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수근이 성폭행 혐의를 벗고 방송에 복귀했다.
10년 무명 생활 끝에 얻어낸 인기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그는
이번 사건으로 원형탈모와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고. 방송에 복귀하기까지 눈물을 훔치며 참아온 지난 7개월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글라스와 모자 없이는 밖에 나가지 못했죠”햇살 좋은 5월. 개그맨 이수근(31)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하릴없이 거리를 걸었다. 딱히 목적지를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발걸음은 자연스레 대학로 소극장으로 옮겨졌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후미진 골목에 몸을 숨긴 채 극장을 바라봤다. 저녁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극장 앞에는 관객들이 긴 줄로 늘어서 있었다. 멀찌감치 서서 줄이 없어지는 극장 앞을 바라보던 이수근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극장 앞에 관객들이 줄서 있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누가 볼까 봐 모자와 선글라스로 무장하고 구석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저 극장 안에서 밤새 준비한 개그를 선보이던 생각을 하니까 미치겠더라구요.”
이렇게 눈물의 세월을 보낸 이수근이 성폭행 혐의를 벗고 방송에 복귀했다. 지난 7개월여 동안 그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경성 원형탈모증을 경험했고 밤마다 가위에 눌려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허다했다.
“동료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끝내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요. 대충 자초지종을 설명한 경찰이 별일 아니라며 잠깐 오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당시 저는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함께 저녁 먹은 동료들하고 경찰서에 갔고, 가는 동안에도 매니저에게 알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다음날 자세한 조사 과정도 없이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긴급 체포됐죠.”
긴급 체포된 지 며칠이 지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풀려났지만 이미 그의 이름은 인터넷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가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면 남자는 바로 긴급 체포된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며칠 후 풀려나기는 했지만 이미 언론 보도로 이름이 알려진 후였죠. 길에 나설 때면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어요.”
“무혐의 받고도 방송 복귀하기까지 쉽지 않았어요”
사건이 일어나고 그는 바로 방송에서 퇴출됐다. 하지만 방송 퇴출보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요즘 왜 TV에 안 나오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아버지께만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상황을 어떻게 설명을 해요. 방송국에서 잠시 휴가를 보내줬다고 거짓말을 했죠.”
힘들게 보낸 지난 시절을 회상하던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잠시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 여자분은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경찰에 신고 접수를 했어요. 경찰 조사 결과 그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게 일찍 밝혀졌지만, 3개월 동안 증인 출석에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판결이 나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죠. 이제 와서 무혐의를 받았지만 저는 모든 걸 잃어버렸어요.”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이수근은 스무 살 때 개그맨이 되고 싶어 서울에 올라왔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는 보통 4년 이상 소극장 바닥을 닦고 걸레질을 해야만 소극장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런 생활을 못 견디고 대학로를 떠나는 이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는 10년 동안 걸레질을 해가며 무명의 설움과 생활고를 견뎠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그에게 너무나 치명적이다.

“개그맨이 되고 싶었지만 수입이 없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수련원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한 적도 있어요. 공채 개그맨이 되고 나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죠. 그렇게 어렵게 지내다가 지난해 말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번 일이 터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어요.”
방송을 쉬는 중에도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연예인과 관련된 좋지 않은 뉴스가 방송될 때면 자신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뿐만 아니라 무혐의 판결을 받고도 방송 복귀가 쉽지 않아 소극장 무대에만 서야 했다.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방송 복귀는 쉽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막막한 가운데 머릿속에서는 재미난 아이템들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무작정 ‘개그콘서트’ 아이디어 회의가 있는 날 방송국에 찾아가 준비한 개그들을 선보였어요. 그랬더니 PD님께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시더라구요.
지난달 10일 이수근은 7개월여 만에 다시 ‘개그콘서트’에 복귀했다. 그토록 다시 서고 싶은 무대에 오르기 전 그는 팬들의 반응이 걱정됐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대부분의 팬들은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사람들이 여전히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죠. 저를 방송에 다시 출연시키기 위해 애써 주신 많은 분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솔직히 네티즌이 반대하면 힘들었을 거예요. 다행히 너그럽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그는 아직 ‘개그콘서트’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팬들의 격려 메시지를 읽지 못했다. 사건 이후 자신의 이름이 신문이나 인터넷상에 오르는 게 겁이 난다고.
“동료들 얘기로는 좋은 말만 올라왔다고 그러더라구요. 용기가 없어서 아직 게시판의 글들을 보지는 못했는데 저를 믿어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분명히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지금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아이디어를 짜며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 대학로에서 밤을 지샌 이수근.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는 그가 자신을 믿고 아껴준 팬들을 위해 함박웃음을 선사할 날을 기대해본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장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