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를 사랑했다” 고백 둘러싼 치열한 공방
지난 15일 고 이은주와의 사랑을 밝혀 논란의 대상이 된 전인권(51). 전 들국화의 멤버인 그는 국내 음악계에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신중현과 함께 한국 록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음악인으로서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그가 문화 에세이집 `「걱정 말아요, 그대」 출간을 앞두고 인터뷰하던 도중 이은주와의 관계를 밝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인을 두 번 죽이는 무책임한 발언’ `‘책 홍보를 위한 상술’에서부터 `‘언론의 마녀 사냥’이라는 얘기까지 그를 둘러싼 공방이 언론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벌여졌다. 그러한 가운데 이은주의 유족과 측근은 ``‘근거 없는 터무니 없는 주장’ `‘병적인 집착, 과대망상증’이라고 반박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상태다.
사건의 발단은 책 머리말에 적힌 마지막 문장에서 비롯됐다.
“은주가 있다면‘애쓰셨어요. 전인권 만세’라고 문자 하나 왔을 텐데….”
책 내용중 이은주가 언급되는 것은 이 한 줄이 전부다. 「걱정 말아요, 그대」는 70~80년대 음악이라는 코드로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전인권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이은주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문장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고,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전인권은 그 특유의 에두르지 않는 화법으로 이은주와의 사랑을 밝혔다. 인터넷을 통해 첫 기사가 발표되고 파장을 불러일으키기 하루 전날이었다.
“사랑했어요. 은주도 저를 사랑했어요. 다만 때가 아니었던 거예요. 때가 될 때쯤 아픈 일이 벌어졌어요. 이제는 얘기하려고요. 우리는 하루에 문자메시지 10통 정도 주고받았어요.”
유족들의 거센 반발과 함께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건 그 사랑이 일방적이었던 게 아니라고 밝힌 부분. 그러나 전인권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도 언급했다.
“은주는 나한테 확실하게 표현 안 했으니까…. 근데 나는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은주가 나와 관련해 인터뷰한 걸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에요.”
전인권은 2000년 9월 들국화 공연 때 작가 송지나와 함께 온 이은주를 처음 만났다. 1년 후쯤, 또다른 연예 관련 행사장에서 만난 뒤 `“공연 티켓 주세요”라고 이은주가 말을 건넨 것이 계기가 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고, 전인권은 그녀 때문에 문자 보내는 것을 처음 배웠다. 이은주와의 친분으로 전인권은 이은주 주연의 영화 `‘안녕! 유에프오’(2004년)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고, 이은주 역시 MBC-TV ‘사과나무’에 출연한 전인권을 위해 인터뷰에 응하며 친분을 보였다.
“은주는 예뻤고 꽤 성숙했고 느낌이 나랑 참 잘 맞았어요. 사실은 난 첫눈에 반한 거나 마찬가지예요.…은주가 나중에 뭐라고 했냐면 ‘나랑 만날 땐 안경 벗어주세요’ 그랬어요. 앨범 재킷에 안경 쓰고 있는 모습 보고 ‘이건 안 돼요, 앨범 재킷 바꿔요. 눈이 보이는 걸로요’. 그래서 나는 눈이 보이는 걸로 앨범 재킷 사진을 바꿨죠. ‘나는 사랑의 진리를 탐구할 거야’ 그러면 은주가 그 이야기를 알아듣고 좋아했어요. ‘이건 진리가 아닐 거야, 아니지?’라고 물으면 ‘네’ 하고 대답이 와요. 그러면 둘이서 굉장히 기뻐했어요. 그 하나 가지고도. 아주 단순한 건데 참 재미난 거지. 어쩌면 그게 진짜 사랑인 것 같아요.”

본지와의 인터뷰 도중 나온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건 물론 아무것도 없다. 사랑한 사이였는지, 유족들이 얘기하는 바대로 전인권만의 착각이었는지, 아니면‘사랑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라는 전인권식 사랑과 표현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누구도 확답할 수 없다. 이미 이은주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전인권의 이야기만 듣고 결론 지을 수 있는 것은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했고, 이은주 역시 자신을 사랑했다고 그가 믿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싱어로서 아직 해내지 못했다, 나는 정확한 사람”
전인권의 이름으로 출간되는 「걱정 말아요, 그대」는 자서전이 아니라 문화 에세이다. 특히 책 내용 절반은 대마초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러나 그는 ‘대마초는 이런 것이다’라고 이야기할 뿐, 대마초 합법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대마초 합법화는 그에게‘재미가 없는’ 논외의 문제다. 전인권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네 번이나 감옥에 갔다 왔다. 책을 집필하는 동안 그가 가장 힘들어한 부분이 감옥에서의 생활을 다시 떠올렸던 것. 감옥 얘기를 쓰다가 화가 난 그는 자판을 세게 두드려버린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음악을 좀더 좋게 들은 게 그렇게 죄가 되나… 우리 딸과 사랑하는 아들, 한 집안을 다 몰살시킬 정도로. 대마초를 피우고 뭘 했나, 그것까지 알아봐야 인간적인 도리 아닌가, 그게 법 아닌가 하는 거죠. 무조건 피웠다, 저 사람이 일렀다, 내가 잡혔다, 그리곤 무조건 시커먼 감옥에 처넣어버리는 거. 그것도 희한하게 5년 주기로 그랬어요. 감옥은 나에게 너무 힘든 곳이거든요. 내가 반항한다고 밉다고 독방에 넣고 40일간 사식·면회 금지에 0.75평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하고. 감옥에서 보낸 게 내 인생에서 2년이에요. 그 시간이면 내가 굉장한 음악 연습을 했을 거예요.”
