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괴물’ 개봉 앞둔 봉준호 감독

화제작 ‘괴물’ 개봉 앞둔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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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영화 다신 안 만든다 하다가도, 다시 해보라면 진짜 잘할 텐데 싶다는 게 아이러니죠”

‘살인의 추억’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세 번째 장편 ‘괴물’로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번에는 ‘한강에 괴물이 나오는’ 영화다. ‘칸’에서 ‘재밌다’고 극찬했다는 이 영화는 봉 감독의 오랜 꿈이었다 한다. 그의 엉뚱한 발상에 고개를 흔들던 많은 이들이 이제는 거꾸로 영화의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다.

칸 영화제에서 갈채받은 ‘한국식 괴물’
‘괴물 영화’라니, 우리나라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장래 촉망받던 멀쩡한 감독 하나 버리는 거 아닌가. 영화 ‘괴물’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오지랖 넓게 걱정부터 앞섰다. 괴수 영화라는 것이 워낙에 기술력이나 디테일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르가 아니던가. 요즘 관객의 눈높이에 부응하려면 고질라니, 에일리언이니 하는 괴물 정도는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 돼야 할 테니 말이다.

내심 그런 걱정이 드는 건 코메디언 출신 모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사뭇 장난감스러운(그러나 해외에서는 꽤나 인정받았다고 전해지는) 캐릭터가 동반 연상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감독은 고등학교 시절 한강 교각을 타고 오르는 괴생물체를 우연히 목격하고 그때부터 꼭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단다. 18년간 그 이미지를 뇌리에 간직하고 있었다는 얘긴데, ‘어린 시절의 꿈은 그냥 꿈으로 남겨두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또다시 오지랖을 넓혔다.

그런데 요즘 새삼 깨닫는 것 중 하나는 ‘이름값’ 있는 사람들은 어찌 됐든 그 이름값을 한다는 것이다. 월드컵만 봐도 그렇다. 나이 먹고 한물간 선수들이 아닌 다음에는 역시 한다 하는 선수들이 플레이도 돋보이고 골도 넣고 그렇지 않냐는 말이다. 박지성이 괜히 박지성이 아니고 안정환이 괜히 안정환이 아닌 것처럼.

봉준호 감독도 역시 이름값을 하려는 모양이다. 지난 5월, 영화의 완성본이 채 나오기도 전에 칸 영화제에 선보인 ‘괴물’에 대해 호평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평론가는 “올해 영화제에서 본 작품 중 최고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완성도 되기 전에 일본을 비롯한 10여 개 나라에 7백만 달러의 수출 계약을 맺으며 ‘외화벌이’마저 했다고 하니, 사뭇 위험한 시도로 보이던 ‘괴수영화’라도 역시 봉준호 감독이 만들면 되는 모양이다.

영화 ‘괴물’ 제작 발표회장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키만 훌쩍 컸지 통통한 얼굴과 곱슬머리 때문에 똑 개구쟁이 소년 같았다. 흔히 영화감독 하면 떠올리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구쟁이 같은 모습 한편으로 성실한 모범생 같은 모습도 언뜻 비친다. 학교 다닐 때 보면 은근히 엉뚱하긴 해도 자기 할 일은 다 알아서 하고 공부도 잘하던 친구가 꼭 있지 않았나. 봉 감독이 딱 그랬겠다 싶은데 실제로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고 한다.

외모도 부담 없지만 배우들과 함께 있을 때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편안해 뵌다. 주연 배우들 모두 “전적으로 감독 하나 믿고 이 영화 찍었다”고 입을 모으는 걸 보면 감독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이미 인간적인 관계로 ‘엮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저명한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 봉 감독의 외조부
“‘살인의 추억’을 같이 찍은 스태프와 다시 손을 잡았습니다. 배우들도 모두 이전부터 일한 사람들이구요. 사실 스태프와 배우를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어려워요. 어떻게 보면 그들이 내 영화의 첫 관객인 셈이잖아요. 처음 도전해보는 장르인 만큼 나의 우군, 나를 대책 없이 신뢰해줄 것 같고 내 편이 돼 줄 것 같은 사람들과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함께 만들자고 제안할 때 ‘내 능력 밖의 영화다. 여러분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영화다’라고 절절이 호소한 기억이 납니다. 일단 ‘최초의 관객’으로서 저를 믿어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영화의 얼개는 이렇다. 늘 변함없이 우리 곁을 흐르는 한강. 가장 평화롭고 익숙한 그곳에서 어느 날 문득 공포스런 괴생물체가 출현한다.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 가족은 그 괴물에게 사랑하는 막내딸을 빼앗기고 감당하기 힘든 불행에 빠진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그저 오징어나 굽고 컵라면을 팔던 한 가족이 괴물과 처절히 사투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 ‘괴물’에는 보통의 괴수영화처럼 도시 전체를 짓밟는 거대한 괴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괴물과 맞서 싸우는 영웅도 없다.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랬잖아요. 못나고 우스꽝스럽지만 범인을 잡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었죠. ‘괴물’에서도 주인공들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자 많은 사람들입니다. 보통 괴수영화에서 괴물과 싸우는 주체들은 과학자나, 육해공군 등 전문가 집단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괴물과 싸우는 게 제일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싶었어요.”

