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 뒤에 감춰진 호탕함! 유지인과의 내면 인터뷰

우아함 뒤에 감춰진 호탕함! 유지인과의 내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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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이어 나도 대령! 받들어~ 총!”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에도 마냥 좋아 ‘껄껄껄’이다. 몸이 단단하고 다부져 ‘람보’로도 불린다. 알고 보니 ‘군인의 딸’. 1970년대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군림했던 최고의 은막 스타 유지인의 본모습이다. 일일코믹시트콤 ‘솔져 패밀리’에서 대령으로 변신 준비에 한창인 ‘여걸’ 유지인과의 ‘깨는’ 인터뷰.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에서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배우로 소박한 삶을 이어가는 그녀의 홀로서기를 따라가본다.

그 아버지에 그 딸, 어릴 적 꿈은 여군이 되는 것!
“우리 가족이 바로 ‘솔져 패밀리’였어요”
브라운관을 통해 보아온 모습대로라면 ‘호호호’ 웃어야 옳다. 그것도 다소곳이 입을 가리며 수줍게 또는 우아하게. 그런데 목젖이 다 보일 정도로 ‘하하하~’ ‘껄껄껄~’. 호탕한 웃음소리부터가 심상치 않다.

뭐 대단히 신나는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시종일관 싱글벙글. 눈빛은 살았고, 표정에선 생동감이 넘친다. 알고 보니 12월 촬영에 들어가는 새 드라마 때문.

그녀를 이토록 흥분상태에 이르게 한 작품은 내년 봄 상영을 목표로 사전 제작 준비에 한창인 일일코믹드라마 ‘솔져 패밀리’. 제목 그대로 군인 가족 이야기다. 극중에서 유지인은 47세의 대령으로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남편 노주현(중령)과 함께 온 집안 식구를 ‘군인화’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사는 어머니로 나온다.

드라마 ‘솔져 패밀리’의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난 유지인은 “연기 생활 31년 만에 이렇게까지 마음에 쏙 드는 배역은 처음”이라며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실 데뷔 당시 사람들이 저더러 다들 ‘왈가닥 소녀’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항상 멜로물에만 캐스팅되는 거예요. 이번에는 무엇보다 하고 싶던 코믹 연기를 할 수 있게 돼서 기쁘구요, 더욱 좋은 건 군인, 그것도 대령으로 출연해 집 안팎에서 큰소리 떵떵 치며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번엔 후배, 동료 연기자들을 비롯해 PD, 작가까지 군대식으로 얼차려 한번 제대로 시켜볼 생각입니다. 하하하~”

유지인이 코믹드라마에, 그것도 여군으로 출연한다는 말에 대다수 사람들은 ‘아무리 연륜 있는 배우라 해도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유지인은 의외로 위트 넘치고,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 실제 모습 그대로만 카메라에 비춰진다면 ‘대령’ 아니라 ‘장군’ 역이래도 그럴싸하게 어울릴 성싶다. 군인의 피를 이어받은 ‘대령의 딸’이라는 사실 또한 그녀의 연기 변신에 신뢰를 더하는 요인. 유지인의 아버지는 기갑부대 여단장을 역임, 대령으로 예편한 직업군인이었다. 그래서일까? 유지인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질색하며 싫어한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에도 박장대소, 즐거워서 어쩌질 못한다.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한술 더떠 자신이 겪은 군대이야기를 털어놓느라 입이 바빠졌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군단 기수를 하면서 전방에 위문도 다니고 그랬어요. 위문공연으로 ‘춘향전’을 했는데, 선생님이 춘향이 역을 권했는데 재미가 없겠다 싶어 우긴 끝에 월매 역을 했죠. 결국은 ‘춘향전’이 아니라 ‘월매전’이 되어 버렸구요. 군인 아저씨들이 재밌다고 난리가 나고. 학군단 기수 친구들과 만나면 지금도 ‘단결! 충성!’이 인사예요. 5사단에서 막타워 훈련도 받아봤고, 불광 낸 군화를 멋으로 신고 다니며 많이도 우쭐댔죠. 이상하리만치 군대와는 인연이 많은 것 같아요. 공군과 사랑에 빠지는 역으로 데뷔했죠, 군 정훈 드라마도 찍어봤죠, 그리고 ‘솔져 패밀리’로 연기생활 31년 만에 처음으로 코믹연기도 해보게 됐으니, 이쯤되면 대단한 인연 아닌가요?”

유지인의 어릴 적 꿈은 여군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반대로 다부졌던 소녀의 꿈은 결국 불발로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군대 얘기에 절로 신나하는 그녀를 곁에서 보고 있자니 여군이 됐어도 한 자리 확실히 꿰찼을 성싶다.

