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 최병서가 퓨전 트롯 앨범을 발표했다. 그의 뛰어난 노래 실력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 지인들은 한결같이 그의 음반 발매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남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돌아온 ‘신인 가수’ 최병서의 노래 사랑, 그리고 다시 쓰는 인생.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원래 최병서 노래

최병서(47)는 1980년대 풍자 코미디와 성대모사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코미디언이다. 그가 출연한 ‘따따부따’ ‘병팔이의 일기’ 등의 코너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트롯 앨범을 냈다. 알고 보면 그는 5장의 앨범을 낸 베테랑 가수. 코미디언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 그는 대선 메들리부터 캐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컨셉트 앨범을 발표했다. 물론 이번 음반은 가수로 데뷔하는 정식 앨범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언젠가 한번 정식 앨범을 내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어릴 적 꿈이 가수이기도 했구요. 이번 앨범을 통해 제 목소리를 찾았어요. 제 목소리를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죠. 사석에서 노래를 부르면 제 목소리가 아니라 가수의 목소리가 나왔어요. 굳이 흉내 내지 않아도 조용필 노래를 부르면 조용필 목소리가, 나훈아 노래를 부르면 나훈아 목소리가 나왔거든요. 처음으로 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최병서는 코미디언의 기질 못지않게 노래 실력도 타고났다. 모 탤런트는 그의 노래를 듣고 감동이 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을 정도. 한번은 그가 미국 공연에서 조용필의 곡 ‘간양록’을 불렀다. 그때 한국의 한 스태프가 외국 엔지니어에게 “오늘 한국 팝 가수가 다 왔는데 누가 최고인 것 같냐”고 했더니 그가 최병서를 가리키며 “미스터 초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조용필과 태진아가 목이 아파 라이브가 힘들 때면 노래를 대신 불러주기도 했던 최병서.
“(조)용필 형이나 태진아씨가 무대에 많이 서다 보니까 목이 자주 쉬어요. 라이브를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는 경우엔 제가 무대 뒤에서 노래를 불렀죠. 어쩌다 박자가 잘 안 맞았다든가 하면 용필 형이 공연 후에 절 소주집으로 불러 ‘너 박자 두 군데나 틀렸잖아, 왜 그렇게 틀려’라고 구박하기도 하고….(웃음) 가끔 제가 MC를 보는 무대에서 용필 형이 노래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허락 없이 제가 몰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해요. 그러면 나중에 형이 와서는 ‘네가 했지?’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제가 맞다고, 흥이 나서 몰래 따라 불렀다고 그러죠. (웃음)”
지인들은 한결같이 최병서가 ‘좀더 일찍 음반을 냈어야 했다’는 반응이다. 사실 좀더 이전에 그에게 가수 데뷔의 기회가 왔었다.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는 원래 최병서가 부를 뻔한 노래다. 태진아가 그에게 불러보라고 제안을 했는데 계약상의 문제로 성사되지 않았던 것.
“그렇게 히트할 줄 알았으면 무조건 했죠. 친구들은 제가 했으면 히트가 안 됐을지도 모른다고 그러기도 하는데… 여하튼 운이 좀 없었던 것 같아요.”
최병서의 이번 앨범은 요즘 감각에 맞게 편곡한 퓨전 트롯이다. 홍수철의 노래를 재편곡한 ‘철없던 사랑’이 타이틀곡. 이 곡에 연기자 이덕화의 아들 태희씨가 래퍼로 참여해 화제다. 세미 디스코풍으로 편곡된 ‘철없던 사랑’의 중간 부분에 원래 섹시한 여자 래퍼의 목소리가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노래를 들은 태희씨가 최병서에게 중간에 랩을 넣을 생각이 없냐며, 자신이 하겠다고 했단다.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고 실제로 음악 공부를 한 태희씨의 제안이었기에 최병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최병서와 이덕화는 절친한 선후배인 동시에 처조카 사이. 이덕화에게 고모부뻘이지만, 이전부터 불렀던 호칭이 습관이 돼서 그냥 ‘형’이라고 부른다. 태희씨 역시 ‘매형’인 최병서에게 같은 이유로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에 최병서 역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또 코미디언으로서 일이 적어질 때면 서글퍼지기도 한다고. 전성기의 최병서는 신인상부터 최우수상, 인기상에 이르기까지 코미디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죄다 받았다. 아직까지 뛰어난 순발력과 애드립을 구사하는 그를 보며 후배들은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최병서는 우스갯소리로 “그러면 뭐 하냐 이 모양 이 꼴인데…”라며 말끝을 흐리지만 웃어넘기기엔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고.