자유로웠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걸어온 그인 만큼 아이들의 고생과 상처가 컸다고 말한다. 평범하지 않은 아빠였기에 그는 자식과 부모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고 얘기했다. “너는 아빠를 믿지?”라고 물으면 큰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전인권은 큰 행복을 느끼고 기분이 좋다. 최근엔 아들의 음악성을 발견하여 너무 반갑고,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미술을 전공하는 딸에 대해서도 “시시한 미술가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얘기하기도.
사람들은 그를 ‘록의 대부’ ‘전설적인 로커’로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는 ‘보이지 않는 이정표’였으면 한다. “어느 순간에 보니까 한 가수가 ‘행진’이란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 그래서 기쁘더라” 전인권은 그런 식의 이정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고, 자신의 몫은 거기까지라고 했다. ‘록의 대부’로서 신중현씨가 잘해왔고, 자신의 길은 그와 또 다르다고 말했다. ‘리사이틀’을 ‘콘서트’ 형식으로 바꿨고, 63빌딩 컨벤션센터를 공연장으로 만드는 등 공연장을 많이 만들었고, 미사리 클럽을 록 클럽화시킨 것이 자신이 할 수 있었고, 했던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오랜 시간 선망하고 동경해온 싱어로서의 목표는 아직 이뤄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 것은 했다고, 못한 것은 하지 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이 전인권의 화법이다.

“싱어, 그걸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고 내 자신이 확신해요. 나는 정확한 사람이에요. 내가 아직 아니라는 거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걸 계속해야 해요. 매일 많은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전인권은 30대의 세계가 있듯이 노력만 하면 40대, 50대의 세계가 있다고 얘기한다. 겪지 않았지만 분명히 60대의 세계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는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되돌리고 싶은 것도 없다. 전인권은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응시할 뿐이다. 그가 충실하려는 현실은 미사리 전체를 클럽화하는 것.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유명한 록 클럽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그는 미사리에 있는 클럽 ‘아테네’를 통해 그것을 다시 꿈꾸고 있노라고 말한다. 많이 와서 자신들이‘노는 꼴’을 한번 봐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가 응시하는 미래는 좀더 재미있다.
“돈 많이 벌어서 전세계 카지노를 돌아다니는 거. 난 후지게 죽고 싶지는 않아요. 비명에 갔다던가, 연예인들이 슬프게 많이 죽잖아요. 그러고 싶지 않고, 내가 카지노 겜블러 돼서 세계를 다니면 후배들도 진짜 열심히 음악 하고 싶을 거예요. ‘야, 전인권은 저렇게 되려고 엄청 음악 연습했대, 우리도 그렇게 하자’ 그럴 거예요. 전 그런 것도 귀감이 되고 싶어요.”
언뜻 생뚱맞게도 들리는 이야기지만 전인권식 화법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자신의 전부를 바쳐 열심히 음악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런 모습을 보고 음악하는 후배들이 희망을 가지고 따라올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전인권이 보여주고 싶은 본보기일 터.
* After Story ‘전인권에 얽힌 에피소드&어록’
에피소드
어느 날 갑자기 미사리에서 강원도 묵호항까지 택시를 타고 간 전인권. 현찰 한 묶음을 꺼내 요금을 지불한 뒤 차에서 내려 터덜터덜 걸어가며 하는 말. “나는 택시가 좋아.” 동행한 일행 중 한 명이 “왜 좋아요?”라고 묻자 “좋잖아, 죽이잖아”라고 답한다. 전인권은 묵호항에서 또다시 택시를 타고 양양의 한 절로 이동. 전인권을 알아보지 못한 택시 기사가 “참 특이하게 생기셨어요, 산적 같아요”라고 말하자 “아, 산적 좋다. 느낌 딱 좋아. 산적 그거 죽이네~”라며 즐거워했다. 택시는 달려 양양의 도심으로 들어갔고, 교통 체증으로 차가 잠시 멈추자 갑자기 그는 창문을 내렸다. 앞에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것. “얘들아~” 그는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렀다. 택시기사까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아이들 역시 전인권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 사람 미친 거 아니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보인 가운데 한 아이가 “전인권이다!”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우르르 전인권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러자 전인권이 택시기사를 보고 “아, 전인권이래네. 저보고 전인권이래요~” 한다. 택시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들을 뒤로하며 전인권이 말했다. “쟤네들은 평생 추억이 될 거야~”
어록
전인권은 공연 사이사이 자신이 느낀 바를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그 가운데 수많은 전인권 어록이 탄생한다고. 그중 매니저와 코디네이터의 뇌리에 박혀 있는 어록 하나. “헌법 필요한 거예요, 절대 좋은 건 아니에요. 술, 담배 좋은 건 아니에요, 절대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대마초도 마찬가지예요. 절대 좋은 건 아니에요, 필요한 거예요. 사랑, 우정 이런 건 정말 좋은 거예요, 당연한 거구요. 그리고 섹스라는 건 범우주적으로 아주 당연한 거예요. 항상 많이 하세요.”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김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