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과 지인들은 ‘의료사고’ 한목소리
중견 탤런트 한영숙(55)이 지난 6월 16일 오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4월 말 일산 백병원에서 심혈관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뒤,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죽음 앞에 가족은 물론 많은 지인이 애도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의료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인의 어머니 임헌숙씨는 이날 빈소를 찾은 탤런트 고두심을 붙잡고 “영숙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갔다”며 하늘나라로 떠나간 딸을 잃은 슬픔을 쏟아냈다. 그녀는 “영숙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날 줄 꿈에도 몰랐다”며 “이제 고생 안 하고 잘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다니. 부디 그곳에서라도 잘살아라. 병원에 살아서 들어간 딸을 병원에서 죽여서 내보냈다”며 병원 측을 원망했다.
현재 병원 측이 밝힌 공식적인 사인은 복막염으로 인한 패혈증이다. 이에 대해 유가족 측은 “대동맥 방류 가능성이 있다고 해 수술을 받았다”며 “수술 후 고열 등 후유증이 있는데도 병원 측이 방치하는 바람에 장기가 상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빈소를 찾은 KBS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연출을 맡은 김석윤 PD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지난 4월 말경 수술실에 들어가기 이틀 전에 만났는데, 그때만 해도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수술 직후 촬영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로 건강하셨다”며 “수술 후에 금세 퇴원하실 줄로 알았는데, 병문안을 가도 중환자실에 계셔서 만날 수가 없었다”고 말해 그녀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김 PD는 이어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갔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의사들이 수면제 처방 외에는 하는 것이 없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유족들이 의료사고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김 PD는 “가족 친지들이 너무 억울하니까 그러는 것 같다”며 “수술 직후 뵙기로 했는데, 결국은 얼굴도 뵙지 못하고 이렇게 돼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울음바다를 이룬 눈물의 영결식
고인이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18일 아침 7시. 경기도 일산 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예배에는 유족과 여의도 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참석했다. 20분 남짓 짧게 진행된 영결예배를 마치고 시신은 MBC 본사로 이동했다. 고인이 1970년 첫발을 디딘 MBC 본사 앞마당에서 치러진 영결식에는 60여 명의 동료와 친지들이 참석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성우 박기량은 “TV 드라마 ‘여인천하’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으신 고 한영숙 선배님은 훌륭한 성우셨습니다”란 말로 고인을 소개하고 라디오와 드라마는 물론 영화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인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MBC 성우 4기 동기생인 한상혁 역시 “다정한 목소리, 우아한 모습을 오늘은 왜 볼 수 없고 왜 들을 수 없는지 믿을 수 없고 슬프기 그지없습니다”라며 다시 볼 수 없는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이날 추도사를 낭독한 동기생 서영애가 “친구야, 영숙아, 영숙아 대답 좀 해봐”라고 말하자 장내에 참석한 많은 동료와 친지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서영애씨의 추도사가 끝나고 고인의 시신은 라디오 녹음실, 성우실, 드라마 녹화장, 분장실 등을 들러 경기도 일산 청아공원으로 향했다.
남편 박재형(65)씨는 고인이 청아공원에 안치된 것에 대해 “가족들의 노후를 위해 준비 중인 조치원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이장이 진행되지 않아 먼저 청아공원에 안치했다”며 “부모님 묘를 이장한 뒤 아내도 조치원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사고 의혹이 제기되는 병원 측 과실에 대해 “병원 측의 입장 발표가 있었지만 장례가 우선이라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장례가 끝난 뒤 구체적인 대응을 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오랜 시간 좋은 연기로 시청자들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긴 탤런트 한영숙. 브라운관을 통해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팬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의료사고다” vs “도의적인 책임은 인정한다”

4월 25일
유가족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일반병실로 옮겨졌는데, 며칠이 지나 다시 증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병원 심장 근처 흉복부 대동맥 방류 수술은 20여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대 수술이다. 사전에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5월 4~8일
유가족 연휴(5일 어린이날, 7일 일요일)라는 이유로 사람이 죽어가는데 장시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중환자실에 방치했다.
병원 방치한 것이 아니다. 환자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경과를 지켜본 것이다.
5월 15일
유가족 실험적 개보수를 하자고 했을 때까지도 의사가 작은 창자에 이상이 있는 것을 몰랐다. 계속해서 엉뚱한 조치만 취했다. 수술을 하면서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병원 작은 창자에 생긴 천공을 늦게 발견한 것은 인정한다. 그로 인한 도의적인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수는 없었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5월 19일
유가족 작은 창자에 조그마한 천공을 발견한 뒤 다시 봉합 수술을 했다. 그러나 봉합한 일부분이 재천공돼 다시 수술을 했다. 왜 일찍 천공을 발견하지 못했나?
병원 일반적으로 창자의 천공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리고 합병증에 대해서 누차 설명했다.
6월 16일
유가족 상황이 이 지경이 된 후에도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았다. 또 담당 의사는 연락 두절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피하는 것 아닌가?
병원 그렇지 않다. 담당 의사는 수술 때문에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유가족에게 우리의 입장만 내세울 수 없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