“어제 ‘솔져 패밀리’의 대본을 읽으면서 한참을 웃었네요. 17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많이 했구요. 자식 중에 유난히도 절 참 많이 예뻐해주셨는데… 저도 아버지를 많이 따랐어요. 길다가 넘어져도 전 ‘엄마’ 안 찾고 ‘아빠’ 찾는 아이였대요. 대쪽 같은 성격도 아버지 성격 그대로죠. 이번 작품을 통해 나도 좀 실컷 웃고, 아버지와의 옛 추억도 떠올리며 행복에 흠뻑 젖어볼까 합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발에 맞는 신발을 한 번도 신어본 기억이 없다. 항상 신발에 발을 맞추며 살았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기상나팔을 부셨던 아버지. 그녀의 하루는 새벽 6시 기상, 8시 전 귀가, 10시 취침 등 늘 시계바늘처럼 정확하게 돌아갔다. 한평생 ‘군인가족’이라는 명찰을 가슴팍에 달고 규율과 규범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그녀. 그런데 습관이란 게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오십줄의 나이에도 어릴 적 습관 그대로 새벽 6시면 눈이 번쩍 하고 떠진다는 걸 보면.

군인 아버지의 반대로 연예계 데뷔 당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아버지 덕에 올곧은 배우생활도 가능했다. 1974년 데뷔 당시 일이다. 영화 ‘그대의 찬손’을 촬영 중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영화사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단다. “우리 딸 잘하고 있습니까?” 당시 사무실에 있던 영화사 관계자들은 순간 일동 차렷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74년도에 저희 아버지가 전방에 계셨고, 당시 비상사태였으니 당연히 완전무장 상태였죠. 또 그때는 군인이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아닙니까? 그러니 분위기가 당연히 살벌할 수 밖에요. 사실은 그냥 사회에 나간 딸이 잘 하고 있나 확인하러 오신 것뿐인데. 그런 아버지 때문이었을까요? 여자가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에 으레 남자들과의 소문이 나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전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어요. 배우는 물론이고 스태프들까지도 제 앞에선 다들 조심하는 편이었죠.”

만약 그녀에게 이런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관록의 배우 유지인은 애시당초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지인은 톱스타가 되기보다는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딸로 남길 바랐다. 그래서 남보다 두세 배 더 열심히 뛰었고, 빈틈없는 삶을 살았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돼라’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돼라’ ‘배려하는 삶을 살아라’. 어린 딸의 삶에 단단한 뿌리가 되어준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아버지에게 배운대로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서 있더라는 그녀. 유지인은 “이제 됐다”며 자신의 선택에 힘을 실어주시던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제가 군복 입은 모습을 TV로 보시며 굉장히 좋아하셨을 텐데요. 그게 좀 아쉽죠, 뭐.”

시골밥상처럼 소박한 일상에도 행복은 있다
“인생, 놀러 나온 거 아닌가요? 찡그리며 살 이유 없죠”
유지인은 정상의 자리에서 남편과 두 딸을 가진 평범한 주부로 살다 3년 전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요즘 그녀의 생활은 ‘시골밥상’ 그 자체. 단출하긴 해도 소박한 맛이 있다.

새벽 6시면 일어나 그녀가 달려가는 곳은 바로 라디오 방송국. 그녀는 요즘 오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KBS 3 라디오 ‘유지인의 음악편지’로 팬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넨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대학 강단에도 선다. 모교인 중앙대학교에서 배우의 꿈을 키워가는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언제나처럼 설렌다. ‘사업에는 관심이 없냐’는 질문에 거리낌없이 “청춘사업이나 해야지, 지금 내게 무슨 사업이 더 필요하냐”며 껄껄 웃는 그녀. 건강을 위해 하루 한 시간 정도 한강변을 따라 걷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대전에 사는 두 딸과의 데이트가 있는 주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 하루하루가 즐거워 보였다. 머리 복잡한 일은 아예 만들질 않는단다. 다작의 욕심도 버린 지 오래. 이젠 마음이 가는 드라마에서 욕심 나는 배역만을 맡기로 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소풍 나온 인생이 따로 없다.

“인생 쉬러 오는 거, 놀러 오는 거 아닌가요? 요즘은 이상하게 뭘 해도 감사하고 즐겁기만 하네요. 예전엔 시키면 잘해도 뭔가를 찾아서 하는 스타일은 못됐었거든요.일을,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법을 몰랐던 거죠. 그런데 요즘은 일을 할 때도 놀러간다 싶은 게 하루하루가 그렇게 신날 수가 없어요.”

그녀의 홀로서기는 외롭지 않다. 힘들지도 않다. 내가 중심이 되어 다시 찾은 제 2의 인생. 연기를 하는 사람이 이토록 즐거운데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박장대소를 해댈까? 그녀의 코믹 연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 최은영 기자 사진 / 손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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