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의 예솔이는 소리꾼 이자람으로 성장했다.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자아에 깊이를 얻은 그녀는 의식 있는 예술인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고,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녀. 참 잘 자란 예솔이와의 소리 공감.

“자라면서 활동에 제한을 느낀 적은 없어요. 가끔 친구들이랑 찜질방 가면 알아보시는 아주머니들이 계신데, 그럴 때 좀 민망해요. 아니라고 그렇게 우겨도…(웃음) 제가 아침 프로그램이나 삶을 소개하는 코너에 많이 나와서 어른들이 많이 알아보세요.”
이자람(26)은 예솔이 활동 후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 조용히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시 매스컴을 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나?’ ‘어떻게 자랐나?’ 사람들의 궁금증이 발동한 탓이다. 당시엔 진로나 대학, 대회 수상 순위 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다고.
세월을 훌쩍 넘어 이자람은 판소리꾼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예솔이로 활동할 당시 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연히 접한 판소리가 그녀 삶의 중심축이 된 것. 예솔이가 판소리를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을 담는 코너였다. 프로그램을 통해 그녀에게 판소리를 가르쳐준 스승이 당시 막 명창의 반열에 올라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소리꾼 은희진씨. 그녀는 남다른 소질을 보이는 이자람을 첫 제자로 삼을 정도로 아꼈다. 이후 이자람은 1997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 1999년 8시간 동안 ‘춘향가’를 완창해 최연소 최장 시간 판소리 공연 기록을 세우는 등 촉망되는 차세대 소리꾼으로 성장했다.
예솔이 특유의 순박하고 해맑은 웃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자아에 깊이가 더해진 이자람에게선 어느새 의식 있는 젊은 예술인의 향기가 풍겼다. 늘 자신을 자극하고, 새로운 무대를 펼쳐 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녀는 2002년 국악뮤지컬 집단 ‘타루’를 결성했다. 창극의 지루함과 마당극의 식상함을 뛰어넘어 주제와 형식 면에서 현대에 맞는 새로운 마당극을 선보이고자 해서다. 판소리꾼이 모여서 극을 만들고자 한다는 그녀의 계획에 친구 10명이 뜻을 같이 했고, 2002년 4월 첫 작품 ‘바퀴벌레 약국 의사’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판소리꾼을 포함한 국악인들의 반응이 다양했어요. 나도 이런 것을 생각한 적이 있다, 너희가 하니까 정말 보기 좋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게 필요하다고 느꼈던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던 거죠. 반면 쟤들 3년 만에 깨진다, 이번 공연 한 번으로 끝이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오기가 생겼죠. 그런데 실제로 공연 한 번 하고 하니까 멤버들이 푹 퍼져서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더라구요.”
국악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으며 충실한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타루를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음을 느낀다는 그녀.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리꾼들인 멤버들 각각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부터 타루의 진일보한 방향 모색에 이르기까지, 조율하고 진화시켜야 할 과제가 많다.

에너지를 점점 잃어가는 모습도 경계하는 것 중 하나. 가족일수록 서로 더 모르는 것처럼, 멤버들 역시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더이상 자극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발전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멈춰 있거나 퇴보하는 친구들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숙제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는 상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고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타루를 치열하게 성장시켜 나갔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소리꾼과 극단대표 외에도 배우, DJ, 밴드리더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이자람.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그녀에게 주변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을 망치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건네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로, 그녀는 몇 달 전 EBS-TV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오른 뒤 한 차례 구렁텅이에 빠졌다.
“공연을 본 제 남자친구가 ‘너무 잡다해’(그 프로그램에서 이자람은 판소리와 자신의 밴드 음악을 함께 선보였다)라고 하더라구요. 곁들여 말하길 ‘그중에 하나만 했다면 한 시간을 더 멋지게 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더라구요. 그 얘기 듣는 순간 한 방 먹은 느낌이었어요, 완전히 흔들렸죠. 그 일로 한동안 고민에 빠졌는데 지금은, 제 자신이 ‘나 이거 잘해’라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한 공연이 아니었고,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대충대충 무대에 서는 건 지양할 거니까….”
판소리는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처럼 소리의 영역만 지닌 게 아니다. 광대의 시각으로 재담을 풀어내며 판을 벌이는 복합 예술 장르다. 소리꾼은 자신만의 뚜렷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풍자하며, 관객들의 추임새를 얻어내면서 판을 벌여간다. 그러하기에 전통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자람의 생각. 조시 부시나 보아의 이야기도 담아내는, 판소리는 지금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되 충분히 재미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전통의 재탄생’이라고 생각하고, 타루를 통해 그녀가 응시하는 바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최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