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곰탱이라고요?”

카메오일기

“미련한 곰탱이라고요?”

‘베어’ ‘꼬마돼지 베이브’ ‘102달마시안’ ‘히달고’ ‘폴리’ ‘투 브라더스’.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다. 한국 영화 ‘꼬리치는 남자’ ‘가문의 영광’ ‘마지막 늑대’ ‘YMCA야구단’ 등에도 동물이 나온다. 동물영화 뒷이야기.

‘꼬리치는 남자’에서 개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조련사 두 명에 욕실을 겸비한 숙소와 전용 자동차를 제공받았다. 리허설 때 개는 쉬고, 연출부 감독 지망생들이 개를 대신했다. 개의 나이가 여덟 살로 노년인 점을 감안, 조련사는 아비를 닮은 이 개의 아들도 데려왔다.

# 언제나 사랑을 하려나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외국 영화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이는 프랑스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이다. ‘불을 찾아서’ ‘베어’ ‘연인’ ‘티벳에서 7년’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등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그는 이번 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된 ‘투 브라더스(Two Brothers)’의 감독으로 초청됐다. 그는 일간지 기자들과 가진 개별 인터뷰에서 ‘베어’와 ‘투 브라더스’ 연출에 얽힌 뒷이야기를 풍성하게 털어놓았다.

‘투 브라더스’는 20세기 초 동남아시아의 정글을 배경으로 두 야생 쌍둥이 호랑이의 우애와 모험을 그린 작품. 곰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베어’(1988)와 달리 이번 영화는 호랑이들의 삶과 인간의 야만성을 대비시켰다.

캐스팅은 어떻게 했나.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제각각이다. 제대로 고르지 않으면 원하는 영화를 찍을 수 없다. 동물의 경우 캐스팅이 특히 중요하다. 쌍둥이는 실제로 쌍둥이를 뽑았다. 촬영은 아역배우를 데리고 하는 것보다 어렵다. 숱한 반복 촬영 끝에야 원하는 장면을 얻을 수 있다.”

호랑이는 모두 몇 마리나 동원했는지.
“주인공인 두 새끼와 어미, 이들의 대역 등 모두 22마리를 동원했다. 이들을 조련시키는 데 6~8개월이 걸렸고 촬영은 8개월 동안 5대의 카메라로 했다.”

호랑이들의 연기가 실감 난다.
“쌍둥이가 떨어져 있다가 재회하는 장면은 3주 동안 떼어놓은 뒤 촬영했다. 시나리오에 써놓은 것 이상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기뻐해 3시간 만에 찍었다. 빨리 순조롭게 찍은 거다. 공 가지고 노는 장면도 자연스레 잘 놀았다. 이때 또래의 다른 호랑이를 집어넣자 그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호랑이들의 연기가 뛰어나 컴퓨터 그래픽은 촬영 당시 안전을 위해 설치한 보호망 등을 제거하는 데만 사용했다.”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분위기 메이커용 세트를 촬영 초부터 8개월 동안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실패했다. 그러던 중 촬영 막바지에야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발정기를 맞은 암컷에게 수컷을 보내주자 둘은 격렬하게 사랑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주었다.”

아노 감독은 ‘베어’를 찍을 당시부터 ‘투 브라더스’를 구상했다. 그는 “당시와 그후에 봤던 호랑이들의 눈빛과 다양한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며 “고집불통인 호랑이에 비해 곰들은 영리하고 연기도 더 잘한다”고 밝혔다.

“곰이 미련하다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동물 가운데 곰은 개 다음으로 IQ가 높다지 않나. 실제로 ‘베어’를 찍을 때 곰은 내가 조련사에게 다음 장면을 설명하면 그것을 지켜본 뒤 조련사가 자신에게 설명하기 전에 연기를 해 보였다.”

그런 가운데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감독의 말을 잘 듣던 곰이 어느 날 영화 장비를 오해해 감독을 덮친 것. 곰은 자신들의 언어로 죽여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입을 삐죽 내밀기까지 했다. 감독은 죽은 척했고, 조련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두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후 촬영이 끝날 때까지 곰은 나를 피했다. 나와 눈도 맞추지 않으려고 했다. 오해를 한 게 미안했던 거다.”

