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돈’은 배우 오만석을 재발견한 작품이다. 뮤지컬에서는 ‘만짱’으로 불리는 스타였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년간 계속된 촬영으로 지친 상태지만, 고향인 뮤지컬 무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뮤지컬 배우로 종횡무진하는 오만석을 만났다.
드라마 촬영 후 연달아 뮤지컬 두 편에 출연

“2003년에도 드라마 ‘무인시대’에서 조연을 맡기도 했고, 단역으로 TV 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돈’처럼 거의 1년간 고정으로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끝나니까 아쉽더라구요. 처음으로 긴 호흡의 드라마를 해봤는데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신돈’ 때문인지, 거리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 요즘 자신을 보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아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 얻은 인기에 대해서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다. ‘빨리 알려진 만큼 잊혀지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
오만석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신돈’에 캐스팅됐다. 드라마 감독은 원현 스님 역의 배우를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오만석을 소개 받았다. 당시 그는 뮤지컬 ‘헤드윅’에 조승우와 함께 더블 캐스팅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 감독으로부터 작품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오만석은 자리를 내주지 못했다. 당시 ‘헤드윅’은 연일 매진이었고, 보조좌석조차 구하기 힘든 때였다. 하지만 감독은 오만석을 캐스팅했고, 무대 위의 스타를 TV로 끌어들였다. 오랜 기간 드라마를 촬영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지만,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가야만 했다.
“드라마 끝난 뒤에 스태프와 배우들이 함께 해외로 여행을 갔는데 저는 남들보다 일찍 들어와야만 했죠. 계약이 되어 있는 작품이 있었거든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고향인 뮤지컬 무대로 돌아왔다. 그가 출연하는 작품은 지난해 여름부터 계약이 되어 있던 뮤지컬 ‘김종욱 찾기’다. 또 다른 뮤지컬 배우인 엄기준과 더블 캐스팅된 작품으로 지난 6월 2일부터 공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6월 29일부터 시작되는 뮤지컬 ‘이’에 ‘공길’ 역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그리고 영화 ‘수’라는 작품 촬영도 8월 말까지 잡혀 있다. 또 내년 초에는 창작 뮤지컬을 할 예정이다. 뮤지컬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로 1년 스케줄이 꽉 차있다. 드라마 종영 후 쉬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한꺼번에 3개의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것. 아직도 그의 출연을 원하는뮤지컬 작품이 많다. 그의 티켓 파워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려주는 증거이다.
“영화 ‘왕의 남자’가 대박이 났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작인 뮤지컬 ‘이’와 공길 역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배우로서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새로운 공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공길이 무엇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하는지, 광대인 공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살려보려고 합니다.”
아내는 인정받는 영화의상 디자이너
오만석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은 바로 그의 팬이 된다. 정제되어 있지만 감정의 극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모습과 뮤지컬 ‘헤드윅’에서 보여준 것처럼 폭발적인 가창력 때문이다. 특히 조승우와 더블 캐스팅으로 선의의 경쟁을 보여준 ‘헤드윅’은 ‘역시 오만석’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오만석이 공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교회 성극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가대와 합창단에서 활동한 경험 때문에, 교회 성극에서 항상 주인공을 맡았다. 고등학교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방황하는 별들’ ‘신화 1900’ 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오르면서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가 선택한 학교는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이었다.
그는 연극원 1기 출신인데,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였다. 선생님의 소개로 ‘시험 삼아’ 지원을 했는데, 연기력이 좋았기에 실기점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연극원은 그에게 배우로서 날개를 달아줬다. 좋은 교수진과 학생들이 스스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 때문에 배우로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던 것. 동기는 장동건, 이선균 등이다.
“1, 2학년 때는 수업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 있었죠. 고등학교에 다니는 줄 알았다니까요.(웃음) 그래도 학생 스스로 연기 실습이나 연출 실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서 참고 다녔죠. 군대 다녀오고 학교 다니면서 배우로 활동하다 보니 졸업하는데 8년이나 걸렸어요. 이번에 무대에 올리는 ‘이’도 제가 학교에서 졸업 작품으로 참여한 공연이에요. 연우무대에서 초연될 때 제가 객원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계기가 됐죠.”
뮤지컬에 뛰어들게 된 것은 안해순 선생의 소개 때문이었다. 연기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동안 숨겨온 노래 실력을 발휘하면서 뮤지컬의 숨은 진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뮤지컬 ‘그리스’를 통해서 배우 오만석이라는 이름이 관객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극 ‘갈매기’ ‘보이첵’ 등에서도 뛰어난 연기를 선보여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그리고 뮤지컬 ‘헤드윅’을 통해 뮤지컬 스타로 인정 받았다.
오만석은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보다 유명한 영화의상 디자이너 조상경씨다.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피도 눈물도 없이’를 시작으로 ‘올드보이’ ‘짝패’ ‘얼굴없는 미녀’ ‘범죄의 재구성’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 등에서 의상을 담당한 베테랑이다. 조상경씨는 오만석의 대학 후배지만 두 살 연상이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연극 ‘이’를 무대에 올릴 때 아내가 의상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 처음 만났다. 의상과에서 워크숍을 올리는 작품 연출을 오만석이 맡으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1년 반 정도 사귀다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2001년에 결혼했어요. 아내가 저보다 훨씬 바빠요.(웃음) 아내는 작업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때도 많아요. 아내가 훨씬 일도 많이 하는데, 집안 경제는 제가 책임지고 있으니까 이상해요.(웃음) 이제는 ‘제발 집에는 들어와라’며 뭐라고 할 때도 있죠. 아내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이제는 일을 좀 줄인다고 하네요.(웃음)”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서로 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각자 잘 알아서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딸에게 다른 부모들처럼 신경을 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많다.
오만석은 여전히 자신에 쏟아지는 인기와는 무관하게 무대에 경건한 마음으로 오른다.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 연구를 충실히 하고, 팬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이런 자세가 있기에, ‘만짱’ 오만석이 탄생했을 것이다.
2~3년 후에는 자신이 직접 연출을 맡아서 작품을 올리고 싶단다. 배우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