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주 사고 방송생활 중 가장 큰 사건
경북 상주에서 발생한 사고는 올해뿐 아니라 37년의 방송생활 동안 경험한 사건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다는 이상벽씨(57). 눈깜짝할 새에 사고가 발생한 후 무대 밑에서는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 대신 구급차 사이렌만이 들렸다. 그리고 이어진 사람들의 비명소리…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벽 씨는 지난 3년 동안 서울을 벗어나 중소도시를 돌면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MBC-TV ‘가요콘서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의 땀과 열정이 맺힌 프로그램은 한순간의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종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터줏대감 MC 이상벽 씨는 아직도 그 사건만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사고가 난 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사고 현장에 내려가서 사람들을 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위로금을 전달하는 것도 이상하더라구요. 그 프로그램은 제 개인적으로도 좋은 뜻을 품고 시작했던 일이었어요. 사고 후 사찰에 가서 4일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제 방송생활 경험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죠.”
이 사고로 가요 무대를 떠난 이상벽 씨는 마음을 쏟아 진행할 새 프로그램을 찾다가 15년 만에 라디오 DJ 자리로 돌아왔다. 사실 방송국 개편 때마다 그는 라디오 DJ 제의를 받았지만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냈다. 매일 오후 4시 SBS Love FM의 ‘이상벽의 세상 만나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청취자들과 새로운 데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향에 온 느낌이죠.(웃음) 라디오는 감성적인 매체라서 청취자들의 귓가에 대고 말을 하는 느낌으로 진행을 해요. 요즘 젊은 후배들이 라디오에서 웃고 떠들기만 하는데, 라디오 매체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성실함을 밑천으로 열심히 해야 할 거예요.”
그는 지난 1967년 방송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습관이 하나 있다. 늘 방송 2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해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오후 4시 방송을 위해서 매일 2시까지 도착해 오프닝 멘트와 진행 시트를 꼭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절대로 녹음방송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라디오 매체의 생명은 라이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일 처음으로 라디오 부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정말 떨었다고 한다. 청취자들도 ‘천하의 이상벽이 떠네!’라고 소감문을 올려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방송시간대는 최유라, 이금희, 전영록, 안문숙 등 쟁쟁한 DJ들의 각축장이기 때문에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딸 시집 보낸 것’
2005년은 그에게 다사다난했던 한 해다. 개인적으로 따져볼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딸을 시집 보낸 것이다. 결혼식 당일 눈물을 펑펑 흘릴 만큼 딸의 결혼식은 감동적이었다고.
“지연이 결혼식을 앞두고 매일 밤마다 꿈을 꿨어요. 결혼식장에 하객이 한 명도 없는 꿈을 계속 꾼 거예요. 우리 딸 결혼식을 치르는 게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하지만 결혼식장에 전·현직 장관 10명이 참석했고 나훈아, (조)용필이, 신성일·엄앵란 부부까지 하객만 2천여 명이 왔어요. 그때 얼마나 행복하든지.(웃음) 딸을 결혼시키고 나니까 남들은 언제 할아버지가 되냐고 물어보는데, 딸이랑 사위가 알아서 계획을 세우겠죠. 이젠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아들을 빨리 결혼시켜야죠.”
이상벽 씨는 딸 결혼식을 앞두고 터진 오보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고 한다. 바로 ‘아내와의 별거설’ 기사.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하고 며칠 동안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낸 것이 화근이었다고. 기사가 보도된 다음 날 정정기사가 실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물어볼 때는 가슴이 아프기만 하다고.
“제가 구설수에 오를 만한 뉴스메이커도 아닌데 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확대 해석해서 발생한 일이었어요. 그래도 별탈 없이 지나갔으니 다행이죠.”
이상벽 씨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개운치 않은 듯 짧은 이야기로 끝맺음을 했다. 요즘도 그 일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지만 이젠 잊고 지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이상벽 씨는 자신을 두고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때문에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TV 출연을 자제할 생각이라고. 그렇다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방송이 없는 시간에는 그림과 ‘노을 박물관’ 건립에 올인할 계획이다.
그는 얼마 전부터 학창시절의 전공을 살려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개인전시회를 열고 싶은 욕망이 생길 정도로 그림에 푹 빠져 있다고. 내년에는 지인들과 함께 그룹전이라도 열어볼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을 박물관 건립에도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노을박물관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박물관으로 아직 우리나라에는 건립되지 않았다.
“어떤 분이 대부도에 노을 박물관을 건립한다고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더라구요. 약 30만 평 부지에 건립비만 몇백 억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예요. 제가 그 프로젝트에 안성맞춤이라고 저에게 맡겼어요. 제가 아는 교수님이랑 함께 진행하고 있죠. 요즘은 이 작업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안산시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덕분에 안산시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노을 박물관은 오는 2007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 노을 박물관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둘러보고 올 계획도 세워두었다.
이상벽 씨는 지난 37년 동안 쉬지 않고 방송생활을 했다. 10년 동안 주부 대상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을 진행했고, 5년간은 ‘주부 가요열창’의 MC로 활동했다. 한 프로그램을 이렇게 오랫동안 진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방송인 이상벽 씨가 라디오에서 펼칠 수더분하고 친근한 이야기들이 기다려진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손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