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자 코미디의 대가 김형곤이 지난 3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평생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는 데 헌신했지만 정작 본인은 지독한 외로움과 스트레스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끝까지 빈소를 지켰던 전 부인 정유진씨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도헌이, 그리고 돌연사로 알려진 그의 죽음에 관한 진실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시사·풍자 코미디의 대가 김형곤(50)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바로 전날까지도 “40~50대가 즐길 수 있는 코미디를 펼쳐 보이겠다”고 호기 있게 외쳤던 그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느닷없이 날아든 비보에 슬픔을 표현하기에 앞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소 진담 같은 농담으로 웃음을 줬던 그이기에 비보 역시 새로운 웃음을 만들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도 있었다. 어쩌면 남아 있는 이들은 그의 비보가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은 사실이었다.
김형곤은 지난 3월 11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운동 중이었던 김형곤은 화장실에 갔다가 갑자기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헬스클럽 강사가 그를 발견하고 인근 혜민병원으로 옮겼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 그는 이미 사망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왕을 가지고 놀았던 위대한 광대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에 곳곳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애석해하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며, 그가 잠들어 있는 빈소 역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은 선후배 코미디언들은 물론, 방송사 스태프들과 정·재계 인사들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빈소를 찾은 선배 방송인 송해는 “코미디계의 큰 별이 졌다”며 슬퍼했다.
“자기 관리를 잘하고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할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죽었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네요. (김형곤이)한창 활동할 당시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국이었습니다. 그 또래가 있어 참 든든했어요. 코미디계에 큰 별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13일 오전 ‘개그맨 故 김형곤 영결식’에서 추모사를 낭독한 후배 박준형은 “어려서부터 선배님의 코너를 보면서 유행어를 따라 했다”며 자신을 코미디계로 이끈 고인을 회고했다.
“얼마 전 제 공연에 직접 오셨는데 ‘관객에게 불편을 끼치기 싫다’며 줄을 서서 입장하셨어요. 그날 공연을 보시면서 누구보다 가장 크게 웃어주셨고, 공연이 끝나자 후배들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주고 빈 지갑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려서는 팬이었고, 개그맨이 된 지금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인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보내게 돼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두 번이나 수술을 받은 부친 김근신씨는 현재 거동이 불편해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인에 따르면 장례가 끝날 때까지도 김근신씨는 김형곤의 사망 소식을 몰랐다고 한다.
“4형제 중 둘째인 형곤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몇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두 번이나 수술을 받으셔서 지금은 거동이 불편하세요. 아버지는 아직 사실(김형곤의 죽음)을 모르세요. 건강하셨던 어머니도 지금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시면 어떻겠어요. 만약 쓰러지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큰일이라 다들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고사리 손으로 빈소를 지킨 아들
1995년 11월 2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진행된 국화빵 아들 도헌이의 돌잔치에서 김형곤은 “생에 이렇게 기쁜 날은 없다”며 희희낙락했다. 결혼 후 8년간의 시험관 아기 시술 끝에 어렵게 얻은 아들의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그는 연신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때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입고 김형곤의 품에 안겨 웃음 짓던 아들 도헌이는 장례 둘째 날 빈소에 도착했다. 현재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도헌이는 아직 말이 서툴던 5세 때 부모 곁을 떠나야 했다. 어려서부터 도헌이는 너무나 유명한 아버지 때문에 대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당시 선거와 사업에 실패하고 급기야 이혼까지 하게 된 김형곤은 더 이상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자 아들의 영국 유학을 결정했다.
도헌이가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서자 많은 취재진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하지만 도헌이는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담담하고 의젓하게 아버지의 빈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나이보다 의젓해 보이던 이 13세 소년은 정작 병원에 도착하고도 한 시간이 넘게 아버지의 영정을 마주하지 못했다. 사실 도헌이는 장례식장에 올 때까지도 사실을 몰랐다. 영국에 유학 중인 도헌이를 한국으로 불러들인 어머니 정유진씨가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방학이라 서울로 오려던 참이었어요. 차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니까 빨리 와야겠다’는 말만 했어요.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할 마땅한 핑계가 생각나지 않더라구요.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야 사실을 말해줬는데, 충격이 컸을 거예요.”


김형곤의 사망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동료들의 입을 통해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돌 뿐이다. 의료진 역시 그의 사망 원인을 ‘급성 심근경색’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죽음의 원인이 되는 질병이 발생하고 한 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돌연사란 얘기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한결같이 다이어트는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김형곤은 사망하기 몇 달 전 현대아산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고, 전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구들을 만나서도 “이제는 술도 먹을 수 있겠어”라고 자신의 건강을 자랑삼아 얘기했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사망 전날에도 김형곤은 후배와 함께 사업 얘기를 하며 과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상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는 사람이 어디 김형곤뿐이겠는가만 그에게는 남다른 고민이 또 있었다. 바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지인은 “재주가 뛰어나다 보니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며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다 보니 주위에 마음을 터놓고 의논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추진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김형곤과 대학 동문인 한 친구는 그가 한때 자살까지 결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형곤이 작년부터는 빚도 거의 갚고 상황이 좋아지는 줄 알았다며 안타깝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난해 김형곤은 전성기 못지않은 왕성한 방송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다이어트 섬 ‘감비도’도 계획하고 있었다. 감비도는 고통스러운 다이어트가 아닌 웃으면서 살을 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형곤은 이 다이어트 섬 감비도를 완성하기 위해 약 3만 평 부지를 매입하고 다양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도 본업인 무대공연도 기획했다.
그가 준비했던 대학로 뮤지컬 전용 공연장은 오는 5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현재 그가 직접 뽑은 연기자 20명은 극장 개관에 맞춰 무대에 올릴 작품 연습에 한창이다. 김형곤의 후배 코미디언 백재현이 뮤지컬 ‘루나틱’을 무대에 올리면서 스트레스와 과로로 풍이 와 입이 돌아갔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장을 개관하고 작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이제 김형곤의 건강한 웃음을 다시 볼 수는 없다. 대신 한평생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해주던 그의 넉넉한 모습은 한 줌의 흙이 되는 대신 땅 위에 남아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를 떠나보내며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전했던 웃음 철학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웃을 일이 생겨요. 웃으세요! 이유 없이 길을 가다가도 웃고 거울을 보다가도 웃으세요. 그러면 세상이 달라져요.”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이상민·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