그는 요즘 개그 프로그램이 너무 젊은 사람에게만 맞춰진 것이 아쉽다고 했다. 물론 그는 코미디에도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의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주 웃는다. 가끔은 요즘 개그 코드와 웃음 포인트가 자신이 활동하던 시절과 상당히 다름을 느끼면서, 또 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보면서 개그 감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도 한다.
그는 늦은 시간대에 편성되더라도 좀더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한다. 특히 자신이 해온 풍자 코미디에 대한 애착이 크다.
“풍자는 큰 재미는 없어도 사람들이 참 좋아해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기 때문이죠. 아이디어를 찾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신문에서 이슈가 되는 것을 소재로 하면 돼요. 제가 ‘따따부따’를 할 때 전화 참 많이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정치 풍자가 힘든 시기였잖아요. 안기부와 여·야당 항의 전화가 쇄도했고, 당원들이 직접 방송국을 찾아와 대본을 미리 보자고도 했어요. 나중에는 특정 정치인 풍자를 죄다 못하게 해서 건달로 했잖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최건달입니다. 건달이 뭐… ’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데, 그게 한때 또 유행했어요. 저희 세대가 풍자에 대한 기반을 닦아놓은 것도 있고 또 요즘은 개그 프로그램의 시청률도 높으니까 풍자 코미디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후배들에게 제안하는데 ‘요즘은 풍자 안 돼요’ 그러더라구요.”
브라운관을 통해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간 최병서는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얼마 전만 해도 박준형, 정종철, 황승환 등 젊은 개그맨들과 함께 공중파 코미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각종 인터넷과 라디오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주 수입원은 야간 업소와 이벤트, 각종 행사 등의 MC.
“굳이 방송 활동하지 않아도 잔치나 행사 MC를 하면서 받는 수입이 꽤 괜찮아요. 그런데 제가 어느 정도 개런티를 정해놓고 일을 하니까 요즘 일이 별로 없어요.(웃음) 개그맨들이 재미있으니까 행사 MC로 선호되는데, 문제는 한 시간 넘게 MC를 보는 개그맨의 개런티가 15분 정도에 노래 서너 곡 부르는 가수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이벤트 주관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행사 분위기는 개그맨이 이끌어가고 좌우하는데 왜 그만큼 대우해주지 않냐고요. 그렇게 돈이 없으면 행사를 하지 말든가, 가수를 한두 명 줄이든지 개런티를 줄이든지, 아니면 나보다 조금 못 한 MC를 써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를 하죠.”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다. ‘덜 벌고 덜 쓰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자존심을 어느 정도 지켜가고 있지만,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한 달 내내 쉴 때도 있다고 한다. 사실 전성기의 최병서는 ‘움직이는 부동산’이었다. 코미디언에게는 움직임이 곧 수입. 그는 그만큼 바빴고, 많은 돈을 벌었다.

“이는 빠졌어도 발톱은 살아 있다”
최병서는 결혼 12년 차다. 서른일곱 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늦깎이 결혼을 했다. 이덕화 부인의 제안으로 호텔의 한 행사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마르지도 않고, 외모도 보통인 아내는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홉 살 연하의 아내를 아는 동생으로 만나다가 8개월 만에 결혼했다.
