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사마’로 대표되는 일본의 한류 열풍은 이제 ‘붐’의 차원을 넘어 명실상부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흔한 말로 요즘 도쿄 시내에서 ‘욘사마 모르면 간첩’이다. 배용준, 최지우를 비롯해 보아, 원빈, 윤손하 등 우리나라 연예인들의 모습을 일본의 방송이나 거리의 광고 현판에서 만나는 일은 이제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었다. 덩달아 한국에 대한 관심도 연일 수직 상승 중이다. 한국영화가 대형 상영관에서 몇 작품씩 개봉되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도쿄의 한 외국어 학원에서 일본인들을 상대로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 강사 조정연씨(29)는 “3년 전에 비해 한국어 강좌가 다섯 강좌 이상 늘어난 상태”라며 “특히 배용준의 첫 방일 이후 이런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시류를 파악한 일본의 상품 기획자들은 발빠르게 갖가지 ‘욘사마’ 상품들을 기획, 판매하고 나섰다. 한류 잡지를 비롯해서 드라마 ‘겨울연가’의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극중 ‘준상’의 헤어스타일에 목도리 패션, 안경까지 쓴 ‘욘사마 테디베어’는 최근 80개 한정 판매에 무려 1만 명 이상 신청이 폭주하는 등 뜨거운 욘사마 열풍이 ‘장난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한류 열풍은 관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겨울연가’가 촬영된 남이섬이나 춘천의 ‘준상이네집’은 연일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특히 ‘준상이네집’은 지난 1월 유료화 이후에도 변함 없이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다시 한 번 한류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하루 관광객 200명을 훌쩍 넘는 ‘준상이네집’
설 연휴 직후인 지난 2월 11일, 춘천시 소양로에 위치한 ‘준상이네집’은 오전 10시부터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오후 4시까지 다녀간 방문객만 해도 족히 200명이 넘었다. 이미 상당수의 ‘욘사마’팬들이 다녀갔음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1인당 입장료가 5천원이니 하루 평균 입장료 수입만도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셈이다. 이들 대부분은 물론 일본인 관광객들로, 중년 여성들은 물론이고 젊은 연인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의 모습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100평 가까이 되는 준상이네집에서 실제로 드라마가 촬영된 공간은 안채에 딸린 10평 남짓한 별채뿐이다.
극중 준상이 고교 시절을 보낸 집으로 설정된 이 공간에는 준상이 연주했던 낡은 피아노와 차를 마셨던 작은 테이블을 비롯해서 소파, 침대, 책상 등이 꽉 들어차 있다. 이 곳은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미국인 장교 부부가 세 들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계속해서 관광객이 몰려들자 할 수 없이 이들을 내보내고 춘천시에 임대한 채 무료 개방하던 것을 지난 1월부터 유료화로 돌렸다. 현재 이곳에는 일본어가 가능한 세 명의 가이드가 안내를 맡고 있다. 이들 중 두 명은 상주 인원이고 나머지 한 명은 일주일에 삼일씩 두 사람이 번갈아 일하고 있다. 유료화 이후 운영이 전적으로 집주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이들 가이드 역시 집주인에게 고용된 인원이다.
상기된 표정의 여성 관광객들은 피아노 앞에 앉아 기념 촬영을 하고 소파에 앉아 드라마 장면을 이야기한다. 도쿄에서 왔다는 한 중년 여성은 피아노 앞에 앉아 ‘겨울연가’ 주제가를 연주하여 관광객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겨울연가’와 ‘욘사마’의 열혈팬들인 만큼 이들 대부분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공간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모습이지만 어딘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일단 공간이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5분 정도 둘러보면 충분하다. 가이드로부터 드라마 장면에 대해 설명을 듣거나 기념 촬영까지 하더라도 10분이면 충분하다.
