 건 아니고 뜻 있는 연예인들이 모여서 만든 거지. 해마다 송아지 10마리씩을 시골에 보내는데, 2004년 송아지는 아직 못 보냈어. 연말 지나고 보내야지.

레이디 참, 김수미 선생님은 2005년에 책을 낸다고 하던데 어떤 책이에요?

김수미 「내 사랑 삼식이」라고 애견 책인데 누가 들으면 나 바람났는 줄 알겠어요. 삼식이가 남자 이름이잖아. 나는 삼식이가 진짜진짜 너무 좋아. 걔는 사람이라니까. 어떤 때는 사람보다 나아. 나는 개를 그렇게 많이 키워봤어도 삼식이 같은 개는 처음이야.

여운계 그래, 내가 잘 알지. 김수미의 삼식이 사랑… 얼마나 좋으면 영화 촬영할 때도 바다에 대고 삼식이를 불렀겠어. ‘삼식아, 엄마는 니가 너무 보고 싶다’ 그러면서 찔끔거리고, 촬영 끝난 다음에는 ‘삼식아, 엄마 지금 집에 간다’ 그러고. 암튼 촬영장에서 수미의 삼식이 사랑은 유명했어.

김수미 나 휴대폰에 삼식이 사진 있는데 볼래? 우리 딸이 삼식이 동영상이랑 사진도 여러 컷 찍어줬는데 내가 찾아볼 줄을 몰라. 그래서 그냥 메인 화면에 뜨는 거 이거 하나만 보는 거야. 나 지금도 삼식이 보고 싶어. 빨리 집에 가야겠다.

한동안 브라운관을 떠나 있던 김수미는 오는 2월부터 방영되는 시트콤에 출연할 예정이다. 한편 누구보다 바쁜 2004년을 보낸 여운계는 악극 ‘아씨’와 뮤지컬 ‘팔도강산’에 출연하며 색다른 모습으로 2005년을 시작할 것이라고. 20대의 화려한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중년의 원숙함과 자연스러움으로 중무장한 두 여배우의 희망찬 2005년을 기대해본다.

글 / 경영오 기자  의상협찬 / 이따리아나(548-7538)  사진 / 전영기

김수미(본명 김영옥) / 1951년 9월 3일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여성최고지도자과정 수료 / 취미 ­ 글쓰기, 원예 / 1970년 MBC 공채 탤런트 3기 / 1986년 MBC 연기대상 대상 / MBC-TV ‘전원일기’ ‘하나뿐인 당신’ 등에 출연했으며 2004년 영화 ‘위대한 유산’ ‘슈퍼스타 감사용’ ‘마파도’ 등에 출연했다.

여운계 / 1940년 2월 25일 출생 / 고려대학교 국문과 졸업 / 1964년 TBC 공채 탤런트, 데뷔작은 드라마 ‘눈이 내리는데’ / 1996년 SBS-TV 연기대상 특별상 수상 / MBC-V 드라마 ‘대장금’, KBS-2TV ‘오! 필승 봉순영’, SBS-V ‘파란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 등에 출연했으며, 영화 ‘마파도’에 출연,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영화 ‘마파도’ 스토리

1백60억원을 들고 잠적한 한 여자를 찾아 건달과 비리 형사가 지도에도 없는 섬으로 찾아든다. 이 섬에는 20년 동안 남자 구경 한 번 못 해본 다섯 할머니가 산다. 지도에도 없는 섬 ‘마파도’. 이곳은 공동 생산, 공동 분배, 공동 사역, 공동 소유의 체계가 확립되어 있다. 순박한 얼굴을 하고 두 남자를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로 생각하는 엽기 할머니들. 이들은 가공할 만한 내공을 발휘해 두 남자를 소처럼 부려먹는다. 다음 배가 들어오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무사히 섬을 빠져나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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