그런 캐릭터를 앞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뒤따라 도출되었다고 한다. 약자들의 불행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과연 도움의 손길을 뻗어본 일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봉 감독은 그러나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 선동)가 앞서는 영화를 개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의도로 메시지가 앞서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기대해마지 않는 것은 단연 괴물의 실체다. 실제로 봉 감독은 영화 속 괴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무척 신경 썼다. 정체불명의 생물체, ‘괴물’이야 말로 이 영화의 관건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괴물의 모습을 구축하는 데는 크리처(creature) 디자이너 장희철씨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 ‘킹콩’ 등의 컴퓨터 그래픽을 담당한 웨타 워크숍(Weta Workshop)이, 특수효과에는 특수효과 전문회사 오퍼너지(Orphanage)가 각각 참여했다고 한다.

“새로운 괴물 캐릭터를 창조해야 했어요. 걱정이 많았죠. 단도직입적으로 고질라든지 미국식 괴물 등등은 염두에 둔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 영화 스토리에 충실하려 했죠. 이 영화의 최대 핵심은 일상 속에서 보는 한강, 우리가 늘 보는 한강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 설정에 매력을 느끼고 촬영했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성 있는 괴물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어요. 가령, 등이 굽은 물고기에서 모티브를 딴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 물고기들은 실제로 종종 한강에서 발견되곤 하잖아요. 현실성을 살리려면 일단 괴물이 너무 크면 안 되겠더군요. 또 괴물 앞에 설 배우 송강호와 어울려야 하구요. 톰크루즈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아닌 송강호와 어울리는 괴물! 그러니까 한국적인 괴물을 원했다고 할까요.”

한강 교각을 기어오르던 괴물을 실제로 봤다는게 정말이냐는 질문에 대해 봉 감독은 “실제 본 것이 맞다. 마케팅실에서 지시한 것이 아니다”라고 짧게 호소(?)하기도 했다.

영화계에선 ‘책’(시나리오)이 좋으면 일단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는 영화화되기 전부터 업계에 소문이 쫙 퍼진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는 감독 중 하나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자신의 모든 연출작을 직접 썼다.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면에서 부진했지만 세 작품 모두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로 인정받았다.

사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재능은 윗대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19일 제14차 이산가족 상봉이 있던 금강산 온정각휴게소에서 봉준호 감독의 남다른 가족 내력이 세간에 알려졌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천변풍경’ 등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한 획을 그은 구보 박태원씨(1909~1986)의 4남매가 56년 만에 만난 자리에서다. 북측 이산가족으로 남측 동생들을 만난 장녀 설영씨(70)는 여동생 소영씨(68)의 아들이 유명한 영화감독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소영씨의 아들이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즉 구보 박태원은 봉 감독의 외조부가 된다.

소설가 박태원은 6.25전쟁 당시 친구였던 상허 이태준(1904~?)을 만나러 간다며 부인과 5남매를 남겨두고 북으로 갔다. 남겨진 가족은 1.4후퇴 때 서울 이남으로 피난했는데 장녀 설영씨만 외가인 서울 이화동에 남겨졌고 이후 소식이 끊겨 이산가족이 됐다고 한다. 봉 감독의 모친에 따르면 봉 감독이 평소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외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게 아니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의 문재(文才)는 가족 내력인 셈이다.

7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괴물’은 아직 후반작업 중에 있다. 칸에서도 반응이 좋았지만 한국적 유머를 곳곳에 배치한 만큼 우리 관객이 보면 더욱 재밌을 거라는 게 봉 감독의 은근한 자신감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세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우선, 완성도 높은 괴물을 등장시키는 것. 그래야 리얼하고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될 테니까요. 괴수영화 한다고 하니까 주변의 반응이 최악이었어요. ‘살인의 추억’ 한다고 했을 때도 왜 실화를 만들려고 하냐면서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이번에도 ‘왜 영화 경력에 오점을 남기려 하냐’는 식의 반응이 많았죠. 장르에 대한 그런 편견이 나를 더 자극하더군요. 제대로 된 걸 보여주겠다는 오기 같은 게 생겼달까요.

두 번째 목표는 가족의 캐릭터를 잘 살리자는 거였어요. 괴물은 이 영화의 모티브지만 가족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왜 아무도 이 가족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박강두네 가족은 약자를 대변하죠.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도와줘본 적이 있었나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혹은 감독의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목표했다는 그 세 가지가 얼마나 충실하게 달성됐는지는 이제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다.


글 / 박연정 기자 사진 /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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