드라마의 아름다운 영상미에 반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아무래도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인솔해 이곳을 방문한 한 한국인 가이드는 “솔직히 실망했다는 컴플레인이 심심찮게 들어온다”며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방문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고 귀띔했다. 춘천에서도 외곽지역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허름한 주변 경관 역시 썰렁하기만 하다. 가건물에 마련된 기념품 판매대도 미관상 좋지 않다. 배용준 사진이 그려진 조악한 물품들로는 눈높은 일본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국제 관광지로서 명성을 이어가기에는 운영방식이나 여건이 상당히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한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서서히 나오고 있는 만큼 보다 다각적인 자구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집주인 차금선(64)씨는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개인이 맡아 운영하기 보다 관이 맡아서 공익사업으로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촬영지를 방문하고 기뻐하는 일본 관광객들을 보면 보람을 느끼지만 개인의 역량으로 운영하기엔 아무래도 벅차다는 것. 더구나 춘천시에서 준상이네집 맞은 편에 겨울연가 전시관을 건립하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어 아예 준상이네집까지 매입해 함께 운영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 집은 저희 바깥양반이 어린 시절부터 꼬박 60여 년을 살아온 정든 집입니다. 그런만큼 이 집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구요. 그렇지만 아무래도 개인이 운영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힘이 달립니다. 시청 예산으로는 매입 부담이 크겠지만 올해 한류전시관을 만들겠다고 한 만큼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100평 가량 되는 이 곳을 전시관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집값에 대해서는 “관이 잘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 믿는다”면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에 대해 춘천시측은 합리적인 가격이 제시된다면 매입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매입가격은 집에 대한 감정가격에 현재의 영업권을 인정하는 범위가 적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집주인의 기대치가 너무 높을 경우 조율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시의 매입이 불가능할 경우 일반인에게 매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 집주인의 입장이다.
‘붐’에 약한 일본인과 한류의 상관관계
한편 ‘겨울연가’로 인한 한류는 일단락 됐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류 열풍이 어느 정도 지속된다 하더라도 겨울연가 촬영지인 춘천 관광은 적어도 올해를 끝으로 시들해질 것이라는 게 여행업계의 예측이다. 이 시점에서 보다 창의적인 관광상품의 개발이 시급하다. 상품의 고급화는 물론 준상이제집 내부 볼거리 개발도 발빠르게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손학교 경기지사가 밝힌 ‘한류우드’ 조성 계획은 한류의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계획안에 따르면 고양시 일산구 장항동 30만평에 2조원을 들여 오는 2008년까지 한류체험과 문화콘텐츠 연구·개발, 관광·숙박 등 시설이 유치된다. 한류체험에는 한류스타 거리와 스타빌리지, 게임월드, 연예공연장과 한류쇼핑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며, 테마숙박타운과 놀이공원, 일본과 동남아 등 아시아 거리도 조성된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가 투입되는 만큼 막연히 핑크빛 전망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이에 앞서 한류에 대한 치밀한 조사연구가 면밀히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배용준의 인기는 처음부터 이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방송된 이후 소리소문 없이 인기가 높아지다가 배용준이 처음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예상외로 많은 팬이 공항에 몰려들어 이를 각 언론이 보도한 이후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 솟아올랐다는 것. 2003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베컴이 방일했을 때도 일본인들은 그를 ‘베컴사마’라 부르며 추앙했고 그의 인기는 빠르게 확산되어 일종의 ‘현상’으로까지 인식됐다. 물론 지금의 ‘욘사마’ 열풍에 비하면 당시의 분위기는 그나마 침착(?)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요는, 일본인들이 소위 ‘붐’에 약하다는 것이다. 전체의 속성에 스며들고 싶어하는 일본인들의 본성이 한류 열풍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본인들에게는 전체의 중심에 무리 없이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많다.
우리나라의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붙잡혀 살해당한 것처럼 한 일본인 청년도 비슷한 과정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들의 반응은 우리와 사뭇 달랐다. 정부에 ‘메이와쿠(폐)’를 끼친 그 청년이 전적으로 잘못한 것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오히려 그의 부모가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있을 정도였다. 정부, 즉 전체의 중심에 따르지 않았던 그 청년은 일본 사회로부터 철저히 이지메(따돌림)를 당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본인들의 성향을 한류와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것은 어느 정도의 비약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문화적으로 일본에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한류’라는 절호의 기회를 주먹구구식의 안일한 자세로 수수방관하며 흘려보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글/박연정 기자 □사진/장태규·경향신문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