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토플리스!”

카메오 일기

“안녕, 토플리스!”

‘안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이(hi)와 굿바이(bye)다. 소아암 환자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안녕, 형아’의 안녕은 하이를 의미한다. “안녕, 칸!”의 안녕은 굿바이를 뜻한다. 미련이 없지 않지만 칸 국제영화제에는 이제 그만 가고 싶다. 그만큼 이번 출장은 힘들었다.

“토플리스 실컷 보고 좋았겠네?”

칸 출장 소식이 알려진 뒤 부러워하는 동료들이 적지 않았다. 일부는 지중해 칸 해변과 그곳의 토플리스 미녀들을 들먹이며 대신 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해변은 영화제 폐막 후 귀국하기 전날 숙소에서 멀지 않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을 30분쯤 걸어봤다. 숙소 한가운데 야외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토플리스 미녀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번 출장은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오죽했으면 라면을 여유 있게 20봉지 가져갔는데 후배들과 나눠 먹으면서도 절반이 남았을까. 

아무튼 이번 출장에선 지난달에 밝혔듯 출연작을 외국인들과 함께 보면서 감회에 젖는 게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출장 일정과 감독 주간에 초청받은 영화 ‘그때 그사람들’ 상영 일정이 맞지 않아 또 허탕을 쳤다. 임상수 감독, 임 감독의 아내이자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난 학과·연극반 후배와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하나의 관심은 나와 연합뉴스 후배 가운데 누구 징크스가 깨지느냐는 것이었다. 연합뉴스 김병규 기자는 취재를 간, 심지어 휴가를 간 영화제에서조차 상을 탄 반면, 나는 매번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수상 결과에서 알 수 있듯 후배의 기록이 깨졌다. 대신 후배는 한국 기자들끼리 가진 내기에서는 이겼다. 폐막을 앞두고 황금종려상 수상작에 2점, 기타 상 수상작에 1점을 주기로 하고 각각 수상 후보작을 적었는데 여기에서 김병규 기자가 최고 점수인 5점을 얻은 것이다. 부연하자면 다른 기자들은 공교롭게 모두 4점을 얻었다. 나는 유일하게 황금종려상 수상작(벨기에 출신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을 알아맞혔지만 기타 상을 맞춘 게 두 개밖에 안 돼 4점에 그쳤다. 

그런데 내기에서 ‘극장전’은 단 1점도 못 얻었다. 공식 시사 때 관객들 반응이 국내에서와 달리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손톱도 깎지 않고, “정장을 해야 한다” “낮 시간 공식 시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 등 말이 많은 가운데 수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대여점에 들러 55유로(7만5천원)를 주고 턱시도를 차려입고 시사회에 참석한 나는 예상 밖의 관객들 반응에 마음이 참담했다. 프랑스어와 영어 자막에 문제가 많고, 동서양의 감성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2000년 ‘오! 수정’ 때 확인한 반응 이상을 기대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는데 결국 수상하지 못하자 한국 기자들은 허탈했고, 난감해하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깜짝 초청받아 감독상을 수상한 점을 들어 출장을 관철시킨 데 따른 죄책감이 들어서였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수상에 실패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 등 이번 출장은 정말 최악이었다.

“아이 디, 나왔어요?”

올해로 55회를 맞은 칸 영화제는 5월 11일에 개막, 22일 폐막됐다. ‘극장전’은 4월 19일에 발표된 다른 작품과 달리 5월 4일에 ‘깜짝 초청’을 받았다.

출장 결정이 난 건 4일 오후. 후배 영화 담당이 결혼, 신혼여행을 떠나고 없어 내가 가야 했다. 솔직히 고백컨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국제영화제 출장은 취재 경쟁이 치열하고 일이 많아 그만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고로 칸은 이번을 포함해 여섯 번, 베를린과 베니스는 각각 두 번 다녀왔다.

이번 출장은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프레스 아이 디(I.D.)를 받는 과정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이 디는 추가 신청이 가능하지만 원래 마감은 3월 31일.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 6일 빠른우편을 이용해 영화제 사무국으로 보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개막을 앞두고 영화제 사무국이 칸으로 옮겼는데, 이를 감안하지 않고 서류를 파리로 보낸 것이다. 그렇잖아도 늦은데다 14일 출국해야 해 시간이 없어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 디가 없으면 취재가 불가능, 출장을 가는 게 의미가 없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든 받아야만 했다.

다행히 전후 사정을 듣고 담당자가 검증에 필요한 서류를 팩스로 보내주면 검토 후 회신을 주겠다고 했다. 곧장 5년 전 ‘춘향뎐’이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을 때 내가 쓴 기사(2001~2004년은 후배들이 다녀옴), 편집국장 확인서, 그리고 추가로 준비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 추천서 등을 팩스로 보냈다. 이어 사흘 동안 수차례 독촉 전화, 13일 밤 아이 디 발급 승인서를 메일로 받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아이 디를 받는 데 도움을 준 프랑스 대사관 문화과 주영애씨, 프랑스에서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수원씨, 그리고 여러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어쨌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에 침이 마른다. 참고로 이번 영화제에서 프레스 아이 디를 받은 기자는 4천5백여 명으로 월드컵, 올림픽에 이어 단일 행사로 세번째를 기록했다.

“전화 좀 쓰자고요”

현지에서도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프레스센터에 전화를 이용해 기사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모두 무선 랜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구비해놓지 않은 것이다.

또다른 프레스 룸은 각국 언어를 제공하는 데스크톱이 수십 대 준비돼 있었는데, 그곳 역시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이용하려는 기자들은 넘쳐 담당자에게 이용 신청을 한 뒤 빈자리가 날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5년 전 생각에 노트북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현지에 도착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숙소 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숙소 전화가 말썽을 부렸다. 프런트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국제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결국 첫날에는 기사를 콘도 공중전화를 이용해 불렀다. 최첨단 시대에 이 무슨 꼴인지, 노트북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내가 한심했다.

다음날도 전화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신신당부했건만 이상 유무를 점검하지 않은 것이다. 프런트 직원은 통신 담당 직원이 퇴근해 자신은 어쩔 수 없다면서 팩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마감이 급한데다  종이에 옮겨 쓰는 것도 귀찮아 이날 기사 전송은 국제전화가 되는 후배 기자의 방을 이용했다. 숙소 측은 다음날 아침 전화를 점검해줬다. 그제야 고장이라며 수리하는 데 일주일쯤 걸린다고 했다. 나는 방을 바꿔달라고 했고, 콘도 측은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이날 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프런트를 지키고 있던 직원은 인계받은 사실이 없다면서 다음날 확인하라고 했다. 강력하게 항의하자 방을 바꿔줬는데 이 방도 전화가 안 됐다. 고의성이 짙어 보였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 분을 삼키면서 또 후배 방을 이용해야 했다. 한국의 여행사에 항의, 현지 여행사 직원이 나선 결과 다음날부터 이상 없이 쓸 수 있었다.

P.S. : 다음 호에선 1993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참관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팔등신 미녀 등과 2시간 동안 보낸 나체 수영장 경험담이 포함돼 있습니다.

배장수 Profile

경향신문 영화 전문 기자.

영화 담당 기자 15년에

최근작 ‘그때 그사람들’까지

43편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대표작으로 ‘마누라 죽이기’ 

‘태백산맥’ ‘은행나무 침대’ 

‘박하사탕’ ‘엽기적인

그녀’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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