# 대역 배우를 찾아라
‘투 브라더스’에서 알 수 있듯 동물영화의 경우 주인공 대역·대체 배우들이 대거 동원된다. 돼지 등 성장이 빠른 경우에는 그에 따라 더 많은 주인공과 대역이 필요하다.

‘꼬마돼지 베이브’(1995)의 경우 주인공 돼지가 한 마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42마리가 나눠 했다. 6∼18주 된 돼지를 6개 그룹으로 나눠 훈련시켜 뒤 그룹별로 3주씩 찍고 교체했다. ‘102 달마시안’(2000) 촬영에는 2백85마리가 투입됐다. 제작진은 극중 조건에 맞는 어미 달마시안은 구입했고, 16주 동안 훈련을 시킨 뒤에야 촬영에 활용했다. 새끼 달마시안은 훈련 기간이 짧았다. 생후 6주와 8주짜리를 대상으로 각각 주인의 동의를 얻어 2주 동안 훈련시킨 뒤 3주 동안 촬영하고 돌려주었다.

동물영화의 경우 사고 때문에 제작진은 촬영을 하는 데 남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가문의 영광’(2002)에서 진경(김정은)의 손목에 말려 있다가 스르르 소리를 내며 숨는 뱀은 반복 촬영에 기력이 쇠한 듯 다음날 죽고 말았다. 대서(정준호)가 진경에게 선물한 강아지도 이틀 뒤 과로로 사망했다.

이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제작진은 여러 마리를 주인공의 대역으로 사용한다. ‘히달고’(2004)에서 사용된 말은 5필. 주요 장면 촬영에는 TJ라는 말이, 그외에는 그와 비슷해 보이도록 몸에 색칠을 한 다른 말들이 출연했다. ‘폴리’(1998)에서도 주인공인 새끼 앵무새 역에 14마리를 동원했다.

한국 영화 가운데 동물이 주연급인 작품은 ‘꼬리치는 남자’(1995)가 있다. 이 영화에 나온 개는 골든 리트리버 종. 제작진은 개를 캐스팅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콘티를 보냈고, 우여곡절 끝에 3천만원을 주고 이 개를 공수해 왔다. 이 돈은 1995년 당시 인기가 급상승하던 여주인공 김지호의 개런티와 맞먹는 것이다.

미국 영화 ‘빙고’(1991)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이 개는 영리했다. ‘꼬리치는 남자’의 허동우 감독은 “개가 ‘액션’ ‘컷’ ‘오케이’ 등을 모두 다 알아들었다”며 “촬영중 ‘컷’을 외치면 엔지(NG)인 줄 알아채고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들려줬다. 허감독은 또 “충분히 쉬고도 엔지를 내면 개는 극비리에 조련사에게 특별 훈련(?)을 받았는데 나올 때 보면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쨌거나 이 개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조련사 두 명에 욕실을 겸비한 전용 숙소와 자동차가 제공됐다. 리허설 때 개는 쉬고, 연출부 감독 지망생들이 개 연기를 대신했다. 개의 나이가 여덟 살로 노년인 점을 감안, 조련사는 아비를 닮은 이 개의 아들도 데려왔다.

‘마지막 늑대’(2003)에는 늑대가 두 마리 나온다. 늑대는 캐스팅 조건이 까다롭고 조련이 불가능해 제작진은 늑대 개를 활용했다. 3개월에 걸쳐 수소문, 일일이 주인을 만난 끝에 킹·마고·호비·토욘을 뽑은 뒤 4개월 동안 전문가의 조련을 받게 했다. 촬영에는 1개월이 걸렸다. 이 가운데 열흘은 암컷 호비가 발정기여서 촬영을 하지 않았다. 발정기에는 신경이 예민해져 연기를 시키는 게 불가능한데다 강행할 경우 불상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YMCA야구단’(2002)에는 호창(송강호)이 낙향을 결심하는 장면 등에 학(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의 학은 제작팀이 서울대공원에서 찍어온 학을 놓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한 것이다. 학에게 연기를 시킬 수 없는데다 천연기념물 제250호여서 임대가 불가능했고, 임대 후 불상사가 생기면 1억5천만원을 변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 기자들이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에 나오는 거대한 뱀을 두르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사진 위). 줄스 실베스터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등 37년 동안 3백여 편의 영화, TV 드라마, CF에서 동물 조련을 맡았다(아래).

배장수기자 Profile

경향신문 영화 전문 기자.
영화 담당 기자 16년에
최근작 ‘그때 그사람들’까지
43편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대표작으로 ‘마누라 죽이기’
‘태백산맥’ ‘은행나무 침대’
‘박하사탕’ ‘엽기적인 그녀’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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