최병서는 초등학교 5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을 뒀다. 두 아이 모두 자신을 닮아 개그맨 기질이 엿보인다고 한다. 특히 아들은 성대모사에 재능이 있다. 종종 이덕화 성대모사를 하기도 한다고. 아직 어려서 성대모사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캐릭터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아이들은 그의 가장 큰 행복이자 원동력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이자 요리 솜씨가 뛰어난 아빠다. 김치볶음밥에서 떡볶이 등 간식에 관한 한 아내보다 한 수 위란다. 그는 “아이들이 인정한 맛”이라고 했다.
가끔 아이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에게 “아빠도 개그맨인데 왜 저기 안 나와?”라고 물어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계약상 나이가 많으면 방송을 못 한다고 얼버무린다. 한번은 행사장에서 후배 개그맨들에게 초등학생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몰려들고, 자신에게는 나이 든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을 본 딸이 “아빠 아까 창피했지? 학생들이 아빠한테는 사인해달라고 안 하잖아” 하더란다. 이에 최병서가 “쟤들은 아빠 알지도 못해. 대학생들도 아빠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라고 얘기해줬다고.
“딸이 ‘그래도 학교에서 아빠 아는 친구들이 많아’ 그러더라구요. 아빠가 예전에 인기 개그맨이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잘 알고 있어요. 가족이 함께 외출했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사인을 요청해오면 아이들이 뿌듯한가 봐요. 얼마 전 쇼케이스 했을 때 제가 인터넷 검색 순위 1위 한 적 있는데 그거 보면서 아이들이 아빠 대단하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럴 땐 흐뭇하죠.”
최병서는 일이 조금 뜸해지면서 술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양이 아니라 횟수가 늘었다. 그는 일주일에 5일 정도 술을 마시는데 그러다 보니 체력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고. 그래서 시작한 게 헬스와 등산이다. 등산은 가수의 호흡에 좋다는 조용필의 얘기를 듣고 시작했다. 또 30분 정도의 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니는 것이 그의 원칙. 그는 최근 자신의 몸매를 공개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술을 마시기 위해 체력을 다진 결과라고 하기에는 무척 다부진 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군살이 없고 몸매가 조금 괜찮은 것이지 ‘몸짱’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더 잘 나온 사진이 있다”며 농담을 건넸다.
뒤돌아보면 자신이 기회를 많이 놓친 편이었다고 말하는 최병서. 가수의 기회를 놓친 것과 전성기에 MC를 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인기 코미디언 시절 그는 방송 MC 섭외 1순위였다. 당시 쇼 MC 등 굵직한 방송의 MC 제안이 많았는데 그는 수락하지 않았다. 한 지인의 ‘희극인은 희극인으로 남아야 한다, 너 MC 하면 큰일 난다’는 말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MC로 전환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단다. 그는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그러면서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최병서. 그는 가끔 아이들에게 농담으로 “아빠 이도 다 빠지고,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한다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가끔 이덕화와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면 그는 “형님, 우리가 이는 빠졌어도 발톱은 살아 있지 않습니까? 더 열심히 합시다”라고 이야기한다.
최병서에게 이덕화는 인생의 가장 좋은 선배다. 밤을 새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주는 이덕화는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 중 한 명. 최병서의 일이라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는 이덕화를 보며 고마움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10월 앨범 쇼케이스에도 가장 먼저 달려와 독려해줬다. 또 이덕화는 쇼케이스의 문제점까지 하나하나 짚어주고 충고해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철저한 프로 이덕화는 그의 좋은 모델이기도 하다. 최병서는 자신이 이덕화의 프로 의식을 10분의 1만 따라갔어도 큰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최병서는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으로 열심히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것만큼 가수로서도 열심히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또 가끔 자신의 홈페이지에 들러 격려의 한마디 해달라는 이야기도 건넸다.
글 / 신현화 기자 사진 / 안진형·www.최병서.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